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음모 2
박 완 서
외아들을 장가보내는 날 분희 부인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온양 온천으로 신혼여행 보내면서 뭉쳐두었던 빳빳한 새 돈을 아들 속주머니에 넣어주면서 한 눈을 꿈찍 윙크라는 것까지 하면서 재미 많이 보라고 친구 같은 농지거리도 했다.
외아들의 첫날밤에 분희 부인도 잠이 오지 않았다. 관광호텔의 둘이 같이 자는 침대는 편안하고 정갈한 것일까? 세상 풍속 따라 신혼여행이라는 걸 보내긴 했지만 첫날밤만은 신부 집에서 정성껏 꾸민 원앙금침에 자야 하는 건데, 이런 생각에다 그녀 자신이 혼인한 지 삼 년 만에 대낮에 콩깍지 위에서 지른 첫날밤이자 마지막 밤 생각이 나 한 가닥 감회가 없을 수 없었으나 가슴앓이가 생기진 않았다. 그 아들이 자라 자수성가하고 장가까지 든 생각을 하면 대견하긴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며느리도 귀여웠다.
아들 눈에 들기 전에 분희 부인 눈에 먼저 든 며느리였다. 중매가 딴 사람 아닌 분희 부인이었다. 인물로 보나 살림 솜씨로 보나 어디 내놓아도 안 빠질 일등 규수를 분희 부인은 아들보다 더 자랑스럽게 여겼다. 앞으로도 딸처럼 귀여워하고 싶었다. 여자 남자 사는 재미는 그녀가 못 누린 한이기에 아들 며느리만은 마음껏 누리게 하고 싶었다. 분희 부인은 아들 내외가 그녀의 눈치보지 않고 즐길 수 있도록 멀찍하게 별채에다 신방을 꾸미는 등 세심한 데까지 신경을 쓰면서 아들 내외를 기다렸다. 아들 내외는 이박 삼일의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신혼생활에 들어갔다. 아들 내외의 금슬은 분희 부인이 바라던 대로 깨가 쏟아지게 좋았다. 아들은 일찍 퇴근해서 얼굴만 가까스로 비치고는 별채로 들어가버리지 않으면 색시를 밖으로 불러내어 저녁 먹고 구경하고 밤늦게 들어오거나 했다.
그럴 때마다 분희 부인은 외로움을 탔고 외로움은 당장 심술을 유발하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잘 참았다.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면 참기가 한결 수월했다. 실제 분희 부인은 며느리를 경숙아, 경숙아 하고 이름을 불렀다. 며느리 삼기 전에 부르던 것을 고쳐 부르지 않음으로써 상투적인 고부관계의 어쩔 수 없는 허구를 부정해보려는 의도적 인 것이었다.
경숙은 혼인한 그 달부터 태기가 있었다. 분희 부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경숙이 인물이 좋고 살림 잘한다는 건 실상 분희 부인이 경숙이를 며느릿감으로 눈독 들인 표면상의 이유였고 참뜻은 그게 아니었다. 번족한 친정 쪽의 가계로 보나 본인의 팡파짐한 엉덩판으로 보나 틀림없이 아들을 쑥쑥 뽑아낼 상이었다. 그게 들어맞아 경숙은 기다리기 전에 임신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낳고 보니 딸이었다. 첫딸은 세간 밑천이라면서 분희 부인은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았지만 손녀의 이름만은 후남(後男)이라고 짓기를 고집해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딸을 내리 서넛쯤 낳은 것도 아닌데 고운 이름 다 놔두고 창피하게 후남이가 뭐냐고 경숙은 남편에게 앙탈을 했지만 남편은 그 착한 노인의 그만한 소원도 못 들어줄 게 뭐냐고 맞서 첫딸의 이름은 후남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뒤로 아들이 줄줄이 달린 이름에도 불구하고 후남이는 유치원을 갈 때까지도 아우를 보지 않았다. 분희 부인이 자신 있게 점친 다산성은 빗나간 것이다. 그러나 진상을 알고 보면 빗나간 게 아니었다. 너무 잘 들어맞아 후남이가 백일도 되기 전부터 경숙은 임신을 했다. 그렇게 자주 임신의 고통에
서 시달릴 순 없다고 판단한 경숙은 분희 부인 몰래 중절수술을 받았고 중절수술은 석 달이 멀다 하고 자주 거듭됐다. 후남이가 두 돌이 지나 이제 중절수술이 필요 없겠다 싶었을 즈음부터는 정말 그게 필요 없게 아예 임신이 되지 않았다.
경숙이도 은근히 걱정이 돼 정밀검사 끝에 염증으로 나팔관이 막힌 걸 확인했다. 그것은 영구 불임의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경숙은 그 사실을 속이고만 있을 수가 없어 분희 부인에게 털어놓았다.
땅이 꺼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분희 부인은 경숙의 말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에 힘입어 경숙은 할 말을 다하고 말았다.
“어머니, 조금도 섭섭해하지 마셔요. 저도 그렇고 아범도 그렇고 조금도 섭섭해하지 않고 있으니까요. 저희들에겐 후남이 하나면 족해요. 혈통은 아들에 의해서만 이어진다는 건 구식 생각이에요. 전 구식 생각의 피해를 받을 생각 조금도 없어요. 사람이 만든 호적상으론 남자에 의해서 대가 이어지는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혈통은 남녀가 동등하게 이어가고 있다고 봐요. 호적은 이미 낡은 시대의 유물이에요. 저희들은 그까짓 것에 관심도 없어요.”
경숙이 조금만 신중하거나 음흉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분희 부인은 경숙의 이런 당당함이 심히 아니꼬웠다. 그러나 조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내색을 하느니만 못한 음모를 조금씩 키워가고 있었다.
분희 부인의 콩깍지 위에서의 수태는 여직껏 분희 부인만의 비밀이었다. 분희 부인은 그것을 그녀만의 한과 상처로 죽는 날까지 그녀만의 것으로 간직할 터였다. 그런 그녀가 친척이고 사돈이고 남이고 가릴 것 없이 그녀의 교제범위 내의 누구에게라도 서슴지 않고 그 일을 발설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수줍고 조심스러운 발설이 점차 슬프게 윤색돼 듣는 이의 가숨을 뭉클하게 했다. 그녀의 아들도 며느리도 며느리의 친정 식구들도 아들의 친구들도 이제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됐다. 처음 들을 땐 누구나 여자가 그런 세상을 산 적도 있었나 싶어 신기해하다가 그런 세상을 산 게 바로 눈앞의 분희 부인이라고 깨달으면서 측은해하다가, 이미 지나간 그런 세상에 대해 분개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거듭해 듣는 사이에 그 이야기는 조금도 신기하지 않았고 나중엔 넌더리가 났다. 넌더리 나지 않는 건 분희 부인뿐이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새롭게 처랑해했고 한스러워했다. 이제 사람들은 망령 났다고 수군대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분희 부인이 꾸민 음모의 진행이었다. 그녀는 외아들을 수태하기까지의 비화를 통해 결코 그녀의 맺힌 한을 넋두리하려는 게 아니었다. 면면히 이어내려오는 혈통을 끊기지 않게 하려는 조상의 섭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말하고 싶은 거였다. 그런 섭리를 감히 거스르려는 앙큼한 며느리를 나무라고 싶은 거였다.
그녀는 아들이 첩이라도 얻어서 손을 얻기를 바랐지만 그런 말을 한마디도 입 밖에 냄이 없이 다만 그런 분위기 조성에만 힘 썼던 것이다. 자기는 나서지 않고 뒤에서 서둘지 않고 그러나 끈질기게 자기가 원하는 게 사회적인 분위기가 되게끔 조작하려는 그녀의 음모는 철저한 것이었다. 하긴 그 무렵의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아들을 보기 위한 첩 정도는 너그럽게 봐주었다는 것도 그녀의 음모를 완성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워낙 정분이 두터운 부부라 그런 분위기는 후남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가까스로 무르익었다. 첩이라도 얻어주어 아들을 보게 하자는 발상은 분희 부인이 은근히 바라던 대로 경숙이네 친정 쪽으로부터 나왔다.
분희 부인은 물론 점잖게 반대했다. 반대할수록 집안의 여론은 그쪽으로 비등해서 드디어 분희 부인은 엣다 모르겠다 하는 식으로 그 일을 묵인하는 척 했다.
정말 첩을 보고 아들을 낳았건만 분희 부인은 한결같이 그 일에 냉담을 가장했다. 그 뒤치다꺼리도 경숙이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뒀지 분희 부인이 직접 첩며느리 집에 드나든다거나 아들 손자를 후남이보다 더 대견해한다든가 하는 천박한 짓은 일체하지 않았다. 남 보기엔 다만 며느리 사랑이 대단한, 기품 있는 처신쯤으로 보일 일이나 당사자에겐 대단한 극기심을 요하는 일이었던 건 말할 것도 없다.
불행히도 콩깍지 위에서 수태한 천금 같은 외아들을 앞세운 지금도 분희 부인은 재산 분배 등 미묘한 문제를 경숙한테 일임하고, 절대 나서지 않기 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명절이나 제사 참례 등 꼭 필요할 때 구쪽에서 이쪽으로 드나드는 것 외에 괜히 보고 싶다고 부른다거나 나들이 나간 김에 그쪽 집을 들러본다거나 손자한테 각별한 애정 표시를 하는 일이 없기는 아들이 살았을 때와 매일반이다.
분희 부인은 다만 경숙과 후남이의 극진한 효도를 받으며 조용히 여생을 즐기고 있다. 그녀의 음모는 아무도 모르게 완성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