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향기
항저우 아시안 패러게임 여자 골볼대표팀 주장 김희진 선수
- “오늘도 꿈을 향해 힘차게 공을 던져요”
제4회 항저우 아시안 패러게임이 10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열린다. 43개국이 참여하는 이번 게임에서 여자 골볼대표팀도 메달 사냥에 나선다. 골볼은 세 명의 선수가 한 팀이 되어 방울 소리가 나는 공을 상대편 골대에 넣는 게임. 대표팀 주장이자 서울시 장애인 직장운동경기부에 소속돼 있는 김희진 선수는 연신 바닥에 몸을 던지고 팔과 다리를 뻗어 묵직한 공을 받아냈다.
“동료와 상대, 공의 움직임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스포츠예요. 공정한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 아이패치와 아이셰이드(고글 안대)를 사용하는데, 긴장감 속에서 오는 짜릿함이 굉장합니다.”
Q. 항저우 아시안 패러게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훈련하고 있나요?
A. 여느 선수와 같습니다. 이천 선수촌에서 아침 먹고 운동하고, 점심 먹고 운동하고, 저녁 먹은 뒤에도 운동해요. 이번 패러게임은 내년에 있을 제17회 파리 패럴림픽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에는 골볼 강팀이 많은데요,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자 전략을 구상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등 훈련에 매진하고 있어요. 골볼은 온몸으로 공을 막아내는 스포츠이므로 올바르고 정확한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야 부상의 위험을 낮출 수 있지요. 정지영 감독님의 지도 아래 수비 동작을 활용한 스트레칭 등을 고안하고 체력도 향상할 수 있는 훈련 커리큘럼을 시행 중입니다. 이번 패러게임에는 선수 6명, 감독님 등 10여 명의 인원이 출전합니다.
Q. 포지션은 어떻게 되나요?
A. 저는 중앙에 자리한 센터입니다. 좌우에 있는 두 명의 팀원을 지원하고 수비를 주로 담당합니다. 든든한 맏언니로서 늘 힘이 되어주는 레프트 심선화 선수, 센터이자 레프트·라이트도 겸하는 최엄지 선수, 라이트이자 한창 폭풍 성장 중인 막내 서민지 선수가 함께 뛰고 있습니다.
Q. 골볼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표적인 스포츠인데요, 시각장애를 언제 갖게 되었나요.
A. 6살 무렵 선천성 녹내장으로 인한 시각장애 판정을 받았어요. 곧바로 시력을 전부 상실한 건 아니고 바깥쪽부터 점차 시야가 좁아졌습니다. 빛 감지와 사물 인지가 어느 정도는 가능한 상태예요. 처음에는 ‘내 눈이 다른 사람보다 안 좋구나’ 했어요. 오빠가 둘인 데다 워낙 활달하고 털털한 성격이었기에 밝게 자랐지요. 운동신경이 남달라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육상선수로도 활동했어요. 좁은 시야로 인해 이따금 레일을 혼동하거나 레일을 이탈하는 일이 있었지만 대체로 즐거웠어요.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어울렸지요. 하지만 차츰 시력이 더 악화되면서 서울맹학교로 전학을 갔고, 설상가상으로 발목 부상까지 입어 육상을 그만둘 위기에 처했지요. 그때가 가장 힘든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Q. 골볼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나요?
A. 전학 이후 한동안 의기소침하게 지냈어요. 생활 환경이 전과 크게 달라졌고, 점자 등 학습 방법도 익혀야 했으니까요. 주변 친구들도 낯설었어요. 시각장애가 있었지만 그간 시각장애인의 문화나 생활양식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접하지 못했으니까요. ‘아이들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그동안 해 왔던 스포츠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걸까?’ 하면서 우울감에 빠졌어요. 그런데 골볼을 접한 순간 달라졌어요. 골대로 힘껏 방울 소리가 나는 공을 굴리고, 그 공을 향해 온몸을 던지는 것에 매료된 거예요. 평소 조심스레 움직이던 친구들도 골볼할 때만큼은 활동적으로 변하더라고요. 긴장은 설렘으로 차츰 변했습니다. 골볼은 잔존 시력이 있든 없든 누구나 눈을 가리고 하기에 공정함과 자유로움이 동시에 느껴졌지요. 선생님께서 이런 제 모습을 보고는 적극적으로 골볼을 권해주셨고 오늘날 대표선수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어요. 육상을 하면서 기른 스피드는 큰 자산 중 하나가 되었지요.
Q. 골볼이 아직 생소한 사람도 있을 텐데요, 관람 포인트나 에티켓이 있을까요?
A. 방울 소리가 나는 공을 던지듯 굴려 상대편 수비를 뚫고 골대에 넣는 경기로, 많은 득점을 한 팀이 승리합니다. 전·후반 각각 12분씩 주어지고, 선수는 레프트·라이트 공격수 2명, 수비수 센터 1명 총 3명이 출전합니다. 작은 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아이셰이드를 착용합니다. 골볼은 청력에 의존하는 스포츠이므로 경기 관람을 할 때 정숙해야 합니다. 단, 선수가 공을 잡는 등 수비에 성공했을 때, 공이 골대에 들어갔을 때는 마음껏 함성을 질러도 돼요. 전력으로 굴러오는 공을 몸으로 막는 모습에 위험하지 않느냐며 걱정하는 분도 있는데요, 무릎과 팔꿈치, 정강이 보호대 등을 착용하고 적절한 자세로 움직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Q. 장애인 선수로 지내면서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A. 우리나라 골볼 실업팀은 2018년 창단한 전라남도 남자팀, 2019년 창단한 충청남도 남·여자팀, 같은 해 창단한 서울시청 여자팀, 2022년 창단한 인천도시공사 남자팀까지 총 5팀이 있습니다. 실업팀이 창단되기 전에는 골볼 선수로만 활동할 수 없기에 각자 다른 생업에 종사해야 했습니다. 과거에는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대회 일정에 맞춰 집중 훈련을 했어요. 지금은 전문 골볼 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참 기뻐요. 하지만 10여 곳이 존재하는 골볼 동호회와 비교하면 실업팀의 수나 지원, 대중적인 관심이 아쉽습니다. 일본의 경우 기업의 적극 후원으로 선수 인력이나 규모 등 관련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어요. 우리나라 역시 골볼에 대한 인식이 발전해 온 만큼 더욱 성장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어깨가 다소 무겁지만,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려 노력할 겁니다.
Q. 뮤지컬 배우로도 활동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A. 제가 골볼 다음으로 좋아하는 게 노래예요. 골볼 훈련을 하면서도 학교 밴드부 활동에 참여할 만큼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지요.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의 지인으로부터 “고정욱 작가의 ‘안내견 탄실이’가 뮤지컬로 제작되는데, 그 오디션에 응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주인공이 실제 시각장애인이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제가 떠올랐다고 하면서요. 무대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오디션에 도전했는데, 다행히 합격했고 무대에 설 수 있었어요. 무대는 스포츠 경기와는 또 다른 설렘을 줍니다. 내가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지요. 종종 스포츠 관련 행사의 축하 공연 의뢰가 오는데, 당분간 골볼에 매진해야 하기에 정중히 거절하고 있어요. 게다가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에 재학 중이기에 여유가 더 없어지기도 했고요. 체계적인 스포츠 이론과 재활 영역으로서의 스포츠에 관심이 생겨 진학했는데, 멘탈 캐어에 중점을 둔 스포츠 심리학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Q. 앞으로의 꿈과 기대를 들려주십시오.
A. 지난해 포르투갈에서 열린 골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준우승을 하며 28년 만에 패럴림픽 출전권을 획득했습니다. 한없이 감동적인 순간이었어요. 저는 골볼 선수를 꿈꾸는 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전문 선수로서 코트를 누빌 수 있기를 희망해요. 그러려면 장비 및 경기장 확보, 실업팀 창단 등 다양한 인프라가 갖춰져야 해요. 골볼의 인지도가 더 향상될 필요가 있다는 의미이고, 그를 위해서는 유의미한 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것이 저를 비롯한 선수들이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이유일 겁니다.
김수정·신혜령 기자
골볼
2차 세계대전 후 실명용사들의 재활을 목적으로 고안된 스포츠다. 우리나라는 1987년 제7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했다. 3명의 선수로 구성된 2팀에 의해 진행되고 팀당 최대 4명까지 선수 교체가 가능하다. 전맹과 약시의 구분 없이 통합등급 경기로 진행한다.
○ 골대
크기는 넓이 9m, 높이 1.3m로 양쪽 코트 끝라인에 설치한다. 골대는 둥글고 견고하여 경기 중에 골대가 밀리거나 가운데가 처지는 일이 없어야 하며 코트 밖에 위치한다.
○ 경기장
길이 18m, 넓이 9m의 마룻바닥이다. 중앙의 센터라인을 중심으로 길이 3m 간격으로 중립지역인 렌딩에어리어, 팀에어리어로 나뉘고, 팀에어리어 내에 포지션라인이 그려진다. 라인은 0.05m 넓이의 테이프로 표시한다.
○ 볼
무게는 1,250g이고 둘레는 약 76cm이며 표면에 약 1cm 직경의 구멍이 8개가 있다. 볼 속에 방울이 들어 있다.
○ 아이패치와 아이셰이드
아이패치는 눈에 들어오는 빛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 눈 위에 붙이는 용품이다. 아이셰이드는 눈에 붙인 아이패치가 경기 중에 떨어질 경우 빛을 차단해주는 보조 역할과 외부 충격으로부터 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도서출판 점자 제작 협력 간행물 월간지 <손끝으로 읽는 국정> 제192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