혼인빙자간음죄로 고소하려는 여자인데요, 작년 다이어리에 메모해 둔 것이 있어서 그동안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9월 2일 오후 약 10시 30분
핸드폰기능을 탐색하던 중 네이트(엔탑)를 알게 되었습니다. 메일친구 사이트에 들어가서 회원가입을 한 지 30분이 지나 뜻밖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남자를 알게 되었고 약 1시간정도의 대화를 나눈 끝에 호감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폰팅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요즘 인터넷 챗팅이나 폰팅이 사회적으로 인식이 안좋지만 대다수가 그럴 뿐 찾아보면 건전한 만남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며 얘기하였고 본인의 소개도 하였습니다. 이름은 xxx, 나이는 20대후반, 현재 미혼, 하는 일은 호텔관련 업무, 취미는 집에서 혼자 영화보기...이것이 첫 대화였고 여기에서 저에 대한 정보는 어떠한 것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문자친구로 하기로 하였고 문자를 보냄으로써 제 번호를 가르쳐주었고 두 번째 연락을 하다 그 이후론 자주 통화하였습니다. 만나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밤에 마치는 이유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적절치 않았던 이유도 있었지만 성급하게 누군가를 만날 필요는 없었기에 만나기까지는 약 한 달이 걸렸습니다.
9월 17일 저녁 약 8시
이날도 통화를 하였는데 학력은 xx대 xxxxxx과, 막내아들인 자신 이외에 부모님과 형제들은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예전에 식구들을 따라가서 두 달 정도 살았었지만 정서가 맞지 않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 혼자 살기로 했다고 했습니다. 식구들과는 전화비가 많이 나와 자주 통화는 못하고 위에 형님들이 꽃배달을 하며 괜찮은 벌이로 생계유지하며 지낸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도 함께 살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여기 남아있는 주변 사람은 어릴 적 친구들이 있다고 했고, 전 모든 것들을 바보같이 믿었습니다. 9월 3일에서 9월 16일 사이에 저에 대해 알려준 것은 이름과 나이, 학력, 고향, 현재 하는 일, 형제관계였습니다. 17일 저녁부터 만나기 전까지는 거의 문자로 연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곧 추석인데 고향에 내려가냐는 질문에 지금 고향에 와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마침 자신도 호텔일 때문에 제주도 중문에 내려와서 신라호텔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 하더군요. 혹시 지금 만날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이지 인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첫 만남을 제주도에서 갖는 것이 내심 기쁘긴 하였으나 그때는 밤이 11시가 다 된 때여서 그 시간에 외출을 할 순 없었습니다. 낼 아침 다시 서울로 향한다는 말에 갈등을 많이도 하였지만 특히나 밤에 외출하는 모습으로 옆에 계신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진 않았습니다. 몇 시간 고민 끝에 결국은 만나진 못했습니다.
9월 28일 토요일 오후 6시
김포공항에서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가족들과 헤어진 장소이면서 동시에 가족을 다시 만난 곳이라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자신은 김포공항이 왠지 편하다고 하여 전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 장소에서 만남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5시쯤 전철을 타고 6시 10분이 되어서 김포공항 5번 게이트에 도착하였습니다. 만나기 전, 서로의 외모가 궁금하여 그 사람의 사진(흉상)은 제 핸드폰으로, 제 사진(전신)은 그 남자의 메일로 보내며 교환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헤어지기로 마음먹는 과정에서 잊는 게 힘들어 핸드폰 배경 화면으로 두었던 그 사람의 얼굴을 제 핸드폰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만나기 전에, 무얼 할까를 생각하다가 부천 송내역 근처에서 저녁을 먹자며 얘기하곤 했었습니다.
오후 6시 15분, 김포공항 5번 게이트에서 만나 그의 차를 타고 곧바로 저의 집근처로 향했습니다. 운전하는 도중 뒷좌석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장미꽃 한다발을 선물하면서 제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꽃을 줘야할지 말아야 할지는 직접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했었는데 준비하길 정말 잘했다며 웃으며 건네주었습니다. (지금 꽃잎을 따서 보관해둔 것이 있습니다.) 도착해서 닭갈비를 먹고 노래방엘 갔으며 중앙공원에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많이 외로워했습니다. 한국에 혼자남아 쓸쓸하단 얘기, 형들은 현재 전공과 관련없는 일을 하고 있으며 미국에 있는 가족들은 이제 막내아들인 자신만 결혼하면 된다고.. 얘기하였습니다. 그러다 둘이서 게임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리곤 그 당시 제가 살고 있던 아파트 앞까지 데려다 준 후 아쉬움을 접은 채 밤 1시쯤 헤어졌습니다. 유부남이라고는 어떤 눈치도 챌 수 없었습니다.
9월 29일 일요일
아침에 전화소리에 깨어나 받아보니 오늘 일과를 물었고 에버랜드를 가기로 했습니다.
1시쯤 출발하여 아마 4시경에 도착하였을 겁니다. 이날은 비가 왔었으며 에버랜드 이용권(영수증)을 지금도 보관해 두고 있습니다. 어제처럼 늦게 들어가면 언니에게 혼난다고 했더니 마침 언니가 보낸 문자 (올 때 약국보이면 홈매트사와라)를 보고 여기저기를 헤매다 편의점을 발견하고 홈매트를 사다주었습니다. 언니한테 바치는 뇌물이라면서요..
10월 1일 새벽
일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너무 보고싶어 잠시 들렀다며 새벽에 몰래 나가 10분을 보고 헤어졌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한테 이런 말을 하였는데, 이제야 사랑이 뭔지 알 것 같다며 했습니다.
10월 2일
xxxxx라는 모텔에서 첫관계를 가졌습니다. 기념으로 성냥갑을 보관하였고 전 그 안에다 "10월 2일, 평생 잊을 수 없는 날" 이라고 썼었는데 현재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기 전 도착해서 잠시 대화를 나누었는데, 저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우린 서로의 사랑을 좀 더 확실하게 알았으니 약속하나 하자며... 갑자기 미국으로 떠나게 될 일이 생기면 기다려줄 수 있느냐 물었습니다. 사실은 얼굴을 본지 오래 된 어머니께서 더군다나 병세가 안좋으신 상태라며.. 그러니 만약 가게 되면 길면 한달정도 곁에 있다가 돌아올 것이고 그동안 기다려달라는 부탁을 했고, 그 정도로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 질문에 전 즉시 대답은 못했지만 "분명한 건 나역시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기다리겠다는 대답은 못했습니다.
10월 5일 새벽 5시
주로 그 사람의 편한 시간에 맞춰주어 그의 일이 끝나는 새벽에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xx에서 저희집까지 만나러 왔으니까요. 새벽 5시에 만나서 팔당댐을 드라이브하였고 노량진에서 두편의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그당시에 저는 일을 하면서 동시에 노량진에 있는 학원에서 시험준비를 했었거든요. (노량진이라 생각이 나는데 같이 공부하던 언니가 있었습니다. 이 남자에 대한 얘기도 나눴습니다. 성격, 형제관계, 부모님이 미국에 계시다는 것.. 모든 것들이 만족스럽다는 얘기들.. 학원을 그만두면서 이 언니와의 연락은 없었지만 연락처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정도 수서역에서 헤어지기 전 그에게 저의 일대기를 요약해놓은 편지를 건네었습니다. 평소 말이 많은 편이 아닌 성격에 저에 대한 것들을 글로써 표현하는 것도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색다른 방법이라 생각했거든요. 그리고 이때 이미 결혼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10월 7일
이날도 역시 새벽에 만났습니다. 전에 간 적이 있던 xxxxx에서 관계를 가졌고 대화를 나누던 중 저랑 산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10월 12일 오후 5시
토요일이라 우린 둘 다 일이 일찍 끝났다며 잠시 얼굴을 보기로 했고 합정역에서 10분간 같이 있었습니다.
10월 13일
xx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쇼핑을 하던 중 먹을 것만 샀었고 제게 물질적인 선물공세를 한 적은 없습니다.
10월 15일
회사 창고(회사창고에 예전에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에서 언니에게 주라며 오렌지를 가져왔고 제 생일을 축하해준다며 회를 먹으러 역앞에 갔었습니다. 저도 제 생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10월 17일
만나서 xxxxx에 또 갔습니다.
10월 22일
회사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전화로만 자주 통화를 하였고 10월 22일 저에게 프로포즈를 했습니다. 미국에 계신 어머님이 치매에 걸리신 데다 형님이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급히 갔다오겠다고 하더군요. 잊지말고 꼭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12월에 돌아오면 결혼하자는 말에 전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후 xxxxx로 향했고 다시 만날 것을 굳게 약속했습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었는지 정말 기억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10월 28일
이때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메일 하나를 만들어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선물을 하려고 멜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10월 30일
이 남자는 회사핸드폰과 개인핸드폰 총 두 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는데 저와의 연락수단은 당연히 개인핸드폰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던 나머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그의 메일로 안부메일을 보냈더니 몇 시간 후 전화가 왔습니다. 보증을 잘못 서게 되어 사기를 당해서 미국에는 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저로서는 많이 놀랄 일이었죠. 그리고 일주일 후에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11월 1일 새벽
저녁에 통화한 후 3일 새벽에 만나기로 하였고 새벽 5시쯤 만나서, 혼자 산다는 그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가 운전을 하면서 그동안의 생활을 자초지종 설명을 하더군요. 보증을 잘못 서게 되어 미국으로 도망을 간 사람을 찾으려 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고 회사일도 제대로 못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의 가족에게는 가지 못했다고 하면서요. 실의에 빠져있는 이 사람에게 저로서 최대한 해줄 수 있었던 것은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었고 나쁜 기억이 빨리 잊혀지기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사람을 이렇게 만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전 감사했습니다.
그의 집앞에 있는 해장국집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고 그의 아파트로 갔습니다. 도착했을 때는 거의 8시쯤이었고, 그는 남자혼자 사는 집인데다 몇 일간 비워두어서 지저분하다며 현관에서 몇 2분간 기다린 후 안에 들어갔습니다. 몇 달은 되도록 쌓아놓은 인스턴트 죽그릇과 녹차 캔 쓰레기들이 여기 저기 널려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일이 끝나서 피곤했고 밤잠을 못 잤던 저도 피곤에 빠져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에서 깨어보니 오후3시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제가 일을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결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목이 말라 마실 게 있는지 냉장고에 가려는 저를 말리더니 그는 진지하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본명은 xxx, 나이는 30대, 그리고 유부남이며 현재 별거중인 지 오래되었고 제게 소개했던 이름은 아들이름이라고.. 그리고 가족들이 미국에 있다는 것도 거짓말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모든 것이 유부남임을 감추기 위해 했던 거짓말이라면서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왜 거짓말을 했냐고 화를 내면서도 한편으론 이 남자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해서 어쩔 수 없었다며 용서해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솔직히 전 이남자만큼 사랑했던 사람은 예전엔 없었습니다. 불륜이 아니냐며 울먹거리고 화를 내는 저에게 불륜이고 뭐고 저만 자신을 사랑한다면 진심으로 같이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혼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계속적으로 전 울기만을 했습니다. 20대초반에 자신의 실수로 아이를 생기게 하였고 그것이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너무 큰 실수였다면서요.. 여자(부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지가 8개월은 족히 지났다고도 했습니다. 아들은 현재 시댁에서 어머니가 키우고 있다고 했고요.. 전 너무 순진했습니다. 순진한 게 아니라 바보였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스스로 바보인 줄도 모르고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급급하기만 했을 뿐이죠. 그 사람을 많이도 사랑했었습니다. 결국 저는 절 속인 이 사람을 용서했고 이혼의 과정이 빠르면 한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며 기다려줄 수 있냐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이틀 후 일요일, 저는 당신말대로 불륜이 아니길 바란다며 기다려주겠다고 했습니다. 계속적으로 연락을 하였고 이날 이후로 성관계는 갖지 않았습니다. 유부남인 줄 안 후였으니까요.
11월 9일
에버랜드에 갔습니다. 오전 9시 정도에 도착했고 영수증이 남아 있습니다. 거기에서 찍은 사진도 있습니다, 초췌한 모습이 흉하다며 같은 장소에서 따로 찍은 사진(뒷면 배경이 똑같음)이 총 2장 남아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연락을 했고, 이혼과정에 있어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거라며 걱정을 했습니다. 살고 집은 거의 혼자 이룬 것이지만 정작 명의는 공동으로 되어 있는 까닭에 이혼 시 재산분할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저도 그럴 거라 예상을 했었구요. 그 남자는 부인이 6천만원만 주면 아들을 키울 수 있게 해주고 깨끗하게 이혼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며 제게 말했습니다. 대출을 알아보고 있던 그는, 큰누나가 천만원은 빌려줄 수 있다는 말도 했었습니다. 제게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나 있는지를 물은 적이 있습니다. 그와 저의 경제적인 능력을 합하면 빠르면 1년 반 내에 6천만원을 갚을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제게 했었고 돈 얘기가 있었지만 사랑을 의심하기에는 이미 그에게 빠져버려 늦은 상태였습니다.
11월 26일 아침
하던 공부는 거의 되지도 않았고 다니던 학원도 거의 위태로웠습니다. 너무나도 큰 부담을 짊어지려 했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이날 아침 아무래도 우리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다며 ... 이유는 부인이 다시 집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며 하더군요. 잠시 권태기에 만난 것이었을 뿐이라는 그의 전화목소리는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11월 27일
큰누나를 찾아갔습니다. 예전에 그의 집에 갔을 때 그가 그의 엄마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기억해 둔 번호로 전화를 걸어 큰누나의 번호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큰누나라는 사람이라도 만나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났던 장소도 기억합니다. 큰누나는 무슨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기다려보라는 말을 제게 했었습니다. 참고로 큰누나는 그 여자(부인)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결혼해서 7년동안 시댁에 5번 이상을 들른 적이 없다며 이기적인 여자라 했으니까요.
힘들 때 언제든 연락하라는 말을 듣고 헤어졌고, 그 이후 12월 10일에도 만나서 저녁을 같이 했었습니다.
12월 2일
모든 것을 감수할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렵게 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의 변심 혹은 계획적인 행동을 전 용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현실을 부정하려 했었고 이보다 힘든 일은 살아오면서 한번도 없었습니다.
공덕에 있는 사랑의 전화상담실을 알게 되어 상담가와 상담을 하였습니다. 직접 찾아가기도 했었고 전화상담도 수차례 했었습니다.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을 해서라도 애써 지우려고 온갖 노력을 했습니다.
12월 26일
큰누나를 만나 그동안 써왔던 편지들을 전해달라 부탁했습니다.
거의 한달 반 동안은 먹는 것, 자는 것은 물론이고 학원일, 하던 공부마저 포기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전에 한번도 없었던 스트레스성 여드름이 얼굴에 번지기 시작하여 피부과(xx 피부과)를 다녔었고 지금 그 흔적이 얼굴에 아직도 선하게 남아 있습니다.
2월 1일
오후 6시 경 갑작스런 전화에 놀랬습니다. 잘 지내냐는 그의 목소리.. 반갑지 않았지만 편지를 이제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외의 별다른 대화는 없었습니다.
2월 7일
한번만 만나달라며 그는 수차례 전화를 하였고 스무개 이상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결국은 간곡히 애원하는 부탁에 못이겨서 나갔고,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며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동안 정신적,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어했던 사실을 그 남자에게 얘기했습니다. 30분정도를 만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최소한 미안하다는 말은 들어서 그런지 그래도 마음은 조금 풀린 상태였습니다.
다시 연락이 되었고 자신은 미안하다고 말할 자격도 없는 남자라 하면서, 친구로라도 남으면 안되겠냐고 말을 하였습니다.
2월 17일
전화가 왔는데, 진심으로 날 사랑했었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을 몹시 비하했습니다. 친구 중에 xxx 이란 친구가 있는데, 자신보다 훨씬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남자라며 소개시켜준다고 했지만 제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들렸습니다.
2월 22일 저녁 약 9시
그가 만나고 싶다며 전화로 말했습니다. 불륜이 아니냐고 했더니 그는 며칠 전에 이혼을 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전 그대로 믿었고 결국 만나서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저희 집 앞 까치산 역으로 돌아와서 집에 가려는 제게 조금만 더 같이 있자며 부탁을 했고 그러다 근처에 있는 모텔에 갔습니다. 그 날은 제 신용카드를 사용했었습니다.
관계를 가졌습니다. 새벽 3시정도 까지 같이 있다가 헤어지면서 제게 고백할 게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은 이혼이 되지 않은 상태라고요.. 같이 있어주지 않을 까봐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요..이젠 눈물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진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받은만큼 되갚아주고 싶다는 얘기도 함께요.
또다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너무 사람을 쉽게 믿는 제게도 문제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가지고 놀았다는 느낌이 그제야 들게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을 순 없었습니다. 그동안 이 남자를 만나면서 고통스러워했던 지난날들이 뇌리를 스쳐 갔습니다.
2월 23일 11시경
밤 11시경에 전화를 해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으니 손해 배상하라며 얘기했습니다. 그 순간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경찰서에 가자는 말을 하더군요. 꽃뱀이 아니냐면서요.. 그러면서 월급통장은 부인이 관리하고 있고 집명의도 부인이름으로 되어있다며 자신은 가진 게 없으니 집에 있는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보라는 말을 했습니다. '차라리 돈이 필요하면 달라 그러지'라는 말과 함께요. 집에 있는 부인이 남편이 사기를 치며 다닌다는 사실을 아는지 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전 너무나도 흥분했고 그 집에 전화를 걸게 되었습니다. 한참동안은 통화중이었고 얼마 후 전화연결이 되었습니다. 방금 남편과 통화해서 내용을 들었다며 차분하게 말하는 부인은 원래 남편은 바람기가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것은 자신의 남편과의 잠자리는 불만스러운데 혹시 잠자리가 맘에 든다면 데려가라며...대신 재산은 한푼도 없다며 하더군요. 그나이되도록 유부남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줄 모르냐며 제게 묻더군요.
시간이 나면 언제 한번 만나서 얘기했으면 한다고 했더니 , 지금 집에 올 수 있냐 하더군요. 택시를 타고 그집으로 갔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만약 결혼하고 싶다면 데려가라며.. 대신 아들과 시부모는 반드시 모셔야 하고 재산은 한푼도 없다' 고 말했습니다. 남편이 예전에 매독을 옮긴 적이 있다는 끔찍한 말도 했습니다. 만약 임신이 되었다면 아이를 낳으라는 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남편과의 일은 둘이 알아서 하라고요.
2월 24일
그 남자와 통화를 하였는데 저보고 '당신을 알고 난 이후 내인생이 완전 망가졌어!' 라 하며 하루 사이에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습니다. 이젠 아들과 미국으로 떠나야겠다며 퇴직금받을 때까지 저보고 조용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만약 혼인빙자 간음죄로 고소한다면 부인은 간통죄로 맞고소하겠다고 말했답니다. 부인이 어제 녹음을 했다면서요.
이상이고요, 전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협박이나 하진 않을까하는 두려움도 있지만 전 이남자를 응징해야만 합니다. 다시는 피해여성이 없도록 말이죠. 용기를 내고 글을 올렸습니다. 리플달아주세요.
재판에까지 갈 경우 결과가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합니다. 또 손해배상을 어느정도 받을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