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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호- 사단의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
편지-강영은바람개비
그날은 바람이 꽤 많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쉽지는 않지만, 비행기 여행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묘미가 있어 좋다고 생각하며 달리는 차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흥미롭고 낯선 풍경과 풍물들은 때로 마음속에 새로운 깨달음을 던져주곤 하니까요.
시카고로 가려면 지나야 하는 인디애나 주에 접어들었을 때였습니다.
차가 높은 고개의 하이웨이를 넘어 평평한 평지로 접어들자, 갑자기 드넓고 푸른 초원 위에 수십 개의 크고 하얀 바람개비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들은 바람을 일으키는 풍력발전기 바람개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미세한 바람에도 빙빙 돌아가는 그 큰 바람개비 중에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바람개비가 몇 개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날개의 흔들림이나 조용한 끄덕임조차 없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그 몇 개의 바람개비&!
그 돌지 않던 바람개비는 여행하는 내내 마음속에 남아 많은 생각을 던져 주었습니다.
마음의 풍차
우리 마음속에도 바람개비가 있습니다.
바람을 받으면 막 흔들리는, 큰 바람개비 날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사노라면 이 바람개비를 사정없이 휘젓고 흔드는 온갖 바람과 태풍을 만나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마구 흔들립니다. 마치 바람개비가 바람에 정신없이 돌아가듯&.
우리 육신의 감정, 쌓아온 육체의 습관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우리 뇌의 "해마"의 기억 장치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그 건드림에 과민하게 반응하기를 요구합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육신의 자아는 육체의 감정에 흔들리는 것을, 그리고 육신에 종노릇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아우성칩니다. 그렇게 하여 마치 바람에 사정없이 바람개비가 돌 듯, 옛 자아와 아직 굴복하지 않은 육신의 부분들에 죄의 세력이 역사 하여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갑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따라 한참을 휘둘리고 흔들린 채, 이리저리 쓰러지고 거꾸러져 많은 상처를 만든 다음에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립니다. 어떤 사람은 미세한 바람에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 너무 가볍고 예민한 바람개비 팬 같은 감정의 날개는, 조그만 바람에도 크게 흔들려 주위와 여러 사람을 마치 강한 지진의 여진처럼 여러 차례 흔듭니다.
누구나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의 풍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육신의 감정과 충동을 일으키며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바람개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강한 바람에도 미동하지 않도록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 어떤 감정이나 유혹에도 응하지 않는, 어떤 충동과 욕망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무한하신 하늘의 능력에 의지하며 말입니다.
어떤 바람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어떤 육체의 생각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마음을 지켜야 함이 우리의 본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단이 하늘에서 전혀 "있을 곳을 얻지 못"(계 12:8)하고 쫓겨난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서도 그렇게 되도록 말입니다.
영혼의 현
바람개비가 미풍에도 돌아가듯, 육체의 죄 된 감정에 마구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에는 평안함이 없습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시냇물이 소리 없이 흐르듯이, 물길을 막는 큰 조약돌을 만나도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그것을 감싸며 흘러가듯이, 성령의 내재 하심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은 큰 흔들림이나 감정의 동요가 없이 늘 평온하여 주위의 영혼들에 쉼을 줍니다.
때때로 소란스러운 바람과 태풍을 피해 주님 품 안에 안길 때에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던가요! 성난 파도 속에서도 단잠을 주무시던 주님의 평안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던가요! 가끔 놀이 일어나 평정을 잃으려는 우리 마음속에 속삭여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시던가요!
폭풍이 일어날 듯 요동하는 우리 마음에 오셔서 "잠잠 하라! 고요하라!"라고 명령해 주시던 예수님의 음성은&.
그런데 반드시 흔들려야 하는 그 무엇(?)이 우리의 영혼 속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현입니다. 하나님만이 흔드시고, 하나님의 영만이 진동시키실 수 있는 영혼의 현, 영혼의 울림 줄.
마치 현악기의 줄이 흔들리고 진동하듯이, 성령의 감동과 역사에 감응하고 흔들리는 영혼의 현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의 바람이 아닌, 성령의 바람에 나부끼고 울리는&.
주님께서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우리 영혼의 현을 건드리실 때, 우리는 재빨리 감응해야 합니다. 마치 현악기가 그것을 연주하는 명 연주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듯이. 한 번의 튕김과 한 번의 터치에도 소리를 내며 울리듯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안정시키는 아름다운 음률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살리는 향기로운 곡을 연주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먼저 예수님과 성령님의 터치를 받아 떨려야 합니다. 작은 역사 하심에도 무한히 예민하게&.
그 감화하시는 손길에 울리고, 흔들리고, 감응해야만 평안한 음악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마음속에 역사 하시는 성령의 연주로 떨림을 받은 한 영혼의 현은 다른 영혼의 현을 울립니다. 그리고 그 미세한 감동의 떨림은 사슬처럼, 호수의 파문처럼 길게 그리고 넓게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영혼 속에 하늘의 음악을 간직한 사람이 퍼뜨리는 사랑과 평안의 진동은 온 세상에 퍼집니다. 그 흔들림은 결코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과격한 흔들림이 아닌, 잔잔히 가슴을 적시며, 조용히 격정을 가라앉히며, 촉촉이 스며드는 생명의 파장 같은 흔들림입니다.
잔잔한 미풍처럼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성령님의 연주는 예수님을 향하여 문을 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늘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 하시고 역사 하시는 그 섭리의 손길에 굴복할수록 더 아름다운 곡으로 다듬어집니다.
바람이 붑니다.
많은 바람개비를 흔들 감정의 바람과 격정의 폭풍이 생의 한복판에서 쉴새 없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쉽게 흔들릴 사람들을 흔들기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이상하게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던 그 바람개비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어떤 유혹에도, 어떤 육신의 감정이나 충동에도, 주위를 휩싸는 격정의 소용돌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성령의 바람에만 움직이는&
그래서 아름다운 진동만을 만들어내는 그런 사람이&.
권두언
한번은 제가 환전을 하는 과정에서 위조지폐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100불짜리였는데 10장 중에서 한 장이 위조한 돈이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바꾸려고 할 때에 은행직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살펴보더니 가짜 돈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황당했습니다.
아니, 은행에서 바꾼 돈이 위조지폐였다니&
그 위조지폐는 노란색이 아니었습니다. 빨간색도 아니었습니다. 진짜 돈과 꼭 같은 초록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 위에 그려져 있는 그림도 아브라함 링컨이 아닌, 오바마 대통령도 아닌 분명히 벤자민 프랭클린이었습니다. 보통 눈으로는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꼭 같은 100불짜리 지폐였습니다. 그러나 가짜였습니다.
우리는 진리로 구원을 받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성경대로 믿어야 하고, 말씀을 순종하고 따라가고 가르쳐도 성경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짜에 속아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예수께서는 거짓 가르침과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말세에는 미혹하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진짜를 찾아야 합니다. 영감의 말씀을 통해서 가짜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마지막 시대에 거대한 한가지 위조 사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믿는 자들을 속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가짜 가르침을 믿어 온 사람들은 큰 위조 사건에 속아 넘어갈 것입니다. 말씀을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번 호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정과 영성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 길
마음의 거룩함과 생애의 순결을 위하여 애쓰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괴로움과 낙담 중에 방황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살펴보기 때문이다. 믿음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우울한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참된 믿음이 가지고 있는 단순함 이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마음 가운데 커다란 흑암을 불러들이고 있다.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로부터 돌려서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단순한 마음으로 믿어야만 한다. 자신의 믿음을 신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들을 신뢰하여야 한다.
때때로 흑암과 낙담이 영혼을 엄습하여 우리 자신을 압도하려고 할 것이지만,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마음속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되든지 간에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하나님 안에서의 쉼을 얻어야 한다.
이런 믿음을 가져라!
자신의 부족함과 무가치함을 인식할 때마다 심령 깊숙한 곳에 두려움이 몰려들지만,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변했거나 또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변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우리는 항상 마음에 강렬한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지 말아야 한다. 어제 우리가 느꼈던 것과 같은 평화와 기쁨을 오늘은 느끼지 못할 수 있지만,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손을 붙잡고 흑암 가운데서도 빛 가운데서와 같이 온전히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마음이 우울할 때, 사단은 "너는 너무도 큰 죄인이므로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수 없다."라고 우리에게 속삭임으로써 우리를 깊은 낙망의 계곡으로 밀어 넣으려고 한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대가 참으로 자신이 죄 많고 무가치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유혹자를 만날 때에 이렇게 외치라! "나는 그리스도 속죄의 공로에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다. 나는 나 자신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나를 정결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보혈을 신뢰한다. 나는 이 순간에도 무력한 나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의탁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활기 있는 믿음을 가진 생애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확고부동한 믿음은 마음 가운데 끊임없는 평화와 확증이 깃들이게 할 것이다.
이렇게 유혹을 물리쳐라!
마음에 어둠의 먹구름이 덮일지라도 실망하지 마라. 모든 장애물이 닥쳐오고 마음의 고난이 더해질지라도 그것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필요를 더해 줄 뿐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굳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시고 새로운 마음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대의 독특한 결점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그분께 특별한 은혜를 간구하라. 유혹의 공격을 받을 때에 확고하게 저항하면서 이렇게 말하라! "내가 어떻게 나의 구속자에게 치욕을 돌리겠는가? 나는 나 자신을 그리스도께 드렸다. 결코, 사단의 일을 행할 수 없다!" 모든 우상을 버리고 애지중지해온 죄악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구세주께 도움을 간청하라. 하늘 아버지의 보좌 앞에 서서 당신의 못 자국 난 손을 내보이면서 그대를 위하여 탄원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라. 구주께서 그대의 마음을 굳건하게 붙잡아 주실 것을 믿어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라!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질 면류관을 믿음으로 바라보라. 장차 구원받은 자들이 하늘에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어린 양이여!"라고 부르는 찬양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라. 이런 장면들을 현실화하여 생각하도록 힘쓰라. 그리스도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데반은 공회 중에서 정사와 권세와 영적 사악함과 맹렬하게 투쟁할 때에 부르짖기를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라고 하였다. (행 7:56) 스데반은 그리스도께서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하늘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계신 광경을 볼 수 있었으며, 그의 원수들까지도 그의 얼굴이 하늘의 천사처럼 빛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와 하늘에 더 많이 두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위한 싸움에서 강력한 격려와 지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머지않아 우리가 가게 될 하늘나라의 영광을 명상할 때에 교만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힘을 잃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 외에는 어떤 것도 가치 없이 보이게 될 것이다.
아무도 스스로 열렬한 노력을 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오랫동안 마음이 세상 일만을 생각하도록 허용한 사람은 자신의 습관적인 생각을 변경시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 도성에 들어가 예수님과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이 세상에서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품성이 우리의 생각과 이야기의 주제가 되어야 하며 날마다 일정한 시간을 따로 떼어 내어서 거룩한 주제들을 명상하는 일에 바쳐야 한다.
성령을 잠잠케 하지 말라
성화는 매일의 과제이다. 아무도 하나님의 법을 의도적으로 짓밟으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시리라고 스스로 기만하지 말아야 한다. 알고 있으면서 고의적으로 죄를 범하면 성령의 증거하시는 음성을 잠잠케 하여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다. 어떠한 영적 황홀경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의 마음에는 거하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존귀히 여기는 자들만을 존귀히 여기시기 때문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롬 6:16) 우리가 분노와 정욕과 탐욕과 증오와 이기심과 그 밖의 그릇된 죄에 빠지면 우리는 죄의 종이 된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우리가 죄의 종이 되면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도 죄에 대한 자극을 느낄 것이다. 그것은 육체가 성령을 거스려 정욕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령은 계속적인 투쟁 가운데서 육체를 대항하여 싸운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스도의 도우심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라고 외치게 된다.
올바른 습관을 가져라
만일 그리스도인이 진심으로 성화 되기 원한다면, 우리의 신앙 생애 가운데서 올바른 습관을 형성하여야 한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서 세상의 음식이 필요한 것같이 매일의 기도는 은혜 가운데서 자라나는 데 필수적이며 영적 생애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되고, 흔들린 마음의 끈을 다시 강하게 붙잡아 맬 수 있다. 일순간이라도 그리스도께로부터 분리될 때 결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신앙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한다. 다른 어떤 것도 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혼과 몸과 영의 모든 능력이 영적 전쟁에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힘과 은혜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것이 확실한 것처럼 우리가 승리를 얻는 것도 확실할 것이다.
요한에게 배워라
인간에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았던 고귀한 특권이 그리스도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허락되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너무나 가깝게 닮았기 때문에 그의 생애 가운데서 교만을 찾아볼 수 없다. 그의 겸손은 옷 입는 것처럼 꾸밈없이 그에게 입혀졌던 하나의 은총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의로운 행동을 숨기며 자신에게 주의가 집중되는 듯이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나 그런 영예를 누린 자가 자신이라는 사실은 숨기고 있다. 그는 이기심 없는 생애를 살았다. 그는 사랑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치고 그것을 날마다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마음이 순결하고 태도가 정확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헛되게 공언하는 말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이라는 것이 요한의 가르침이다. 요한은 실제적인 거룩함을 가르친 교사였다. 요한의 생애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가장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생애 중의 하나였다. 요한처럼 구세주를 친밀히 따르며 그리스도의 순결함과 고귀한 거룩함을 깊이 인식하는 사람마다 자신의 추함과 부족함을 더욱더 분명하게 보게 된다. 구세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그런 느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생애와 품성에 대해 명상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더 자신의 죄를 느끼게 될 것이며, 조금도 그들의 마음이 거룩하다고 주장하거나 그들이 성화 되었다고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시골생활 이야기-3
주 찬양해
(이 글은 지난 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드디어 큰 기대를 안고 도착한 곳은 강원도 깊은 산골의 골말이라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큰길에다 짐을 내리고 우리 집이 있다는 곳으로 올라가는데, 그 길은 옛날에 나무를 베던 산판 길이라 울퉁불퉁하고 경사가 심해 한번 올라가면 땀이 뻘뻘 났습니다. 한참을 올라가니 통나무를 얼기설기 걸쳐놓아 만든 집이 나타났는데 통나무를 걸쳐놓고 그 사이엔 진흙으로 메워 놓은 듯했습니다. 허리를 굽혀서 안으로 들어가니 벽은 불쑥 튀어나온 곳이 많아서 등을 기댈 수 없었습니다. 바닥은 고르지 못해 누우면 허리가 아프고, 윗목에서 자서 아침에 일어나면 아랫목으로 내려와 있었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곳을 가보니, 돌로 동그랗게 담을 쌓았고 그 가운데 길쭉한 돌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형과 저는 그런 화장실을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재미있었습니다. 집 주위는 묵은 쑥대밭인데 돌들이 참 많았습니다. 호미질하려면 호미 자루가 돌에 걸릴 정도였습니다. 그날 밤 자려고 방에 누웠는데 전기도 없는 곳에 천장에 푸른 불빛이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것은 하늘의 별이 보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겨울에는 물이 없어서 산 계곡의 얼음을 깨어 가마솥에 녹여서 사용하였습니다. 그곳 아궁이 앞에서 불을 피우시다가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그곳은 지대가 높은 곳이라 옥수수, 감자, 수수 같은 곡식들만 심을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거기서 황옥수수를 심었었습니다. 황옥수수가 잘 마르면 엉성한 망사 자루에 넣고 매탱이로 칩니다. 그러면 옥수수 알맹이는 떨어지고 옥공이만 남게 됩니다. (옥공이를 아궁이에 넣고 불을 때면 화력이 좋답니다.) 형과 제가 맷돌에 옥수수를 한 주먹씩 넣고 돌리면 어머니는 옆에서 가루를 고운 체로 쳐서 옥수수 가루에 팥을 넣고 떡을 해먹었습니다. 노란 황옥수수에 붉은 팥이 들어간 그 떡을 저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옥수수 떡을 찐 후에 칼로 알맞게 자르지요. 그래서 저희가 떡을 쪄먹던 그 그릇 바닥에는 칼자국이 정말 많이 나 있었습니다. 왜냐면 형과 제가 서로 옥수수 떡 자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곳은 경치가 참 좋았습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래쪽으로 산들이 보이고 산 사이로 안개가 올라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또 산 나물도 많았습니다. 저는 나물 뜯는 것을 좋아해서 어머니가 나물 뜯으러 가거나 산에 가시면 꼭 따라갔었습니다. 아마 어쩌면 제가 여러분보다 나물을 더 많이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취나물 종류만 해도 떡취, 곰취, 미역취, 참취, 개미취, 복음취, 나물취 등이 있지요.^^ 또 거기엔 갈색 빛이 나는 고사리처럼 생긴 고비라는 나물이 있었는데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론 고비나물을 맛본 기억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곳은 겨울이 되면 참 좋았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참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겨울이 되면 물이 모두 얼어서 옆 냇가의 얼음을 깨쳐다가 녹여서 먹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눈이 오면 정말 신이 났었지요. 그곳엔 높은 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많이 있었는데 비료 포대 속에 지푸라기를 넣어 푹신하게 한 다음 약간 경사진 오솔길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면 그 기분은 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답니다.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참 많이도 탔었지요. 또 눈이 약간 녹기 시작할 때에 언덕길 위에서 눈을 조그맣게 뭉쳐서 굴리면 이 작은 덩어리가 굴러가면서 눈이 자꾸 붙어서 위에서 굴릴 때는 작지만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점 커진답니다. 그렇게 눈사람을 만들었지요.
그곳엔 다람쥐도 많고 새들도 참 많았습니다. 한번은 처음 들어보는 새소리가 나기에 어머니께 물었습니다. "엄마, 저 새 이름이 뭐에요?" 그때 어머니가 대답하시기를 "엄마도 모른단다. 그런데 저 새 소리가 하하호호라고 들리는 것 같지 않니? 그러니 이제부터 저 새를 하하호호새라고 부르자."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어머니가 제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현범아, 저 새가 뭐라고 하는 것 같니?"
"네? 글쎄요."
"저 새가 '주 찬양해'라고 하는 것 같구나. 저 새들은 내일 일을 주님께 맡기고 오늘을 주신 주님을 항상 찬양하면서 산단다."
저는 하하호호새가 "주찬양해"라고 하는 소리를 참 좋아했습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저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의 신앙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건강콩곡물로 건강을 되찾으세요
식이요법이나 영양 문제에서 몇 가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이다. 탄수화물을 먹으면 체중이 증가하고, 또한 그것을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나쁘기 때문에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최소화함으로써 체중도 줄이고 건강에도 유익을 얻겠다는 생각에서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하는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은, 지방이나 단백질과 마찬가지로 모든 탄수화물이 같지 않다는 점이다.
탄수화물이 주요성분인 빵, 시리얼, 크래커 등을 선택할 때에는 성분 내용이 "밀"이 아니라 "통밀"이라고 되어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또한, 빵과 시리얼의 경우, 라벨의 영양 성분에서 섬유질 함량이 최소한 3g은 되어야 한다. 탄수화물은 설탕부터 채소, 콩, 통곡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품에 들어 있다. 설탕 한 수저에도 탄수화물이 있고 통곡물로 만든 빵 한 조각에도 탄수화물이 함유되어 있다. 이 두 식품 속에 들어 있는 탄수화물은 그 질에 큰 차이가 있다.
통곡물을 먹으면 심장 동맥 질환, 뇌졸중, 당뇨병, 비만, 게실증, 고혈압, 특정 암, 골다공증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탄수화물 식품은 조금만 섭취해도 포만감이 크기 때문에 과식하기 어렵고 따라서 다이어트에도 좋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에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을 하고 있다. 미국인들이 섭취하는 탄수화물은 대부분 쿠키나 도넛, 빵, 케이크와 같이 설탕과 지방, 트랜스 지방까지 들어간 정제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이러한 식품에 함유된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때문에 저탄수화물 식이요법으로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식품에 함유된 것도 탄수화물이지만, 통곡물 속에 포함된 복합 탄수화물과는 그 질과 내용에서 전혀 다르다. 통곡물과 정제 곡물의 차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통곡물은 건강에 매우 좋지만, 파스타와 흰 밀가루, 흰 빵, 백미와 같은 정제 곡물은 결장암이나 췌장암, 위암 위험성을 높일 뿐 아니라, 건강에 여러 가지 문제를 가져다준다. 이와 반면에 통곡물을 섭취하면 포만감을 느껴서 과식하게 되지 않으며, 살도 찌지 않는다. 또한, 건강이 좋아지고 질병의 치료에도 도움을 준다.
1880년 이전에는 모든 사람이 통곡물을 섭취해야만 했다. 그러나 1880년 이후 도정 기술이 발달하면서 흰 밀가루가 식탁에 오르기 시작하였고, 1943년에는 통곡물의 가공 과정에서 손실된 영양을 보충하기 위해서 비타민 B군과 철분 등과 같은 성분이 밀가루에 첨가되기 시작했다. 1998년부터는 엽산도 첨가되었다. 그러나 가공 공정 중에서 손실되는 각종 형태의 비타민 E와 식물생리활성물질은 복원할 수 없다. 통곡물을 섭취하는 것 이외에는 자연이 주는 영양을 모두 섭취하기란 불가능하다.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진 통곡물
1) 기울: 섬유질이 풍부하고 비타민 B군, 미네랄, 단백질, 그 밖의 식물 화합물을 포함한 외피층으로서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2) 배유: 외피층 바로 아래 부분으로서 탄수화물, 단백질, 소량의 비타민 B군이 들어 있는 중간층이다.
3) 배아: 비타민 B군, 비타민 E, 기타 식물 화합물이 들어 있어 영양소가 풍부한 내피층.
이렇게 세 부분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통곡물의 생명이 유지된다. 그러나 정제 탄수화물의 경우, 건강에 유익을 주는 부분을 제거해 낸 것이다. 예를 들어 곡물을 '정제'하여 흰 밀가루나 백미로 만들면, 기울과 배아,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강력한 영양소, 항산화제, 식물생리활성물질은 모두 벗겨지고 전분만 남게 된다.
통곡물과 건강
통곡물에는 섬유질과 비타민, 미네랄, 식물생리활성물질, 그리고 다른 음식으로는 섭취할 수 없는 영양소들이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에 인체의 건강에 꼭 필요하다. 통곡물은 식품 피라미드의 기초이며, 식단의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대다수 현대인은 하루에 단 한 끼의 통곡물도 섭취하지 않는다. 미국의 아이오와 여성 건강연구소에서 여성 3만 4,000명을 대상으로 9년 동안 실시한 연구 분석에 따르면 통곡물을 하루 한 끼 이상 먹는 여성은 가끔 먹거나 전혀 먹지 않은 여성에 비해 전체 사망률이 14%~19% 낮았다.
통곡물의 섭취는 뇌졸중의 위험 감소와도 관계가 있다. 비흡연자 그룹에게 통곡물을 섭취하도록 한 결과, 허혈성 뇌졸중 위험이 50%나 줄어들었다. 그러나 현재 통곡물을 하루 세 끼 섭취하는 사람은 8%도 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뇌졸중이 주요 사망 원인인데, 그로 인해 연간 70만 명이 사망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충분한 양의 통곡물을 먹어야 한다.
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섬유질을 가장 많이 섭취한 그룹이 혈압 수치가 가장 낮았다고 한다. 고혈압은 뇌졸중을 유발하는 가장 위험한 요인이다. 확장기 혈압이 2mmHg 떨어지면 고혈압에 걸릴 위험이 17%,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15% 떨어진다고 한다. 통곡물은 DASH(Dietary Approaches to Stop Hypertension: 고혈압 예방 식이요법) 식이요법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통곡물은 심장 동맥 질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의 간호사 보건연구에서 통곡물을 하루 평균 2.5끼 섭취한 여성은 심장 동맥 위험이 30% 낮았다고 한다.
통곡물의 종류
귀리(오트밀)는 통곡물 가운데 대표적인 우수 식품이다. 귀리는 건강 증진 효능이 크면서 언제든지 쉽게 구매하여 식단에 포함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물론 귀리 외에도 다음과 같이 건강에 유익을 주는 통곡물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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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에 언급된 '네피림'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1부
답변: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창 6:1~4)
네피림은 천사와 인간의 결합인가?
우선은 네피림의 원어를 정확하게 이해해야합니다. 네피림이라는 단어가 한글 개역 성경에는 창6:4과 민13:33에 두 번 나옵니다. 그런데 특이한 사실은 히브리 원어 성경을 찾아보면 네피림이라는 단어가 '세 번' 나오는데 그 세 번의 경우 모두 어떤 한 족속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 창6:4의 네피림
창6:4에는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가 나오는데, 이 네피림이라는 단어의 뜻은 'Nephil(네필)'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원래 의미는 '벌목꾼', 즉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사람', 또는 '폭군', '거인', '장부'의 뜻으로 쓰입니다.
네피림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특별한 족속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네피림은 당시에 신체가 크고 생각이 악해 폭군이나 남을 못살게 구는 사람들의 대명사로 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아 당시에 세상이 악해지며 힘센 자가 득세하여 폭군으로서 세상을 지배하던 때에 창조주를 섬기던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고 이러한 모든 것이 홍수 심판의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노아 홍수에 죽게 되었습니다.
2. 민13:33의 네피림
먼저 앞에서 '네피림'이라는 단어가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세 번 쓰였다고 했는데 민13:33에서만 두 번 나타납니다. 한글 개역 성경에는 네피림이라는 단어가 한 번 나타나지만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할 때의 "대장부"가 히브리 원어로는 네피림으로 쓰였습니다. 이렇게 보면 네피림은 어떤 족속을 나타내는 고유명사가 아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크고 장대한 사람들을 뜻하는 대명사로 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개역 성경이 원어를 한글로 직접 번역한 것이 아니라 중국어 성경을 번역한 것이기에 이러한 오류를 범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단어를 한 번은 발음 그대로인 '네피림'으로, 다른 한 번은 네피림의 원래의 뜻인 '대장부'로 번역했기에 홍수 심판 전에 살았던 네피림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던 것 같은 오해를 가져온 것입니다.
3. 가나안 땅에 살았던'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이란 표현은?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홍수 전에 살았던 키가 장대한 사람들을 뜻하는 대명사인 네피림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에 살았던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이란 표현은 어떠한 의미일까요?
이것은 아낙 자손이 홍수에 살아남은 네피림의 직계 후손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가나안 땅을 정탐해 본 결과 홍수 전에 살았던 장대한 자들의 대명사인 네피림같이 키가 크고 포악한 아낙 족속이 살았던 것을 의미를 빌려 후손(개역 성경에서)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한글 개역 성경에 나오는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에서 '후손'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것은 공동번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질문에 대해 살펴보았던 내용을 정리해 보면 가나안 땅에 살았던 아낙 자손들은 창6:3에 등장하는 네피림의 직계 후손이 아니며 네피림은 홍수에서 살아남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어디에도 노아의 8식구 이외에 누구도 홍수 심판을 피해 살아남은 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개역 성경의 두 군데에 등장하는 이라는 단어를 번역하면서 한 번은 대명사로 사용했고, 다른 한 번은 네피림이 가진 원어의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에 발생한 해프닝입니다. 네피림을 천사와 인간 사이에 태어난 거인족으로 상상하는 것은 지나친 추측입니다
창조교실
신기한 무화과나무 열매 맺기
화과나무는 맛있는 열매를 맺어주는 고마운 나무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꽃이 피어야 하고, 꽃가루 수정을 통해서 열매가 맺힙니다. 그런데 꽃이 없어서 "무화과"(無花果)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꽃 없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요?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꽃이 있습니다. 꽃 모양도 없고, 수술이나 암술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꽃 같아 보이지도 않아서 그렇지, 꽃은 열매 안에 있답니다. 보통 열매가 처음 달리는 시기인 여름에 나무에 맺히는 초록빛 동그란 부분이 꽃이랍니다. 이렇게 꽃이 꽃받침 속에 숨어 있어 겉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화과라고 부릅니다. 보통 무화과나무에는 암꽃 수꽃이 따로 있는데, (야생 무화과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따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화과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다른 자리에 피거나 한 자리에 핍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 꽃은, 바람에 의해서 수컷 무화과에서 암컷 무화과로 꽃가루가 옮겨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꽃이 열매처럼 생긴 꽃받침 안에 있어서 바람을 통해 꽃가루를 날리거나 곤충을 불러들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요?
무화과의 꽃가루를 운반해 줄 유일한 생물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화과나무 벌"이랍니다. 무화과나무 벌 암컷은 수컷 무화과 안쪽에 자신의 알을 낳습니다. 무화과 열매 입구에 아주 조그마한 구멍이 열려 있습니다. 이 구멍은 무화과나무 벌만을 위한 것으로, 한 마리의 무화과나무 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암컷 무화과나무 벌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입구는 스스로 봉해져 다른 벌이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알을 다 낳은 암컷 벌은 수컷 무화과로부터 꽃가루를 잔뜩 묻혀서 나오는데, 이것들은 암컷 무화과만을 찾아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암컷 무화과를 수정시키고 난 다음, 수컷 무화과로 돌아가서 거기에 또 알을 낳는 것이지요. 이것이 반복되는 무화과나무 벌의 삶의 사이클이랍니다.
무화과나무 벌은 항상 수컷 무화과 안에다만 알을 낳게 되어 있는데, 이 방법이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암컷 무화과는 수정될 수 없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달콤하고 맛있는 무화과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무화과 꽃이 수정되도록 계획하셨을까요? 누가 이렇게 신기하게 무화과 열매가 맺히도록 하셨을까요? 달콤한 무화과나무 열매를 입에 넣으면, 신기한 창조의 솜씨를 발휘하신 그분이 그리워지지요?
제27호 뉴 에이지 운동 |
한국어로 "새 세대 운동"으로 번역된 "뉴에이지 운동"은 에덴동산에 살던 인류의 시조를 기만하기 위하여 사단이 처음으로 들여왔던 범신론 사상에 새로운 옷을 입힌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그들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도, 다시 말해서 죄를 지어도 죽지 않는다고 유혹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단의 속삭임이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교묘한 가면을 쓰고 기독교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 오고 있으며, 또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온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 범 세계적인 종교 연합운동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로마 천주교회의 교황이 개신교회와의 연합은 물론이요, 불교, 이슬람교, 심지어는 인디언들의 토속 신앙의 지도자들과 만나서 회의하면서 세계적인 종교 연합을 꾀하고 있다. 모든 종교는 그 중심에서 실은 같은 신을 섬기고 있다는 식의 뉴에이지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과학이라는 핑계로 신비주의가 급속하게 대중화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와서 유난히 점성술, 손금 보는 일들, 다른 영계와 접촉하는 심령술, 귀신과 대화한다는 강신술, 그리고 외계인과 만났다는 UFO 현상들이 점점 더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일반인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중에서 신비주의에 속한 유령, 우주 전쟁, 그리고 외계인과 UFO에 대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사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스타워즈를 만든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는 환생과 윤회를 가르치는 뉴에이지 사상에 깊이 심취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다. 이제는 범람하는 신비주의 영화를 통하여 어린아이들까지 무의식적으로 뉴에이지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교회 청년회에서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단체로 이러한 영화들을 관람하기 위하여 몰려가고 있지 아니한가!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과 진리와 참된 성도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을 위하여 질주해 가고 있다. 누가 과연 이 사실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사람들을 깨울 것인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최면술은 악한 일이요, 뉴에이지 사상의 분파이다. 그런데 요즈음 최면술을 시범하여 보이는 프로들이 텔레비전의 화면에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웃기거나 놀라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고등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을 즐기게 하는 실정이다. 최면술은 인간의 잠재의식에다 메시지를 전달하여 판단 기능과 의지력을 무산시키는 데 사용하는 심리 술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전혀 어긋나는 사단의 수법이다. 한 번 최면에 걸렸던 사람들은 그다음 기회에 최면이 올 때에 무방비 상태로 최면에 쉽게 빠지고 만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이제는 하나의 오락처럼 시행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스도인들은 잠에서 깨어나 교회 안에 있는 위험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편지-강영은바람개비
그날은 바람이 꽤 많이 부는 날이었습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이 쉽지는 않지만, 비행기 여행이 줄 수 없는 또 다른 묘미가 있어 좋다고 생각하며 달리는 차에 몸을 싣고 있었습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흥미롭고 낯선 풍경과 풍물들은 때로 마음속에 새로운 깨달음을 던져주곤 하니까요.
시카고로 가려면 지나야 하는 인디애나 주에 접어들었을 때였습니다.
차가 높은 고개의 하이웨이를 넘어 평평한 평지로 접어들자, 갑자기 드넓고 푸른 초원 위에 수십 개의 크고 하얀 바람개비들이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들은 바람을 일으키는 풍력발전기 바람개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미세한 바람에도 빙빙 돌아가는 그 큰 바람개비 중에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바람개비가 몇 개 있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히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날개의 흔들림이나 조용한 끄덕임조차 없이 움직이지 않고 서 있는 그 몇 개의 바람개비&!
그 돌지 않던 바람개비는 여행하는 내내 마음속에 남아 많은 생각을 던져 주었습니다.
마음의 풍차
우리 마음속에도 바람개비가 있습니다.
바람을 받으면 막 흔들리는, 큰 바람개비 날개 같은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을 사노라면 이 바람개비를 사정없이 휘젓고 흔드는 온갖 바람과 태풍을 만나게 됩니다. 바람이 불면 사람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마구 흔들립니다. 마치 바람개비가 바람에 정신없이 돌아가듯&.
우리 육신의 감정, 쌓아온 육체의 습관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는 우리 뇌의 "해마"의 기억 장치는, 작은 바람만 불어도 그 건드림에 과민하게 반응하기를 요구합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육신의 자아는 육체의 감정에 흔들리는 것을, 그리고 육신에 종노릇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라고 아우성칩니다. 그렇게 하여 마치 바람에 사정없이 바람개비가 돌 듯, 옛 자아와 아직 굴복하지 않은 육신의 부분들에 죄의 세력이 역사 하여 한바탕 소용돌이가 지나갑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에 따라 한참을 휘둘리고 흔들린 채, 이리저리 쓰러지고 거꾸러져 많은 상처를 만든 다음에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립니다. 어떤 사람은 미세한 바람에도 견딜 수 없어 합니다. 그 너무 가볍고 예민한 바람개비 팬 같은 감정의 날개는, 조그만 바람에도 크게 흔들려 주위와 여러 사람을 마치 강한 지진의 여진처럼 여러 차례 흔듭니다.
누구나 흔들릴 수 있는 마음의 풍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육신의 감정과 충동을 일으키며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바람개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강한 바람에도 미동하지 않도록 자신을 제어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그 어떤 감정이나 유혹에도 응하지 않는, 어떤 충동과 욕망에도 반응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무한하신 하늘의 능력에 의지하며 말입니다.
어떤 바람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어떤 육체의 생각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마음을 지켜야 함이 우리의 본분이기에 그렇습니다. 사단이 하늘에서 전혀 "있을 곳을 얻지 못"(계 12:8)하고 쫓겨난 것처럼 우리 마음속에서도 그렇게 되도록 말입니다.
영혼의 현
바람개비가 미풍에도 돌아가듯, 육체의 죄 된 감정에 마구 흔들리는 사람의 마음에는 평안함이 없습니다. 잔잔하고 평온한 시냇물이 소리 없이 흐르듯이, 물길을 막는 큰 조약돌을 만나도 부딪히지 않고 조용히 그것을 감싸며 흘러가듯이, 성령의 내재 하심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은 큰 흔들림이나 감정의 동요가 없이 늘 평온하여 주위의 영혼들에 쉼을 줍니다.
때때로 소란스러운 바람과 태풍을 피해 주님 품 안에 안길 때에 얼마나 마음이 편안하던가요! 성난 파도 속에서도 단잠을 주무시던 주님의 평안은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이던가요! 가끔 놀이 일어나 평정을 잃으려는 우리 마음속에 속삭여 주시는 예수님의 음성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시던가요!
폭풍이 일어날 듯 요동하는 우리 마음에 오셔서 "잠잠 하라! 고요하라!"라고 명령해 주시던 예수님의 음성은&.
그런데 반드시 흔들려야 하는 그 무엇(?)이 우리의 영혼 속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현입니다. 하나님만이 흔드시고, 하나님의 영만이 진동시키실 수 있는 영혼의 현, 영혼의 울림 줄.
마치 현악기의 줄이 흔들리고 진동하듯이, 성령의 감동과 역사에 감응하고 흔들리는 영혼의 현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의 바람이 아닌, 성령의 바람에 나부끼고 울리는&.
주님께서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우리 영혼의 현을 건드리실 때, 우리는 재빨리 감응해야 합니다. 마치 현악기가 그것을 연주하는 명 연주가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듯이. 한 번의 튕김과 한 번의 터치에도 소리를 내며 울리듯이&.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안정시키는 아름다운 음률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살리는 향기로운 곡을 연주해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이 먼저 예수님과 성령님의 터치를 받아 떨려야 합니다. 작은 역사 하심에도 무한히 예민하게&.
그 감화하시는 손길에 울리고, 흔들리고, 감응해야만 평안한 음악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마음속에 역사 하시는 성령의 연주로 떨림을 받은 한 영혼의 현은 다른 영혼의 현을 울립니다. 그리고 그 미세한 감동의 떨림은 사슬처럼, 호수의 파문처럼 길게 그리고 넓게 이어집니다. 그리하여 영혼 속에 하늘의 음악을 간직한 사람이 퍼뜨리는 사랑과 평안의 진동은 온 세상에 퍼집니다. 그 흔들림은 결코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과격한 흔들림이 아닌, 잔잔히 가슴을 적시며, 조용히 격정을 가라앉히며, 촉촉이 스며드는 생명의 파장 같은 흔들림입니다.
잔잔한 미풍처럼 우리의 영혼을 울리는 성령님의 연주는 예수님을 향하여 문을 연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늘 계속 이어집니다. 그리고 주님의 인도 하시고 역사 하시는 그 섭리의 손길에 굴복할수록 더 아름다운 곡으로 다듬어집니다.
바람이 붑니다.
많은 바람개비를 흔들 감정의 바람과 격정의 폭풍이 생의 한복판에서 쉴새 없이 불어오고 있습니다. 쉽게 흔들릴 사람들을 흔들기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이상하게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던 그 바람개비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어떤 유혹에도, 어떤 육신의 감정이나 충동에도, 주위를 휩싸는 격정의 소용돌이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성령의 바람에만 움직이는&
그래서 아름다운 진동만을 만들어내는 그런 사람이&.
창조교실
신기한 무화과나무 열매 맺기
무화과나무는 맛있는 열매를 맺어주는 고마운 나무입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꽃이 피어야 하고, 꽃가루 수정을 통해서 열매가 맺힙니다. 그런데 꽃이 없어서 "무화과"(無花果)라고 불리는 이 나무는 꽃 없이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요?
무화과나무는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꽃이 있습니다. 꽃 모양도 없고, 수술이나 암술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꽃 같아 보이지도 않아서 그렇지, 꽃은 열매 안에 있답니다. 보통 열매가 처음 달리는 시기인 여름에 나무에 맺히는 초록빛 동그란 부분이 꽃이랍니다. 이렇게 꽃이 꽃받침 속에 숨어 있어 겉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화과라고 부릅니다. 보통 무화과나무에는 암꽃 수꽃이 따로 있는데, (야생 무화과는 수나무와 암나무가 따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무화과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다른 자리에 피거나 한 자리에 핍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 꽃은, 바람에 의해서 수컷 무화과에서 암컷 무화과로 꽃가루가 옮겨질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꽃이 열매처럼 생긴 꽃받침 안에 있어서 바람을 통해 꽃가루를 날리거나 곤충을 불러들일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열매를 맺을까요?
무화과의 꽃가루를 운반해 줄 유일한 생물체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무화과나무 벌"이랍니다. 무화과나무 벌 암컷은 수컷 무화과 안쪽에 자신의 알을 낳습니다. 무화과 열매 입구에 아주 조그마한 구멍이 열려 있습니다. 이 구멍은 무화과나무 벌만을 위한 것으로, 한 마리의 무화과나무 벌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 마리의 암컷 무화과나무 벌이 그 안으로 들어가면 신기하게도 입구는 스스로 봉해져 다른 벌이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알을 다 낳은 암컷 벌은 수컷 무화과로부터 꽃가루를 잔뜩 묻혀서 나오는데, 이것들은 암컷 무화과만을 찾아가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암컷 무화과를 수정시키고 난 다음, 수컷 무화과로 돌아가서 거기에 또 알을 낳는 것이지요. 이것이 반복되는 무화과나무 벌의 삶의 사이클이랍니다.
무화과나무 벌은 항상 수컷 무화과 안에다만 알을 낳게 되어 있는데, 이 방법이 아닌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암컷 무화과는 수정될 수 없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달콤하고 맛있는 무화과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무화과 꽃이 수정되도록 계획하셨을까요? 누가 이렇게 신기하게 무화과 열매가 맺히도록 하셨을까요? 달콤한 무화과나무 열매를 입에 넣으면, 신기한 창조의 솜씨를 발휘하신 그분이 그리워지지요?
137호 신앙 1부
총 제목: 사단의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을 맞기 위해 온 마음과 열심을 다해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또한, 재림 전에 있을 큰 환란에 서기 위하여, 그리고 사단의 마지막 큰 기만에 속지 않기 위하여 진리에 굳게 서는 경험을 해야 할 때입니다. 앞으로 진리를 똑바로 알지 못하거나, 진리로 성화되지 않고 진리대로만 사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준비된 사단의 기만에 다 속게 될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마지막 사단의 기만 최고의 절정과 그 기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 진리에 서야 하는가 하는 주제에 대하여 조명해 보았습니다. 유익한 기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글 편집실 |
"파브르 곤충기"로 유명한 세계적인 곤충학자 파브르가 어느 날 날벌레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었다. 날벌레들의 움직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했던 파브르는 유심히 관찰하다가 뜻밖의 결과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날벌레들의 움직임은 그저 가장 앞에 있는 날벌레를 따라다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날벌레들은 태어나서 맨 처음 만나는 날벌레를 쫓아 평생을 돌아다니며, 심지어 가까운 곳에 먹이가 있더라도 맨 앞의 날벌레가 그것을 먹으러 가지 않으면 뒤따르는 무리도 그것을 먹으러 가지 않았고, 심한 경우에는 1주일 동안 그저 앞의 벌레만 따라다니다가 굶어 죽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이, 주위의 무리가 가는 대로 넓은 멸망의 길로 아무 생각 없이 가고 있다.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따르듯이, 교회에 속해있다는 소속감과 구원을 받았다는 거짓 안전감이 주는 평안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머지않아 날이 이를 것이다. 그날은 시험하는 날이요, 흔들리는 날이 될 것인데, 그 사건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이 정말 진리에 확고하게 서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 엄청난 사건, 많은 그리스도인을 흔들려 떨어지게 할 사건이 도대체 무엇일까? 그 일은 바로 마지막으로 마련해 놓은 사단의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이다. 함께 연구해 보자.
1) 하늘에서 시작된 전쟁
하늘에 있었던 전쟁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 (계 12:3,4,7~9)
하나님의 법과 정부에 직접적으로 도전장을 던지고 반역한 천사장 루시퍼는 하나님의 인을 맡은 천사였다.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수종 들던 피조물 루시퍼는,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지혜와 공의의 성품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주어진 능력과 선물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고 그분을 높이는 대신, 자신을 높이고자 하였으며, 하나님의 정부와 그분의 법에 반역하고 천사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의 결과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호소하시는 사랑과 아들 하나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교만을 낮추기를 거절한 루시퍼는 죄악의 창시자 사단이 되었고, 결국 전쟁에 패하여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계 12:9)게 되었다. 한 가지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반역한 루시퍼 사단을 즉각적으로 처치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의 율법이 다스리는 세계와 사단의 법이 다스리는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그 결과를 천사들과 우주의 모든 거민들이 목격할 수 있도록 하시고, 또한 죄가 거두는 결과가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비극인지를 알도록, 그리하여 모든 것이 드러나도록 계획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죄악을 단번에 처치하시는 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모든 죄를 대속하시므로 죄인들에게 그분의 사랑을 보이시고,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을 본 사람들이 사랑에 이끌려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편을 선택하도록 의도하셨다.
2) 선악의 대 쟁투의 막바지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자가 된 사단은 우주를 다니며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을 유혹하였다. 그러나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은 행성은 지구밖에 없었다. 아담은 사단의 말을 더 신뢰하고 그의 편을 택하므로 이 지구의 통치권을 사단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사단의 통치에 굴복하지 않는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항상 지구에 존재하므로, 이 지구가 사단의 소유가 아님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한두 사람이 아닌,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보혈의 능력으로 사단과 악의 통치와 파워를 이기고 승리하는 한 큰 무리가 생겨날 것이다. 오늘도 선과 악의 대 쟁투의 전장이 된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선악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단은 인간 마음의 보좌를 차지하여 이 지구를 자신의 소유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품의 인을 받기 전에 모든 사람을 멸망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이제 선악 간의 대 쟁투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깝고, 말세 징조의 예언 성취가 우리의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가 더욱 열심을 내고 진리에 굳게 서는 경험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택하신 자라도 미혹될 만한 사단의 최대 기만이 준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가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계 12:12)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사단이 마지막으로 모든 백성을 자기편으로 이끌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은 다름이 아닌, "이적"과 기만의 "모방"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예수께서 마지막 징조에 대하여 예언하시고 경고하신 말씀에도 포함된 이 사건은 다음과 같다.
마태복음 24:23~27 -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예수께서는 마지막 시대의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에 특별히 거짓 그리스도가 임하는 일에 대하여 여러 차례 경고하셨다. 거짓 그리스도가 나타나 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며 택하신 자라도 미혹할 것에 대해 언급하시고,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경고하시면서, 동시에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방법에 대하여 확실하게 언급하셨는데, 예수님의 재림은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지구 상의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임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사단이 어떤 기만으로 사람들을 미혹할 것인가?
제2부: 사단의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 |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4)
사단은 천사와 같은 존재이며, 또 천사장이었으므로 능력과 파워를 가진 존재이다. 그는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기 위하여 엄청난 이적과 기사를 행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사단의 기만에 대하여 경계심을 갖고 진리에 굳게 서는 일은 우리에게 매우 필요로 되고 있다.
1) 사단의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 - 예수 재림 모방
사단은 짐승의 표가 내리는 마지막 환란의 기간 동안, 택하신 자라도 흔들릴 만한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모습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사단은 이 엄청난 기만의 사건을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할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 사단은 이 땅에 직접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두 뿔 달린 이상한 괴물의 모습이나 무서운 마귀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마치 감람산에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설교하시던 사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으로, 혹은 유대의 촌락을 다니시며 병자를 고치시던 자비로운 예수님의 모습으로, 휘황찬란한 초자연적이고 위대한 신의 모습으로 이 땅에 군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너무나 아름다운 진리처럼 들리고, 너무나 깊은 깨달음이 묻어 있는 철학처럼 들릴 것이며, 논리정연하고 확신에 찬 것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다. 예수님의 모습을 위장한 사단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님의 정확한 진리와 계명을 뒤집는 발언이 될 것인데, 그는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계명이 변하고 바뀌었다고 선포할 것이다. 그리고 의의 원칙을 강조하기보다는 연합과 사랑만을 강조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뜻과 진리의 원칙을 고수하는 하나님의 소수의 남은 무리가 평화를 깨뜨리고 위협하는 자들이라는 취급을 받게 될 것이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 사건은 큰 흔들림과 엄청난 기만의 사건이 될 것이다. 진리의 원칙과 말씀에 서기보다는 감정적인 느낌에 신앙의 기초를 둔 사람, 성경 말씀보다는 눈에 보이는 이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관심을 둔 사람, 자아가 죽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소원 대신, 자신의 영적인 능력과 힘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다 이 기만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한 진리에 굳게 서지 않고 옆 사람들을 따라 그냥 맹목적으로 예수를 믿던 사람들은 다 이 놀라운 기만에 속아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생애의 빛에서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을 통해 그렇게 여러 번,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위험성과 거짓 성령 운동이나 눈에 보이는 기적과 현시에 현혹되지 말고 말씀과 진리에 굳게 서도록 경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마지막에는 사단이 예수님의 재림을 모방하여 이 땅에 나타나는 일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미혹하는 온갖 현상들이 나타날 터인데, 사단의 악령들은 죽은 사람들의 생전의 똑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거짓을 말할 것이며, 성경 말씀과 계명에 어긋나는 발언을 할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 영혼이 빠져나가 영원히 산다고 믿은 사람들, 거짓 성령 운동과 기적과 현시들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중요하게 믿은 사람들은, 사단이 준비한 거짓 기만에 다 속아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2) 온 세계의 종교가 기다리고 있는 메시아
사단은 벌써 오래전부터 이 큰 기만을 위해 준비해 왔다.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죽은 사람들과의 교통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사람들의 머리에 주입해 왔고, UFO와 공상 과학 이야기들을 통해 외계인들의 도래에 대하여 기대하게 하였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공상 과학 만화나 영화들을 보지 않도록 주의시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단은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앞으로 있을 예수 재림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하도록 유혹하기 위해 비 성경적인 가르침을 들여와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구원의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유도하고, 거짓 성령운동과 기적의 역사를 통해 진리의 말씀에 집중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현시에만 치중하게 한다. 또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쾌락과 오락의 방종, 세상의 재미들을 통하여 그들을 사로잡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사단이 벌써 세계의 모든 종교 속에 미혹의 발판을 마련해 놓았다는 사실인데, 그것은 온 세계의 종교가 한결같이 미래에 자신들의 신이 도래하리라고 믿게 하여 놓은 것이다. 기독교를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 기다리는 방법과 나타나는 방법이 성경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모습과 기대 속에서 기다리도록 사단은 선동해 놓았다. 그나마 20억 기독교인 중 약 3억 5천만 정도만 예수 재림을 믿는다. 천주교회와 동방 정교는 복천년 설을 믿기 때문에, 실재 예수 재림을 믿지 않는다.
미래에 그들의 어떤 신이나 메시아가 도래할 것을 믿는 세계의 종교들을 한번 살펴보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메시아, "Meshiack" 을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수니파 모슬렘들은 처음으로 임하는 메시아 "Mahdi" 를 기다리고 있다.
시아파 모슬렘들은 941년도에 사라진 12번째 "Mahdi" 가 다시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곧 이 12번째 Mahdi인 "Imman" 이 나타날 시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이란 대통령 Mahmoud Ahmadinejad 는 자기가 이슬람의 메시아를 임하게 하는 사도라고 믿고 있다. 그가 2005년 9월 UN 연설을 할 당시, 그는 자신이 그들의 메시아의 빛으로 둘러싸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들의 메시아 오기 전에 이슬람을 통한 큰 전쟁이 선재 할 것이며, 온 세상에 큰 혼란과 황폐가 먼저 있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그들의 Mahdi가 와서 세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할 것이며, 유대인들을 없애는 전쟁을 하리라고 믿고 있다.
불교도인들은 곧 다섯 번째 부다가 임하리라고 믿고 있다. 그의 이름은 "Maitreya"이다.
힌두교인들은 10번째 Avatar,"Kalki"가 곧 임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의 도래의 사상은 "새 세계 질서" 신앙의 사상과 같다.
New World Order (새 세계 질서) 종교계에서 침례 요한과 같이 여겨지고 있는 Benjamin Creme 씨는 새 세계 질서 신앙의 지도자인데, 2009년에 그들의 메시아 "Maitreya" 가 곧 세상에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이렇듯 온 세계의 종교는 그들의 메시아와 신의 도래를 믿고 있으며, 그 시기가 매우 가까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저 막연하게 그들의 신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 평화가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정결함을 입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성품으로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 진리에 의해 성화되는 믿음과 신앙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선과 악의 마지막 대 쟁투의 절정에서 온 세상을 미혹하기 위해 사단이 준비한 기만의 최고의 걸작품에 모두 걸려 넘어지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런 사람들은 자연히 아무 분별력 없이 사단의 명령을 따르게 되어 있다.
3) 사단이 준비해 오고 있는 기만술
성경은 마지막 때, 곧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환란 때에, 모든 사람을 미혹하기 위해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이 "이적"을 행하는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사단은 온 세상을 속이고 미혹하기 위하여 그가 오랫동안 준비해온 최고 기만의 걸작품을 나타낼 것이다. 그리스도로 가장하여 나타나는 사단은 온 세상을 하나로 연합시키어 하나님의 참 백성을 대적하게 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육이니라."
요점으로 간추려 본 사단의 기만술
악령들이 죽은 자들의 영혼처럼 가장하여 나타날 것이다. 악의 영들은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성자로 가장하여 나타날 것이다.
신실한 성도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나타난 악의 영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계명을 변경하신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폐하셨는데, 둘째 계명을 제하고 넷째 계명의 시간을 변경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사단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신 것처럼 가장하여 이 땅에 나타날 것이다. 그는 아름다우신 예수님의 모습으로 위장하고 나타나 찬란한 광채 속에서 십계명이 변경된 사실을 선포하고 사랑과 연합 속에서 온 세계가 연합되기를 호소할 것이다. 그때 대부분의 사람이 사단의 기만에 속을 것이다.
사단의 속임수, 그 최고의 절정은 마지막 핍박 기간인 짐승의 표의 환란의 시간에 일어날 것이다.
4) 경계해야 할 사단의 기만술
준비된 사단의 최후 기만을 분별하고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 무엇보다도 정확한 진리를 알고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땅에 발이 닿지 않으실 것이다. 무덤에서 일어난 성도들과 살아남은 성도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 땅 위에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홀연히 변하여 공중으로 끌어올려 가는 것이다. 이 사실에 유의하도록 하자.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 하늘에서 큰 음성으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계 12:12)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사단의 분노는 그의 시간이 단축되어 감에 따라 격렬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기만과 파괴 행위는 환란의 때에 그 절정에 이를 것이다.
마지막 때에 하늘에는 이적을 행하는 마귀의 능력을 알려 주는 증거로서 초자연적인 무서운 광경이 나타날 것이다. 마귀의 악한 영들은 땅의 왕들과 온 세상 사람들을 속임수로 얽매어, 하나님과 하늘 정부를 대적하는 선악의 마지막 투쟁에 사단과 연합하도록 그들을 강요할 것이다. 그 악한 영들로 말미암아 통치자들과 준비되지 못한 백성은 다 같이 속을 것이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그리스도라고 자칭할 것이며 구주께 속한 칭호와 예배를 요구할 것이다. 그들은 병을 고치는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성경의 증거와 반대되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노라고 공언할 것이다. 큰 기만적 연극의 주역으로서 사단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로 가장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오랫동안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해 왔다. 이제 그 큰 기만자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신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사단은 세계 각처에서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계시록에 묘사한 바와 같이 실로 위엄 있고 광휘 찬란한 모습으로 자신을 사람들 앞에 나타낼 것이다. 그를 두르고 있는 영광은 사람이 일찍이 목격한 일이 없는 찬란한 광경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라고 부르짖는 함성이 공중에 울려 퍼지고, 많은 사람이 그 앞에 부복하여 그에게 경배할 것이다.
사단은 손을 들어 마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당신의 제자들을 축복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축복할 것이다. 그의 음성은 모든 사람이 반할 만큼 부드럽고 온화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우아하고 동정 어린 음조로 그는 은혜로운 하늘 진리 중 어떤 것들을 말하고 이적을 행하며 사람들의 병을 고쳐 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바꾸었다는 것을 주장하고 변경된 계명을 지키도록 명령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진리 말씀대로 사는 남은 무리를, 자기가 보낸 빛과 진리를 듣지 않으므로 자기의 이름을 더럽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엄청나고 강력하고 압도적인 기만이다. 마치 마술쟁이 시몬에게 속은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군중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권능이라."(행 8:10)라고 말함으로써 그 기만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기만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 거짓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성경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로 위장한 사단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 곧 성경이 하나님의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가 쏟아지리라고 한 바로 그 부류의 사람들에게 축복을 선언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재림의 특성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27) 사단이 아무리 위장할지라도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위조할 수 없다. 예수님의 재림은 온 우주가 알고 온 세계가 목격할 지상 최대의 사건이 될 것이다
제 3부: 사단의 기만과 현대 심령과학 |
1) 그리스도인들이 빠지기 쉬운 초자연적인 현상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많은 그리스도인 중에 초자연적인 현상에 초점을 맞추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진리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그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 뜻에 순종하려는 마음보다,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기적이나 초능력적인 은사, 꿈이나 진리와 맞지 않는 환상을 보는 것과 억지로 끼워 맞추는 개인적인 계시 등)을 더 믿고 그것에 더 중요한 의미를 두려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사단의 기만에 빠지기가 쉽다. 이런 경향의 사람들은 진리를 연구하고 그것에 조용히 젖어들어 변화되기보다는, 더 자극적인 어떤 것을 점점 더 갈망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음속에 조용히 역사 하시는 진리의 성령의 음성을 듣기보다 소란하고 표면적인 신앙에만 만족하며, 소란하고 외면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은 진리가 지적하는 대로 행하지 않고, 항상 자신이 좋아하는 방식대로 신앙하며, 자신이 경험한 어떤 초자연적인 것들에 더 치중한다.
이렇게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급급하고, 믿는다고 하면서 실생활에서 진리와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효과적인 사단의 매개체가 되기 쉽다. 사단은 그런 사람들을 이용하여 많은 그리스도인을 기만한다. 그는 천사를 두르고 있는 빛으로 자신을 가장하고,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어떤 계층 사람들의 마음에 역사 하며, 하나님의 진리라고 믿는 바 일부는 시인하고 다른 부분은 위험하고 치명적인 오류로 거절하도록 그들을 유혹하고 조종한다. 또한, 꿈을 꾸게 하거나 환상을 주어 성경 말씀과는 상반되는 어떤 것들을 믿게 한다. 그는 환상이나 계시 속에 어떤 훌륭한 인물, 성자나 전혀 다른 인물로 나타나 곧 일어나려고 하는 상황이나 이미 실제로 일어난 상황을 진술함으로써 그들의 거짓 믿음을 증가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래로부터 올라온 지혜이지 위에서부터 내려온 지혜가 아니다. 사단은 능수 능란한 일꾼이다. 그는 자기의 간교한 지혜를 사용하여 말씀을 연구하지 않고 진리에 굳게 서 있지 못한 사람들을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 사단은 진리를 통하여 주어진 하나님의 권면을 거절한 자들을 찾고 기다리고 있으며 가르칠 수 있다. 그는 가능한 한 모든 선으로 옷 입을 것이며, 가능한 한 매력적인 모습으로 가장할 것이다. 우리의 대적 마귀는 지혜와 힘이 없는 자가 아니다. 그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사단과 그의 기만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알고 진리의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매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속에서 사는 것이다. 사단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곧 오셔서 기만자 사단을 그 입의 기운으로 사르시며 그의 임하시는 빛으로 멸망시키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며 진리 가운데 살아가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진리가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한다. 진리로 마음이 무장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리키는 것보다 자신의 의견이나 꿈이나 환상과 초자연적 현시를 더 좋아하고 그것에 빠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사단의 유혹에 빠지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연구하고 진리를 통하여 역사 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매우 필요로 되는 일이다.
2) 사단과 현대의 심령과학
그리스도인들은 소위 심령과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주의해야 한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지식인들이나 과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을 기만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의 하나가 심령과학이다. 심령과학은 초자연적인 현상과 영적인 존재(영계와 귀신)나 영혼, 또한 사후세계 같은 것들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의 한 종류로 약 100년 전에 미국에서부터 출발하였는데, 현재 멕시코 같은 나라에는 여러 대학교에 심령과학과가 있다. 심령과학에는 최면술, 사후세계와 전생연구, 귀신이나 영과 대화하는 것, 영혼의 불멸성을 주장하는 일, 미래나 과거에 대한 점치는 일 등등이 포함되어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령과학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거나 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지만, 최근 들어 이 학문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게 되고 또 현대인들의 생활과 문화에 친숙하게 되어 이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어지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심지어 이 학문은 현대의 매우 혁신적인 과학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배후에는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뚜렷한 원인이 있는데, 그것은 미디어의 힘이다. 사단은 근래에 미디어산업, 특히 미국의 할리우드와 세계 각 나라의 영화산업들을 통하여 심령과학이나 강신술 같은 것들이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역사 하여 왔다. 요즈음처럼 귀신의 존재나 죽은 영혼과의 교통, 사후세계 등에 대한 주제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받아들여진 적은 결코 없었다. 사람들은 영화 속에 나타난 이야기나 소재를 통해 죽은 영혼과의 교류가 자연스러운 것이며, 영혼은 불멸한다는 사상, 그리고 어떤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들과 교통하는 일들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사상을 주입 받고 있다. 또한, 책이나 미디어들을 통하여 귀신의 존재들과 사후세계에 대한 상상적이고 허구적인 이야기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현상들은 다 사단이 마지막 시대에 있을 대기만을 위하여 기초를 놓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며, 선과 악의 대쟁투 막바지에 있을 전쟁 때에, 빛나는 천사의 모양이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법을 대적하고 인간의 계명을 높이며, 사람들을 미혹할 사단의 대기만의 전초작업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단은 오랜 세월에 걸쳐 미디어, 책, 사건 사고들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머릿속에 심령과학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으며, 그 결과 이제 심령과학은 책과 영화와 미디어를 통해 아무 제지 없이 버젓이 사회에 활개를 치고 있다. 근래에 들어 세계각지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의 내용을 보면, 유난히 귀신의 존재를 다룬 것이나, 영과의 교통, 윤회, 전생 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많이 제작되고 있다. 이런 매개체를 통해 이제 심령과학은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이에 더하여 요즈음은 많은 채널러의 활동과 저서 등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이 채널러들은 하늘이나 우주의 어떤 영적인 존재들과 교류를 하여 우주의 메시지를 전수받으며 그들과 교신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채널러들 또한 심령과학이 주목을 받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으며, UFO나 우주의 어떤 이상한 영들을 믿게 하므로 사람들을 사단의 기만에 빠지도록 부추기고 있다. 한편, 유명한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지식인이 영매를 찾아가 그들의 미래와 운명에 대한 감정을 받고 있다. 이 영매들은 수정구슬이나 이상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과거나 미래를 점쳐주고 그들을 찾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말 이상한 귀신의 영들을 통하여 사단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미국같이 기독교가 우세한 국가의 정치가들도 영매를 즐겨 찾는 것을 보면, 정말 심령과학은 우리 주위 가까이에서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사단은 심령과학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점령하고 지배하며 영향을 주고 있는데, 비단 무신론자뿐만 아니라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심령과학을 통해 지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독교계 안에 사후 세계와 지옥을 본 사람들의 간증을 다룬 책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출간되었다. 그 책들은 한결같이 자신이 느끼고 환상에서 본 사후 세계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런 것들은 한결같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와는 상반된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다. 영에 속한 일은 신비한 일이며 인간의 지력이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은 누구나 신비에 속한 일들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고, 또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리 외에 구태여 이런 것들을 알고 싶어하기보다는 조용하고 굴복된 마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낫다. 왜냐하면, 너무 지나치고 무모하게 신비에 속한 일을 알고 싶어한다든지, 사사로운 억측으로 이런 일들을 풀이하다 보면, 사단의 미혹과 기만에 쉽게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심령과학을 믿고 신봉하는 사람들은 거짓 성령 운동에 빠지기가 매우 쉽다. 마지막 때에 거짓 영들이 나타나 이적을 행하고, 사단 자신이 직접 나타나 놀라운 기적들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눈을 현혹할 때에 심령과학에 빠진 사람들과 거짓 성령운동에 빠진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모두 현혹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누구라도 빠질 만한 심령과학의 이상한 현상들과 마치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이적들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거짓 성령 운동을 눈앞에 목격하고 있다. 현재 기독교에서 엄청난 인기를 끄는 "Benny Hinn" 같은 사람의 거짓 성령운동이나, 또 유명한 경제인들의 각광을 받고 있는, 죽은 영들을 통해 경제 자문한다는 "Spiritual Counseling Center"의 상담자 Gerald Levine의 심령과학 운동 같은 것을 보아도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앞으로 일어날 사단의 마지막 기만의 대절정과 거짓 영들의 미혹하는 이적들로부터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리를 알고 진리에 굳게 서는 것뿐이다. 하나님의 진리 말씀은 모든 미혹과 기만을 알아차리도록 영안을 깨워준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유혹을 벗어나 믿음에 굳게 설 힘과 능력을 준다. 진리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 사단의 대기만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어떤 미혹과 유혹하는 술수로 사단이 미끼를 던진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진리로 성화된 사람들을 건드릴 방법이 세상에는 없다.
제4부: 선악의 전쟁터에서 |
1) 사단의 술책과 함정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는 곧 끝나게 될 것이다. 마지막이 가까움을 알고 있는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이 실패로 돌아가게 하고 사람들을 그의 사슬에 굳게 매어 두기 위하여 노력을 배가하고 있다. 하늘에서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끝나고 은혜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리하여 인간을 위한 구원의 시간이 지날 때까지 사람들을 죄의 어둠과 완고한 상태에 붙들어 두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사단은, 사람들이 죄악의 사슬에 매인 채 세상에 휩쓸리며, 무감각한 상태에서 사단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때, 또 교회에 뜨뜻미지근하고 냉담한 상태가 팽배해 있을 때,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런 상태에 있을 때에는 그들을 자기 손에서 잃어버릴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영원한 사물을 생각하고, 죄를 회개하며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라는 부르짖음이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영적인 각성과 부흥이 일어날 때에 사단은 재빨리 와서 그리스도의 권세와 다투고 성령의 감화를 소멸시키려고 노력한다.
성경은 어떤 날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섰는데 사단도 그 가운데 와서 참석했다고 말한다. (욥 1:6 참조) 사단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경배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의로운 자들에게 자신의 악한 술책을 쓰고 미혹하기 위해서 참석했다. 사단은 똑같은 목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하여 모이는 곳에 참석한다. 비록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는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상고하고 영적인 부흥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사람들을 방해하고 하나님의 기별을 듣지 못할 환경을 만들기 위해 온갖 계책과 수단을 다 쓴다. 또한, 사람들이 식욕과 세상의 정욕과 자만의 상태에서 방종하도록 유혹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들의 지각을 마비시켜 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바로 그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사단은 성경 연구를 게을리하고 기도를 등한히 하는 사람들을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함정에 빠뜨리기 위하여 비성경적인 가르침과 사람들의 취미와 적성에 맞도록 준비한 여러 가지 이단설을 교회에 들여보낸다. 사단은 교회 안에 불성실하고 거듭나지 않은 자들을 들여보내어 진리에 대한 의심과 불신을 일으키는데, 경건한 체하면서도 진리를 알려고 하지 않고, 진리에 순복하기 보다 자신의 사사로운 의견을 내세우고 주장하며, 자기와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의 품성의 결함이나 믿음의 잘못을 찾아내는 것을 믿음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단의 효과적인 조수가 되고 있다. 사람이 어떻게 믿든지 그것이 별반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는 사단의 가장 성공적인 기만 중 하나이다. 사단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진정으로 이것을 받아들일 때에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성결하게 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그는 거짓 교리, 가짜 복음, 반쪽 복음 등으로 대치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고 회개하고 변화되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지금 기독교계에서 발견되는 성경 말씀에 대한 애매하고 이상한 해석과 종교적 신앙에 관한 여러 가지 모순된 이론은,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케 하며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사단이 행하는 역사이다. 그리스도 교계에 이렇게 여러 교파와 분열이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자신의 좋아하는 이론을 지지하기 위하여 성경을 곡해하는 습관으로부터 기인하였다. 사단이 그의 마지막 때를 알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 시기에 진리에 굳게 서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진리 때문에 핍박을 당하는 일이 올 것이다. 그러나 진리로 성화되고 하나님께 끝까지 충성하는 자들은 곧 다가올 주님의 재림 때에 공중으로 끌어 올려 구원을 받고 큰 상급을 받으며, 하나님의 장막이 함께 거하는 새 하늘에서 영원한 기쁨 속에서 살 것이다.
머지않아, 진리를 믿지 않고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옳고, 진리를 순종하고 그 진리로 변화된 소수의 사람은 그릇되고 틀린 사람들이라는 취급을 받을 때가 올 것이다.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진리가 아닌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온 세상이 사단의 기만에 휩쓸릴 영적 흑암의 때가 올 것이다. 곧, 사단의 종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을 핍박하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무엇이 하나님의 참뜻인지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을 혼란하게 할 강력한 사단의 기만의 때가 올 것이다. 아무도 다른 사람을 붙들어 주지 못할 심각한 흔들림의 때가 올 것이다. 그때에는 무엇이 하나님의 진리이고 무엇이 사단의 오류와 미혹인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들만이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진리를 알고 진리로 변화된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편에 서서 그분께 충성하는 적은 남은 무리에 들게 될 것이다.
앞으로 사단이, 마치 하나님의 참된 진리와 뜻을 옹호하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럽고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기만과 유혹에 속을 필요는 없다. 사단의 기만과 그의 악한 영들의 미혹이 올 때에, 진리를 알고 진리로 성화된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이며,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게 될 것이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마 7:16)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그 기만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큰 성령의 능력을 받고 나아가 사단의 정체를 폭로하고, 하나님의 곧바른 경고의 기별을 전할 것이며, 그 크게 외치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생길 것이다.
2) 진리를 아는 것의 중요함
사단의 기만과 악한 영들의 미혹에서 벗어나는 길은, 진리를 아는 것이다. 진리를 알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이다. 성경을 연구할 때마다 누구든지 경건하고 겸손하고 가르침을 받고자 하는 정신으로 연구하지 않으면, 어려운 구절은 물론 가장 쉽고 단순한 구절일지라도 그 진정한 의미를 곡해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온전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사사로운 의견을 섞어 풀고 해석하게 되므로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성경 말씀 진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갈망하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기 위하여 주어졌다. 하나님의 진리는 모호하지 않다. 성경 전체를 걸쳐 나타나 있는 진리의 조화와 명확함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질문과 의문을 일식시킨다. 인간의 사사로운 해석과 사견을 내려놓고 진리를 알기 위해 기도하는 모든 사람 앞에 진리는 발견될 것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오류에 빠지게 되고, 그에 따른 영적인 경험도 모호해진다. 따라서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지 못하고 깊은 영적인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또한, 거짓 구원의 확신에 빠진 채, 새로운 거듭남과 거룩한 성화의 필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거짓 안전감과 평안 속에 기만당하며 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십 중 팔구 사단의 기만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예언의 확실한 말씀을 주셨다. 천사들과 그리스도 자신까지 다니엘과 요한에게 오셔서, 장차 속히 올 사건들을 알려 주시고, 그 마지막 때에 우리로 넉넉히 준비되게 하시기 위하여 계시를 주셨다. 또 그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증거하는 충성스러운 증인이 되기 위하여 어떤 영적인 경험을 해야 하며, 어떻게 진리로 변화되어 여호와의 두려운 날에 서야 할 것인지 알려 주셨다. 구원에 관한 중요한 진리의 가르침들은 신비에 싸인 채 남겨지지 않았다. 그것들은 정직한 마음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자들이 당황하거나 오해할 방법으로 계시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선지자 하박국을 통하여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합 2:2)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진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연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밝혀지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나기 위해, 올바른 진리를 찾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은 진리를 발견하고 그 빛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제5부: 사단의 기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
마지막 사단의 기만은 철저하고 강력한 것이 될 것이다. 그때는 시련의 때와 큰 흔들림의 때가 될 것이다. 그 시련의 때는 모든 사람에게 이를 것인데, 이 시험의 체질로 말미암아 누가 참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나타날 것이다. 마음속의 동기와 야망을 드러내며, 변화되지 못한 인간의 모든 성정에 호소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강력한 기만에서 살아남을 길은 무엇인가? 택하신 자라도 미혹될 만큼 온 세계를 사로잡으며 인간의 마음을 미혹할 강력하고 엄청난 사단의 기만에 빠지지 않는 길은 무엇인가?
1) 감정적인 신앙을 버리라
많은 그리스도인이 감정적인 신앙을 하고 있다. 감정적인 신앙은 사단의 마지막 기만에 속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사단의 기만은 인간의 감정과 충동에 직접적으로 호소하고 유혹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과 원칙에 굳게 서기보다는 감정과 느낌에 기초를 둔 신앙을 하는 사람, 기적과 뜨거운 감정과 초자연적인 현시를 하나님의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또한 자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죽고 주님만을 드러내려는 마음 대신, 교회 안에서나 사람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며, 능력과 은사를 갈망하고 자아가 높임을 받기를 원하는 영적 교만을 가진 사람들은 마지막 사단의 기만에 다 넘어갈 것이다. 사단의 위장과 기만은 인간의 그런 속성을 충족시키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확실한 말씀 위에 신앙의 기초를 두지 않는 사람들은 감정적인 신앙에 빠질 위험성이 농후하다. 흔히 진리 안에 존재하는 참된 행복과 만족을 소유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헛된 감정적 환희를 추구하다가 사단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들게 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진리를 확실히 알지 못하고 그에 따른 올바른 영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므로 마음속에 혼란과 공허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영적인 충족감을 얻지 못하는 데서 오는 공허감과 영적 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감정적인 신앙을 추구하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치유의 은사나 이적, 혹은 방언과 같은 초자연적인 기적들을 경험하기 원하여 그런 분위기의 심령부흥집회나 기도회에 참석한다. 그런데 기적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 중 십중팔구는 매우 감정적인 신앙을 하고 있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뜨거운 느낌을 신앙의 척도로 여기고 있다. 이런 신앙 태도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감정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기적을 통하여 생긴 뜨겁고 황홀한 감정 상태가 조금만 식었다고 느껴지면 자신의 신앙과 영성이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불안해하며 인위적으로 뜨거운 감정을 자아내려고 애쓴다.
사단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감정과 믿음을 섞어 놓으려고 애쓰고 있다. 사단은 회개하지 않고 진리로 거듭나고 변화되는 경험 없이, 죄 되고 이기적인 생애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종 기적과 거짓 은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줌으로써, 그들 스스로 감정에 도취하고 거짓 구원의 확신에 젖게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인정하신다는 거짓 안전감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인 신앙 경험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변화가 아니다. 그들의 심령은 이전과 마찬가지이며 생애에는 선한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그들은 이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감정적 느낌과 황홀함을 얻으려고 크게 소리 내어 기도하거나 기적을 거듭 간구하지만, 그들의 생애를 이끌어 가는 원칙은 변화되지 않으며 새롭게 거듭난 생애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 감정적 신앙을 추구하는 사람은 절망하여 깊은 낙담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사단에게 속았으며 또한 자신의 감정에 속은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점점 더 큰 기적과 더 강한 감정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리에서 더욱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경로를 겪게 된다.
감정에 중점을 두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명령하고 있는가에 집중하고 진리의 원칙에 굳게 서는 경험을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필요하다. 마지막에는 인간의 눈과 감정에 호소하여 우리의 판단력을 흐릴 사단의 많은 시험과 기만들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 확고하게 선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사단의 시험과 기만을 분별하고 넉넉히 승리할 것이다.
2) 진리의 사랑을 받으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살후 2:10)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진리의 사랑"을 받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만이 사단의 미혹과 기만으로부터 안전하다. 진리의 사랑을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1. 진리를 사모하라
"진리의 사랑을 받"는다는 첫 번째 의미는 진리를 사모하는 것이다. 진리를 사모하지 않고 찾지 않는 사람은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아니다. 진리를 사모하여 간절히 찾지 않으면 참된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마음속의 확연하게 풀리지 않는 모든 의문과 질문들이 완전히 해결되고 샛별이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성령께서 역사 하시도록 찾고 또 찾는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진리를 발견할 수 없다. 진리를 찾아 발견하고 진리 위에 굳게 서는 경험이 없으면 오류와 감정적인 신앙에 빠지기가 매우 쉬울뿐더러 진리를 통해 성화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되고, 그리하여 시험과 시련이 올 때 금방 쓰러지거나 흔들리게 된다.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사단의 기만에 가장 빠지기 쉬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는 첫째 조건은 진리를 사모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성경에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을 밭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라고 비유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찾듯이, 광산에서 금을 캐내듯이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연구해야 한다. 복음의 보화는 감추어져 있다. 자신을 지혜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과 마음이 세상의 공허한 철학으로 가득 차 있는 교만한 사람들은 구속의 경륜의 아름다움과 능력과 신비가 숨겨져 있는 진리의 말씀을 읽어도 보화를 찾지 못한다. 많은 사람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지혜가 있다고 해도 감추인 보화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만 분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 2:14)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라는 말씀처럼, 사람은 그 보화를 추측하거나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믿음의 눈이 없이는 그것을 볼 수 없다. 진리는 영적인 눈을 떠서 갈급한 심령으로 찾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경건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영원한 사물을 보기는 하지만 종종 그것을 이해하는 데 실패하는 까닭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는 영광을 가리기 때문이다. 감춰진 보화를 찾는 일에 성공하려면 땅의 것보다 위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 자기의 모든 애정과 마음과 재능을 오로지 이 보화를 찾는 일에 바쳐야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령의 깨우침이 필요하다. 자연계의 아름다움도 태양이 어둠을 흩어 버리고 밝은 빛을 비춰 주기 전에는 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보화도 환한 의의 광선으로 그 실체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없다. 성령께서는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일(신령한 사물)을 계시해 주신다. 성령께서만이 영혼의 구원이 달린 중요한 진리가 마음속에 깊이 새겨지고 그 진리가 영혼 속에서 생명의 도리가 되도록 역사 하실 수 있다.
2. 진리의 요구에 굴복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진리의 사랑을 받는다는 두 번째 의미는, 진리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자신을 굴복하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진리는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진리가 오면 진리와 맞지 않는 것,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모든 것을 드러낸다. 드러낼 뿐만 아니라 잘라버린다. 진리는 하나님과 맞지 않는 사상, 하나님과 맞지 않는 성격, 하나님과 맞지 않는 생활습관, 목표, 삶의 방향 등을 버리고 수정하라고 요구한다. 진리는 마음속의 깊은 동기까지 노출한다. 그리하여 진리가 올 때,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마음속에 투쟁이 시작된다. 진리의 칼에 의하여 모든 불의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 올바르지 못한 것이 잘리느냐, 아니면 진리의 역사에 순복하기를 거절하느냐 하는 투쟁이 바로 그것이다.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진리가 요구하는 모든 것에 굴복하고 순종한다. 그 포기와 버림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진리를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진리가 버리라고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기쁨으로 받아들이며 진리가 시키는 대로 행하고 순종한다. 진리의 말씀 성경을 연구하는 중에 마음에 찔림을 받거나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에 부합되지 않는 점을 발견하게 될지라도, 그 진리를 자신의 의견에 부합되도록 잘못 해석하지 말고 진리의 빛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리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모든 잘못된 사상과 오류를 날카롭게 자르더라도 말이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하고 믿으며 진리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진리가 말하는 바에 순종하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 믿는다는 것은, 복음의 보화 진리 전체를 받아들일 뿐 아니라, 그 복음이 지워 주는 일체의 의무까지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진리의 성경 말씀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 순종한다는 의미이다.
진리는 버리라고 요구한다. 진리는 개혁과 변화를 요구한다. 진리는 돌아서라고 요구한다. 진리는 옛길을 떠나서 새 길을 가라고 명령한다. 진리는 명확하고 단호하다. 그러나 진리의 자름과 쪼갬은 날카롭고 아프지만, 일단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요구에 순복하면, 진리가 주는 자유로움 속에서 엄청난 기쁨과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동안 시달려 왔던 수많은 질문과 의문이 일시에 해결되고 사라지며, 주님의 진리만이 줄 수 있는 깊은 영적인 깨달음과 가르침 속에서 엄청난 행복을 누릴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진실되고 찾는 사람에게 진리를 보이시고 제시하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진리로 변화되게 하신다. 진리의 요구에 굴복하는 사람은 매일 더 높은 영적인 성장을 향하여 올라갈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 진리로 순결하게 되고 성화되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위하여 쓰임을 받는 주님의 충실한 증인이 될 것이다. 진리의 요구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리고, 옛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는 겸손한 사람은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다
제6부: 사단의 기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
머지않은 장래에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 얼마나 우리의 마음속에서 소망하던,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던 일인가! 말씀 속에서만,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서만 뵙던 사랑하는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볼 그날, 그렇게도 오랫동안 그리워하고 기다리던 예수님을 공중에서 만날 그날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날이 될 것인가! 바로 이날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어 갔으며, 순교 의 이슬로 사라져 갔는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데리러 이 땅에 다시 강림하시는 이 재림의 날이야말로 세상의 역사에서 가장 장엄하고, 가장 복스럽고 기쁜 날이 아니겠는가?
예수님의 진짜 재림이 있기 전에, 사단은 마지막 최후 기만의 수단으로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신 듯 가짜 재림을 흉내 낼 것이지만, 그러나 사단이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방법과 광경은 어떤 것일까?
1) 예수님의 재림의 방법
1. 번개가 치는 것처럼 임하심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 24:23~27)
예수께서는 사단과 악한 영들이 도무지 흉내 내거나 모방할 수 없는, 장엄하고 영광스럽고 전 세계적인 광경으로,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볼 방법으로 강림하실 것이다. 이 일은 절대로 비밀스러운 일이 될 수가 없다. 번개가 번쩍이는 것은 비밀스러운 일이 될 수 없다. 어두운 밤에 번개가 치는 모습은 공개적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예수께서도 세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볼 방법으로 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2. 천사들과 함께 오심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마 25:31)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의 호위 속에 오실 것이다. 천사 한 명이 나타났을 때에 아시리아 군대 18만 5천명이 죽었었는데(왕하 19:35), 천천만만의 천사가 예수님을 호위하며 임할 때에 얼마나 영광스럽고 장엄할 것인가? 예수께서 오실 때에 휘황찬란한 빛나는 천사들을 대동하고 재림하실 것이다. 천천만만의 천사들의 모습은 너무 숫자가 많아 마치 빛나는 흰 구름처럼 보일 것이다.
3. 나팔을 부는 것처럼 오심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 4:16)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알다시피 나팔을 부는 일은 몰래 할 수 없는 일이다. 나팔 소리는 다른 악기 소리와는 달리 너무 우렁차서 숨길 수가 없다. 나팔을 불면 그 소리가 온 누리에 퍼지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 재강림의 광경과 소리는 죽은 자들이 깨어서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굉장할 것이다. 그 외치는 음성과 나팔 소리는 해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다 들릴 것이다.
4.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임하심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오실 것이다.
5. 예수께서 오실 때 일어나는 사건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 (계 16:18,20)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며,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 6:14~17)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벧후 3:6,7,10)
위에 언급된 성경 절들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 때는 온 지구가 지진으로 흔들리고 섬들과 산들이 무너져 내려앉게 되며, 땅의 표면이 불에 타 녹아 버리면서 대기권이 타 버리는 엄청난 물리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 그분을 신실하게 섬기며 준비된 사람들만 그날에 살아남게 될 것이다. 준비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내가 주의 오심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거절한 자들은 너무 두렵고 무서워 차라리 바위가 머리 위에 떨어지라고 소리칠 것이다.
6. 죽었던 의인들이 다시 썩지 아니할 몸으로 일어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 (고전 15:51~53) 지구 창조 이후로 태어나 살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구원 얻은 의인들이 예수님의 재강림 날에 다시는 죽지 아니할 불멸의 몸을 가지고 한꺼번에 모두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얼마나 장엄한 광경이 될 것인가?
2) 예수님 재림의 광경
예수님 재림의 광경은 실로 영광스럽고, 찬란하고, 장엄하며, 인간의 필설로 다 표현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성경의 기록, 특히 예언서인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바탕으로 하여, 사랑하는 우리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의 광경을 상상의 나래를 펴서 함께 그려보자!
하늘에서 죄인들을 위한 예수님의 중보 사업이 마치고, 악인과 의인이 모두 헤아려지고, 이 세상 은혜의 시간이 끝날 때에, 이 땅의 악인들에게 일곱 재앙이 내린다. 그때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하나님의 신실한 자녀들이 악인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을 때이다. 일곱째 재앙인 큰 지진(계 16:18)이 일어날 때에, 산들은 마치 바람에 불리는 갈대와 같이 흔들리고 바다에서는 사나운 물결이 서로 부딪치며, 온 지구는 요동하여 흔들리며 표면이 파괴될 것이다. 산맥들은 가라앉고, 섬들은 자취 없이 사라지게 된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하나님께 목숨을 다하여 충성한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악인의 무리가 달려들어 해하려 할 때에, 갑자기 암흑이 온 땅을 덮을 것이다. 그 한밤중과 같은 어둠 속에서 드디어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능력을 나타내신다. 갑자기 태양이 나타나서 혁혁히 빛나고, 천연계의 만물은 정상 궤도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며, 지구가 거꾸로 도는 듯이 진동할 것이다.
그때, 갑자기 작은 구름이 멀리 동쪽으로부터 나타난다.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끄는 그 구름은 바로 예수님을 두르고 있는 구름인데, 처음에 멀리서는 어둠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의 눈이 그 구름을 응시하는 가운데 구름이 점점 땅으로 가까워지자, 그것은 말할 수 없이 눈부시고 밝고 영광스러운 커다란 흰 구름이 된다. 크고 흰 구름 아래는 찬란하고 광명한 빛이 있고 그 위에는 빛나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있다. 그 주위에는 천만 천사들이 둘러서서 매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호위하고 있고, 바로 그 위에 예수님께서 휘황찬란하고 놀라운 모습으로 앉아 계신다. 그의 머리는 희고 곱슬곱슬하여 어깨까지 늘어져 있고, 그의 머리에는 많은 면류관이 씌워져 있다. 그의 발은 불타는 광선처럼 빛나고, 그의 눈은 불꽃 같다. (계 1:13~15 참조)
만왕의 왕께서 빛나고 눈부신 광선에 싸여 구름을 타고 내려오실 때, 주님 앞에서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함께 말리고 예수께서 빛나는 불꽃 같은 눈으로 백성을 두루 살피실 때, 모든 사람의 얼굴빛이 창백해지며 하나님을 거절한 자들의 얼굴은 검은 흙빛으로 변한다. 그때에 사람들은 "누가 능히 설 수 있으리요? 나의 옷은 흠이 없는가?"라고 소리친다. 그때 천사들의 노래가 그치고 잠시 동안 조용한 침묵이 흐른 후,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깨끗한 손과 순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능히 설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은혜가 너희에게 족하도다!" 이 말씀을 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며 기쁨이 충만해진다. 그러나 구원받지 못한 악인들의 외침은 처절할 것이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계 6:15~17)
예수께서 불꽃에 싸여 구름을 타고 강림하실 때에 그분의 은 나팔이 울려 퍼진다. 그분은 잠자는 성도들의 무덤을 바라보시고 당신의 눈과 손을 하늘로 향하여 드시면서 "깨어라! 깨어라! 깨어라! 티끌에 잠자는 자들아! 일어나라!"라고 외치신다. 그러자 굉장한 지진이 일어나 무덤이 열리면서 죽었던 자들이 썩지 않을 몸으로 일어난다. 죽었다가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 있는 성도들은 순식간에 공중으로 끌어올려지고 홀연히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불멸의 몸을 입는다. 그 공중에서 하나님의 충실한 백성은 그리던 주님을 만날 것이다. 아!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아!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건인가! 그날은 머지않은 장래에 곧 올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여러분은 이 가장 중요하고 엄숙한 사건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살아 계신가? 여러분은 매일 거듭나는 경험과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진리에 굳게 서서 사단의 기만에 빠지지 말고 곧 도래할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자!
Do you know? - 뉴에이지 운동을 아시나요?
제27호 뉴 에이지 운동 |
한국어로 "새 세대 운동"으로 번역된 "뉴에이지 운동"은 에덴동산에 살던 인류의 시조를 기만하기 위하여 사단이 처음으로 들여왔던 범신론 사상에 새로운 옷을 입힌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그들도 하나님이 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도, 다시 말해서 죄를 지어도 죽지 않는다고 유혹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사단의 속삭임이 뉴에이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교묘한 가면을 쓰고 기독교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 오고 있으며, 또한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온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으려고 하는 범 세계적인 종교 연합운동의 중심 사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로마 천주교회의 교황이 개신교회와의 연합은 물론이요, 불교, 이슬람교, 심지어는 인디언들의 토속 신앙의 지도자들과 만나서 회의하면서 세계적인 종교 연합을 꾀하고 있다. 모든 종교는 그 중심에서 실은 같은 신을 섬기고 있다는 식의 뉴에이지 사상을 말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과학이라는 핑계로 신비주의가 급속하게 대중화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와서 유난히 점성술, 손금 보는 일들, 다른 영계와 접촉하는 심령술, 귀신과 대화한다는 강신술, 그리고 외계인과 만났다는 UFO 현상들이 점점 더 범람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들이 일반인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중에서 신비주의에 속한 유령, 우주 전쟁, 그리고 외계인과 UFO에 대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사실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스타워즈를 만든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는 환생과 윤회를 가르치는 뉴에이지 사상에 깊이 심취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다. 이제는 범람하는 신비주의 영화를 통하여 어린아이들까지 무의식적으로 뉴에이지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모르고 교회 청년회에서는 청소년들을 데리고 단체로 이러한 영화들을 관람하기 위하여 몰려가고 있지 아니한가!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과 진리와 참된 성도들을 대항하여 싸우는 마지막 아마겟돈 전쟁을 위하여 질주해 가고 있다. 누가 과연 이 사실들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사람들을 깨울 것인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최면술은 악한 일이요, 뉴에이지 사상의 분파이다. 그런데 요즈음 최면술을 시범하여 보이는 프로들이 텔레비전의 화면에 자주 나타나 사람들을 웃기거나 놀라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고등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학생들을 즐기게 하는 실정이다. 최면술은 인간의 잠재의식에다 메시지를 전달하여 판단 기능과 의지력을 무산시키는 데 사용하는 심리 술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와 전혀 어긋나는 사단의 수법이다. 한 번 최면에 걸렸던 사람들은 그다음 기회에 최면이 올 때에 무방비 상태로 최면에 쉽게 빠지고 만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런데 이러한 일들이 이제는 하나의 오락처럼 시행되고 있지 아니한가! 그리스도인들은 잠에서 깨어나 교회 안에 있는 위험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