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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권이 바뀌자마자 학교교육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치적 발언과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대통령의 학교교육 자율화 발언을 계기로 서울시의회는 학원들의 심야학습 철폐를 내세웠다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이를 철회했습니다. 대신에 학원 학습시간을 밤 10시에서 11시로 늘렸습니다. 물론 이런 규제가 있다고 한들 형식적일 뿐 아무런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교육과학부는 방과후 학교에 학원들의 상업적 참여를 허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대통령은 자사고 100개를 설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시도교육감들은 우열반 편성을 추진하겠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학교가 학원에 대해 패배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의 학원화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사실 학교의 학원화를 주장한다면 굳이 대통령도 교육과학부도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시장논리에 맡기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학부가 문제라기보다는 교육부 관료들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시도 교육감들은 대부분 2,30년 동안 학교교육에 몸담아 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 학교교육을 부정하는 발언을 거침없이 하여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부끄럼도 자존심도 없이 말입니다. 이들이 이런 황당한 언행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것은 한 마디로 이들이 완전히 정치적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파렴치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아마도 학교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간 또는 학교와 학원간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경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교든 학원이든 제한 없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규제완화라는 말로 강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어몰입교육이니 학교교육 자율화이니 대학입시 자율화이니 하는 것들이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런 식의 사고에는 두 가지 근본적이고 치명적인 오류가 존재합니다. 첫째는 학교교육 정책을 누가 수립하고 추진할 것이냐에 관한 것입니다. 둘째는 ‘교육적 평가(Learner’s Outcome)’라는 말과 시장경쟁(Market Competition)이라는 말이 동의어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학교교육 정책수립의 주체에 관해서 논해봅시다.
일견, 정부의 수장으로서 대통령은 학교교육 정책수립의 주체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선진국의 경우 학교교육 정책은 대통령이나 특정 정파의 정치인이나 특정 종단의 종교인들이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학교교육 정책은 백년대계 차원에서 그 사회에서 존경 받고 전문성이 검증된 賢者들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완전히 중립적인 현자들의 위원회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립적일 수 있으며 정치권력의 변화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 현자들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방식으로 민간 자율에 입각하여 추천되며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이를 임명하게 됩니다.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성 조항이 시사하는 바는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교육적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이웃 일본의 경우 학교교육 정책은 총리 직속의 ‘교육재생간담회(교육재생회의)’와 문부과학성 장관 직속의 ‘중앙교육심의회(中央教育審議会)’라는 곳에서 결정합니다. 교육재생간담회와 중앙교육심의회의 위원들은 일본사회에서 존경 받고 전문성이 검증된 명망 있는 현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중립적이며 민간의 추천을 받아 총리와 문부과학성 장관이 형식적으로 임명합니다. 이곳에서 일본 학교교육에 관한 기본방침이 결정되면 일본 총리와 문부과학성 그리고 정치권은 이를 근거로 입법화와 예산편성을 수립할 뿐입니다.
일본 총리 직속의 교육재생간담회 위원의 면면을 살펴보면, 일본PTA전국협의회의장, 게이오대학 총장, 주식회사 시세이도상담역, 방송대학교수, 캐스터겸치바대학특명교수, 저널리스트, 동경도내초등학교교장, 동경도내 사립학교 이사장, 이화학연구소이사장(노벨화학상수상자), 동경도교육위원회 교육장의 10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들 모두는 일본 사회에서 명망 있고 검증된 전문성을 지닌 현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 총리는 이 간담회에 일체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런가 하면 문부과학성 장관 직속의 중앙교육심의회는 교육제도분과회, 생애학습분과회, 초중등교육분과회, 대학분과회, 스포츠/청소년분과회의 5개 분과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3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필요에 따라 임시위원 및 전문위원을 둘 수 있습니다. 또 각 분과회마다 소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일 교육정책을 대통령이나 정치권이 각자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결정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어 엉망이 되고 맙니다. 이것은 앞서 말한 교육기본법 제6조의 정치적 중립성에 근본적으로 위배됩니다. 교육기본법의 제6조는 교육정책에 있어서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말해주는 중요한 조항인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정책은 YS정권에서 DJ정권으로 그리고 노무현정권에서 이명박정권으로 바뀔 때마다 그때그때 대통령의 정치적 이념에 따라 교육정책이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매번 크게 요동을 쳤습니다. 앞으로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 채 이런 혼란이 지난 수십 년간 계속되어 온 것입니다. 교육정책은 정치적, 이념적, 종파적 이해관계에 사로잡혀 있는 대통령의 독단이나 개똥철학에 의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다음에, 교육적 평가와 시장경쟁의 차이에 대해 논해보기로 합시다. 미국과 일본은 매년 교육백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매년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를 읽어보고 있는데,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를 보면 교육적 평가라는 말은 있어도 지금까지 시장이나 시장경쟁이라는 말은 눈을 씻고 찾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이들의 학업성적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평가도 ‘교육적’ 방식에 입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국가의 교육백서에는 교육정책의 성과평가의 하나로써 아이들의 학업성적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전체 학생의 평균성적에 대한 평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수 상위권에 대한 분석은 없습니다. 국가의 교육정책은 전체 학생에 대한 것이지 특정 소수학생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기본법에서 주창하는 교육의 기회균등에 어긋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교육은 소수의 특공대나 게릴라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방면에 걸쳐 전인격적 평균을 상승시키는 전면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언제 어느 때이든 조건과 기회만 맞으면 깨우침과 깨달음을 얻어 인간적으로든 학문적으로든 공동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재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학교교육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한국의 정치인들이나 국민들보다 수준이 떨어져서 그렇게 생각하겠습니까!
이제, 공립학교와 사립학교(사학)의 문제에 대해 살펴보기로 합시다. 이를 위해 미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초중고등학교 공립 및 사립학교 현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아래의 <도표1>에서, 초중등학교 수 면에서 사립학교의 비중을 보면, 일본은 2.8%, 한국은 8.6%인데 비해 미국(K-8)은 21.4%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의 사립학교 비중을 보면, 미국(K9-12)은 11.3%, 일본은 24.9%인데 비해, 한국은 무려 44.8%에 달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단순히 양적으로만 보아도 한국은 이미 사립학교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미국의 사립학교 비중이 의외로 매우 낮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은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계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미국 정부는 공립학교 교육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그래서 공립학교는 거의 학비가 들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래의 <도표2>에서 한미일 3국의 초중등학교의 사립학교 학생수 비중을 비교해보면, 미국 9.8%, 일본 3%, 한국 7.1%로 나타나 그다 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고등학교는 미국 8.2%, 일본 29.7%에 비해 한국은 49.3%로 거의 절반 가량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얼마나 지나치게 비정상적으로 사립학교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 각종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흔히 미국이 우리가 말하는 자사고 즉 자립형 사립학교 중심의 교육체계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미국 초중등학교의 사립학교 학교수 비중은 21.4%에 달하지만 학생수 비중은 9.8%에 불과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 사립학교 5,123개 중 73%에 달하는 3,731개가 초중등학교에 집중되어 있으며, 나머지 27%인 1,307개가 고등학교에 있습니다. 즉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초중등학교에 비해 오히려 사립학교 비중이 크게 낮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 미국 사립학교의 유형을 살펴보면, 대부분이 종교계 사립학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3-2004년 기준으로 미국의 사립학교 분포를 살펴보면, 로마 카톨릭계가 46.2%, 기타 종교계가 35.8%로 종교계 사립학교(mission school)가 82%에 달하고 있으며, 비종교계가 18%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종교계 사립학교는 사실 유명대학 입시에 매달리기보다는 초중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순수한 종교교육에 전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대학입시 교육과는 거의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계 고등학교의 경우에도 종교인 양성을 위한 것이 주목적이며 대학입시를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부터, 사실상 미국은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한국의 대학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특목고나 자사고 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미국의 고등학교 교육제도가 이처럼 공립교육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이미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학교교육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미국이 다인종 이민국가(states)로서 한국이나 일본처럼 동질성이 높은 민족 중심의 국가(nation)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교육의 기회평등이 중요하며 그래서 공립학교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나라의 교육제도가 다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미국이 이처럼 다민족 국가로 교육의 기회평등 원칙 아래 공립학교 중심의 교육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지닌 대학교육의 수학에 전혀 문제가 없는 양질의 학생들을 공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경우는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고, 영재고, 외고, 자사고, 대학위탁 영재교육 등 온통 천재교육투성이입니다. 이런 마당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사고 100개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절대적으로 사립학교 비중이 높은 마당에 대통령 스스로가 나서서 공립교육을 포기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국가가 공립교육은 포기했으니 돈 있는 사람들은 자사고에 보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사고 설립허가는 더욱 가관입니다.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최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은평 뉴타운 지구에 자사고를 설립하려는데 서울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자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해 부당한 규제라며 서울시의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허가를 내주지 않은 이유를 알아보니 하나은행이 설립하려는 자사고에 하나은행 임직원 자녀를 특별전형으로 뽑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개 민간기업이 사원의 복리후생을 위해 지방정부인 서울시에 학교부지를 거의 무상에 가깝게 제공하라는 것으로 온당치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친분을 자랑하는 회장님께서 청와대를 통해 서울시에 압력을 가했다는 보도 내용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정부는 과학고를 과학영재고로 이름을 바꾸어 150억원가량의 예산지원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문제는 과학고와 영재고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며 과학고를 영재고로 이름을 바꾸면 영재가 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부산영재고에는 서울과학고를 못간 학생들이 상당수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각 지역별로 대학위탁 영재교육이라는 것도 머니 게임에 불과합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재의 기질이 있는 학생을 해당지역 대학에 위탁하여 영재교육을 시킨다는 취지이지만 거의 모두가 대학입시 교육에 불과합니다. 대학위탁 영재교육 대상이 되면 거의 일류대학 입학은 따놓은 당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재교육 입학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머니 게임 전쟁이 치열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도대체 영재와 영재교육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외국유학이나 대학입시를 위한 선행학습을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물론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으니 당연히 일반 공립학교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립학교에 수천만 원씩만 지원해주어도 학습능력 향상을 위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공립학교 중심의 학교교육 체제로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일본 역시 공립학교 중심으로 20여 명에 달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한국이 지난 수십 년간 자사고다 특목고다 영재고다 하면서 엉터리 정치싸움 하는 사이에 말입니다.
교육에 관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무는 가장 비용이 저렴한 방식으로 가장 효율적인 교육기반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초중고 학교교육이든 대학교육이든 말입니다. 교육의 기회균등은 비용이 안 드는 교육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바보가 아닌 이상 돈 안 드는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교육의 기회균등을 확립하고 국가경쟁력을 강화하자는데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