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본 메세지] ---------------------
인사동에 가면 리어카에다가 80년대에 먹던 불량식품 무더기로 내놓고 팔더라구요.
뭐 대충 라면땅, 소라, 쫀득이... 이런 것들인데 요즘은 그런거 봐도 감정 기복이 없어요.
언젠가 복고 바람을 타면서 옛날 과자들, 80년대를 풍미했던 소품들이 간간히 나왔을 땐 정말 감개무량했죠.
맞아, 우리 어렸을 때 저런거 먹고 컸어... 맞아, 우리 코흘리개였을 때 저거 참, 맛있었는데...
젊었을 때는 꿈을 먹고 나이 들어서는 추억을 먹는다는 통속적인 말이 있는데 때로는 통속이 가슴을 울리는 진실이 되기도 하죠.
그 불량식품을 보면서 가슴을 떨었던 건 거기서 정서를 먹었기 때문인데 요즘 불량식품에는 정서가 빠져있어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를 보면서 느낀건 그것 뿐입니다.
80년대에 기생하는 영화라는 생각.
80년대의 정서는 쏙 빠지고 단지 그 시대의 촌스러움, 순박함, 빈곤함만이 촌스러운 포장지가 되어 펄럭입니다.
시대의 빈곤은 다시 코믹을 위한 방편이 됩니다.
80년대라는 시대는 코믹을 위한 하나의 코드일 뿐입니다.
참, 얍쌉한 영화더군요.
사실, 저는 동근씨를 보려고 영화를 본거였는데(별로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저렇게 폭이 넓은 배우 데려다가 저거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에 서글픔만.
동근씨 연기는 나머지 배우들 중 가장 생기있었지만 네멋에서처럼 신나게 놀고 있다는, 감정을 온몬에 묻히고 있다는 느낌은 별로 안들더라구요. (뭐 그럴 만한 역할도 아니었지만.)
인터뷰에서 늘, 사무실에서 시켜서 하게 됐다고 하던데 정말인지, 원...
봉자는 뭣하러 방글방글 웃으면서 백치처럼 있는지, 그 영화에서 여자들이란 그저 타인에 의해 그 의미가 완성되는 인형 같은 역할이더군요.
오로지 똥 누면서도 먹을 수 있다는 발음 정확한 그 여자아이만이 마음에 드는 캐릭터였습니다. (어찌나 당돌하던지... 크크)
배우는 넘치고 그 배우 중 좋은 배우들도 넘치는데 우리나라 캐릭터들은 왜 그리 현실성이 없고 단순하고 편협한지...
오정해 같은 배우가 <당신 옆이 좋아> 같은 드라마에 나와서 '사랑밖엔 난 몰라'를 복사하고 있는게 우리 나라 배우들의 현실이긴 하죠.
(저 그 장면 보고 정말 슬퍼 죽는 줄 알았습니다...)
동근씨도 지금보다 더 싹아지 없어져야 하는데...
그래서 누가 뭐래도 아주 야물딱지게, 싹아지 없게, 버릇없이 자기 하고 싶은대로 스크린에서, 녹음실에서 마음껏 팔딱돼야 하는데...
앞으로 혹시 예쁘기만 한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 <해적> 같은 영화에 또 출연할까봐서, 이 시점에서 아끼는 젊은 배우 동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납니다.
이미 자신의 입으로 해버렸죠.
"누가 참는걸 뭐래냐? 아픈 것도 참고 억울한 것도 참고 다 참을 수 있는데 숨 못쉬는 건 참지마라. 답답한건 뒤집어 엎든가, 아니면 거기서 잽싸 빠져나와! 니가 얼마나 팔딱대는 앤데 눈 내리깔고... 안이뻐, 동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