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차면서도 애절한 음성. 세계인의 심금을 울려놓았던 처절하리만큼 깊은 음색.
영화 ’라비앙 로즈’(원제 ’La Mome’)는 이름 모를 숱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죽을 때까지 사랑을 갈구했던 프랑스 샹송 가수 에디뜨 삐아프의 비극적인 일생을 기록한 영화다.
“사랑은 경이롭고 신비하고 비극적인 것, 사랑은 노래를 하게 만드는 힘, 나에게 노래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고, 사랑이 없는 노래는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랑에 목말라했고 평생 사랑을 했으나 정작 그 사랑 때문에 너무나 아파한 여인이다.
세계를 뒤흔든 이브 몽땅과의 사랑. 그 사랑은 매릴린 먼로에게 떠난 남자의 배신으로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브 몽땅과의 이별은 ’라비 앙 로즈(La Vie en Rose)’라는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냈다.
세계 미들급 복싱 챔피언 막셀 세르당과의 사랑. 유부남인 걸 알면서 시작한 깊은 사랑은 남자의 비행기 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끝나 더 큰 슬픔을 남긴다. 짧지만 깊었던 사랑의 슬픔은 역설적으로 ’사랑의 찬가(I’Hymne l’amour)’로 간직된다.
그리고 20살 연하의 남편, 수많은 스캔들을 뿌렸으나 에디뜨의 진정한 사랑은 막셀 세르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1963년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인 47세에 암으로 사망한 에디뜨의 삶은 지켜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불행해 보인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혼신을 다해 부른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를 들을 때면 147㎝의 이 작은 여자가 한없이 불쌍해진다.
딸을 돌보는 걸 벅차하는 거리의 가수인 어머니와 군대에 징집된 곡예사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에디뜨는 포주인 할머니 집에 머물게 된다. 그곳에서 창녀 티틴은 심한 결막염으로 맹인이 될 위기에 처한 에디뜨 지오바나 가숑(에디뜨 삐아프의 본명)을 딸처럼 보살핀다.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떠돌던 에디뜨는 노래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하루하루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번 돈으로 술에 취해 살아간다.
술집 주인 루이스 레플리에 의해 ’작은 새’라는 뜻의 삐아프라는 예명을 얻은 그는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며 스타로 부상하는 듯했으나 루이스가 살해되며 다시 길거리로 돌아간다.
마약과 술에 찌든 삶을 살던 그를 다시 끄집어낸 이는 프랑스 최고의 시인 레이몽 아소.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아봤을 리 없는 에디뜨에게 엄격한 발성과 무대 매너를 가르치고 자신이 쓴 시로 지어진 곡을 줘 에디뜨를 단숨에 스타덤에 올려놓는다.
미국 무대에 진출한 에디뜨는 평생의 사랑인 막셀 세르당을 만난다. 열렬한 사랑에 빠졌으나 막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그는 절망한다. 이후 평생 마약과 알코올에 의지하면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힘으로만 살았던 고난한 삶이 이어진다.
영화는 시점을 오가며 정신없이 움직인다. 10대에서 죽음을 앞둔 40대로, 벅찬 사랑에 빠진 30대와 길거리에서 노래 부르던 20대를 오간다. 에디뜨 삐아프에 대한 큰 얼개의 사전 정보가 없다면 화면을 따라가기에도 벅찰 정도.
수많은 남자와 사랑을 했지만 영화는 그의 진실한 사랑이었던 막셀과의 사랑만을 소개한다. 그 사랑이 얼마나 컸고,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는지.
프랑스의 주목받는 배우 마리온 꼬띠아르의 열연은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들 정도다.
그런데 참 불편하다. 그렇게 주옥같은 에디뜨의 곡이 때론 진짜 그의 목소리로 전해지고, 영화 이상의 드라마틱한 삶이 담겨 있음에도 보기에 참 불편하다. 그만큼 에디뜨의 삶이 비극적이었기 때문일까. 사랑을 갈구하면서 마약과 술에 찌들어 살아야만 했던 여인이 가련해서 고개를 돌리게 된다. - 연합뉴스에서 발췌 -
에디뜨 삐아프의 일생을 그린 영화를 보면서 느낀점은 그의 깊은 마음의 상처이다. 위에서 간략히 소개했듯이 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며 노래를 부르는 엄마와 군대에 간 아버지. 그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에디뜨의 엄마는 새 남편과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작은 아이를 그의 아버지가 포주 생활을 하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긴 것이다.
하여 에디뜨는 10살 때 처음으로 거리의 창녀 생활을 했다는 말이 전해 지기도 한다. 그때 어린 에디뜨가 하염없이 울기만 하자 윤락을 하러 온 손님은 아무 말 없이 돈을 남겨 두고 갔다고 한다.
이처럼 깊은 상처를 안고 있던 에디뜨는 천재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재능에 힘입어 살지만 늘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다. 아마 막셀 세르당이 죽지 않고 생존해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녀의 모든 빈 마음을 채울 수는 없었으리라.
이처럼 깊은 상처는 그에게 노래라는 위안을 주었지만, 결국 이를 온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성 어거스틴이 말했듯이 "하나님 말고는 결코 채울 수 없는 우리 마음의 빈 공간" 이 그녀에게도 존재했고 보통 사람들 보다 더 컸을 것이다. 하여 마음을 저미는 깊이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었지만 그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이처럼 마음의 상처를 부여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목회자로서 많은 생각과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본 영화였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