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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化와 脫産業時代의 패러다임 轉換과 새로운 人文社會科學
유 홍 림 (柳 弘 林)
서울대 정치학과 조교수
I. 머리말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전세계적 변화의 물결은 사회적 삶의 모든 측면에 걸친 광범한 변혁과 더불어 현대 사상, 철학, 사회과학, 인문과학, 예술의 영역등에서도 새로운 사조의 출현을 낳게 하였다. 사회현실과 학문의 영역 모두에 걸쳐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나타나는 변화의 조짐은 흔히 탈근대 또는 탈현대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되고 분석되고 있다. 애매모호성(ambiguity), 불확실성(uncertainty), 양면성(ambivalence), 패러독스(paradox) 등의 개념이 탈근대성의 설명에 있어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는 사실은 변화의 과정자체가 내포하는 복합성과 다면성에 우선적으로 기인하며, 또한 이러한 성격을 충분히 인식하려는 이론적 노력이 그만큼 난해함을 의미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획기적이라 할 만한 새로운 세계관과 사회적 삶의 형태가 출현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많은 연구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무엇보다도 변화의 배경과 동기라 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변화의 원인을 사회경제적·물질적 조건의 변화 및 의식적 각성과 그 지평의 변화라는 두 측면에서 찾고 있다. 그리고 모든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점은 현대세계의 변화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이 두 측면의 밀접한 연관성에 주의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경험적 연구와 철학적 사유, 분석적 추론 등을 종합적으로 결합하여 현대세계의 변화의 성격과 그 미래상을 검토하려는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본고는 현대세계가 경험하는 현실적 변화가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 어떠한 지형 변화를 초래하였는가하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러한 문제 설정의 전제는 현실적 변화가 학문의 관심영역, 연구단위 및 범위, 인식론, 방법론 등에 중요한 방향 전환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관심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우선 현대 세계의 변화 양상을 세계화와 탈산업화, 정보사회화, 탈근대화라는 측면에서 개괄적으로 고찰한다. 이러한 고찰을 통해 부각시키려는 점은 현대의 변화 추이는 다중성과 포괄성, 그리고 상충적 추세가 공존하는 복잡성을 특징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도 반영되어 관심영역이 확대되고 접근법이 다양화되며, 지배적 패러다임에 대한 회의와 도전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와 탈산업화에 따른 패러다임 전환의 양상은 연구 범위와 단위의 재설정 (민족국가로부터의 탈피, 시민사회와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의 고조 등), 근대성에 대한 회의 (다양한 포스트모더니즘 조류들의 대두), “신과학 운동”의 득세 등을 통해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요컨대 일원적인 패러다임을 지양하고 분과화된 지식의 형태를 극복하려는 학문적 노력에서 새로운 인문사회과학의 방향성을 발견할 수 있다.
II. 현대 세계의 변화 양상
현대 세계의 변화를 대표하는 특징적 양상 중의 하나가 세계화(globalization)의 추세이다. 일반적으로 세계화 또는 국제화에 대한 이해는 크게 국가 전략의 차원과 세계적 현상으로서의 차원으로 구분될 수 있다. 무한경쟁의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서의 세계화는 민족주의적 이념에 기초하며, 국가중심적 사고나 발전전략의 틀을 전제로 구상된다. 이러한 전략으로서의 세계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도로 전개된 국제적 교류와 상호의존의 확대와 심화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무한경쟁의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현실적 변화의 추세로서의 세계화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제 영역에 걸쳐 나타나는 새로운 증후군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개인과 사회집단, 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화된 초국적 행위자들의 교류가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급속히 증대되고, 정보혁명과 통신기술의 발전에 의해 행위자의 일상적 경험의 폭이 전세계로 확대되는 상황들이 세계화의 추세에 속한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화 현상의 배후에는 주로 정치경제적 관점에 의해 파악될 수 있는 현실적 동기와 함께 인류 보편의 세계시민적 가치와 문화의 형성이라는 이상성의 차원이 혼재한다. 또한 세계화의 추세는 탈산업화, 탈근대화, 지방화, 정보화 등의 추세들과 유기적 연관성을 가지고 전개되고 있으며, 동질화와 차별화, 보편화와 특수화의 상호작용적 메카니즘을 통해 전세계지역을 수평 및 수직적으로 통합시키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관심은 다양한 형태의 탈산업화론, 탈근대화론, 정보사회론 등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산업사회이후 나타나는 사회의 모습은 정보사회로 규정된다. 정보사회에서는 지식과 정보가 생산의 중심요소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되고, 이에 따라 일의 개념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대립과 갈등이 지식의 이론적 부호화(codification)라는 혁신적 원칙의 창출에 의해 무대의 전면에서 사라지게 되고, 제3의 기술혁명은 사회적 갈등의 양상을 새로운 차원으로 전이시킨다. 이른바 후기산업사회는 지식 또는 정보를 기축원리로 개편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로서 기술-경제 구조상의 변화가 중심이 되어 정치체제 그리고 문화구조상의 변화를 유발하고 이러한 동반적 변화가 복합적으로 상호연계되어 있는 사회이다. 후기산업사회론을 본격적으로 제시한 벨(Daniel Bell)에 따르면, 후기산업사회는 부호화된 이론적 지식에 의해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사회계층이 조직되는 사회이며, 이에 따른 사회구조적 변동은 서비스경제의 출현과 새로운 전문기술계급의 성장을 포함한다.1) 산업사회가 상품생산에 의해 주도되며 재화의 양에 의해 생활수준이 결정되는 사회라면, 후기산업사회는 서비스의 교환이 경제의 주축이 되고 삶의 질에 의해 생활수준이 규정되는 사회이다. 경제성장이 산업사회의 기축원리로서 재화생산을 위해 기계와 노동력을 결합시키고 조직화하였다면, 후기산업사회에서는 지식을 중심으로 사회가 조직되며, 사회적 변화와 분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복잡성이 증대하는 양상을 보인다. 지식의 폭발적 증대와 함께 지식테크놀로지가 산업·경제부문 및 정치영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직업구조의 변화 측면에 있어 화이트칼라의 비중이 증가하는데, 이는 이론적 지식이 노동을 대체하는 후기산업사회의 특징을 반영하는 현상의 일면이다.
탈산업화와 관련하여 토플러(Alvin Toffler)는 ‘제3물결’을 근대 산업사회적 문명의 전반적 변화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한다.2) 그에 따르면 제3물결은 전연 새로운 생활양식을 수반하는데, 이 생활양식은 다양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 자원, 새로운 생산방식과 제도에 기반하여 등장한다. 탈산업화의 문명은 새로운 행동규범을 제시하며, ‘제2물결’에 의해 도입된 표준화, 동시화, 중앙집권화를 극복하는 과정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관료체제와 국민국가의 역할이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예측한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이나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토플러가 말하는 “문명규범”은 현대 세계의 변화를 특징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에 따르면 산업혁명에 의해 초래된 제2물결의 문명규범은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라는 여섯 가지 원리로 집약될 수 있다. 이 원리들은 제2물결 시대의 모든 사회적 삶과 행동의 영역을 규제하는 “숨겨진 코드”이다. 이에 비해 제3물결 시대의 문명규범은 모든 영역에 있어서의 탈집중화, 분권화, 다원화 등으로 대변된다. 이러한 새로운 문명규범의 원리들은 산업주의 문명규범의 역논리로서 그동안의 지배적인 추세였던 집중과 규제로부터 탈피하여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삶의 형태를 지향하려는 열망을 반영하기도 한다. 즉, 정치, 경제, 사회 모든영역에 걸쳐 조직과 정보체계의 분산과 다양화가 진행되는 경우 다양성과 개성을 토대로 하는 자율성이 보장되며, 보다 민주적인 생활양태가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탈산업화에 따라 서구의 선진산업사회는 중요한 문화 변용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의 변화로 구성되며, 나아가 변화된 의식구조는 사회현실의 변화를 보다 급격하게 촉진하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서구 산업사회가 경험하게 된 가치관의 변화를 잉글하트(Ronald Inglehart)와 같은 학자는 물질주의적 가치관(materialistic values) 또는 희소성의 가치관(scarcity values)으로부터 탈물질주의적 가치관(postmaterialistic values) 또는 안전의 가치관(security values)으로의 전환이라는 시각에서 체계적으로 분석한다.3) 근대화의 과정에서 전통적, 종교적 권위가 법적-합리적, 국가적 권위에 의해 대체되고, 업적과 성장을 강조하는 세속적 가치관이 지배하게 되는 현상이 보편화되는 것은 근대화를 추진하는 사회의 일반적 특징이다. 물질적 궁핍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은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는 기본적 동기이며, 이에 따라 사회적 가치관도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나 근대화가 어느 수준에 이르는 경우, 즉 복지국가가 출현하고 산업화가 고도화되는 서구의 선진산업사회의 경우 현저한 가치관의 변화가 경험적으로 입증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가지고 제시될 수 있다.
잉글하트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점진적인 성격을 띠며,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 관계를 가지면서 상호작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획일적인 인과적 설명에 의해 분석될 수 없다. 그가 말하는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은 사회적 차원에서 환경과 다양성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나타나며, 개인적 차원에서는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의미있는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우선적 가치로 강조되는 경향과 연관된다. 이러한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은 세대교체에 의해 전사회적인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며, 현대의 정치 경제적 발전의 방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존의 정치제도와 이익표출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정치적 관심의 형성에도 경제적 가치나 계급적 이해의 영향력이 격감하는 현상은 모두 탈근대화의 징후에 속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지적되듯이 근대화가 민주주의적 정치체체를 유도한다는 주장은 실증적 타당성을 가질 수 없지만, 탈근대화와 탈물질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은 사회의 민주화와 강한 상관성을 갖고 있음은 경험적으로 관찰가능하다.
이상과 같은 사회구조적, 문화규범적 변화의 양상은 다양한 관심영역을 바탕으로 다변화된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운동(new social movements)의 등장과 연관성을 갖는다. 새로운 사회운동이란 노동운동, 계급운동, 정당운동 등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의 전형적인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운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운동은 그 관심의 다양성이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생태계 보호운동, 환경운동, 여성운동, 소수인종운동, 동성연애자운동, 공동체운동, 반핵평화운동, 난민보호운동, 대안운동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사회운동은 그 관심과 성격, 참여자, 행동양식 등에 있어 다양성을 보인다. 해방적이고 급진적인 관심을 표출하는가하면 낭만적이고 회피적인 성격을 보이는 운동들이 혼재한다. 그러나 일반화하여 말하자면 이들 새로운 사회운동은 근대성의 위기에 대한 인식과 기존의 매개적 중간조직이 가지는 중앙집권적, 관료적 특성에 대한 불신, 개인적 삶과 개체성에 대한 새로운 각성 등의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공유한다. 또한 새로운 사회운동은 갈등의 장소와 쟁점이 물질적 영역에서 문화적 영역으로 이전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문화우위의 시대’에서는 물질적 가치나 성장과 분배의 문제보다는 삶의 질과 방식, 삶의 안전과 자율성, 그리고 자아실현의 문제가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관심을 표명함에 있어서도 자아의 성찰적 기획에 근거한 토론과 항의의 정치에 호소하며, 운동에의 참여가 어떤 이념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보다는 그 자체가 의미를 부여한다.4)
새로운 사회운동은 현대사회의 모든 위기적 징후가 부분적, 국지적 영향력을 갖는다기보다는 전세계적,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문제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한 예로 오존층의 파괴, 사막화 현상, 지구 온난화, 열대림 파괴 등의 전지구적 차원에서의 생태계 파괴현상과 이에 대한 위기 의식은 생태학적인 새로운 담론을 등장시켰고, 이러한 담론의 형태에서는 체제 또는 국가 간의 차별성보다는 현대 산업문명 자체가 문제시된다. 또한 기술관료제의 폐해는 어느 특정 국가 내지 체제의 문제로 인식되기보다는 현대사회 전반에 걸친 위기의 한 양상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관심의 전세계화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 온 세계화의 추세를 반영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운동은 인문사회과학 영역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경향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전개되는데, 이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인식론적 기초가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실천적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신사회운동의 다양한 관심이 사회적 경험의 모든 측면을 설명할 수 있는 단일한 담론의 부재상황을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면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의 다양성은 근대적 담론체계에 대한 회의 및 해체의 문제의식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으며, 현대세계의 변화 양상을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III. 새로운 문제의식과 인문사회과학
범지구적으로 확산되는 현실세계의 변화와 관련하여 인문사회과학의 영역에서 기존의 학문 경향에 대한 반성과 이를 토대로 하는 혁신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다양한 갈래로 표출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포스트모더니즘, 연구 범위와 단위를 재설정함에 있어 민족 국가로부터 탈피하려는 경향, 시민사회와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의 고조, 기존의 분과화를 탈피하여 통합적 학문을 지향하려는 시도, “신과학” 운동의 영향력 증대 등은 기존의 연구 정향과 지형의 변화를 크게 자극하는 조류들이다. 이러한 조류들은 전통적인 인문사회과학의 전제들에 회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현실과 문제의식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한편으로 위기와 두려움, 회의주의를 반영하는가하면 다른 한편으로 ‘희망의 원리’를 제시하려는 적극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이른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패러다임 자체의 해체로 이르는 과정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분히 형이상학적이고 목적론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본고에서는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문제의 핵심이 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 변화와 도전의 조짐들을 우선 개괄적이나마 검토하는 데 중점을 두려한다.
1. 새로운 세계관과 신과학 운동
자연과학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두된 카오스(혼돈)이론은 보편적이고 불가변적인 성격을 가지는 일련의 법칙, 질서, 규칙을 발견하려는 기존의 이론과는 달리 자연현실이 예측불가능한 우연, 무질서, 비규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의 변화에 개입되는 변수들이 많은 경우 변화의 폭과 방향은 예측불가능해지며, 시간성의 차원이 도입되면 기대와 결과의 괴리는 더욱 증대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혼돈이론의 요점은 이러한 무질서 속에도 일정한 체계, 즉 무질서 속의 질서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여기에서 체계의 변화 방향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고 복합적인 요인과 변수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우연적으로 결정된다. 이러한 혼돈이론은 어떠한 형태의 목적론도 인정하지 않으며, 이러한 점에서 현대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불확실성을 진단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혼돈이론은 지금까지 우리가 무작위적이며 예외적인 것으로 여기던 혼돈스런 현상들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질서에서 비선형적 현상인 혼돈에 이르는 경로를 설명하는 혼돈이론은 물리학뿐만 아니라 생태학, 화학, 경제학, 사회학 등 폭넓은 분야에 적용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5) 근대의 과학이 결정론과 환원주의의 틀에 구속되어 있었다면, 불규칙한 흐름과 혼돈스런 현상에 직면하여 새로운 과학의 패러다임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전체론적 시각(holistic view)의 개발이나 복잡성의 이론(theory of complexity)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결정론적 무작위성(deterministic randomness)이라 정의되는 혼돈 상태에 대한 관심은 질서와 혼돈의 구분을 새롭게 조명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불확정성에 대한 이해가 현상의 분석에 필수적임을 인식하게 한다. 기존의 과학에 대한 관념에 입각할 때 과학이 발견하고자 하는 현상 속의 질서 내지 규칙성은 무질서하고 혼란된 현상을 의미하는 혼돈과 상반된 배타적 개념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최근 수학이나 물리학 분야에서는 혼돈 속에 질서가 내재하며 또 질서있는 행동이 혼돈을 야기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질서와 혼돈에 대한 구분을 재고하게 되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가역성과 결정성으로 특징지어지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이해의 방식이 대두하게 되었다.
혼돈에 대한 관심은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 말하는 새로운 자연주의, 새로운 종합을 지향하는 노력으로 발전된다.6) 새로운 종합이란 실험과 정량적인 공식화를 강조하는 서양의 과학전통과 세계를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유기적 조직으로 이해하는 동양적 전통의 결합, 즉 원자론적인 서양사상과 유기체론적인 동양사상의 통합을 의미한다. 물론 객관적 지식을 추구하는 분석적 과학과 주관적 직관에 의존하는 동양사상의 접목은 용이한 작업이 아니며 아직까지 이 방향으로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혼돈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는 지금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내고 있으나 고전물리학이나 양자론처럼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혼돈이론을 포함한 신과학은 현상 및 실재를 이해하는 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며, 나아가 세계관과 문명의 전환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현대 세계의 변화에 따른 인식론적 전환의 커다란 징후이자 촉매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른바 자연과학분야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과학 운동(New Science Movement)”은 현대 사회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서구의 근대 과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와 맹점을 지적하면서, 분석적 인식틀에 기반하는 기술문명의 획일적 발달이 얼마나 다양하고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였는가를 각성케 한다. 신과학 운동의 기수로 손꼽을 수 있는 카프라(Fritjof Capra)는 데카르트와 뉴턴식의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20세기에 이루어진 물리학의 기본개념과 물리에 대한 사고방식의 대변환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밝힌다. 그에 따르면 현대 물리학에서 얻어진 새로운 개념들은 기존의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전체론적(holistic)이고 생태론적(ecological)인 시각으로 대체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한다. 그는 동양의 종교적인 가르침과 서구의 신비주의 전통이 기계론적, 분석적 인식틀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본다. 동양의 철학과 종교에서는 모든 현상과 사물은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파악되며, 우주만물은 유기적이며 역동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동양적 세계관은 물리학에서 입자 연구의 시작과 더불어 초래된 데카르트-뉴턴식 개념의 무용지물화와 맞물려 중요한 인식론적 기반으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7)
전체론적이고 생태론적인 학문체계를 수립하려는 문제의식이 대두됨에 따라 정치학이나 경제학 등으로 세분화되는 사회과학내의 분과화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분리는 회의의 대상이 된다. 신과학 운동의 중요한 동기는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사회, 나아가 문명의 전환을 추구하고자하는 노력에서 발견된다. 여기에서 신과학의 주창자들은 전체론적이고 생태론적인 새로운 세계관은 기계적 세계관에 근거하여 짜여진 기존의 대학 및 학문 분과의 영역을 극복함으로써만 획득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20세기 초엽 물리학에서 먼저 그 모습을 드러낸 새로운 세계관은 이후 여러 학문분야에도 영향을 주게 되어 의학, 심리학, 경제학, 그리고 정치학에서도 데카르트식 발상으로부터의 방향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고전물리학에서 이룩된 기계론적 세계관이 비단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과학과 사회과학에도 수용되어 발전되었듯이 현대물리학이 보여주는 전체론적이고 생태론적인 세계관이 여타 학문의 정향을 전환시키고 결국에는 문명의 전환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신과학 이론가들은 주장한다.
나아가 신과학 운동은 성장 위주의 사회구성 원리에 반대하여 ‘적정한 규모’와 균형 및 조화를 추구하고 일직선적인 인과관계와 진보관념을 배척하면서 새로운 사회상을 제시한다. 생태계의 전체적 균형을 위하여 집중화와 독점을 억제할 것을 주장하며, ‘새로운 선택’을 지향하는 참신한 형태의 기술과 지혜로운 기술의 확산과 보급을 급선무의 과제로 규정한다. 재생가능한 원료를 사용함으로써 환경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이른바 ‘순한 기술(soft technology)’의 개발을 통해 재조직되는 사회는 탈집중화되고 자기조직적인 새로운 형태의 사회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과학 운동은 1960년대 중반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일련의 시민주도의 사회운동과 문명전환의 방향성에 있어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신과학 이론가들은 기존 학문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전환시키고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추구한다는 면에서 산발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녹색운동과 여성운동, 반전운동과 반핵운동, 다양한 형태의 소비자운동, 그리고 몸과 정신을 하나로 보자는 통합의학운동 등과 중요한 측면에서 공통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8)
2. 사회과학으로부터의 탈피
기존의 분과화된 사회과학의 틀과 분석 전략에서 탈피하려는 문제의식은 대표적으로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에 의해 제기되었다.9) 그는 근대 이후의 사회현실은 철저히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체제라고 전제하고, 이에 대한 연구는 19세기적 사회과학의 패러다임에 의해서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19세기 사회과학에 대한 ‘재고’가 아니라 그로부터의 ‘탈피’를 주장하는 이유는 기존의 사회과학이 토대로 하는 허구적 시공간의 개념(또는 시공간의 배제)과 발전의 이데올로기는 사회세계에 대한 유용한 분석을 결정적으로 저해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월러스틴은 기존의 지배적인 인식론과 세계관을 탈피하려는 의도에서 사회과학의 인식론적 사회사를 다룬다. 그에 따르면 사회과학들의 출현은 근대 세계체제의 역사적 발전의 산물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사회과학은 프랑스혁명의 동요 이후 창출된 세 개의 거대한 새로운 제도들--이데올로기, 사회과학, 운동-- 중의 하나로서 19세기에 본격적으로 제도화되었으며, 구체적으로 사회과학들은 전통적인 유럽의 대학구조 내부를 분화하면서 파생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는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의 분과화에 기여하였다. 즉,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사회과정의 핵심이 세 가지 활동영역--국가의 영역, 시장의 영역, 일상생활의 영역--에 대한 경계 구분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에 학문의 분과화도 이에 상응하게 된 것이다. 이들 세 학문은 각각의 영역과 결부되어 응용과학의 요소를 띠면서 경험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보편화지향 과학(universalizing sciences) 또는 법칙정립적(nomothetic) 과학으로 발전되었다. 이와 더불어 역사학은 랑케(Ranke)의 노력으로 철학적 사변성을 탈피한 개별기술적(idiographic) 학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법칙정립과 개별기술이라는 허구적 대립을 중심으로 하는 특수한 인식론이 발전되었다.
이들 네 학문들은 주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핵심부 국가들에 관련된 경험적 자료들을 연구 대상으로 하였고, 법칙정립적인 세 학문의 경우에 그 목적이 인간의 행위를 설명하는 보편 법칙들을 발견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배적인 연구 방법은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민족국가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학문들은 그 경험주의적 편향에 의해 연구가 제약되었으며, 국가정책과 이데올로기의 요구에 따르는 한계를 노정하였다. 또한 문자가 없는 ‘미개’ 민족들에 대한 연구가 인류학의 영역으로 규정되고, 문자는 있지만 ‘정체된’ 민족들에 대한 연구가 동양학(Orientalism)의 형태로 정착되면서 유럽중심주의적 편향을 학문적으로 반영하게 되었다.
월러스틴은 발전이라는 관념이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의 화신으로서 대부분의 역사서술과 법칙정립적 분석들의 중심축이 되어왔다고 본다. 이 관념은 보편주의적 사고의 주요 개념으로서 판단과 기대에 있어서 커다란 오류를 초래하며, 대부분의 경우 국가차원에서의 발전은 하나의 환상이라고 주장한다. 월러스틴은 나아가 발전 개념의 이데올로기성에 대한 분석을 시간과 공간의 개념에 대한 분석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사회과학을 지배해 온 인식론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시공간을 분석에서 배제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여기에서 시공간은 지리와 연대기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월러스틴이 문제로 삼는 측면은 기존의 사회과학들에서 시간과 공간은 물리적인 불변요인으로 따라서 외생적 변수로 간주되었지 매우 유동적인 사회적 산물로 따라서 내생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 및 역사적인 이행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변수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월러스틴은 시간과 공간이 별개의 두 범주가 아니라 시공간(TimeSpace)이라는 하나의 범주임을 보이고자 한다. 그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의 네 가지 시간에 의거하여 다섯 가지 종류의 시공간--우연적·지정학적 시공간, 주기·이데올로기의 시공간, 구조의 시공간, 영원의 시공간, 그리고 변혁의 시공간--이라는 모델을 제시하면서, 우리가 접하는 시공간의 다양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를 토대로 그는 여러 사회적 실체들을 규명함에 있어 어떠한 종류의 시공간을 이용하고 있는지 또는 이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유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뉴턴적 세계관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의 토대로서 근대세계를 특징짓는 지식체계의 형이상학적 전제라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뉴턴적 세계관이 자연과학 분야에서 근본적인 공격에 직면한 즈음에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그 세계관의 영향력이 절정에 이르렀다. 월러스틴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세계관의 전환을 대변하는 입장을 앞서 언급된 프리고진(Ilya Prigogine) 및 이른바 브뤼셀(Brussels) 학파에서 발견한다.10) 그리고 그들의 주장이 사회과학에 있어서도 중요한 함의를 가짐에 주목한다. 월러스틴은 프리고진의 주장들 속에 근대 과학의 보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내포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프리고진의 ‘분산 구조들(dissipative structures)’에 대한 분석이 전체론적 시각을 옹호한다는 점에서 월러스틴 자신의 입장과 유사함을 분명히 한다. 즉, 대규모 분석단위를 상정하고, 주기들[cycles: 이른바 ‘소구조(microstructure)’와 ‘필연(necessity)’] 및 추세들[trends: 이른바 ‘거대구조(macrostructure)’와 ‘우연(chance)’]에 대해 동시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전체론적 시각은 뉴턴적 모델과는 전적으로 상이한 것이다. 또한 월러스틴은 현대 물리학이 시간의 복수성을 주장하고, 보편 법칙을 거부하며, ‘불확정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세계관의 변혁과 새로운 과학관의 정립에 중요한 기여를 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면에서 월러스틴의 세계체제론적 시각은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대한 근본적 회의에 근거하는 탈근대주의적 문제제기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월러스틴의 ‘세계체제 분석(world-system analysis)’은 사회세계 또는 그 일부에 대한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과학적 연구가 19세기 중엽부터 비롯된 이후 연구자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해온 구조화된 인식체계와 연구방법에 대한 하나의 항의이다. 세계체제 분석은 기존의 사회과학적 연구방식이 많은 중요한 문제들을 규명해낸다기 보다는 은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한 예로 경제, 정치, 사회문화의 세 분야, 세 논리, 세 차원으로 사회분석을 구분짓는 방식은 사실상 사회에 대한 과학적, 체계적 이해를 가로막는 견고한 장벽으로 기능했다. 요컨대, 19세기의 사회과학의 패러다임에 근거해서는 진정한 역사적 대안들을 합리적으로 제시한다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월러스틴은 세계체제 분석이 도덕적 항의로서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 항의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또한 지배적 연구방식에 대한 세계체제 분석의 도전은 철저히 과학적 요구들의 기초 위에, 즉 사회현실의 체계적 인식 가능성에 관련된 학문적 필요조건에 부응한다는 문제의식에 기초해 있음도 아울러 지적한다. 물론 월러스틴은 19세기 사회과학에 대한 하나의 비판으로서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인 변화를 연구의 중심과제로 삼는 세계체제 분석 또는 ‘역사적 사회과학들(historical social sciences)’이 현재에 완결된 형태로 대안으로서 제시될 수 있다기 보다는 계속적인 문제제기와 추구의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월러스틴은 “지식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우리는 단지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며, 우리의 통찰이 아직 기록을 갖지 못한 선사(先史)단계에 와 있을 뿐이다”라는 프리고진의 주장에 동감을 표시한다.
IV.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와 인문사회과학
이론과 현실의 영역에서 몇 세기에 걸쳐 영양력을 행사해온 근대성(modernity)에 대한 회의의 물결은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시대적 조류의 형태를 띠고 인문사회과학 전반과 건축, 미술, 영화, 무용, 사진학, 문학, 사회운동 등 다양한 이론적 영역과 사회 활동에 걸쳐 나타났다.11) 따라서 넓은 의미의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범위에 있어 학문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의식 문화와 정치 활동의 영역도 포괄하게 된다. 현대 세계를 특징짓는 복합적이고 상호갈등적인 추세들(보편화/특수화, 동질화/차별화, 통합/분화, 집중/탈집중 등)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관심을 표명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갈래를 보인다. 현대의 복합적 경향들이 근대성이 가지는 한계의 표현이자 그 붕괴의 징후라고 인식하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성에 대한 태도에 있어 극단적 회의주의로부터 건설적 대안의 모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입장으로 갈라진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적 관점은 기존의 패러다임과 가치관, 세계관에 대한 회의주의와 비관주의라고 볼 수 있다. 즉, 근대적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하는 사회적 현실과 이론적 구분 및 인식틀, 문화적 관념 모두를 근본적인 회의의 대상으로 삼고 인류 역사의 전개에 대해 아이러니즘적인 견해를 보이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저에 깔린 일반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 과학의 가치와 학문의 경계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며, 논증과 엄밀성, 객관성, 보편성 등 논리중심적 사고체계 전반에 대하여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보편성이 아닌 특수성, 근대가 아닌 전근대 또는 탈근대, 논리가 아닌 비논리, 구성이 아닌 비구성의 영역이 가지는 가치를 복구하려 한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는 이제 허구가 되어버리고 기술 문명과 과학은 핵, 빈곤, 환경 파괴, 문명의 충돌 등 오늘의 근본적인 난제와 인류 공통의 고민에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근대의 업적들이 현대 위기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영향력 확대의 배경에 존재한다.
1. 등장의 배경
“탈근대적 문제틀(the postmodern problematic)”이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상호연관된 현상들은 포스트모더니즘적 조류들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지침이 된다.12) 첫째로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적 과학, 철학, 테크놀로지, 정치 영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메타설화들에 대한 회의와 불신의 고조를 반영한다. 둘째로 전 사회영역에 걸쳐 이루어진 합리화가 새로운 문제와 위험을 초래한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되었으며, 셋째로 새로운 정보 기술의 폭발적 증대와 보급, 그리고 네째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의 등장이라는 복합적 현상들이 탈근대적 사고의 출현과 관련된 현상들이자 문제 의식의 배경이라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가장 간략한 정의는 리요따르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메타설화에 대한 회의(incredulity toward metanarratives)”13)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메타설화는 근대 과학 기술 및 정치적 과업을 정당화하기 위한 해석적 틀로서 절대적 진리와 보편성의 근원에 관심을 갖는다. 메타설화는 신이나 자연, 진보, 해방 등의 이념을 통해 근대적 삶의 주축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구체적으로는 합리주의 철학, 자유민주주의, 사회주의 등의 이데올로기 내지 철학적 세계관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메타설화들에 대한 불신과 회의는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의 “해체(deconstruction)”와 “계보학적 비판(genealogical critique)”에 의해 본격적으로 표출되어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적 사조를 형성하였으나, 이러한 지적 분위기는 1940년대 말 하이데거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근대적 이상 비판과 60-70년대의 페미니즘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14) 근대적 메타설화에 대한 비판과 해체의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절대적 진리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미니설화(mini-narratives), 미시설화(micro-narratives), 지방설화(local narratives), 전통설화(traditional narratives)등에 대한 관심의 고조를 초래하게 되었다.
근대성의 기초를 정당화하는 메타설화에 대한 신념의 와해는 사회 및 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인식과 비판의 시각을 보다 첨예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서구적 근대화와 합리화의 비용에 대한 재평가는 대표적으로 푸꼬의 근대적 “정상화(normalization)” 과정에 대한 계보학적 분석이나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생활세계의 식민화(the colonization of the lifeworld)”에 대한 체계이론적 분석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15) 이러한 분석들은 근대 국가의 사회복지 정책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간 주체의 무력화(disempowerment)를 초래하는 담론(discourse)과 제도를 공고화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러한 현상이 사회 전반에 걸친 합리화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현대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현대 사회의 구성 및 운영의 원리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와 해부를 요구하는 것이다.
점차로 고도화되어 가는 사회적 합리화와 더불어 현대의 새로운 정보 기술의 등장은 또한 중요한 도전으로 인식되고 있다. 새로운 정보 미디어의 개발은 한편으로 “tele- democracy”를 주장하는 이론가들이 예측하듯이 정보의 순환을 증대시키고 개인의 정보 접촉을 용이하게 하여 정치 생활의 민주화와 분권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정보 테크놀로지의 통제권이 집중되어 정보화가 새로운 형태의 보다 고도화된 “원형 감시체제(panopticon)”16)를 구축할 우려도 있다. 또한 정보 기술의 고도화는 현실 자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초래하여 객관적 현실을 대체하는 이미지와 정보로 구성되는 허상적 세계의 현실이 지배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될 위험성마저 있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포스트모더니즘의 현실관에 영향을 주었으며 허구적 현실(simulacra)이라는 보드리야르적인 탈근대적 시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또한 새로운 사회 운동과 가치관의 출현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현대 서구 산업사회에서 나타난 “탈물질주의적 가치관(postmaterialist values)”17)은 근대적 생산주의와 물질주의에 기반한 사회 운동 및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정치 및 사회 운동과 문제의식을 활성화시켰다. 여성 운동, 반핵 운동, 급진적 환경 운동, 소수 인종 운동, 동성 연애자 운동, 반문화 운동 등은 전체주의적 혁명 운동과는 궤를 달리하며, 단일한 혁명적 주체성을 부정하고 정체성의 다원주의와 문제의식의 구체성을 주창한다. 이러한 사회 운동은 조직화된 자본주의의 합리화 과정과 복지 국가체제, 사회주의적 혁명체제 모두에 대항하면서 전 사회적 “정상화(normalization)”를 거부함에 따라 푸코나 리요따르, 그리고 드뤼지(Gilles Deleuze) 등의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국지적 저항(local resistance)”이나 특수주의적 관점들과 상호 지지적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에 근거해서 일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근대 이론과 철학에 대한 비판 및 해체 작업이 “상이성의 정치(the politics of difference)”를 옹호하는 이론적 무기임을 강조한다.
이상에서 알 수 있듯이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성의 산물인 합리화, 산업화, 도시화, 기술의 발전등을 모두 비판하며, 근대 사회에서 중시되는 가치들(직업, 자유민주주의, 휴머니즘, 평등주의, 중립성, 합리성 등)에 도전한다. 또한 그들은 과거에 대한 현재의, 그리고 전근대에 대한 근대의 우월성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전통과 주술, 특수성, 비합리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에 관심을 기울인다.18)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근대성에 의해 도외시되거나 억압되었던 감정이 합리주의적 이성을 대체하고 과거의 전통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 새로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아울러 근대적 학문 영역 구분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자연 과학, 인문학, 사회 과학, 예술과 문학 사이의 엄격한 구분이나 문학과 철학, 현실과 환상 등의 구분도 회의의 대상이 된다.19) 이러한 경계와 구분들은 근대적 산물로 인식됨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은 영역의 구분을 타파하고 건축, 미술, 무용, 영화, 저널리즘, 언어학, 문예 비평, 문학, 음악, 철학, 사진학, 종교학, 조각, 연극, 사회 과학 및 자연 과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파급되어 영역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회의는 모든 영역에 걸쳐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미술과 건축에 있어서는 기능과 합리적 구도, 효율성의 고려 대신에 미학적 고려와 감성의 분방한 표출을 중시한다. 문학에 있어서는 작가의 구성과 의도적 기획보다는 독자의 자유로운 해석과 창의성에 의미를 두며, 심리학에 있어서는 의식적이며 논리적인 인간 주체의 존재를 의문시한다.20) 행정과 공공 정책의 영역에서는 합리주의적 이론 모델과 조직에 대한 회의가 중앙집권적 정책 계획과 전문인 관리 체제의 후퇴로 구체화되고, 정치학에서는 위계적 정책 결정 구조와 관료제적 권위, 근대적 이익 대표체계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인류학에 있어서는 지방적, 원시적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서구 중심주의적 편견의 배제가 강조되며, 철학에서는 객관성과 이성에 대한 불신이 니이체적 반이성주의(irrationalism)의 득세로 연결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활발한 지성적 힘은 여러 갈래의 포스티즘(post-ism)과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전개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후기실증주의(post-positivism), 후기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후기마르크스주의(post-Marxism), 후기산업사회(post-industrial socie- ty)론 등의 포스티즘은 광범한 조류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성에 기여하였고 이에 따라 광의의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문제 영역과 논의의 차원을 내포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성과의 단절 및 기존 이론에 대한 비판적 태도에 의해 혁신적이라는 인상을 주지만 그 구체적 관심 영역과 테마들을 살펴보면 전적으로 새롭고 독창적이지는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형성에 기여한 선구적 이론이나 시각들로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낭만주의, 현상학, 니힐리즘, 실존주의, 해석학, 서구 맑시즘, 비판이론, 무정부주의 등이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들 각각의 논의와 주장을 일부 수용하기도하고 혹은 비판적으로 극복하면서 하나의 조류를 이루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니이체(Friedrich Nietzsche)와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에 동조하여 진리와 이성, 보편적 도덕의 가능성에 회의적이며, 근대 휴머니즘과 주체성의 한계에 주목한다. 또한 훗설(Edmund Husserl)이나 슈츠(Alfred Schutz)등의 현상학의 영향하에 논리중심적(logocentric) 세계관을 거부하고 전철학적(pre-philosophic), 전반성적(pre-reflective)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객관주의와 과학주의를 비판한다. 해석학으로부터는 경험주의와 과학적 인과성, 합리성에 대한 비판의 입장을 수용하며, 니힐리즘과 실존주의의 삶의 불확실성에 대한 강조를 또한 수용한다. 서구 맑시즘과 비판이론은 근대 기술문명과 도구적 합리성을 비판하며 계몽주의 전통의 전체주의적 유산을 경계하는데 이러한 시각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근대성 비판의 내용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낭만주의 전통에서 중요시되는 감성, 환상, 원시성, 일탈성, 미학적 가치의 상대성 등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상상력 발휘에 기여한 바 크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동시에 이들 각각의 조류들이 내세우는 주장들 중 근대성의 한계 내에 머물러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고 극복하려 한다. 구조주의에서 보이는 과학에 대한 신념이나 서구 맑시즘의 “해방”을 위한 실천 철학에 대한 비판이 그러한 예라 하겠다. 이러한 비판과 수용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내부에 다양한 입장들을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일괄적인 정의와 내용 분석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되고 있다. 리요따르가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의 분위기 또는 정신상태”로 이해할 것을 강조하는 까닭은 그 내부의 지적 연원이 그만큼 다양하고 문제의식의 갈래 또한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한편 근대성의 도그마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함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탈근대적 사고 방식이 근대 출현이후 인류에게 주어진 중심적 과제의 성격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 논의를 회피함으로써 회의와 우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즉, 비판과 해체가 기존의 철학과 사회이론의 한계를 폭로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지만 비판을 넘어 대안의 제시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구체성과 적실성을 결여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2. 인문사회과학에의 영향
포스트모더니즘은 오늘날 미술과 건축, 무용등 예술의 영역과 철학, 문학등 인문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과학의 영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에 이르렀다.21) 특히 인문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적 문제의식은 사회과학의 토대가 되는 방법론과 인식론 및 과학철학, 역사 인식의 틀에 대한 재고를 촉발시켰으며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떻게 사회과학의 문제 영역에 접목되고 기여 또는 도전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은 기존의 사회과학의 틀 자체를 부정하는 함의를 내포하고 있고, 이에 따라 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한편으로는 대응의 과정에서 사회과학의 새로운 정체성 인식과 문제 영역의 개척이 가능하리라는 기대 또한 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바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제시하는 가능성과 더불어 그 한계와 위험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의 상황은 푸코와 데리다, 그리고 보드리야르, 리요따르 등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문제 제기를 중심으로 사회과학자들은 새로운 문제 영역의 개발과 주류를 벗어난 접근법의 모색을 시도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느 정도 기존 사회과학의 발전과 개혁에 기여하고 있다. 즉, 이론적, 객관적 지식의 추구에 의해 소외되었던 많은 영역들이 새로운 연구의 대상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르고, 접근법에 있어서도 새로운 반성과 시도를 촉구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기존의 사회과학 전체의 대전제에 이의를 제기하며 과학성에 대한 신념의 허구성을 밝히려 한다. 특히 근대 자연과학의 객관주의적, 경험주의적 방법론의 수용에 반대하여 분석과 종합, 인과적 설명과 관계 설정 등의 기본적인 방법을 부정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사회 현실에 대한 접근에 있어 결정론이 아닌 비결정론을, 통일보다는 다양성을, 종합보다는 차별화를, 단순화보다는 복잡성을 강조한다. 객관적 관찰보다는 주관적 감정과 체험의 묘사가 중요시되고, 보편적 원리와 이에 기반한 일반 이론의 정립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이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 실증주의적, 결정론적 과학관은 철저하게 부정되고 과학적 탐구의 합리주의적 기준들은 더이상 그 객관성과 보편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다. 과학적 사회과학의 인간중심적(anthropocentric) 전제의 편파성이 지적되고 과학을 통한 인간 해방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고조되었다.
인문학에서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적 주체(the modern subject) 개념의 해체를 주장한다. 그들은 구체적 준거점으로서의 일관적이고 통합된 주체를 근대 철학에 의해 구성된 허구로 인식하고 이러한 주체 개념이 가지는 억압적 성격을 강조한다.22) 즉, 사회과학적 분석의 구체적 대상으로서의 근대적 주체는 이데올로기적 구성물로서 주체-객체의 이분법에 근거한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는 논리와 이성의 주체로서 권력을 행사하고, 무의미의 자연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적극적 행위자로 본질 규명된다. 이러한 근대적 주체는 목적 합리성의 원칙에 따라 행위하며, 개인의 자율과 자유 의지를 존중하고, 과학적 지식의 주체로서 객관적 진리에 의거한 인간 해방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행위의 실체적 주체로서의 근대적 주체 개념은 푸코나 데리다와 같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 의해 계보학적 비판과 해체의 대상이 된다. 그들에 의하면 주체는 언어 사용상 구성된 지위를 지칭하는 피조물로서 기호와 상징, 그리고 해석에 의해 구성되는 텍스트 속의 유동적인 흐름에 관심을 가지는 한 고정된 정체성을 가지는 주체라는 관념은 의미를 잃게 된다. 즉, 주체는 행위와 표현의 근원이라기보다는 담론의 결과로 형성된 허구적 개념인 것이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근대적 주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니이체의 서구적 자아관 비판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니이체는 근대 휴머니즘을 비판하면서 기독교적 자아관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파헤치는데, 여기에서 로고스의 주체라는 자아 개념은 종말을 예기하게 된다. 또한 인문학에서의 구조주의는 권위적 의미 부여의 주체인 작가(author)의 의미와 권위를 해체시킴으로써 근대적 주체의 붕괴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요컨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적 주체가 근대성의 산물이며, 인간중심적 철학을 전제로 하고 주체-객체의 이분법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해체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에 따르면 모든 근대적 가치관은 근대적 주체 개념에 기반하는데 그 주체 개념은 계몽주의 철학과 합리주의의 소산인 것이다.23) 따라서 자유와 해방의 주체, 합리적 주체, 독립된 주체라는 근대적 주체 개념을 해체하는 작업은 근대 철학 및 사상, 이데올로기 전체를 극복함에 있어 핵심적 중요성을 갖는다. 개인, 집단, 계급, 국가 등의 모든 근대적 범주들은 근대적 주체라는 개념을 전제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이 개념을 부정하는 경우 근대 세계의 사상적 기틀이 와해되는 것이다.
또한 근대적 주체는 논리중심적 메타설화의 하나인 휴머니즘의 핵심 개념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반대한다. 그들은 근대 휴머니즘이 위선적 성격을 가지며 자유, 정의, 평등의 가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억압의 이데올로기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그들은 휴머니즘이 맑스주의, 나찌주의, 스탈린주의로 귀결되며, 서구 우월주의와 문화적 제국주의를 정당화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근대 휴머니즘이 근본적으로 인간중심적 사상으로서 인간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전제하에 인간을 우주의 지배자로 개념화하고 인간의 합리성과 능력에 대한 지나친 신념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24) 또한 근대적 주체 개념은 능동적 인간 주체를 상정함에 따라 이에 대립되는 수동적 객체 세계를 논리적으로 구분하게 된다. 이에 따른 주체-객체의 이분 논리는 방법론적으로 관찰자(주체)와 관찰 대상(객체)을 분리시키고 이에 근거하여 객관적 지식의 조건을 규정하게 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이렇게 획득된 지식은 객체 세계의 조작과 지배의 수단이 되며 결국 주체에 의한 객체의 지배가 인간 해방과 동일시되는 상황을 초래한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근대적 이분 논리는 억압의 논리로서 그 위험성을 충분히 인식하여야 하며, 이분 논리의 배격을 위해서는 근대적 주체 개념의 해체가 요구된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사회과학 내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주체부재의(subjectless) 접근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합리적이고 통합된 주체라는 관념을 배제하고 다원성, 모순성, 비합리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주관성의 이론화를 추구하고 있다. 프로이드(Sigmund Freud)와 라깡(Jacques Lacan) 등의 정신분석학은 이러한 노력에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으며 무의식 세계에 대한 강조와 주체의 해체는 포스트모던 심리학이 지향하는 접근법의 정향이자 내용이다.25) 그러나 사회학이나 인류학에서는 탈주체적 접근법의 가능성 모색에 많은 제약이 가해진다.26) 즉, 주체 개념은 전통적으로 사회학이나 인류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으며, 구체적 개인과 집단의 문화, 사회적 의미, 행위에 대한 분석은 필수적으로 주체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학의 영역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탈주체적 접근법은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동조하는 페미니즘 이론가들도 주관성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는 현대에 이르러 지위와 권리를 확보하게 된 주체로서의 여성을 대변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27)
주체 개념을 배제한 사회과학의 가능성에 많은 제약과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한편으로 근대적 주체의 대안으로서 ‘탈근대적 개인(the postmodern individual)’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적 주체 개념의 혁신적 수정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경우 주체와 개인의 개념은 분석적으로 구분되며, 근대적 주체가 형이상학적 기초를 가지는 추상화된 주체라면 포스트모던 이론가가 내세우는 탈근대적 개인은 감정을 가지고 문화적 맥락 속에서 살아 숨쉬는 유동적 개인이다. 이러한 탈근대적 개인은 획일적 정체성을 거부하고 “텍스트” 내적 존재로서 우연성과 불확실성의 세계를 살아가는 개인으로 묘사되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개인주의적 성향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근대 사회과학은 그 기초로서 특유의 과학철학과 인식론, 그리고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엄밀성, 객관성, 논리성 등은 인간 이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과학적 탐구의 기준으로 중요시되었고, 이러한 기준들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트모더니즘은 객관적 현실의 존재를 부정하고, 예측과 인과적 설명의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엄밀한 과학적 절차와 기준 및 방법론 대신에 해체(deconstruction)와 직관적 해석(intuitive interpretation)이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우선 포스트모더니즘은 근대 사회과학이 전제하는 객관적 현실의 존재를 부정한다. 많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객관적 현실이 과학적 탐구 행위의 원인이라기 보다는 그 결과이며 나아가 이러한 객관적 현실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에 따르면 현실이라는 것은 단지 이미지(image)로 구성된 허상(simulacra)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28) 기호(sign)와 상징(symbol)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현실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인간 정신과 외부 현실의 구분을 하나의 환상으로 보고 현실은 의미 부여의 능력을 가지는 인간 의식의 구성물이라는 구성주의적(constructivist) 현실론을 수용한다.29) 또한 그들은 현실의 구성이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만 가능하고 의미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들은 현실이 언어에 의한 관습의 산물로 이해함에 따라 현실의 유동성과 자의성 및 가변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현실관에 입각해 볼 때 사회과학에서 추구하는 예측과 인과적 설명은 가능하지 않게 된다. 현실은 복수의 “텍스트(text)”가 서로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는 장이며 이러한 연관 속에는 질서와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장이다. 모든 사건 내지 “텍스트”는 우연적으로 공존하거나 시간과 장소를 달리하여 혼재하며, 이러한 우연성은 사회과학적 설명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론의 우열을 가리는 객관적 기준은 무의미해지고 이에 따라 가치 상대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자연스런 귀결점이 된다.
많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과학적 절차와 기준, 그리고 이들의 토대가 되는 인식론과 방법론이라는 학문 영역의 의미와 가치를 부정한다. 물론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방법’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근대 과학이나 철학의 논리중심적 체계에서 볼 수 있는 방법론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들의 ‘방법’은 선험적 진리나 객관적 지식의 획득을 위해 정립된 체계적 절차나 가정들을 부정하는 데에서 출발하며, 현실에 있어서의 주변성(marginality), 특이성(uniqueness), 특수성(particularity), 패러독스(paradox), 다원성(multiplicity), 애매성 (ambiguity), 불확실성(uncertainty) 등의 측면을 부각시킬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방법으로서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해체와 직관적 해석등을 제시한다. 이러한 방법들은 기본적으로 탈실증주의적 성격을 띤다. 객관적 관찰과 가설 검증등의 과학적 방법을 텍스트--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는 모든 역사적 사회적 현실이 텍스트로서 이해된다--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 보다 객관적이고 우월한 해석을 골라내고 지식의 보편성을 확보해주는 기준으로 간주하는 근대적 방법론에 반대하여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개인적 경험과 감정, 상상력을 중시하고 획일적 지식의 획득 가능성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제시하는 해체와 주관적 해석의 두 방법은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일부 이론가들은 “해체는 해석과 다름없다”30)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해체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보다 부정적, 비판적 성격을 반영한다면 해석의 방법은 건설적 대안으로서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데리다는 그것이 니이체적인 ‘파괴(demolition)’나 칸트적인 비판(critique), 그리고 분석이나 독해의 방법 등과 구분되어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한다.31) 그러나 일반적으로 해체주의는 니이체적인 해석의 상대주의와 다원론을 수용하여 텍스트에 대한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근대 사회과학에서 사용되는 해석의 방법이 의미의 자의성과 다원성을 인정하지 않고 상충되는 해석이 존재하는 경우 보다 정확한 해석을 가려낼 수 있다는 전제를 유지함에 비해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무한한 언어 기호들의 유동적 흐름과 불안정성이 텍스트의 특성이라고 봄에 따라 동등한 지위를 가지는 다양한 해석의 병존 가능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이러한 다원성이 획일적 진리의 억압성을 극복하기 위한 길임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그들이 내세우는 해석은 개인화된 주관의 내면에 대한 해석을 의미하며 객관적 현실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해석은 획일화된 근대적 주체성을 부정하며 자아와 타자, 사실과 가치의 엄밀한 구분을 와해시킨다. 텍스트는 해석과 유리되어 해석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에 의해 형성되고 또한 해석을 조건지우는 상호적 관계의 장으로 이해된다.
해체는 텍스트에 잠재된 형이상학적 구조를 드러내어 진리 주장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텍스트의 양면성과 불안정성을 폭로하여 이성중심주의(logocentrism)의 전제를 와해시키려 한다.32) 해체는 텍스트에 내재하는 위계적 질서를 전복시키고 주변화된 타자(the marginalized Other)에 관심을 기울이며 모든 이원적 구분과 일체의 권위에 도전한다. 이를 위하여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새롭고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텍스트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고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인식시키려 한다. 나아가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해체의 방법에 대한 비판이 무의미함을 지적한다. 왜냐하면 해체는 여타의 방법론적 입장들과는 달리 근대적 이성과 분석적 논리의 적용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33) 또한 해체의 논리 자체가 명확하게 표현될 수 없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해체가 방법론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에 해체의 방법을 사용한 저술에 대한 방법론적 비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방법론적 상대주의와 해체의 전략이 가지는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되어 왔다.34) 즉, 해체의 전략은 주장과는 달리 나름대로의 엄밀성의 기준을 가지며 나름대로의 가치 선호와 위계적 질서를 암암리에 내포한다. 또한 해체주의가 주장하는 방법론적 상대주의는 현실에 대한 이해와 지식의 가능성을 부정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이론의 현실적 가치를 절하시키며 해석의 다원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나머지 학문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 있어서도 무정부주의적 혼돈을 조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쨌든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는 많은 사회과학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국제 정치와 조직이론, 사회학 뿐만 아니라 응용 사회과학의 영역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과 방법론은 많은 논쟁과 전환의 계기를 제공하였다.35) 특히 법철학과 법이론의 영역에서는 전통적인 법 해석의 기반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 부정됨에 따라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36) 역사적으로 법은 그 중립성과 객관성에 의해 특징지어져 왔고 사실성에 근거한 공정한 판결의 가능성은 법의 제정과 집행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석과 해체의 방법론은 이러한 가정과 철학적 전제를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으로 법체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요구하게 되었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이와 관련하여 자신들의 해체주의는 근대적 법체계의 억압성과 획일성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실천으로서 윤리적 성격을 띤다고 주장하게 된다. 즉, 근대적 기준과 평가의 척도는 이성에 대한 신념에 기반하여 합리성, 객관성, 사실성, 목적성 등의 우위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이는 현실에 있어서의 억압적 폭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자신들의 해체주의가 가지는 실천적 함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적 진리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제기함으로써 사회과학의 대상과 문제 영역의 지평을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근대적 과학이 추구하는 진리 또는 객관적 지식은 논리와 합리성, 규칙성 등을 전제로 하며 따라서 비논리적, 비이성적, 비규칙적 현실은 이론화의 과정에서 소외되거나 억압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데리다는 획일적 진리의 존재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진리와 편견의 구분을 제거하고 진리의 복수성(plurality)을 주장한다.37) 또한 푸꼬에 따르면 진리의 재생산은 권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권력의 행사는 진리의 창출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면에서 진리와 이데올로기의 구분은 무의미하게 되고 권력에 의해 편향되지 않은 진리의 추구 활동은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된다.38) 나아가 진리는 테러리즘의 한 형태로서 반대 의견을 억압하고 강자의 논리를 정당화하며 ‘타자(the Other)’의 주장을 소외시키는 것으로 이해된다.39)
아울러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 사회과학의 기초를 이루는 진보적 역사관 및 단선적 시간 개념, 그리고 근대적 지역 공간개념의 해체와 재구성을 주장한다. 그들은 역사의 연속성과 단절, 진보와 역사적 사건의 추이 및 기원에 대한 근대 사회과학의 전제가 근본적으로 근대성의 산물이라고 본다. 헤겔의 정신사적 역사관이나 맑스의 유물 변증법적 역사관, 꽁트의 진보적 역사관 등은 모두 근대적 시간관과 역사관의 전형적 형태로서 암암리에 사회과학의 제 연구 영역에 걸쳐 무조건적 전제로 자리잡아 왔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하게 이러한 단선적 역사관과 시간관은 근대적 메타설화의 기초가 되었다. 역사에 내재하는 그리고 역사를 통해 구현되는 진리에 대한 신념은 한편으로 다양한 인간 해방(계몽과 자연에 대한 지배)의 이데올로기와 신화를 창출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근대에 대한 찬미를 기반으로 하는 문화적, 인종적 우월주의를 낳게 되었다. 따라서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맑시즘과 나찌즘이 모두 동일한 근대성의 논리에 근거해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하며 근대성의 부정은 바로 이러한 형태의 폭력에 대한 저항의 성격을 띤다고 주장한다. 또한 근대적 공간 개념은 유럽과 비유럽, 서양과 동양 등의 거시 문화적 지역 구분과 민족국가의 경계를 소여적 공간 구조로 수용하는데, 이러한 지리적 공간 개념에 반대하여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초공간(hyper-space) 개념을 제시하면서 전통적인 공간 개념조차도 해체하고자 한다. 그들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및 모든 형태의 인위적 지역 구분이 절대화되어 고착된 현실로 인식되는 상황이 근대적 시공개념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보고 자유로운 상상력의 장으로서 제한된 현실성을 초월하는 포스트모던 시공의 지평 확장을 요구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사 종말론과 근대적 시공개념의 부정은 기존의 사회과학이 근거하고 있는 기초를 전면적으로 뒤흔드는 주장이다. 시간의 전후, 연속과 단절 등은 인과적 설명을 가능케 하는 조건이며 부분과 전체의 논리적 구분과 국가등의 정치 지리적 구분들은 현대 사회과학의 설명틀을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적 개념틀에 대한 회의는 사회과학의 제 영역, 특히 지역 발전론, 도시 계획, 공공 정책, 국제 정치학, 지리학 등의 학문 영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기존의 공간과 지역의 구분이 가지는 인위성과 허구성에 대한 자각이 대두되면서 근대적 합리성에 근거한 계획과 발전 모델의 의미를 재고하게 되고 합리성을 대체하는 미학적 가치가 중요시되었다. 또한 국내와 국제의 구분이 무너지고 구체적 개인과 국지화된(localized) 연구 영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일련의 통일성과 논리성을 가지는 역사라는 관념이 배격되면서 시간의 전후 맥락을 자유롭게 파괴하는 시도가 인문학의 영역을 넘어 사회 현상의 설명과 이해에도 적용되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사회과학의 관심 영역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데 기여한다. 근대적 가치 서열화가 사실적 현실, 진리, 과학적 시공이라는 개념틀을 전제로 형성되었고 이를 토대로 사회과학의 문제 영역이 규정되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해서 근대적 개념과 가치 서열화의 토대가 무너짐에 따라 새로운 연구의 지평이 열리게 된 것이다. 성(性)의 차별화, 지역적 차별화, 인간과 자연의 분리, 문화적 우월성 등의 근대적 가치 서열화의 형태들의 붕괴는 페미니즘 및 비서구지역에 대한 연구의 활성화를 자극하고 인간주의적 도구합리성에 기초한 자연의 지배와 황폐화를 비판하는 환경주의와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산업사회적 물질주의로부터의 탈피를 추구하는 탈산업사회적인 가치관이 확산되는 배후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이 적지 않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적 상대주의와 특수주의는 서구중심적 문화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보편주의의 허울을 타파하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40)
현대의 역사적 전개과정을 보면 비서구지역, 특히 제3세계국가들의 경우 근대화와 산업화라는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서구적 모델의 선진성과 우월성을 인정하면서 서구의 발전된 기술과 자본의 도입을 통한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서구의 문화와 가치관은 자본과 기술의 세계화 및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체제의 보편화와 병행하여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화, 획일화, 세계화의 추세에 저항하여 제3세계국가들 내부에서는 전통주의의 부활과 유지 노력이 체제 공고화의 필요에 의해 대두되고, 인종과 문화의 차이에 근거한 정치적 자립운동과 특수성을 자기정체성의 근본으로 이해하는 다양한 분리주의운동이 사회경제적 획일화 현상과 복합적으로 얽혀 이중구조를 형성하면서 전개되고 있다.41)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비서구지역에서 확산되는 전통주의에 대한 관심과 특수성에 대한 각성의 노력은 서구의 자체적 비판의 시도인 포스트모더니즘의 ‘논리’에 의해 정당화되는 양상을 띠기도 한다.
근대의 역사과정과 진리 추구의 이론적 노력에 의해 주변화되고 억압된 ‘타자(the Other)’의 양태는 이처럼 지역, 인종, 문화, 성별 등의 모든 차원에 걸쳐 다양하고 다원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과학 내에서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성에 의해 소외된 ‘타자’의 다양성과 다원성을 되살리고 그들에게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러한 실천적 문제의식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초래할 만큼 구체화되지는 못하였지만 --한편 포스트모더니즘이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은 자체의 이론적 한계와 논리적 모순에 기인하는 측면도 있다-- 사회과학의 문제 영역을 확대시키고 개척하는 데 기여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텍스트로서의 현실이 논리적 개념들에 의해 분석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고 본다. 현실 분석을 위한 과학적 개념의 도입은 현실에 가해지는 폭력과 강제의 한 형태이며 이는 현실 속에서 행사되는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론과 현실의 구분이 포스트모더니즘에 있어서는 무의미하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적 주체에 대한 부정은 정치의 영역에 커다란 변화를 요구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주권자로서의 주체 개념에 반대하여 주체를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지배되는 상황가변적 산물로 이해하면서 근대적 주체를 사상시킨 정치의 가능성에 관심을 기울인다. 주체 개념의 부정은 그들로 하여금 다양한 형태의 개인적 또는 집단적 ‘행위자(agent)’들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관심을 전환시킬 수 있게 하였다.42) 예를 들어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정치적 지도자라는 행위주체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수정하여 정치 지도자들이 일관된 정체성을 가지고 자신의 판단에 의해 행위한다고 보지 않고 그들이 단지 언어와 기호에 의해 구성되는 사회적 상황의 반영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43)
근대적인 시공 개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국제 정치학의 영역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국가등과 같은 국제 정치학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인구와 지역의 구분들을 배격한다. 그들은 지역적 구분이 자율적이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며 많은 요인들 간의 경합과 권력 갈등의 산물로 이해한다. 또한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의 구분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국제 관계의 새로운 장을 개척하려 한다.44)
포스트모더니즘은 과연 정치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제기한다. 이러한 질문 제기는 근대적인 제도와 정치 질서에 대한 역사적 접근이나 체계론적 접근을 시도했던 정치 이론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 민주주의적인 정치 과정을 분석의 기본틀로 삼는 정치 이론들은 서구적 근대성의 절대화 경향을 반영하는 것으로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에게는 다양성과 특수성을 외면하고 획일성과 보편성을 강제하는 근대 과학의 한 형태로 인식된다. 또한 현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는 정치 현상을 근대적 정치제도와 정치과정에 국한시키고 그에 대한 경험적 또는 분석적 접근을 시도하는 기존의 정치에 대한 접근법은 당연히 극복의 대상이 된다.
한편으로 근대 민주주의의 이론과 제도를 부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추구하는 상이한 정향들이 공존하는 까닭에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가 가지는 성격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갈래로 나뉘어 진다. 어느 측면에 강조점을 두는가에 따라 포스트모더니즘은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로 또는 급진적 운동세력의 이론적 무기로 이해되기도 한다.45) 니이체와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비관주의적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제도의 정치가 가지는 한계를 강조하며 대안에 대한 논의 자체를 회피하는가하면 건설적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세계 평화, 빈곤, 환경, 성차별, 인종 문제, 제3세계주의 등과 관련된 신정치운동에 동조하면서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는 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물론 건설적 포스트모더니즘의 경우에도 내부적으로 다양한 입장과 관심 영역에 따른 분파가 존재함에 따라 획일적인 성격 규정을 내리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건설적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근대 과학 및 기술 문명을 비판하고 근대적인 진보 관념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구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또한 자유주의적이든 보수주의적이든 근대적인 정치적 프로젝트 전반에 대해 회의적이고 기술과 지식의 전문성과 공식성을 부정하며 자신들의 입장이 근대적 개념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이에 따라 이들의 정치적 견해와 입장을 기존의 정치적 스펙트럼에 의거하여 분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다.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보수주의도 진보주의도 아니며, 탈사회주의, 탈경제주의, 탈자유주의, 탈분배주의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다.46)
그러나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기본적으로 개인주의에 기초한 정치 형태를 옹호하며 근대 철학 및 이데올로기의 해체도 궁극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의 발견과 탄생을 위한 이론적 노력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그들의 정치적 이론과 실천은 개인주의적 시각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이며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가 가지는 한계의 중요한 일면이라 하겠다. 다른 한편 적극적인 신정치운동의 전개에 있어서는 운동의 대중성 확보를 위해 해체의 대상이 되는 이데올로기적 틀에 의존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즉, 끊임없는 부정성과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주창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론과 대중 동원과 힘의 대결을 동반하는 정치 운동의 실제는 쉽게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정치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하게 된다.
3. 평가와 전망
포스트모더니즘이 새로운 인문사회과학의 출발과 관련하여 제시하는 가능성은 두 가지 측면, 즉 기존의 과학적 방법이 의존하는 인과론적 분석, 기능 및 구조 분석, 의미 해석 등이 가지는 한계를 비판적으로 폭로한다는 면과 기존의 인문사회과학이 도외시하던 새로운 문제 영역을 개척한다는 면에서 발견된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사용하는 해체와 계보학적·고고학적 비판의 방법은 현재 진행되는 범세계적인 정치체제 및 의식 문화의 변동과 관련하여 지성계내에서 대두되는 새로운 이론적 시각의 요구에 부응하는 면이 있다. 즉, 근대적인 개념틀인 자유주의, 사회주의, 급진주의, 보수주의, 민주주의, 권위주의 등에 근거한 사회 분석이 점차로 적실성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개념의 불확정성과 의미 해석의 유동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에 대한 경험적 이해의 가능성을 보장하는 혁신적 시도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기존의 이론들이 현실의 이해가 아닌 오해를 분석이 아닌 왜곡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은 사회과학자들의 자기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된다.
이와 더불어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 해방의 논리에 의해 소외되었던 자연과 환경에 대한 담론이나 보편주의적 논리중심주의에 의해 주변화된 ‘텍스트’의 특수성, 국지성, 그리고 비이성의 영역에 대한 담론등을 활성화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근대적 프로젝트가 지향하던 인간 해방의 실체가 편협한 인간중심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주장은 정치적 담론의 장에서 환경과 자연이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근대적 역사 과정에서 주변화되어온 전근대적 요소와 비합리성의 영역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켜 사회과학자들에게 새로운 문제 영역을 제시한 점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과학에 대해서 가지는 가능성의 중요한 일면이다.
이러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과학의 영역에 수용될 때 나타나는 문제점과 한계는 매우 심각하다. 우선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성격상의 차이를 간과하는 경향을 보인다.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을 해체하고 모든 역사적 사실과 사건을 ‘텍스트’로 환원시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에서는 문학과 철학, 법률적 ‘텍스트’와 문학적 ‘텍스트’가 동일시되며, 나아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구분까지도 와해되어 모든 학문 영역의 구분이 상호유동적인 무질서의 관계망으로 전환되어 버린다. 한편으로 ‘텍스트’에 대한 무한한 해석과 ‘자유로운 유희(free-play)’, 그리고 인식과 지식의 유동성과 불확정성을 내세우면서 행하는 진리의 기준에 대한 해체작업 등은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는 커다란 물의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함이 없이 자유롭게 만끽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중대한 정책의 수립과 나아가 인간의 생사와 관련될 수 있는 사회과학적 연구에 있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언어 유희와 자유로운 상상력의 발휘가 심대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크다. 엄밀한 객관성의 기준과 이에 근거한 논리적 추론 및 절차의 수립은 사회과학이 사회에 대하여 가지는 책임을 고려할 때 사회과학의 필수적인 조건이 된다. 즉, 사회과학에 있어서의 “진리의 조건들”은 허구적인 문학·예술적 ‘텍스트’에서의 경우와 본질적인 차이를 갖는다.47) 문학에서는 확정적인 규정의 회피나 의미 해석의 무한한 가능성이 인정되고, ‘저자(author)’와 ‘독자’의 구분이 와해될 수도 있고, 근대적인 시공의 개념과 역사성이 자유로운 해체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오히려 문학에서의 이러한 시도는 참신성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자들은 거의 모든 연구 작업에 있어 불가지론이나 니힐리즘, 언어학적 상대주의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을 수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사회과학적 지식은 사회적 책임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연구자는 객관적 사회 현실의 존재와 분석을 위한 규정된 개념틀 및 방법론을 부정하고는 적실한 지식을 창출할 수 없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지는 보다 현실적 차원에서의 한계는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에서 발견된다. 하버마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기하는 근대성의 제도와 문화에 대한 비판의 내용을 상당 부분 적실한 것으로 인정한다. 관료제와 같은 근대적 제도가 가지는 억압성과 현대 사회에서의 정치적 소외에 대한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관심은 근대성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에서 초래된 것이다. 그러나 근대성이 내포하는 가능성과 긍정적 기여에 대한 균형잡힌 평가를 결여한 채 근대성에 대한 편협한 이해에 근거하여 근대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은 하버마스에 의해 “새로운 암흑(the new obscurity)”으로 평가된다. 하버마스에 따르면 근대성은 자기 반성(self-reflexivity)의 비판적 계기도 내포하며, 그것은 현실과 부단한 상호작용을 전개하는 이상성(ideality)의 실현 과정으로서 “미완의 과제”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48) 물론 근대성의 현실적 전개 과정 속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 관심을 가지는 많은 문제점들이 존재하지만 정치·경제·사회 제도 구성과 운영의 기초가 되는 이성과 합리성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정부주의와 비이성주의를 조장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니이체적인 포스트모더니즘에 내재하는 반민주주의적 정서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의해 인류가 확보하게 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들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포스트모더니즘의 가능성과 한계를 고려할 때 국내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관심은 새로운 유행의 추종을 넘어서서 한국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토대로 그 위상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방향으로 선회되어야 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차이, 그리고 사회과학내에서도 정치학과 여타의 학문 영역 간의 차이에 대한 인식을 기초로 학문간의 상호교류와 협력이 도모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이를 위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이 각 학문영역과 관련하여 가질 수 있는 적실성에 대한 고려가 선행되어야 한다. 각 학문 영역이 생산하는 지식들의 성격 차이를 인식할 때만이 무분별한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통합이 초래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혼돈을 극복할 수 있다. 미학적 가치를 주제로 하는 예술과 인문학에서 활발하게 수용되는 해체와 직관적 해석이 윤리적 가치와 규범, 사회 현실의 이해와 운영에 관련된 사회과학적 탐구에 무비판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한다. 이러한 측면이 고려되지 않는 경우 포스트모더니즘의 무비판적 수용은 한계를 노정하게 되며, 포스트모더니즘은 일시적 유행으로서 부분적 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특수성과 국지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을 진정으로 사회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이해의 노력과 접맥시키기 위해서는 사회 현실에서 나타나는 탈근대적 현상에 대한 분석과 그러한 현상이 정치사회 발전에 작용한 근대성의 보편적 특성 및 특수성의 요인들과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등장하게 되는가에 대한 엄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가장 괄목할 만한 획기적인 지성사적 사조임에 틀림없다. 세기말적인 정서와 근대성에 대한 전면적 회의는 친화력을 가지고 확산되었으며 그 영향력의 범위는 인문학을 넘어 사회과학의 영역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아직 사회과학 영역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적 전환의 시도는 부분적이며 맹아적 단계에 있지만 그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고조되고 있다. 과학성에 대한 회의, 인식론과 방법론의 해체, 새로운 문제 영역의 제시 등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과학자들로 하여금 기존의 이론 작업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가지게 하였고 동시에 새로운 포스트모던 사회과학의 수립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도 하였다. 그러나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론화의 가능성과 이론의 유용성에 대해 비관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많은 사회과학자들의 비판과 조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사회과학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장래에 대한 견해가 양분되는 양상을 띠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공헌과 한계를 고려할 때 당연하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구조기능주의, 현실주의, 체계이론 등 기존의 사회과학내 주요 접근법과 이론들의 한계와 약점을 결국 극복하지 못함에 실망을 표출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회과학자들 중 많은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사회 분석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평가하고, 현실적으로 전개되는 범세계적인 민주화와 개방화, 시장경제화의 추세에 주목하여 근대성의 종말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비관주의가 부적절한 시각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비서구지역 개발도상국가들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여전히 지상의 목표로 설정하고 추구하면서 고도산업사회의 기술과 자본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들 국가들에게 있어서는 서구적 합리성과 근대성이 극복과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모방의 대상이 되며, 이러한 추세에 힘입어 근대성의 영향력은 세계의 무대 위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 근거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비판적인 사회과학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머지않아 영향력을 상실하고 논의의 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나타나는 또다른 현상들은 근대적 문제틀이 점차로 붕괴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이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즉, 탈냉전의 새로운 국제체계적 변화와 환경문제의 심각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급속한 기술의 발전, 문화의 충돌, 획일화와 다원화의 복합적 추세 등의 현상들은 현실 자체의 모습과 성격을 더욱 난해하게 만들고 따라서 기존의 사회과학적 분석틀과 관심영역의 한계에 대한 인식과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정당성은 계속적으로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제의식에 간접적으로 또는 직접적으로 동조하여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정치 사회운동이 앞으로도 더한층 활성화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된다면 이러한 운동에 많은 사상적 근거를 제공해 온 포스트모더니즘은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과학에 수용되어 기존 이론틀의 변화를 자극하는 촉매 역할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회과학의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장래에 대한 견해도 다양하다. 이러한 견해의 다양성은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체가 다면적이고 다원적이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획일적 규정을 거부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본 입장의 한 단면이기 때문에 그 외연과 내포를 명확히 파악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우며, 다양한 영역에 대하여 가지는 함의 또한 유동적이고 상황가변적이기 때문에 그 경계와 내용을 명백히 밝히는 것도 그리 용이하지 않다. 단지 이상에서의 논의를 통해 우리가 시사받는 바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환상, 그리고 그에 대한 편협한 거부의 태도 모두가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어느 측면에 강조점을 두느냐에 따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해의 수준과 방향에 따라 그것은 중요한 통찰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무의미한 지적 유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아울러 포스트모더니즘을 사회과학에 수용함에 있어서는 기존 이론틀이 가지고 있는 한계가 정확히 무엇이며 현대 사회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복합적 현상의 실체가 어떠한 성격을 가지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고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에 기반하여야만 포스트모더니즘이 현실과 관련하여 가지는 의의와 유용성을 분명하게 할 수 있고 나아가 인문사회과학 전반의 발전에 포스트모더니즘이 기여할 수 있는 바를 규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V. 맺는 말
전세계적 범위에 걸쳐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물결과 관련하여 현대 인문사회과학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현대사회의 다원적 조류들, 즉 세계화, 지방화, 정보화, 민주화(democratization), 탈냉전체제의 등장, 시장경제의 전지구적 확산, 세계적 문화변형(cultural transformation), 탈물질주의(postmaterialism)의 대두,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 동질화(homogenization), 이질화(heterogenization) 등의 현상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이들 현상들간의 상관성을 고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의 실현을 지향하는 노력을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인문사회과학 내의 이론들과 사상조류들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정보사회론이나 민족국가의 하위 단위와 상위 단위의 행위자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제반 이론들은 세계화의 문제의식을 반영한다. 또한 산업사회를 기반으로 한 연구주제 설정과 방법론적 전제로부터 탈피하려는 다양한 형태의 탈산업사회론은 현대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의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 아울러 아이러니와 불확정성, 근대적 합리성에 대한 비판, 미학적 관심, 개인의 창조적 자율성, 타자성의 복원 등에 초점을 모으는 탈근대주의적 사상 조류는 현대 인류의 세계관과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며, 인문사회과학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현대의 변화 추세와 관련된 제 현상들은 상호연관성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분석틀에 의해 설명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근대성의 확산을 설명하기 위한 근대화론적인 분석틀은 그 전제로서 근대적 가치관의 우월성을 암암리에 가치판단의 준거로서 상정하고 있기 때문에 탈근대의 현상과 문제의식을 간과하거나 그 의미와 비중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해 최근의 탈근대주의적 접근법들은 탈근대적 현상의 획기적 성격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나머지 현대사회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통과 근대성의 연속적 측면들(예를 들어, 전통사상 및 전래되는 문화와 사회규범, 풍습등의 영향력, 경제적 안정의 추구, 빈곤 탈피의 노력, 노사관계와 같은 경제적 관계의 정치적 중요성 등)을 사회현실 이해에서 배제하는 한계를 노정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전통과 근대, 탈근대가 병존하면서 복합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음을 고려할 때 다양한 현상과 조류들을 적실히 설명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패러다임에 의한 다른 패러다임의 대체가 아닌 다양한 패러다임과 접근법의 상호보완과 종합이 필요하다. 모든 현상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체계(system)”를 구축하려 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패러다임 간의 논쟁과 협조를 통해 “풍부한 결과를 낳는 충돌(fruitful clash)”의 길을 택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다원적 본질과 다면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바람직하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상호보완과 교류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 사회의 다면성과 복합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정책적 제안에 반영하기 위하여 현대 인문사회과학 내에서 학제적(interdisciplinary) 연구 방법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학제적 접근의 문제의식과 방법론은 지속적으로 인문사회과학영역에서 제기되어 왔으나 그 실현을 위해서는 구체적 제도화와 그 매개조직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며,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고자하는 노력이 점증하고 있는 현상은 새로운 인문사회과학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한 예로 문화(culture)라는 개념의 특수성에 유의하는 접근법은 학제적 연구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화라는 개념은 다양한 요소와 국면을 내포하는 역사적 사회적 현실의 한 측면으로서 경험적 범주에 해당될 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이해에 필요로 되는 분석적 범주의 성격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전문화되고 국지화된 문제제기와 분석에 의해서는 제대로 그 성격과 의미를 파악할 수 없으며, 이러한 까닭에 문화에 대한 의미있는 연구는 학제적 내지 통합적 인문사회과학의 접근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
현대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급격한 세계질서의 재편과 이와 병행하는 행동 양식, 문화, 의식, 사상, 제도, 학문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변화의 추세는 현대를 “무정부적 혼돈”의 시대로 특징지울 정도로 그 영향력이 광범하고 심대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문사회과학의 다양한 조류들은 일원적 패러다임을 형성한다기보다는 아도르노(Theodor Adorno)와 벤자민(Walter Benjamin)이 사용하는 은유를 빌면 “세력장들(force fields)” 또는 “새로운 별무리(the new constellation)”의 병렬적 형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49) 이러한 은유들이 의미하는 바는 시공간의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상호작용하는 요소들이 하나의 구심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치지 않고 또한 제1원리와 공약분수를 공유함이 없이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이다. 현대의 인문사회과학은 탈산업사회론, 정보사회론, 세계화의 문제의식, 연구 범위와 단위의 재설정, 민족국가 단위의 문제틀로부터의 탈피, 차이와 이질성의 기반인 시민사회와 국제적 조직에 대한 관심의 고조, 타자성의 복원을 통한 관심의 다양화, 생태학적-전체론적 시각의 대두, 탈근대적 문제의식과 사상조류의 도전 등에 직면하여 지배적인 일원적 패러다임을 지양하고, 관심영역을 다양화하며, 기존의 학문 분과화 방식에서 탈피하여 학제적 나아가 통합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양상은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이해하기에는 보다 근본적인 지형의 변화를 내포한다. 오히려 패러다임이라는 틀의 존재를 부정하고 패러다임 자체를 해체하려는 급진성이 새로운 인문사회과학의 성격과 방향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한양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전자도서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