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믿음} 정이철 <성결교 목사가 합동 꽃동산교회(김종준) 후임으로 청빙되었다.>
https://archive.md/4jlOR
다음은 위 링크 글에서 옮기는 글이다.
과연 성결교단에서 안수받은 목사가 합동의 대표적인 교회의 후임이 되어도 문제가 없을까? 이럴 것이면 총신은 왜 존재하여야 하는가? 총신에서 마땅한 목사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굳이 합동이 총신을 운영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앞으로 개 교회가 원하면 아무 교단에서나 후임자를 구하여 편목 과정을 거치게 하면 그만인가? 혹시 김종준 목사와 임광 목사 사이에 개인적인 금전 관계나 그와 비슷한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와 같은 의문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인 것 같다. 합동의 많은 목회자가 겉으로 말하지 않으나,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성결교 목사가 합동 교회의 후임 목사가 되는 일을 두고 ‘한심한 일’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혹시 김종준 목사와 임광 목사 사이에 개인적인 금전 관계나 그와 비슷한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걸 야비하고 간교한 소아병적 인신공격의 오류라고 한다. 확실한 근거가 없어서 ‘의문’으로 말했다고 해서, 제9계명을 어긴 죄, ‘허위 사실 적시 명예 훼손 죄’를 물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 능동 순종의 의, 그 의의 전가’ 문제로 예장 합동 꼴뚜기 Wolf이철이 예장 합신 노승수 목사님을 이단 몰이 마녀사냥을 시작했을 때 {페북} 자신의 담벼락에서 Wolf이철을 환영했던 목사가 있었다. 알미우스주의 웨슬리안 성결교 장기영 목사였다. “웨슬리를 이단시했던 정이철 목사가 웨슬리의 제자가 됐다.”며 환영한 장기영 목사는 “정이철과 그 일당을 칼뱅주의로부터 돌아서 웨슬리의 품에 안긴 돌아온 탕자 형제로 열렬히 환영해 주세요. ㅋㅋ”라는 페친 댓글에 “ㅎㅎ 네~~~ 정이철을 이제 ‘우리 웨슬리안 형제’ 이렇게 불러야겠습니다.”는 댓글로 화답한 것이다. 그런데 “과연 성결교단에서 안수받은 목사가 합동의 대표적인 교회의 후임이 되어도 문제가 없을까?”??????? 장기영 목사가 {바른 믿음}에 댓글을 남겼을 때 앞뒤 생각 없는 미친 개처럼 이를 덥석 물어 {바른 믿음}에 글을 올리는 꼴뚜기 짓으로 ‘의의 전가’ 문제에서 알미니안 신학으로 귀의한 자기 앞가림이나 잘할 것이지, 속담대로 “걱정도 팔자다.”
{바른 믿음} 정이철 <오히려 웨슬리안(장기영 교수)이 능동 순종 의미 더 정확히 알아>
http://archive.fo/Ytx3N
그동안 나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Wolf이철이 스승 서철원 목사님 신학에서 코끼리 다리 만지기 오류를 범한 부분들’을 수차례 언급했다. 그런데 웨슬리안 장기영 목사와 웨슬리안 Wolf이철 공통점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두고 ‘코끼리 다리 만지기 오류’를 범한 공통점이다. 다음은 {페북} 내 담벼락에서 옮겨오는 글이다. 들여쓰기 없이 ‘-’를 써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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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장기영 교수가 저지른 ‘장님 코끼리 만지기’
朴埰同 (2020.09.26.11:44)
‘Wesley [The Lord Our Righteousness](1765년)’…. 초기에는 개혁 교회 ‘그리스도께서 능동 순종으로 얻으신 의와 그 의의 전가 교리’를 부정하셨던 웨슬리 목사님은 이 설교에서 “그리스도 수동 순종과 능동 순종을 포함하는 그리스도의 의가 가져다주는 특권과 은총과 은택 안에서 우리가 부여받는 것이 ‘그리스도 의의 전가’다.”며 ‘그리스도 능동 순종과 그 의의 전가’를 인정하신다.
지난해 초였다. 정이철 목사가 {바른 믿음}에서 개혁 교회 ‘그리스도께서 능동 순종으로 얻으신 의와 그 의의 전가 교리’를 이단시할 때 이에 동조해 정이철 목사를 부추겼던 웨슬리안 신학자가 있었다. 성결교 장기영 교수다. ‘웨슬리 역시 그리스도께서 능동 순종으로 얻으신 의와 그 의의 전가를 부정했다.’는 까닭이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지난해 5월 13일에 내가 페친 목사님에게 {페북} 메시지로 ‘Wesley [The Lord Our Righteousness]’ 링크를 제공해, 이 설교가 {페북}에서 거론됨으로써 ‘웨슬리 초기 신학만을 아는 반쪽신학에 따른 무지, 후기에는 그리스도께서 능동 순종으로 얻으신 의와 그 의의 전가를 인정한 웨슬리 신학을 몰랐던 장기영 교수 무지에서 나온 주장이었음’이 밝혀졌다.
정이철 목사를 부추기면서 장기영 교수는 {페북} 자신의 담벼락에 개혁 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증거하는 성경 구절을 대라.’는 내용을 담은 글로 도발했다. 이 도발에 숨은 장기영 교수 ‘교만’을 읽은 나는 이 교만에 ‘그리스도 능동 순종을 증거하는 성경 구절들을 대며 반론하는 댓글’로 대응했다. 물론, 이 댓글에 장기영 교수는 그 어떤 반론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예장 합동 경성노회가 예장 합신 김병훈 교수님과 노승수 목사님을 이단 제소한 건으로 장기영 교수가 {페북} 자신의 담벼락에서 지난해 설 때처럼 신이 나 있습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와 페친이었던 장기영 교수가 지난해 6월에 {페북}에서 나를 차단한 까닭으로, 오늘 아침 {페북} 다른 계정으로 {페북} 장기영 교수 담벼락을 살펴봤다. 참고로, 장기영 교수가 나를 차단한 까닭 하나는 ‘돌트총회를 두고 여러 거짓증거로 음해한 웨슬리 목사님 주장을 옮긴 장기영 교수 글’을 놓고 내가 이 거짓증거들을 밝혔던 일이다.
“개혁주의에서는 사이비 개혁주의자 정이철 목사가 정통 칼빈 신학자들을 이단으로 고발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이 있었다. 그 글에는 “그리스도 의의 전가라는 주제에 대해 칼빈주의자들 주장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웨슬리 목사님은 그것을 바로잡고자 노력했습니다. 예전에 포스팅한 내용 일부를 다시 올립니다.”며 “예전에 포스팅한 내용 일부”로서 [최근 국내 개혁주의 논쟁 이슈인 그리스도 의의 전가 문제에 관한 웨슬리 신학 입장]이라는 장기영 교수 논문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이 논문에는 ‘Wesley [The Lord Our Righteousness]’를 다룬 부분이 있었다.
“그리스도 의의 전가라는 주제에 대해 칼빈주의자들 주장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양심 있는 기독교 신학자라면, [최근 국내 개혁주의 논쟁 이슈인 그리스도 의의 전가 문제에 관한 웨슬리 신학 입장]에서 과거 자신의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 반쪽신학에 따른 교만’을 인정하며 이를 사과부터 먼저 하는 게 맞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며 즐기기 전에 지난해 설 연휴 때 개혁 교회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도발했던 일을 반성하며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하는 것이 양심 있는 신학자 자세다.
이런 자세 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의 교만’으로 도발하기를 좋아하는 장기영 교수는 나에게만큼은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오류로 이단 몰이를 일삼는 정이철 목사’와 동급, 같은 부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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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웨슬리 제자가 된 Wolf이철과 그의 스승 웨슬리 목사님 공통점이 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씀대로 야비하고 간교한 소아병적 인신공격의 오류를 범한 공통점이다. 다음 역시 {페북} 내 담벼락에서 옮겨오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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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선조들을 무는 미친 개의 역사관
朴埰同 (2019.06.16.13:55)
칼빈주의자인 나는 알미우스주의자이신 존 웨슬리 목사님을 형제로 여겼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에게 호전적이신 알미우스주의 웨슬리안 장기영 교수님 {페북} 담벼락 글에서 ‘칼빈주의자들을 적으로 여긴 편협함에 나온 천박함, 무척 천박한 역사관을 가진 웨슬리’를 읽었다. 물론, ‘돌트총회와 얽힌 이 천박한 웨슬리 역사관’은 나에게 “영국 비국교도 청교도 신앙을 고수하심으로써 영국 국교도들에게 핍박을 당하셨던 자신의 선조들을 무는 미친 개의 역사관”이라는 조롱과 비난을 받아도 마땅하다.
댓글
전종득
장기영 목사님과 몇몇 분과 토론이 있었는데, 좁힐 수 없는 문제 때문에 논의를 그만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 페친을 끊어 버리셨더라구요. 아쉬움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큽니다.
朴埰同
목사님, 혹시 ‘칼 마르크스 {자본론}’ 읽으셨습니까? 이 책을 읽으셨다면, 북한 ‘주체사상’에 관한 책, 1차 텍스트를 읽으신 게 있습니까?
전종득
없습니다~
朴埰同
1차 텍스트를 읽으신 게 없어도, 공산주의와 북한 공산당이 나쁘다는 것을 아시지요.
똥을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님에도, 장기영 교수님은 계속 “개혁주의 전통에 속해 있으면서 아르미니우스 글을 읽었거나 웨슬리 글을 직접 읽어보신 분은 0.1%도 안 될 것입니다.”를 큰 무기로 ‘착각’하고 계십니다. ㅠㅠ
전종득
최근에 장기영 교수님이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이 장 교수님 담벼락에 있습니다. 바로 다운이 가능하구요. 그 논문에 관한 토론을 하던 중에 ‘개혁주의 언약 신학의 전통’에 대한 논의였습니다. 자신이 이해한 개혁주의 전통에 대한 오류가 없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부탁에 논평이 있었는데, 아예 받지를 않으시더라구요. ㅠ
朴埰同 <민중당 이석기 의원을 한국 법으로 처벌한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 : 이석기 의원이 한국 법에 따라 ‘피고인’으로 법정에 섰듯이 알미니안 항론파들은 화란 법에 따라 ‘피고인’으로 돌트총회 법정에 섰습니다.>
돌트총회 시대는 과도기 시대로 ‘신앙, 사상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오늘날 시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칼빈주의자들, 개혁 신앙인들은 알미니안 신학을 중세 천주교 ‘펠라기안 신학 아류’로 봅니다. 즉, ‘알미니안 신학 선조를 펠라기안 신학’으로 봅니다.
종교전쟁이라는 피 흘림도 있었던 과도기 시대인 종교개혁 시대에 개혁 신앙의 지조를 지키려다가 수많은 개혁 신앙인이 목숨을 잃습니다. 학살을 당합니다. 그 대표 예가 프랑스 위그노 개혁 신앙인들입니다. ㅡ로마 교황청은 ‘위그노 학살’을 뒤늦게 사과했을지라도, 펠라기안 후손 알미니안이나 알미니안 후손 웨슬리안이 위그노 학살(1517년)을 두고 회개한 적이 있었습니까?ㅡ
프랑스 종교전쟁(1562년~1598년)이라는 피 흘림이 있는 과도기 시대인 돌트총회(1618~1619) 시대…. 피 흘림의 과도기 시대에 화란에서 일어난 역사 회귀의 징조…. 즉, 중세 천주교 펠라기안 신학 아류로서 알미니안 신학 발흥…. ‘알미니안 신학 발흥을 중세 천주교 펠라기안 신학 발흥’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개혁 신앙인들은 당연히 큰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프랑스 위그노들처럼 피를 흘릴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이런 역사 배경ㅡ‘민중당 이석기 의원을 처벌하지 않으면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되돌아갈 수 있다.’와 똑같은 배경ㅡ은 무시한 채 “돌트 종교회의는 충분한 회원 수를 확보하지도, 학식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지도 않았고, 마치 트리엔트 종교회의처럼 불공정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아르미니우스의 추종자들 중 더러는 사형에 처해졌고, 더러는 추방을 당했고, 어떤 사람은 일평생 감옥에서 살다 죽었다. 모든 아르미니우스주의자는 직업을 빼앗겼고, 교회나 국가의 어떤 공직 임명도 금지됐다.”며 돌트총회에 참여한 개혁 신앙인들을 ‘무식하고도 잔혹한 야만인, 법이 없는 무법자들’로 적대시한 웨슬리 목사님 서술은 ‘무척 천박한 역사관, 편협한 역사관’을 드러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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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는 사형에 처해졌고”에서 “더러는”은 ‘여러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마키다 요시카즈 {도르트총회: 기독교 신앙을 정의하다.} 이종전 역 (인천: 아벨서원, 2019)’ 74쪽에 따르면, 돌트총회 결과 사형을 당한 사람은 한 사람이다. 즉, 화란 법에 따라 이른바 “반란 수괴 죄”, 군대를 이끌고 ‘칼빈주의자들을 죽이는 내전’을 일으키려고 했던 죄목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람은 알미니우스주의자(항론파) ‘올덴바르테빌트’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