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여자도 되고 남자도 된다.' `지금은 겨울도 되고 여름도 된다.' `이곳은 양지도 되고 음지도 된다.'
양립할 수 없는 두개의 사실을 동시에 인정하는 이런 말들은 과연 궤변인가, 심오한 철학인가? 궤변인지 철학인지 모를 아리송한 논리가 법원 판결문에서도 보여진다.
“위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무렵의 제3채무자 회사(삼성에스디에스)의 주식의 장외거래가격이 주당 5만5천원 내지 5만7천원 정도였음을 알 수 있는데, 제3채무자 회사가 당시 피신청인들에 대하여 신주인수권을 1주당 7150원에 321만6783주나 인수할 수 있도록 현저히 낮은 가격으로 매각하였고 …중략… 그러나 위 주식가액평가는 당시 신청외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하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의한 비상장주식의 평가방법'에 기하여 나름대로 산정된 것이므로 그 평가액이 장외거래시가에 미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선뜻 잘못되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이 있고….”
이는 참여연대가 이재용(이건희 삼성 회장의 큰아들)씨외 다섯 사람을 상대로 제기한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행사등금지가처분신청에 대한 서울지방법원의 판결문의 일부이다.
삼성에스디에스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당시 삼성에스디에스 주식이 장외시장에서 5만5천원 내지 5만7천원에 거래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7150원이라는 가격은 상속·증여세법에 의한 평가방법에 의해 책정된 가격이므로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핵심내용이다.
그런데 상속·증여세법에 의한 재산평가방법은 시가에 의한 평가를 원칙으로 한다. 다만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해 보충적인 평가방법을 인정하고 있으며, 위 판결문에서 언급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의한 비상장주식의 평가방법'이란 보충적 평가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7150원이라는 신주인수가격이 적정한지 여부를 따지는데 있어서, 먼저 시가와 비교를 해야 하는 것이며, 시가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보충적 평가방법에 의한 평가액과 비교해야 할 것이다. 곧 보충적 평가방법이 인정되는 경우는 시가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 뿐이고, 시가가 존재하는 경우는 보충적 평가방법이 인정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지방법원은 5만5천~5만7천원이라는 시가의 존재를 인정함과 동시에 보충적 평가방법에 의한 평가액도 인정했으니, 양립할 수 없는 두개의 사실을 동시에 인정한 셈이 된다.
궤변인가, 철학인가?
한편 이재용씨쪽은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당시 삼성에스디에스 주식의 거래규모가 크지 않았으므로 당시의 거래가격을 시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주장에 재판부가 현혹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92누17174)에서는 `대량거래가 아니었다고 하여 이것만 가지고 당해 거래가격이 시가가 아니라고 볼 만한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으며, 실지로 6개월동안 248주가 거래된 사실에 대해 그 거래가격을 시가로 인정한 대법원 판례(97누8502)도 있다. 따라서 재판부가 대법원 판례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재용씨쪽의 억지 주장에 현혹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위의 판결문은 양립할 수 없는 두개의 사실을 동시에 인정하는 심오함(?)과 대법원 판례에 대한 부주의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위의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당시 재판장은 현재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된 박재윤 판사였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백성의 뜻에 따라 법을 시행하는 것을 재판관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따라서 아무리 법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도 백성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자는 훌륭한 재판관이 될 수 없었다. 삼성에스디에스의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은 재벌총수의 자녀들에게 1조수천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기게 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합법적이라고 인정한 박재윤 대법관 후보자는 과연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인물인가? 윤종훈/참여연대 조세개혁팀장·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