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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신문등에 소개되는 스님들 행장을 보면 90안거 성만한 송광사 방장 현묵스님을 비롯하여 올곧게 수좌로 참선하는 분들이 많고 인연따라 주지를 맡다가 다시 선방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종회의장 지낸 50대 중반 스님이 다시 선방으로 입방하여 정진하는 경우도 있다. 이 정도로 열심정진하는 분들이 있으면 1년에 한 분이라든지, 5년에 한분이라도 아니 10년에 ,아니 20년에 한 분이라도,아니 30년에 한 분이라도 확철대오하여 인가받은 분이 나올 법도 한데 안 나오고 있다. 스스로가 깨달았다고 하는 스님들은 있는데 전강스님 말씀대로 오도송, 법거량, 전법게가 있는 스님은 송담스님과 진제스님, 대원스님이래로 수십년간 나온 적이 없다. 깨달았다는 스님께 왜 인가를 안 받느냐고 물어보면 인가가 의미없으며 자신을 인가해줄만한 스승이 없다는 입장이다. 법정스님도 가장 후회스러운 일중 하나가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어서 그 문구를 검색으로 찾아보았는데 못 찾았다. 실상사 회주인 도법스님도 20년 이상을 참선했는데도 깨닫지 못했다고 절망의 말씀을 하는 것을 들었다. 송담스님 법문에도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으니 어떻게든 정진심을 일으켜 달라"고 애원하는 수좌스님이 있었는데 남이 때린다고 , 욕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결국은 스스로가 분심과 간절한 마음을 일으켜야한다고 답하는 법문이 기억난다. 그리고 왜 이리도 깨달은 분이 희귀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대로 하면 깨닫는 다고 답한 경우도 있다. 묻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제대로 하고 있는데도 안된다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오등선원 대원스님께도 어느 수좌스님이 어떻게 하면 진의돈발이 되겠느냐고 질문하는 것을 들었다.
답은 무엇일까?
글의 서술어 마무리를 '...된다, 있다'가 아니고 '...본다'라고 자신없게 쓰는 이유는 나 자신이 깨달은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믿어지는 선지식인 전강, 송담스님 법문과 나 자신의 참선체험을 바탕으로 깨닫지못한 상태에서 내 견해를 쓰다보니 확신있게 "이렇다"라고 단정하여 쓸 수는 없다. 화두를 들때에 간절히가 어떻게 하면 '간절히' 인지와 제대로가 어떻게 하면 '제대로'인지를 깊이 생각해보고 화두를 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는데 '간절히'와 '제대로'에 대한 나의 체험을 소개한다.
1-1.간절히는 무엇일까? 간절히 뭘 알고 싶다는 걸까?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다. 왜 나를 알고 싶을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를 알고 싶을 수도 있고 나란 놈이 어떻게 생겨났는 지를 알고 싶을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온 곳도, 가는 곳도 알고 싶었고 왜 태어난지도 알고 싶었지만 더 구체적이고 개별적으로는 못난 나 ,어리석은 나가 왜 이렇게 못나고 어리석은지 그 이유를 알고 싶고 나를 알아서 그 어리석음, 못남을 극복하고 싶었다. 못나고 어리석은 나라고 나를 평가하는 나의 이유는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똥통학교를 다녔던 열등감이 그 이유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6년간을 열등감에 찌들어서 살았다. 고3때 학교가는 버스에 앉아서 책 펴놓고 공부하면 근처에 앉은 여학생들이 "어머, 어머, 000학교 애가 공부하고있어? 웬일이야?"라고 주목을 할 정도로 똥통학교였다. 똥통학교를 다니는 나 자신도 부끄러웠고 부모님께도 면목이 없었는데 어머니기 내가 떨어진 대학앞을 버스타고 지나는데 신입생들이 운동장에 모여서 노래 부르더라는 얘기 할 때 너무 죄스러웠다. 대학입시도 떨어져서 재수를 하면서 1974년 3월부터 도선사 일요선원에서 아침 8시에서 10시까지 참선을 했는데 선원에 앉아서 화두도, 참선도 아무 것도 모르고 일단 앉아있으니 간절히 알고 싶은 것은 왜? 왜? 나는 또 입시에 떨어져서 재수생이 되었나? 이렇게 못난, 공부안해 입시에 불합격한 못난, 어리석은 나란 놈이 도대체 무엇인가? 나란 놈, 못난 나란 놈을 알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드는 상태에서 그냥 앉아있다가 마음이 차츰 안정되면서 여기가 선원이고 선방인데 선,참선이 뭘까?라고 의문이 들면서 청담스님이 쓴 "선-마음의 길,이청담, 이혜성저, 청담출판사1973년 6월 10일 발행"을 읽어봤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다가 쑥 들어온 단어가 "이뭐꼬?"였다. 이뭐꼬?는 내가 무엇인가?다. 이뭐꼬?를 알면 진리를 알고 나를 알고 부처가 된다는 것이니 못난 나를 알고 못난 나를 극복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나를 알면 부처되고 진리도 알게 된다고, 나를 안다는 의미가 확산되니까 더 이뭐꼬?를 알고 싶어져서 이뭐꼬? 이뭐꼬?를 하게 되었다. 이뭐꼬?를 시작하는 마음에는 나의 서사(나만의 이야기,사연)가 깔려있었으니 '이렇게 못 난 나? 내가 무엇인가? 입시에 계속 떨어져서 똥통학교 다니면서 수모를 당하고 부모님께 면목없었던 이 못난 나가 무엇인가? 왜 그렇게 제대로 공부를 열심히 안해서 이렇게 또 재수생이 되었는가? 이렇게 못난 나가 무엇일까? 내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인가? 이 못난 나를 알고 못난 나를 극복하고 싶다, 못난 나가 무엇인가? 이렇게 못난 내가 도대체 무엇일까?"하고 나의 이뭐꼬?에는 '못난 나"라고 "못난'이 붙어있었으니 "못난'이라고 하는 순간 '못난 나"를 알고 못난 나를 이기고 싶다는 간절함은 저절로 들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못난 나를 이기고 입시에 합격하고 싶다는 소망도 깔려있었다. 간절함을 갖기위해서는 '내가 왜 나를 몰라? 바보아냐? 이 세상에 와서 나를 모르니 얼마나 답답하고 어리석은 일이냔 말이여? 어때? 나를 모르니 답답하니까 간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지? 응? 이뭐꼬? 어찌여? 알고 싶지?'라고 참선자로 하여금 화두의심을 나게 하려고 보편적인 독려의 말을 하는데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내게 절실한 의문이 들지가 않아서 답답하기만 하고 억지로 라도 ' 이 세상에 왔으니 나를 알아야지? 응? 당연히 나를 알아야하잖아? 어때? 의심되지? 뭐? 의심이 안되야? 이런 어리석은 놈 같으니라고, 왜 의심이 안되야? '라고 자신에게 질책해도 나를 알고 싶다는 간절함이 안 생기니 답답하기만 한데 이 때 나, 나 , 나의 얘기 즉 내가 나를 알아야하는 나의 이유 즉 못난 나를 알고싶다고 나의 서사(나만의 얘기, 나의 스토리)를 들이대면 간절함이 생긴다고 본다.'못난 나, 입시에 계속 떨어진 못난 나, 또 떨어져서 재수생이 된 못난 나,아이구, 못난 나,어찌하면 이 못난 나를 알고 이겨서 공부 열심히 해서 합격, 합격할 수 있을까? 합격하려면 나를 알고 나를 이겨야하는 구나, 그래 , 힘내자, 알자, 알고 싶다, 이 못난 나를 알고 싶다. 이뭐꼬? 내가 무엇인고? 이렇게 못난 내가 무엇인고? '라고 못난 나의 서사를 이뭐꼬?앞에 주욱 붙이면 간절함이 안 생길 수가 없었다. 내가 나를 알아야하는 나의 이유, 나만의 이유를 이뭐꼬?앞에 붙이면 간절함이 생긴다고 본다. 그러니까 내가 이뭐꼬?를 들면 그 속에는 못난 나를 알고 싶다는 나의 서사가 녹아들어있어서 서사속에서 우러나는 간절함이 바탕에 있었다. 환속한 송담스님 상좌인 환산스님도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닌 자신의 정체성이 궁금해지면서 이뭐꼬?를 하게 되었다고 읽었다. 환산스님도 역시 자신의 서사가 이뭐꼬?를 간절히 하게 되는 동기가 되었다고 본다. 간절해 지기위해서는 이 세상에 와서 왜 내가 나를 모른단 말인가?라는 보편적 서사와 함께 의심이 걸리는 자신만의 서사-왜 내가 나를 알고 싶은 지에 대한 자신만의 이유를 가져야한다고 본다.
여기에 더하여 이뭐꼬?의심의 보편적 근거로서 '선-마음의 길'에 제시된 문구인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배고프면 밥먹을 줄 알고, 목마르면 물 마실 줄 아는 놈, 누가 이름 부르면 네!하고 대답할 줄 아는 놈, 이놈, 주인공이 무엇인고?'도 정말 알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내게하는, 의심이 걸리는 계기가 되었는데 정말 궁금했다. 이 몸뚱이 끌고다니는 놈이 있기는 있는데 그 게 무얼까? 뭘까? 배고프면 아, 배고프다, 먹어야겠네하고 밥먹을 아는 놈, 이놈이 도대체 무얼까?, 목마르면 아, 목말라, 물먹어어야지하고 알고 물 먹을 아는 놈, 이 놈이 정말 무얼까?, 누가 나를 부르면 '어, 나를 누가 부르네'하고 알아차리고 네!하고 대답할 줄 아는 놈, 그 놈이 무얼까? 참말로 궁금하네 , 그 놈이 무얼까?하고 간절히 알고 싶은 마음이 나게 했다. 그래서 처음에 도선사 일요선원 좌복에 앉아서 이뭐꼬? 할 때는 바로 이뭐꼬?를 하는 게 아니고 먼저 제일 앞에 시작하는 서사로 '이렇게 못난 내가 무엇인가?'하고 '못난...' 하는 순간 못난 내가 절실히 느껴지면서 그 못난 나를 알고 싶다는 간절함도 같이 솟구쳤고 이어지는 화두 서사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놈이 무엇인고? 배고프면 밥먹을 줄 아는 이 놈이 무엇인고?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고? '하고 궁금한 서사를 모두 했는데 이 하나 하나의 서사가 다 내게는 참으로 알고 싶은 간절함을 일으켰다. 이렇게 길게 하다가 차츰 하나로 모아졌다. 바로 '이뭐꼬?'다. 이 '이뭐꼬?'속에는 '이 못난 나가 무엇인가? 밥먹을 줄 아는 이 놈이 무엇인가? 물 마실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주인공이 무엇인고? 누가 나를 부르면 신기하게도 어, 나를 부르네하고 알아듣고 네!하고 대답할 줄 아는 이놈이 무엇인가?'가 다 들어있는 것이다. 이 모든 서사가 뭉쳐진 '이뭐꼬?'하는 순간 이뭐꼬?를 알고 싶다는 간절함도 같이 뭉클하고 솟아올랐다.
간절함을 갖기위해서는 '못난 나를 알고 싶다' 는 자신만의 서사 , 그리고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이 놈, 물마실 줄 아는 이놈, 밥먹을 줄 아는 이놈,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이놈이 무언지 알고 싶다, 궁금하다'는 참선의 보편적 서사, 이 두가가지가 함께 있어야한다고 본다.
1-2.제대로는 무엇일까? 화두를 따지지 말고 잡념없이 오직 이뭐꼬? 어째서 무라했는고?만 의심하는 것이 제대로 한 것이라고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알고 싶어서 화두를 들다보니 화두를 생각,이론으로 따지지는 않았지만 이뭐꼬?와 이뭐꼬? 사이에 잡생각이 끼어드는데 ,잡념이 끼어들면 제대로 한 게 아니라고 하니 어떻게 하면 화두의심외의 잡념을 없앨 수 있을까를 궁리해봤다. 그래서 나름대로 잡념 없애는 방법을 궁리해서 실천했다. 어디서 본 것이 아니고 잡념없애려고 필요해서 만들어본 방법이다.
-양 손에 도끼를 들고 잡념을 물체라고 여기고 찍어버렸다. 먼저 도선사 호국참회원 3층에서 참선했는데 청담스님 초상화가 모셔져 있었는데 문득 청담스님이 떠오르면 도끼로 얼굴을 찍어버렸다. 처음에는 이크, 이래도 되나? 했지만 아니야, 화두의심아닌 엉뚱한 잡념일 뿐이잖아, 맞지?하면서 찍어버리고 부처얼굴이 떠오르면 그 것도 찍어버렸다. 하나 찍은 후에는 잠깐 기다리면서 이번엔 뭐까 떠오르려나? 떠오르면 찍어야지하는데 이런,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 앗, 어째? 찍어도 되나? 찍어야할까? 에잇, 찍자. 화두의심아닌 잡념이잖아? 맞지? 에라이, 찍어버리자.퍽!
-잡념이 나온 곳이 어딘가를 찾아보았다. 샘물에서 퐁퐁퐁 새물이 솟아나듯이 잡생각이 화두사이에 또는 아예 화두를 덮어버리고 나오는데 그 나온 근원이 어딜까를 생각했다. 누룽지 생각이 나면 어, 이 생각, 누룽지 생각이 어디서 나왔을까? 샘물나오는 구멍을 상상하면서 샘물구멍 그 뒤에 어디서 이 잡념이 나왔을까하고 잡념이 올라올 때마다 물었다.
-어릴 때 팥죽을 쑤는데 엄마가 계속 저으라고 해서 주걱으로 젓는데 팥죽 방울이 퐁퐁 솟아오른 기억이 나서 팥죽 방울을 잡념이라고 여기고 방울 즉 잡념이 솟을 때마다 주걱으로 쳐서 방울을 없애버렸다. 옛날 국민학교 친구생각이라는 잡념이 퐁 떠오르면 주걱으로 치고 또 치고...
- ‘지난 월화수목금토요일 동안 학과 공부한다고 애를 쓰다가 오늘 일요일에는 일요선원에 오겠다는 마음을 스스로 어떻게 내가지고 이렇게 좌복위에 앉아있는 이 놈이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의심하는 방식도 적용했는데 이 방법도 생각할 수록 궁금하고 의심이 되었다.
이렇게 네가지 방법을 한 번씩 일정기간 지속했더니 어? 잡념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 방법을 할 때는 좌선시작하면서 화두를 들지않고 잡념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면서 도끼로 찍고, 근원을 찾고, 팥죽 방울을 쳐 없애고, 어떻게 참선하러 오겠다는 마음을 냈는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한 잡념을 도끼로 찍고 이뭐꼬?를 들다가 다음 잡념이 떠오르면 또 도끼로 찍는 게 아니고 아예 이뭐꼬?는 들지않고 잡념만을 기다리면서 없애는 연습을 했다. 이 방법은 누구에게 배운 것이 아니고 그냥 떠오르는 방법대로 해봤는데 잡념이 실제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잡념이 줄어드니 다시 이뭐꼬?를 들었는데 화두가 끊어지지않고 꾸준히 이어지기 시작했다.
-재수생이니까 학과공부를 열심히 해야했다. 집중해서 공부해야한다고 하는데 집중이 뭘까를 생각해보니 수학공부시간에는 수학만, 영어공부시간에는 영어만 생각하고 딴 생각, 잡념이 안 들어오면 그게 집중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중방법을 생각해보니 우선 자세였다.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아서 시선도 내 책상안에서만 움직이고 책상밖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방법은 공부시간에 그 공부외에 딴 생각, 잡념이 떠오르거나 깜박 졸면 웃도리 주머니에 꽂아놓은 옷핀을 빼서 허벅지를 지그시 살짝 찔렀다. 그러면 앗, 따거워라고 정신이 들었고 또 졸래? 또 딴생각할래? 이번에는 떨어지면 안되지? 집중해야지?'하면서 다짐했다. 깊이 찌르면 부상입으니까 살짝 지그시 찔렀다. 3번밖에 안 찔렀다. 왜냐하면 자꾸 찌를 필요가 없이 집중이 점점 잘 되어가고 잡념없이 학과공부하게 되니까 더 찌를 필요가 없었다.
현실생활과 참선은 상생이다. 현실생활에서도 하는 일에 잡념없이 집중해야한다. 참선도 잡념없이 화두의심에 집중해야한다. 각각 열심히 집중하다보면 두가지가 서로 영향을 주어서 학과공부에 잡념없이 집중하면 참선이 잘되고 참선이 잡념없이 잘되면 그 기운으로 학과공부도 잡념없이 잘 되었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이뭐꼬? 의심이 좌선하고 있을 때만이 아니고 걸어갈 때도, 말 할 때도, 수학공부할 때도 신기하게 이어지면서 그 의심강도가 점점 강해짐을 느꼈다. 아하, 참선과 생활은 둘이 아니고 하나구나라고 느꼈다. 처음에 참선시작할 때는 만약에 참선이 현실도피고, 이 세상은 허무한 것이니 집착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라면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바로 집어치우려고 했었다. 이 소중한 현실생활을 떠나서 무엇이 중하다는 말인가? 참선이고 뭐고 현실생활과 하나가 되어야, 현실을 더 잘 하게 해야 참된 도라고 생각했는데 참선과 생활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니 더욱 참선법이 믿어지고 더 간절히 '이뭐꼬?'를 하게 되었다.
1-3. 간절히, 제대로 하는데에 단전주 즉 단전에 마음을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처음에 시작할 때에 화두의심을 단전에 두는 연습을 했는데 점점 자리를 잡으면서 아예 내 머리가 단전으로 옮겨져있다고 느꼈다. 생각도 판단도 , 학과공부도,화두의심도 머리에서 하는 게 아니고 단전에서 하는 셈이 되니 더 마음이 든든해지고 화나는 일이 머리에있으면 불같이 성질이 났는데 화나는 상태를 단전에 넣었더니 여과가 되면서 금방 화기운이 사그라드는 것이었다. 단전주, 단전에 의식을 집중하고 사는 것이 매우, 너무 ,아주아주 , 많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단전주는 도가의 단학수련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단전주가 참선에 도움되므로 하는 것 뿐이다. 전강, 송담스님도 단전주를 강조했다. 내 경우는 단전호흡은 하지 않았는데 송담스님은 단전호흡을 권하기는 하되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1-4. 결가부좌는 필수는 아니지만 화두공부에 매주 도움이 된다고 본다. 결가부좌가 안되면 반가부좌도 좋다.
1-5. 일상생활에 집중하기다. 재수생이면 교과공부에 집중, 회사원이면 회사일에 잡념없이 집중,걸을 때는 걷기에 집중하면 이 집중들이 화두의심 집중과 직결되면서 결국은 이뭐꼬? 의심위에서 모든 일을 하게 된다고 본다.
1-6.허리펴기다. 결가부좌 또는 반가부좌하면 허리가 펴지기는 하지만 허리를 꼿꼿하게 펴야한다는 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펴는 연습을 해야한다. 엉덩이뼈와 허리뼈가 만나는 부분중 허리뼈에 힘준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골반최고 위쪽에만 힘을 주고 살짝 배쪽으로 당기면 허리가 s자로 펴지면서 골반근육이 강해진다. 여기에만 힘을 주고 나머지 부분인 어깨, 팔, 목에는 힘을 빼야한다. 좌선시에는 물론이고 누울 때 빼고는 평상시에 책상에 앉거나, 걷거나, 밥먹을 때, 버스,지하철 탔을 때, 얘기할 때도 등뼈와 만나는엉덩이(골반) 제일 위에 힘을 주고 배쪽으로 앞으로 살짝 내밀면서 허리펴는 연습을 해서 골반근육을 키워야한다. 결가부좌건 반반가부좌건 허리는 펴야한다. 몽산법어(용화선원간, 35쪽)에도 '...처음 앉을 때에 정신을 차려 몸을 쭉 펴고 단정히 할 지언정 등을 굽히지 말지니라.머리를 우뚝이 세우고 눈시울을 움직이지 아니하야 눈을 보통으로 뜨리니...'라고 허리펴기를 강조했다. 좌선할 때와 일상생활할 때 허리를 늘 펴고 살아야한다.
1-7. 연습, 연습이 필요하다고 본다. 무슨 연습? 참선하기 위한 연습이다. 그냥 참선하면, 이뭐꼬?하면 되지 무슨 연습이 필요할까? 이뭐꼬?하면서 이뭐꼬?를 잘하기위한 연습을 동시에 해야한다고 본다. 잡념없애기위한 연습,단전에 마음 두기 위한 연습, 제대로 된 자세인 허리펴고 결가부좌하기 연습(나이등으로 안되면 반가부좌), 일상생활에서 집중하기,허리펴기이다. 이뭐꼬?라는 화두의심을 간절히 제대로 하는 퍼즐을 완성하기위해서 단전주연습, 잡념제거연습, 허리펴고 결가부좌연습,일상생활집중하기라는 퍼즐조각을 따로 연습하면 이 퍼즐조각이 모여서 '간절히, 제대로 화두의심'이라는 퍼즐이 완성된다고 느꼈다.
2.결론: 잡념은 점점 줄고 나중에는 잡념이 거의 안 떠오르고 오직 화두의심만이 이어지는 경계가 왔다. 실낱 같이 이어지던 의심은 점점더 의심의 강도가 커지면서 수학공부할 때도, 깊이 잠을 잘 때도 저절로 의심이 이어지면서 커졌다. 이후의 내용과 연습(잡념제거, 결가부좌, 단전주,일상생활집중)한 내용은 생활불교전법회 | 저의 참선기와 참선에 대한 의문점입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Daum 카페 에 기술되어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간절히 참선하기 위해서는 간절함을 갖기위한 자신만의 근거가 있어야한다고 본다. 간절히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화두는 당연히 따지지말고 잡념없애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잡념제거 연습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그리고 결가부좌, 단전주,일상생활집중,허리펴기연습도 필요하다고 본다. 이 것은 나의 체험일 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큰 스님께 질문해서 이런 방법을 썼는데 옳은 방법인가요? 남들도 이렇게 하라고 권해도 될까요? 라고 질문한 적은 없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나는 , 나 자신은 이런 방법으로 간절함을 얻고 잡념을 없앤 나의 체험담이다. 단, 아직 깨닫지는 못했지만 내가 맛 본 최종 경계가 맞는 지를 송담스님과 구산스님, 진제스님, 월하스님, 근일스님께 질문했던 내용은 위의 '저의 참선기와 참선에 대한 의문점입니다'에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