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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문 /[2008 대구매일
이장근
매번 느끼는 일이지만 신춘문예의 특성상 새로운 것에 천착한 나머지 일부러 문장을 비틀고 기발한 착상에 몰두해 난삽한 기교의 과잉에 의한 억지가 많았다.
이런 점에서 새로움도 있고 표현의 신선함을 주는 작품으로 ‘일획’ ‘마네팅’ ‘소금밭의 기억’ ‘바늘’ ‘파문’ ‘등피를 닦으며’ 등을 들 수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놓고 볼 때 모두 독특한 포즈을 지니고 있어 오래 고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투고한 작품이 모두 고르다는 점에서 이장근의 ‘파문’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파문’은 자칫 통속적으로 떨어질 평이한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독특한 시적 비전에 의해 삶의 진지성과 감동을 주는 데 효과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이 시인이 지닌 삶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더 깊은 비전에 천착해 좋은 작품을 생산하길 바란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정호승(시인)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 [2008 무등일보]
박문혁
아버지는 다리미로 세상의 모든 근심을 다렸다. 장마 끝으로 축축해진 무등산 호랑이 가죽도 다리고, 학동과 지원동을 돌며 바다를 파는 목포댁의 생선 비린내도 다리고, 매번 귀가할 때마다 술에 취해 흥얼거리는 막노동꾼 김씨의 흘러간 노래도 다리고, 거리에서 붕어빵을 구워 파는 박씨의 희망도,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시각장애인 송씨의 하얀 지팡이도, 등록금 마련을 위해 연탄배달을 하는 대학생의 굵은 땀방울도 스팀을 다려 먹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유방암까지 다릴 수는 없었다.
이제 그 아버지가 3평 좁은 공간에서 홀로 늙어간다. 지금껏 구겨지고 이맛살 찌푸린 것들, 매끈하게 다려 모두 손님에게 돌려주고 마지막 남은 것이라곤 고작 몸에 걸친 한 벌 외로움 뿐. 하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아버지는 자신의 외로움을 다리지 못한다. 늦은 밤 나는 아버지가 벗어놓은 외로움을 빳빳하게 다려서 어머니 영정 옆에 쓸쩍 걸어놓는다.
미사일처럼 세워놓은 다리미가 어둠을 다림질하며 하늘로 솟아오를 듯.
심사평 -이은봉(시인·광주대 문창과 교수)
다름 아닌 이것이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1천500편이 넘는 시를 읽은 기본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일차 예심에 통과된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박문혁의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박월출의 '눈은 내리고 나는 걷고 걸어', 천순덕의 '가슴앓이', 김석윤의 '고비를 횡단하다', 박석준의 '은행 앞, 은행잎 뒹구는 여름날', 홍경화의 '허브향을 맡으면 속이 쓰리다', 박명남의 '떠나야 할 때', 김화정의 '코스모스와 여자', 장화숙의 '구절초 제국', 최영희의 '알흔섬'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작품 중 최영희, 장화숙, 김화정, 박명남의 시는 정서의 범주가 크고 굵지 못하다는 점에서 맨 먼저 제외됐다. 이어 박석준의 시와 홍경화의 시도 감각이 새롭고 언어가 활달하다는 점에서는 관심을 끌었지만 그것 이상이 없다는 점에서 제외됐다. 곧바로 김석윤의 시도 제외시켰는데, 이 시 지니고 있는 건강한 노동의식을 나머지 시들이 받쳐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천순덕, 박월출, 박문혁의 시를 놓고 장고에 들어갔는데, 최종 당선작으로 선택된 작품은 박문혁의 시였다.
천순덕의 시가 제외된 까닭은 작품의 스케일이 작지도 했지만 발상이나 언어의 운용 면에서 좀더 기다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박월출의 시는 지속적으로 공부를 하며 자신의 의식과 언어를 닦아온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사를 맡은 사람을 주저하게 했다. 맨 끝까지 남은 박문혁의 시도 모든 면에서 다 흡족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당선작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는 장중한 정서를 바탕으로 건강한 노동의식 및 아버지로 대표되는 시간적 동일성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두루 주목이 되었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보내고 낙선자에게는 내일의 영광을 빈다 차창밖, 풍경 빈곳 / [2008 한국일보]
정은기
기차의 머리가 향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은
긴장을 잃고 곡선으로 휘어지는 구간에서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심사평-"언어적 감수성·말걸기의 새로움 번뜩" 시는 말 걸기다. 시적 대상에게 말 걸기. 하지만 여기에서 그친다면 아직 시가 아니다.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결국 독자에게 말을 건다는 것이다. 시는 대화다. 그러니 시적 대상과의 대화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독자와의 대화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응모작 가운데 한 작품, 즉 새로운 시인을 가려내는 과정은 곧 개성적인 대화 능력을 선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여섯 편의 응모작을 논의 대상으로 삼았다. 홍종화의 <투명한 돌밭>, 신희진의 <온난화>, 임재정의 <나를 겨누다>, 임경섭의 <자동판매 김대리>, 박은지의 <뿔의 냄새>, 정은기의 <차창 밖, 풍경의 빈 곳>. 이 가운데 먼저 네 편을 제외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투명한 돌밭>은 비유와 묘사가 탁월했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고, <온난화>는 구성과 전개가 자연스러웠으나 결말이 어색했다. <나를 겨누다>는 단단한 기본기가 눈길을 끌었지만 애인과의 이별과 사과를 깎는 행위가 작위적으로 보였다. <자동판매 김대리> 역시 시적 주체의 행위가 개연성을 갖지 못했다.
남은 두 작품은 박은지의 <뿔의 냄새>와 정은기의 <차창 밖, 풍경의 빈 곳>.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박은지의 작품이 성숙했지만, 표현의 차원에서는 정은기의 작품이 뛰어났다. 결말 처리는 박은지가 우수했고, 도입부는 정은기가 참신했다. 두 응모작은 상호 보완 관계에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정은기의 언어적 감수성에 점수를 주기로 했다. 시적 대상에게 말을 거는 방식의 새로움이 독자와의 신선한 대화로 이어진 것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동시에 최종심에 오른 다섯 분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부디 출발 시점에 연연해하지 말고, 길게 보시기 바란다. 10년, 20년 뒤 누가 더 좋은 시를 쓸 것인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페루 /[2008 경향신문]
김란 씨는 시를 안정감 있게 지을 줄 아는 사람이다. 그의 문체는 단정하고 간결하다. 쓸 데 없는 수사가 없다. 그런데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약하다. 그래서 독자의 머리와 마음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저 무난히 스쳐간다. “생식기도 성기도 아닌/ 비뇨기만 남았다던”(‘골똘한 화장’에서) 같은 재미있는 표현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활달함이랄지 생기랄지가 모자라 보인다. 관념어의 잦은 사용과 리듬감 없이 늘어진 문장은 생동감의 걸림돌이다.
당선작으로 이제니 씨의 ‘페루’를 뽑는 데 망설임이 없었던 건, 거기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의 재미를 십분 즐기는 듯한 자유로운 형상화 능력도 젊음의 싱싱함과 미래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페루’에서)
그의 시들은 대개 행갈이를 하지 않고 문장을 잇대어 쓴 산문시다. 그런데도 그 시들은 리듬감이 뛰어나고, 진술에 역동성이 있다. 생동하는 말맛의 맛깔스러움이 피처럼 출렁거리며 줄글 속을 달린다. 달리는 말의 리드미컬한 속도감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빈 공간을 메워, 시의 풍경이 활동사진처럼 단절감 없이 펼쳐진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는 페루처럼 그 이미지를 논리적으로 따라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 자체의 속도감이 쾌감을 준다. 이 발랄한 시인의 행보가 더욱더 힘차길 기대한다.
황인숙, 최승호 너와집 / [2008 세계일보]
박미선
아침마다 바삭해진 창틀을 만져보아요
지난 계절보다 쇄골 뼈가 툭 불거졌네요
어느새 처마 끝에 빈틈이 생기기 시작했나 봐요
칠만 삼천 일을 기다리고 나서야
내 몸속에 살갑게 뿌리 내렸지요, 당신은
문풍지 사이로 흘러나오던
따뜻한 온기가 사라지고
푸른 송진 냄새
가시기 전에 떠났어요, 당신은
눅눅한 시간이 마루에 쌓여있어요
웃자란 바람이, 안개가, 구름이
허물어진 담장과 내 몸을 골라 밟네요
하얀 달이 자라는 언덕에서
무작정 기다리지는 않을 거예요, 나는
화티에 불씨를 다시 묻어놓고
단단하게 잠근 쇠빗장부터 열겁니다
나와 누워 자던 솔향기 가득한
한 시절, 당신
그립지 않은가요?
예심을 거쳐 올라온 작품들이 수준이나 내용이 비슷비슷했다.
특별히 개성 있는 시가 별로 눈에 띄지 않았고, 재미있게 읽히는 시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실직’(이재근), ‘나비의 꿈’(문계현), ‘너와집’(박미산) 같은 작품들은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과할 수준은 넉넉히 되었다.
먼저 ‘실직’은 삶에 뿌리박은 정서의 시로서 호소력을 갖는다. 한데 무언가 신선한 맛이 덜하고, 죽음의 이미지가 시를 무겁게 만든다. 게다가 너무 건조하다.
같은 작자의 ‘얼굴’은 읽는 재미는 ‘실직’보다 낫겠는데, 산만하고 장황한 것이 흠이다.
‘나비의 꿈’은 장애인 부부의 외식 나들이가 소재가 된 시로서, 그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비유가 좀 억지스럽고 관념적이다. 외국인 근로자가 화자가 되고 있는 ‘붉고 둥그스름한 다라이’는 정리가 더 돼야 할 소재 같다.
하지만 남과 같지 않은 상상력은 그의 앞날에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너와집’은 아주 따듯한 시여서 일단 호감이 간다.
물론 ‘너와집’은 실제의 너와집이기보다 ‘당신’과 ‘내’가 만든 사랑의 집일 터, 그 비유가 호소력이 있어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렇게 해서 우리 두 심사위원은 최종적으로 박미산의 ‘너와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 / [2008 동아일보]
이은규
예심을 통과한 15명 투고자의 작품을 읽고 검토한 결과 두 명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남게 되었다.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 2008 조선일보
유희경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2.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3.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심사평… 몰개성의 시대, 눈에 띄는 참신함
예심을 거친 20명의 응모작들 가운데 이연후씨의 ‘우니코르’, 이서씨의 ‘고래자리’, 최수연씨의 ‘누에의 잠’, 유희경씨의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 정도가 최종심 대상작으로 언급할 만하다고 여겨진 작품들이다.
신춘문예 응모작들을 보면 한 시대의 사회적 징후가 집약된 듯한 목록들을 읽을 수가 있다. 그 목록들이란, 최근 수년 동안 뭉쳐져 있는 경향이어서 어지간해서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역시 현저히 즉물적이다는 것, 다분히 자폐적이다는 것, 몰개성적이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특징들이 나쁘다, 좋다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요는 이런 특징들을 가지되 응모작들이 스스로를 한편의 시로 ‘성립’시키고 있는가를 가려내는 것이 우리 심사자들이 할 일이었다.
최소한 어떤 것이 시이기 위해서 갖는 조건, 즉 ‘시의 기본’을 모른 채 시 비슷하게 써서 시라고 우기는 것 같은 수많은 위조품들을 읽어야 하는 심사자의 고역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즉물적이다는 것은 사물을 주절이 주절이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헤프게 낭비하는 것, 동어반복하는 것은 시에서는 범죄일 수 있다. 또 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뭐가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넌센스의 나열이나 실패한 은유들을 가지고 시의 특권이라고 오해하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도 이 많은 투고작들이 어쩜 한 사람이 쓴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주었는데 이 개성의 표준화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위의 네편 최종심 대상작들도 이런 지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지점에서 스스로를 시로 성립시키는 힘이 있다고 여겨졌다. 최수연씨, 유희경씨의 두 작품을 놓고 고민하다가 ‘티셔츠에 목을 넣을 때 생각한다’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 우리는 동의했다. 최수연씨가 시를 다루는 데 더 유연해 보이는 점이 있지만 유희경씨가 상대적으로 더 참신해 보인다는 것이 이유였다. 당선자는 앞으로 한 권의 시집으로 자신의 시인됨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하모니카 부는 오빠 / [2008 문화일보]
문정
시 심사평 가벼운 산 / [2008 서울신문]
이선애 태풍 나리가 지나간 뒤, 아름드리 굴참나무 엇비슷한 수준의 작품을 놓고 논의를 거듭한 끝에 심사위원들은 ‘가벼운 산´을 당선작으로 결정했는데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의 참신성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노파의 손등에서 고통의 향기를 관찰한 시인의 시선은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솜씨와 더불어 눈여겨볼 만한 점이라고 하겠다. 삶을 바라보는 독자적인 시선이 시적 구도 속에서 빛날 때 남다른 작품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신춘문예 응모자들은 다시금 되새겨 주기 바란다.
오세영·최동호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2007 문화일보]
김륭
실직 한 달 만에 알았지 구름이 콜택시처럼 집 앞에 와 기다리고 있다는 걸
2.
구름을 몰아본 적 있나, 당신 3.
구름을 몇 번 몰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해나 달을 로터리로 낀 사거리에서 마음 내키는 데로 핸들만 꺾으면 집이 나오지 4.
아주 드문 일이지만 콜택시처럼 와 있는 구름의 트렁크를 열어보면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는 시적 발상과 그 상상력이 뛰어나다.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고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경쾌하기까지 하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현실의 크고 작은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될 정도로 마취당한 느낌을 갖게 된다. 그러나 그의 상상력에서 오는 이 위안의 마취력은 실은 현실의 고통에서 나온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의 능청스러운 독백이 시종일관 시 전체를 끌고 가는데, 그 화자는 실은 대응력이 결핍된 실직자다. 실직당한 이의 고통스러운 현실적 상상력이 이러한 역설적 상상력의 시를 낳은 것이다.
선자들은 그의 상상력의 뿌리가 견딜 수 없는 삶의 고통스러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에 크게 신뢰가 갔다. 엄숙함과 진지함에서 벗어나 이토록 경쾌하게 고통을 노래함으로써 우리를 위로해주는 시도 드물다.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천양희·정호승
결혼을 코앞에 두고
여자는 한강에 투신했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물은
여자를 결과로만 받아들였다
파문을 일으키며 열리고 닫히는 문
물은 떨어진 곳에 과녁을 만든다
어디에 떨어져도 적중이고 무엇이 떨어져도 적중이다
투신한 죽음도 다시 떠오른 삶도
물은 과녁을 만들어 적중을 알렸다
적중을 알리며 너는 왔다
온몸에 파문처럼 돋던 소름
빗나간 너의 말도 떨어지는 족족 적중했다
사랑처럼 민감한 것이 또 있으랴
이유 없이 떠나도 결과는 적중이었다
이유 없이 너는 가고
나는 안개 같은 거짓말로 너를
미워했다, 그리워했다, 지웠다, 썼다
사랑처럼 가벼운 것이 또 있으랴
구름이 되어 제멋대로 문장을 만들다
지치면 낱글자가 되어 떨어졌다
지금도 비가 온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네가 오고 있는 것이다
이 밤 이 세상에는 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투신할 것인가, 투신하는 족족
파문을 일으키며 적중할 것인가
심사평
예심을 거쳐 올라온 서른 분의 작품을 다시 검토해 본 결과 남은 작품은 ‘황소’(서은교), ‘아가리 마을’(이규), ‘가야동 계곡’(김순자), ‘아스팔트 칸트’(기우연), ‘입이 없는 비평’(최문희), ‘나무별똥’(문성록), ‘불안의 거처’(김지고), ‘일획’(정수원), ‘마네킹’(박정수), ‘소금밭의 기억’(김중곤), ‘바늘’(김명희), ‘파문’(이장근), ‘토마토’(하숙욱), ‘등피를 닦으며’(박선영) 등이었다.
비튼 문장이나 발상이 독특한 감각으로 살아나 신선한 감동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새로운 감수성이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표현하기까지의 데생의 기초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냥 시단의 한 흐름을 따르고 있는 난해한 아류의 것들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아버지가 다리미 하나 들고 세상 한 가운데 섰다. 비록 세상이 알 굵은 사포처럼 거칠다 해도 창가에서 응원가를 불러주는 벽돌만한 금성 라디오 벗 삼아 묵묵히 하루를 다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일감은 손목이 아리도록 다림질을 강요했지만, 세상을 배우는 수업료라 여겨 한번 숙인 고개를 좀체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점점 달인이 되어가던 아버지.
좋은 시는 참신한 발상과 세련된 말맛의 활용에서 온다. 참신한 발상은 전복적 상상력, 역발상, 반상합도 등의 언표로 요약되는 새로운 상상력을 뜻하고, 세련된 말맛의 활용은 활기 있고, 윤기 있고, 기품 있는 언어의 활용을 뜻한다. 물론 이런 뜻을 갖는 시를 쓰기는 쉽지 않다. 그것 자체로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전체의 진전된 심미적 의식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철길은 열려진 지퍼처럼 놓여있다, 양 옆으로
새벽마다 물안개를 뱉어내는 호수와
<시골밥상>이니 <대청마루>니 하는 간판의 가든촌이
연대가 다른 지층처럼 어긋나 있다
등 뒤로 떨어지는 태양이 그림자로 가리키는 북동의 방향으로
질주하는 춘천행 무궁화호 열차
지퍼를 채우듯 튿어진 자리를 꿰매며 달려가는 것은 열차의 속도였다
그곳에 자리를 튼 마을이 호수에 기대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가정식 백반>의 가정을 찾아 속도에 몸을 싣고 거꾸로 달린다
이곳에서는 두고 온 먼 곳의 시간을 추억하는 일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관람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박물관을 찾는 일만큼이나 자본주의적이다
직선의 끝에는 목적지가 있어
마을은 머지않아 먼지의 전시관이 될 것이다
곁길로 샐 수 없는 것이 슬프다는 것을 호수는 알고 있을까
튿어진 굴곡을 따라 살을 드러낸 풍경의 허리를 휘감고
돌아가는 기차, 가끔씩 창밖으로
활처럼 휘어지는 기차의 곡선을 본다면
퇴락을 거듭하는 호숫가 옆, 한 마을이 생각날 것이다
이문재, 정호승, 이숭원
이제니
빨강 초록 보라 분홍 파랑 검정 한 줄 띄우고 다홍 청록 주황 보라. 모두가 양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양은 없을 때만 있다. 양은 어떻게 웁니까. 메에 메에. 울음소리는 언제나 어리둥절하다. 머리를 두 줄로 가지런히 땋을 때마다 고산지대의 좁고 긴 들판이 떠오른다. 고산증. 희박한 공기. 깨어진 거울처럼 빛나는 라마의 두 눈.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여행을 한다. 내 인식의 페이지는 언제나 나의 경험을 앞지른다. 페루 페루. 라마의 울음소리. 페루라고 입술을 달싹이면 내게 있었을지도 모를 고향이 생각난다. 고향이 생각날 때마다 페루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이상한 일이다. 아침마다 언니는 내 머리를 땋아주었지. 머리카락은 땋아도 땋아도 끝이 없었지. 저주는 반복되는 실패에서 피어난다. 적어도 꽃은 아름답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간신히 생각하고 간신히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영영 스스로 머리를 땋지는 못할 거야. 당신은 페루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미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당신은 한국 사람입니까. 아니오.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입니다. 이상할 것도 없지만 역시 이상한 말이다. 히잉 히잉. 말이란 원래 그런 거지. 태초 이전부터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무의미하게 엉겨 붙어 버린 거지. 자신의 목을 끌어안고 미쳐버린 채로 죽는 거지. 그렇게 이미 죽은 채로 하염없이 미끄러지는 거지. 단 한번도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안심된다.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고 사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랑한다. 길게 길게 심호흡을 하고 노을이 지면 불을 피우자. 고기를 굽고 죽지 않을 정도로만 술을 마시자. 그렇게 얼마간만 좀 널브러져 있자. 고향에 대해 생각하는 자의 비애는 잠시 접어두자. 페루는 고향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스스로 머리를 땋을 수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양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말이 없는 사람도 갈 수 있다. 비행기 없이도 갈 수 있다. 누구든 언제든 아무 의미 없이도 갈 수 있다.
심사평- 뛰고 달리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쾌감
모두 열두 분의 시가 본심에 올랐다. 그 가운데 김란 씨의 ‘자벌레’ 외 4편과 이제니 씨의 ‘검버섯’ 외 5편이 마지막으로 논의됐다.
갈비뼈가 하나씩 부서져 내리네요
신선하고 맛깔스럽게 쓴 아주 따뜻한 시
말이나 감각도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문둥이가 사는 마을, 이랑진 무덤들 사이에도’는 열두 살 여름의 추억을 소재로 하고 있는 시로서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힌다.
신경림, 유종호
어느 날부터 그들은
바람을 신으로 여기게 되었다
바람은 형상을 거부하므로 우상이 아니다
떠도는 피의 이름, 유목
그 이름에는 바람을 찢고 날아야 하는
새의 고단한 깃털 하나가 흩날리고 있을 것 같다
유목민이 되지 못한 그는
작은 침대를 초원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
건기의 초원에 바람만이 자라고 있는 것처럼
그의 생은 건기를 맞아 바람 맞는 일이
혹은 바람을 동경하는 일이, 일이 될 참이었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불구의 기억들이 몸 안의 길을 따라 떠돈다는 것
이미 유목의 피는 멈출 수 없다는 끝을 가진다
오늘밤도 베개를 베지 않고 잠이 든 그
유목민들은 멀리서의 말발굽 소리를 듣기 위해
잠을 잘 때도 땅에 귀를 댄 채로 잠이 든다지
생각난 듯 바람의 목소리만 길게 울린다지
말발굽 소리는 길 위에 잠시 머무는 집마저
허물고 말겠다는 불편한 소식을 싣고 온다지
그러나 침대위의 영혼에게 종종 닿는 소식이란
불편이 끝내 불구의 기억이 되었다는
몹쓸 예감의 확인일 때가 많았다
밤,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은
바람의 낮은 목소리만이 읊을 수 있다
동경하는 것을 닮아갈 때
피는 그 쪽으로 흐르고 그 쪽으로 떠돈다
요즘 詩답지 않은 탁트임
‘무릎’ 등 5편의 작품을 투고한 조율의 경우 일상적 삶의 구체성에 바탕을 둔 치밀한 관찰과 묘사가 눈길을 끌었다. 그의 시는 감상이나 과장을 멀리한 채 삶의 신산함과 남루함을 적절하게 포착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투고자의 시적 발상이나 화법은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의 유형화된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반면 ‘추운 바람을 신으로 모신 자들의 經典(경전)’ 등 5편을 투고한 이은규의 경우 일상에서 시를 출발시키기보다는 관념에서 시를 끌어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추상적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는 작품을 관류하는 활달한 상상력 덕분에 요즘 시에서 보기 힘든 탁 트인 느낌과 더불어 세련된 이미지와 진술의 어울림이 주는 감흥을 맛볼 수 있었다. 두 선자는 이번 심사에서 일상의 세목에 대한 충실보다는 ‘바람을 동경하는’ ‘유목의 피’에 잠재된 가능성을 믿어 보기로 했다. 당선자의 시가 한국시의 비좁은 영토를 열어젖히고 나아가는 언어의 모험으로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이시영 시인
남진우 시인·문학평론가
1.
이 안은 비좁고 나는 당신을 모른다
식탁 위에 고지서가 몇 장 놓여 있다
어머니는 자신의 뒷모습을 설거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 쪽 부엌 벽에는 내가 장식되어 있다
플라타너스 잎맥이 쪼그라드는 아침
나는 나로부터 날카롭다 서너 토막이 난다
이런 것을 너덜거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
면도를 하다가 그저께 벤 자리를 또 베였고
아무리 닦아도 몸에선 털이 자란다
타일은 오래되면 사람의 색을 닮는 구나
베란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삼촌은
두꺼운 국어사전을 닮았다
얇은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간다
뒷문이 지워졌다 당신이 찾아올 곳이 없어졌다
간 밤 당신 꿈을 꾼 덕분에
가슴 바깥으로 비죽하게 간판이 하나 걸려진다
때 절은 마룻바닥에선 못이 녹슨 머리를 박는 소리
아버지를 한 벌의 수저와 묻었다
내가 토닥토닥 두들기는 춥지 않은 당신의 무덤
먼지들의 하얀 뒤꿈치가 사각거린다
황지우. 문정희 시인
오빠의 자취방 앞에는 내 앞가슴처럼
부풀어 오른 사철나무가 한그루 있고
그 아래에는 평상이 있고 평상 위에서는 오빠가
가끔 혼자 하모니카를 불죠
나는 비행기의 창문들을 생각하죠, 하모니카의 구멍들마다에는
설레는 숨결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죠
이륙하듯 검붉은 입술로 오빠가 하모니카를 불면
내 심장은 빠개질 듯 붉어지죠
그때마다 나는 캄보디아를 생각하죠
양은 밥그릇처럼 쪼그라들었다 죽 펴지는 듯한
캄보디아 지도를 생각하죠, 멀어서 작고
붉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 오빠는 하모니카를 불다가
난기류에 발목 잡힌 비행기처럼 덜컹거리는 발음으로
말해주었지요, 태어난 고향에 대해,
그곳 야자수 잎사귀에 쌓이는 기다란 달빛에 대해,
스퉁트랭, 캄퐁참, 콩퐁솜 등 울퉁불퉁 돋아나는 지명에 대해,
오빠의 등에 삐뚤빼뚤 눈초리와 입술들을
붙여놓은 담장 안쪽 사람들은 모르죠
오빠의 하모니카 소리가 바람처럼
나를 훅 뚫고 지나간다는 것도 모르죠
검은 줄무늬 교복치마가 펄렁, 하고 젖혀지는 것도
영원히 나 혼자만 알죠
하모니카 소리가 새어나오는
그 구멍들 속으로 시집가고 싶은 별들이
밤이면 우리 집 평상 위에 뜨죠
오빠가 공장에서 철야작업 하는 동안
별들도 나처럼 자지 않고 그냥 철야를 하죠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김강산의 ‘천렵’, 김연아의 ‘밤의 지평선 아래’, 김중곤의 ‘불알을 끼우며’, 문정의 ‘하모니카 부는 오빠’ 등 4편이었다.
이 중 ‘천렵’은 천렵의 의미가 은유화되지 못하고 지극히 식상하다는 점에서, ‘밤의 지평선 아래’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에서, ‘불알을 갈아 끼우며’는 해학적이라는 장점은 있으나 산문성이 강하다는 점에서 각각 제외되어 자연히 ‘하모니카 부는 오빠’가 당선작으로 결정되었다.
당선작 ‘하모니카 부는 오빠’는 현실적 고통을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고도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데에 큰 장점이 있는 시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아픔으로 느끼게 해주는 게 아니라 극복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힘 같은 것으로 느끼게 해주는 미덕이 있는 시다.
그래서 이 시는 전반적으로 화사하다. 그렇지만 그 화사함이 추하거나 가볍지 않고 따뜻하고 정답다. 진솔하고 꾸밈 또한 없다.
마치 한 소녀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꿈과 희망의 속삭임을 듣는 것 같다. 현실 인식의 시들이 대체로 부정적이고 어두운 데 반해 이 시는 긍정적이고 밝다.
캄보디아에서 온 한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삶 속에 있는 ‘킬링필드’의 고통조차도 모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아름다운 부분이 있다. 앞으로 큰 시인으로 성장해나가길 기대해본다.
심사위원 오세영·정호승
등산로를 막고 누워 있다.
오만상 찌푸리며 어두운 땅속을 누비던 뿌리
그만 하늘 향해 들려져 있다.
이젠 좀 웃어 보라며
햇살이 셔터를 누른다.
어정쩡한 포즈로 쓰러져 있는 나무는 바쁘다.
지하 단칸방 개미며 굼벵이
어린 식구들 불러 모아
한 됫박씩 햇살 들려 이주를 시킨다.
서어나무, 당단풍나무, 노각나무 사이로 기울어진 채
한 잎 두 잎 진창으로
꿈을 박고 있는 굴참나무
제 뼈를 깎고 피를 말려 숲을 짓기 시작한다.
생살이 찢겨 있는 굴참나무,
그에게서는 고통의 향기가 난다.
살가죽의 요철이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탁한
밥장수 할머니의 손등만 같다.
끝내 허리를 펴지 못하는
굴참나무가 세로로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굴참나무가 쓰러진 것은 태풍 나리 때문이 아니다.
나무는 지금 저 스스로
살신성인하는 중이다, 하늘 가까이 뿌리를 심기 위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돋보여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 온 시편들을 정밀하게 읽고 이에 대해 논의한 다음 다시 최종심의 대상을 다섯 편으로 압축하였다.‘낡은 피아노에는 빗소리가 난다´(송인덕)는 자연스러운 시상의 전개가,‘난초와 칼´(이연후)은 이미지의 선명성이,‘양치하는 노파´(한세정)는 시적 함축성이,‘바닷가 떡집´(김영진)은 진득한 삶의 감각이,‘가벼운 산´(이선애)은 시적 발상 전환이 돋보였으나 각각 그 나름의 약점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시편을 놓고 좀 더 범위를 좁힌 결과 세 편의 시가 남게 되었다.‘난초와 칼´은 이미지의 선명성은 두드러지지만 대립구도가 너무 단순하고,‘가벼운 산´은 시적 발상 전환이 참신했으나 설명적인 부분이 시적 밀도를 약화시켰으며,‘낡은 피아노에는 빗소리가 난다´는 자연스러운 시적 전개가 강점이지만 상식의 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웠다.
1.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내 머리에 총구멍을 낼 거라는 확신만 선다면 얼마든지 운전이 가능하지
총각이나 처녀 딱지를 떼지 않은 초보들은 오줌부터 지릴지 몰라
해와 달, 새떼들과 충돌할지 모른다며 추락할지 모른다며 울상을 짓겠지만
당신과 당신 애인의 배꼽이 하나인 것처럼 하늘과 땅의 경계를 가위질하는 것은 주차딱지를 끊는 말단공무원들이나 할 짓이지
하늘에 뜬 새들은 나무들이 가래침처럼 뱉어놓은 거추장스런 문장일 뿐이야
쉼표가 너무 많아 탈이지 브레이크만 살짝, 밟아주면 물고기로 변하지
붉은 신호등에 걸린 당신의 내일과 고층아파트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보다 깊은 어머니 한숨소리에 눈과 귀를 깜빡거리거나 성냥불을 긋진 마
운전 중에 담배는 금물이야
차라리 손목과 발목 몇 개 더 피우는 건 어때? 당신
꽃 피우지 않고도 살아남는 건 세상에 단 하나, 사람뿐이지 왔던 길을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건 새가 아니라 벌레야
구름이란 눈이나 귀가 아니라 발가락을 담아내는 그릇이란 얘기지 잘 익은 포도송이처럼 말이야 그걸 아는 나무들은 새를 신발로 사용하지
종종 물구나무도 서고 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구름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소란스러울까
죽은 애인의 머리통이나 쩍, 금간 수박이 발견되기도 해
초보들은 그걸 태양이라고 난리법석을 떨지
김 륭 (본명 김영건) 1961년 경남 진주 출생. 1989년 조선대 중국어과 졸업.
[심사평]
시적 발상·상상력 뛰어나… 현실고통을 경쾌하게 노래”
최종심까지 논의된 작품은 최찬상의 ‘폐가 앞에서’, 이용헌의 ‘게발’, 김륭의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 등 3편이었다. ‘폐가 앞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무난하고 안정돼 있다는 점에서, ‘게발’은 시적 형성력이 뛰어나고 감동을 주는 부분이 있으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점이 다소 진부하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어 ‘구름에 관한 몇 가지 오해’를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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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008년 신춘문예 당선작 스크랩합니다. 이옥선 시인님께서 올리신 글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