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율법의 완성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라 하셨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의 말씀을 가지고 못난 나는 아직도 씨름한다.
하느님과 이웃을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사랑하면 될까,
하느님에 대한 느낌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한 평생을 함께 한 부부도 느낌의 작은 차이를 견디지 못해 다툴 때가 많다.
같은 하느님을 두고도 서로 죽이고 전쟁을 불사한 종교사를 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랑해야 할 이웃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명인가, 아니면 그 중 사람만을 뜻하는 것인가,
사람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 인가,
그리하여 내 이웃의 이슬람인, 불교인, 무신론자들과는 친구하면 안 되는가?
죽음을 마주하신 예수님께서는 ‘이게 정녕 아버지의 뜻이라면...’ 하고 되물은 적이 있다.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주님께 제자 도마는 십자가에서 당한 상처를 보여 달라고 했다.
도마를 닮은 나는 구약을 읽을 때마다 화가 나서 하느님께 물어본다.
하느님은 아직도 그 사람들의 수호자며 그들만의 총사령관이시냐고?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말씀하신 어린이는 세례를 받고 주님의 기도를 외우는 아이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 곳곳에 가난과 폭력 앞에 무참히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다.
이 시각 엄마 젖을 물고 죽어가는 어린 아이들은 누구의 책임인가?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종이 되라”고 말씀하셨다.
말씀대로면 교황님은 첫째시니까, 가톨릭의 꼴지가 되어야 하고
신부님은 첫째시니까, 본당의 종이 되어야 한다.
첫째이시자 꼴찌며 종이신 두 분을 위해 기도드린다.
나는 가장이니까, 가족들의 꼴찌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은 오래 전 은퇴한 흰머리의 가장이라 가족들의 측은지심으로 버틴다.
원하건 데 율법에서나 사랑에서나 감당할 소임에서 가벼워지고 싶다.
내 신앙과 사랑에서도 십자가를 내려놓고 흘러가는 강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디로 사라져도 찾지 않는 사람이 되어도 좋겠다.
어쩌면 그 반대일까,
묵상의 공허한 흔적을 굳이 떠벌리는 것을 보면 의심스럽기도 하다.
이번 주의 복음을 읽으며
좀 더 겸손한 자신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드린다.
(24. 9.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