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우나를 꽤나 즐긴다. 홀가분하게 벗은 상태에서 땀 흘리는 것이 그냥 좋다. 거기에 느물느물한
몸가짐으로 세상을 달리 보는 거드름이 일어날 때는 영락없는 나태한 고대 로마 제정의 원로가 스스로 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 세상을 난세로 볼
것인가..그들이 생각했을 법한 주제이다. 하지만 난 나 자신 돌보기도 바쁜 몸이다. 들어갈 때부터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니 그곳에 들어서면 으레
딴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딴생각이란 공부할 때나 일을 할 때 그것에 빠져 오로지 그 생각만을 하는 것과 같은 요령이 아닌 처한
상황과는 전혀 동떨어진 엉뚱한 기지나 사고를 발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도 로마의 원로들도 발가벗은 채 몽상을 꿈꾸듯 한 그 모략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사우나는 엉뚱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는 그때가 제일 달콤하다. 땀도 별 무리 없이 질퍽질퍽 흘러내리며
기분을 업 시키기에 좋은 조건을 만들어준다. 마치 불순물을 쏟아내며 정제되는 금덩이마냥 고결해지는 비장한 해방감으로 가혹한 조건임에도 얕은
흥분이 일어나기 까지 한다. 나는 아무래도 사우나를 비질비질 밀려나오는 땀과 집중되는 소나기같은 딴생각 때문 즐긴다고 보아야 할 것같다.
그곳에서의 딴 생각은 분명 쥐어짜는 땀방울만큼이나 다른 때보다 더 뚜렷이 영상미를 진하게 나타내준다. 그래서 그곳의 딴생각의
대상은 특혜를 부여받는 꼴이기도 하여 당연 즐거웠던 일에 대한 되새김질이나 희망적인 사항에 대한 상상의 미래를 엿보는 것 같은 좋은 느낌들만을
선별하여 꾸민다. 그런 소재가 빈약할 처지면 글 쓸 소재에 대한 전개를 그곳에서 펼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달콤한 시간이란 머무는
전체 5분정도에서 실제 2분정도는 열기의 고통으로 늘 사고의 훼방을 받으니 따지고 보면 고작 3분을 넘지 못한다. 세 번을 들락거린다 치면
10분정도의 여유를 위해 나는 그 사우나에 가는 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즐거운 영환 3분짜리라도 그 맛이 기가 막히고 재탕을 하여도 더욱더
각색되어 짜임새가 더해진다 싶을 뿐 지루한 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사우나 탕 안에서다. 또 딴생각이다. 욘사마 덕분
‘예당’이라는 주식이 부쩍 오른 것에 대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상황을 전개하였다. 물론 각본에 연출이 모두 나이고 주인공도 어김없는 나이다.
길목을 지킨다는 입장으로 작정을 하고 달포전 사들인 주식이었는데 무척 애를 태웠었기에 찾아드는 희열감이란 슬로우 비디오 찍듯 과거를 돌이켜
찬찬히 느껴볼만한 가치가 내게는 충분한 것이었다.
이를테면 그 상황은 마치 영화처럼 세세히 펼쳐진다. 비록 3류지만 절망도 있고
클라이막스도 있다. 그 주식을 기웃한 것은 의구심이 반도 넘는 험난한 모험의 시작이었다. 이는 터벅터벅 걷는 황무지 외길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3분짜리 절망은 없다란 제목의 그 영화는 시작된다. 외국인들이 죽창 팔기만 하였으니 겁 없이 달려든 나는 필시 한꺼번에 열댓 명을
상대해야 하는 삼총사에 촌티 나는 ‘달따냥’ 같은 존재였다.
더욱이 본격적으로 연말에 본격적으로 예당소속 가수 이정현이 일본의
가요무대에 오른다하는 뉴스가 나왔음에도 주가는 꿈쩍을 아니했으니 그 절박함이란 극에 달한 것이었다. 목이 타고 숨이 막힌다. 다이하드란 영화에
주인공 ‘부르스 윌리스’의 잔뜩 찌푸린 얼굴이다.
끝내는 외국 증권사가 대량 매물을 던지며 그 달 들어 최악으로 주식이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이에 굴할 주인공이 아니다. 신념만이 남았다. 정열을 다해 샌드백을 두들기는 영화‘록키’의 심정이다. 음반저작권의 국회 통과와
더불어 LG텔레콤과의 온라인 음악서비스 실시란 호재가 아직 남아 있지 않은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 벌어졌다.
욘사마
열풍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달력도 불티나게 팔린다하더니만 드디어 항구에 빨간 배가 들어왔다. 아침 9시 반 살짝 오르더니 맛만 보인다. 하지만
느낌이 전과 다르다. 입질이 좋다. 분명 대어다. 시원찮은 놈들은 이쯤해서 얼른 팔아치우고 떠나라하는 신호 같기도 하다. 이윽고 10시가 되니
본색이 드러났다.
외국인들이 가세를 하더니만 30분전보다 곱은 더 오른다. 이쯤에서 팔고나가라고 계속 그 가격대이다.
7400원이라, 조금은 파는 시늉이라도 해줄까 하다 머문 것이 즉효다. 상종가가 7950인데 7900이다. 이 정도면 감나무 끝에 까치밥은
남겨 둔 것이리라. 아낌없이 던진다. 3분짜리 영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가뿐하기는 하나 아직까진 통쾌하진 않다. 수분이 지나더니 아뿔싸
7600원을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횡재를 한 것이란 말인가. 횡재! 횡재!
막이 내리는 그 순간 얼떨떨하다 싶어 주위를
보았다.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일제히 쳐다보고 있었다. 가만 생각하니 머릿속의 내가 나도 모르게 크게 뭐라 발설을 한 모양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런 것이 앞에 사람이 웃으며 무슨 말이죠 한다. 그 정도로 내가 영상에 취해 있었단 말인가. 낮 부끄러워 고개 들기도 민망하다.
슬그머니 자리를 비집고 나왔다. 미치는 건 간단하단 생각이 든다.
나는 이렇듯 걸맞지 않은 상상력까지 유감없이 동원하여 자위감을
느끼곤 한다. 10분 정도의 느낌으로 하루 24시간이 후딱 지나가는 기분이 된다. 내게 있어 그 상황, 삶의 질시는 곧 땀이고 삶의 대박은
딴생각에서 마냥 즐겁게 노는 것과도 같다. 나의 일상의 피앙세는 바로 꿈결같은 그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절실히 꿈을 꾸고
싶은 때가 내게 있었던가 싶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십 편씩 떠오르던 그 꿈들을 다 내다버린 그 시절이 내게 있었으니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한 과거이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도 가져본다. 현실과 미래가 적당하게 섞여져 미래를 현실로 잠시 엿보기도 하고 지나친 과거를 엮어
현실감 있게 영상을 느끼며 그러면서 나 자신을 보살피니 말이다.
헌데 하나 요즘 들어 느껴지는 것이 내게 있다. 꿈은 꿀수록
현실에 가까워진다는 느낌이다. 분명 그러한 기분이 든다. 어제의 꿈이 오늘의 현실이 되기도 하지만 좋았던 때의 기분을 연상하여서도 어느새 쉽게
좋은 것이 눈앞에 바로 띄기도 하고 내일이 좋을 것이란 예감도 편하게 찾아든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좋은 생각에 좋은 느낌을 늘 가까이 해
미래는 좋은 것들로 꽉 들어차게 하여야 할 것 아니겠는가 싶어진다. 그래서 남들이 말을 그렇게 하였나 보다. “좋은 꿈 꿔, 내 꿈
꿔....”
옷을 다 벗고 옷장에 달린 열쇠 문고리를 막 잡아당길 때였다. 고함치는 소리가 바쁘게 들려왔다. 영어로 말을
한 것인데 분명 영어는 아니었다. 할로우! 어이 할로우! 그 말과 거의 동시에 웬 껑충한 사람이 옷장 옆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할로우를 된장 티 나는 발음으로 한 나이든 관리인이 달려오다시피 나타났다. 그렇게 보이는 것이 거의 일순간이었다. 그때서야 그
키 큰 친구를 제대로 보니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무슨 급한 일이 났나 싶어 이방인을 언뜻 위아래를 훓었는데 알아차리지는
못하였다. 관리인의 손끝을 보고 비로소 알아차릴 수 있었다.그는 신발을 신은 채 들어왔던 것이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채 엉거주춤 서 있는 그
친구를 보자 순간 웃음이 튀어 나왔다. 신발장을 찾지 못하고 어눌한 행동이 계속 이어졌다. 조금 거들어주니 바로 환한 웃음이다.
의식의 차이다. 사는 방식이 다른데서 오는 단지 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뿐이다. 문화의 차이에 따른 이런 의식의 차를 외국
나가서 안 겪어 본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렇게 다르게 사는 방식이 궁금도 하여 기웃하는 점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몇년전 일본과 미국이 외교적
분쟁까지 일어날 뻔 한 사건이 하나 있었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이 미국인 집을 밤늦게 찾아가다가 죽음을 당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재판
결과가 문화적 느낌의 현격한 차로 전혀 다르게 받아 들여져 그리 되었다.
집안 쪽에서 누군가 침입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FREEZE(꼼짝마)라 경고 한 것인데 그는 PLEASE(어서 오세요)로 잘못 인식하였던 것이다. 이 상황 누구를 원망하랴.. 그대로 발포하여
그 일본인이 죽고 만 것이다. 이는 언어와 문화적 차이가 보여준 극단적인 단면의 예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서구쪽과의 문화적인 차이라 하는
것들 중 가장 대표적으로 인식 되는 것 중 하나가 저녁때의 상가들 일찍 문 닫는 풍경이다. 큰 도심지 한복판을 빼고는 저녁8시면 웬만한 상가는
거의 문을 닫아걸기에 실지 이방인은 그 시각 나돌아 다닐 곳이 마땅치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때마다 번번이 느끼는 것이 역시
우리나란 남자들의 천국이란 생각이다. 개방적일 것이란 일반적 생각과는 달리 실제 서방인은 너무도 가정적이고 보수적이다. 십여 년 전
독일친구들하고 일을 같이 한 적이 있다. 핵연료제조 국산화 사업의 일환으로 독일친구들이 1년 남짓 우리 동네에 살 때인데 부부가 떨어져 살면
그것도 이혼깜이라고 같이 들어왔었다. 그 친구들은 꽤나 구두쇠에 성실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때 라인강의 기적이란 것을 실감 하였었다. 어느 날
아침 파트너 하는 일이 기특도 하여 불시에 그들이 슬쩍 눈여겨만 보았을 룸싸롱이라는 곳을 데리고 가마 하였었다.
좋아라 하면서도
적이 당황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유인 즉 미리정한 약속이 아닌지라 집에 양해를 구하는 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아마도 전화
한 통화로 ‘ 나 오늘 좀 늦어’ 그 정도면 그래도 잘 한 것에 속하는 정도 쯤 될 것이라 믿어지는데 그들에게는 전혀 그런 말이 안 통하는
거였다. 그렇다고 은근히 가고 싶었던 그곳을 마다 할 수는 없었던지 그 친구는 약속시간을 꽤나 늦춰 달라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는 초저녁 노력봉사를 성실히 수행하고 겨우 그곳을 빠져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그곳에 간 것이 문제였다. 그 친구가 여자가 그려진
성냥갑을 소홀히 간수한 덕분에 그의 아내가 룸싸롱에 간 것을 눈치 채고 만 것이다. 이후 그 친구는 밤 외출이 금지된 상태로 살다가 독일로
돌아가야만 했다. 요즘은 우리도 비교적 그런 풍경을 많이 닮는 듯싶은데 나는 술타령에 뭔 핑계로 늦은 귀가가 여전하면서도 그 주제에도 늘
큰소리다. 늦은 시각 오늘도 하는 소리다. ‘ 출출한데 라면 좀 끓여.’
그런데 그 말을 지당한 분부로 여기고 졸린 눈 비비며
식당으로 향하는 아내다. 참 그러고 보면 여잔 우리나라가 최고인 거다. 거기에 한 소리 더한다. ‘어디 누구라고 그 시각 졸고 있어, 남편도 안
들어 왔는데.’아내 말이 또 가관이다. ‘ 조금 전 까지 생생했는데 드라마 끝나고 깜빡했네. 미안 해 ’ 가만 생각해보니 이러다가 늘그막 큰 일
나지 싶어진다.
적당히 스스로 알아 챙기기도 해야지 싶은데 또 그것이 그렇지는 않다. 나서서 설거지를 돕는다던지 방 청소를
한다던지 하면 나오는 말이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그러면서 자기 자리를 빼앗긴다 싶은 것인지 ‘그렇게 닦아서는 하나마나에요’ 하며 얼른
되찾아 버리니 봉사도 쉽지는 않다. 그저 모르는 척 예전처럼 큰 소리 뻥뻥치며 사는 대로 살아야 할 모양이다. 아내 역시 그렇게 살 팔자인 양
여기는지 뾰루뚱한 기색의 그림자조차 엿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 구식으로 사는 지금의 방식이 그저 좋다. 밥은 커녕 이불 한
번 내가 알아 스스로 핀 적이 한 번도 없다. 늘 심하다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다보니 요즘 조금은 걱정인 것이 아들놈들이다. 나야
팔자가 그러하니 그렇다 하고 저 놈들 요즘 세상 나같이 하는 것이 당연한 건 줄 까불다가는 혼 줄이 날 것인데 늘 보아온 것이 애비 그 짓이니
참 그것이 고민이다. 할 수없이 의식 차 적게 나같이 하고 사는 집에 딸 애를 며느리감으로 미리 봐두어야 할까보다. 그래서 요즘 들어 유심히
살피는 것이 나같은 한심이에 딸 있는 집이다.
나는 매일 아침 7시 30분에 아파트 문을 나선다. 회사를 가는 것이다. 알고 보면 나의 그런 일련의 반복적인 행위는
무척이나 많은 의식을 수반하고 있다. 쉬운 것이 아니다. 아마도 원시인을 불러 와 지금 나 같이 해보라 하면 절대로 가당치 않은 경우가 될
것이다. 나는 우선에 글자를 알고 있으며 시간의 개념을 갖고 시간을 쪼개어 행위를 할 줄 안다. 숫자를 아는 것이다.
밥에 무슨
반찬을 어떻게 먹고 옷을 어떻게 입고 나서야 할 것인지 당연 알고 있으며 화장실에 엘리베이터 타는 법까지 아무렇지 않게 다루고는 여유 있게
시간을 질끈 동여매고 나서는 아침 길이다. 문명을 안다. 어찌 그 뿐이랴. 집을 나와서는 운전을 하기위해 차에 오르는데 이를 위해 고도의 기술을
터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 ‘출근 한다’ 하는 그 한마디 문구에는 나에 대한 세상의 무수한 정보가 들어 있기도 한 것이고
그것을 하기위해서는 적어도 수십만 가지의 문명의 것을 섭렵했다는 사실을 미루어 추론할 수도 있다. 나란 사람은 그런 의식이 뭉쳐져 오늘의 나를
이루고 있다. 나에게 그런 의식이 뒷받침이 안 된다면 아마도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 그러니 문명의 세계에 제대로 버텨 살기란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한 나를 이루는 의식들 중에 번번이 낭패감을 갖고 대하는 것이 있다. 어릴 적부터 그러했다. 나는
반복되는 동작이나 말을 잘 따라하지 못한다. 같은 말을 스무번 하라하면 손으로 꼽으며 하지 않는 이상 거의 틀리고 동요 리듬에 맞추어 율동을
따라 배우고 다시 하라하면 그것은 100% 중간도 못가서 멈추고 만다. 나는 그래서 어릴 적 운동회 때 하는 율동은
늘 왕따였으며 교련시간의 총검술은 거의 나의 코미디극이었고 청춘 시절 뺑 둘러 앉아 손동작에 이어 상대방을 지적하며 이어지는 레크레이션
게임은 거의 죽음이었다.
왼손을 버쩍 들어 두 번 하늘위로 올리고 오른 편으로 옮겨서 또 다시 두 번 하고 고개를 하늘을 향해 세
번 뒤로 젖히고 하는 이어지는 자세를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말로는 알 것 같은데 행동으로는 그렇게 그대로 안 되었다. 듣자하니
뇌세포의 안정적 바닥 배열을 깔기 위해 교육적으로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그러한 반복적인 율동이나 말이라는데 아무래도 나는 안정적
배열이 미진하였던 모양이다.
그럼에 한편으로 나를 살펴보면 대견스럽기도 한 구석이 있기는 있다. 반복을 거부하면서도 늘 하는 것이
반복되는 일이고 반복되는 것 속에 또 반복을 거듭하며 오늘을 사는 나이기도 하니 그렇지 않은가. 역사가 되풀이 된다 하듯 내가 반복적으로 밥
먹듯이 해치우는 것들이 다 그런 부류인데 용케도 잘 버텨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허기사 지긋지긋하게 죽을 때까지 따라 해야 할 반복되는 말이나
행위를 누구인들 좋아 하겠냐 만은 그래도 그 반복되는 일엔 보이지 않은 틈을 비집고 늘 새로운 것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냥
그대로의 반복이라 하면 그 반복은 퇴보에 퇴행을 맞을 것인데 오늘을 사는 우리의 반복은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새롭게 둔갑하기도 하고 탈바꿈되어
대체해 나가고 있다. 설령 그 달라진 몸짓이 너무도 미세하여 전혀 느껴지는 것이 없는 답답함에 기착된다하여도 일단은 잠재적으로나 잠정적으로
뜸을 들이며 변하고 있다고 보아 주어야 한다. 매일같이 보는 내 몸이 어제와 오늘은 전혀 차이가 없다 여겨지는데 분명 3년 전 과는 다르게
보이는 이치와도 같이 나는 변하고 있으며 세상 또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쯤에서 의식의 고착화란 말을 끄집어내고 싶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강해지는 것이 바로 그런 붙들어 매어두고 싶은 의식, 그 고착이 아닐까 싶다. 묘하게도 정신적 여명이 깃들어 얼굴이 서서히
변하던 때는 고집은 있으되 편견은 적어 별 무리 없이 용서도 하고 잘 적응도 하였건 만은 나이 들어서 하루가 다르게 얼굴이 달라지는 때에
이르러서는 고집은 없다 하면서도 편견은 그득 쌓여 굳어진 고착화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쉬 늙는다.’나
부터가 점점 더 꽁해지고 뒤돌아 앉아 소사회를 보는 눈이다.
언제 쯤 이러다 사회는 등 돌리고 말 것이란 막연한 허무감이라도 갖고
있는 것인 양 누군가란 대상도 막연하면서도 ‘야속’이란 단어를 곧잘 머릿속에 짊어지고 다니기도 한다. 그 중 가장 쉽게 몰매를 맞는 것이 바로
정치이다. 물론 현실이 답답하니 그렇다 하지만은 내게 느껴지는 다른 눈은 바로 의식의 소외에 대한 격정이다.
나이든 사람이 삼삼오오
모였다하면 그것도 배운 사람이라면 더욱 더 가멸찬 것이 정치 흠집 내기이고 흉이다. 젊은 친구들이 선거 철 아닌 평소 때 정치 흉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과거 ‘시니컬하다’ 하는 말은 정치가 황폐화 되던 시절에 지식의 창과 동 떨어진 세태를 비꼬아 지성인이 많이 쓰던 말인데
현실의 뒷전으로 밀려날 조짐이 있는 나이든 사람들이 그것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나는 한 때 잘 나갔다고
칭하던 사람들이 돌아앉아 하는 소리를 그래서 귀담아 듣지 않는 편이다. 실천 없는 비아냥은 이미 내 스스로에게 진력이 나있기 때문이다. 나는
고착화된 마음이 풀어진 허리 꾸부정한 시골 할머니의 눈빛과 말을 하고 싶고 비록 투박하다 하나 여전히 의식이 여린 어부에게 다가가 술 한 잔
얻어 마시고 싶고 손 하나 잘려나간 어설픈 노동자가 차린 선술집에 들러 그의 삶의 의식을 마저 터득하고 싶다.
경로당에 모인
사람은 모두 다 교장선생님 출신이라는 말, 그 자체가 꽤나 시니컬한 표현이라 느껴지는데 그런데 그 나이 들면 나 역시도 훈계조 의식만이 남아
그렇게 될 것이란 생각을 떨칠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전혀 다른 사고의 느낌을 자아내는 의식의 샘을 부지런히 파볼까 하는데 아무리
의식을 곱게 가꾼다 하여도 역사는 반복되는 격이니 그 나이 들어 시니컬한 기운이 조금 달라지는 면은 있겠지만 크게 달라지기야 하겠는가. 몸도
굳어지고 마음도 굳어져 그러다가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겠는가 싶기도 하다.
혼자의 세계에 몰두한 나머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되풀이되는 양상에 이르렀다면 남들은 당연 나를 다른 각도로 해석할 것이다. (의식 1의 경우처럼) 이방인도 아닌
사람이 그 시대에 맞지 않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하였다 하여도 아마 달리 나를 보았을 것이다.(의식 2의 외국인의 경우라면)
의식이 너무도 편협하여 상대가 자꾸 떠나 간다하는 것도 어쩌면 소외감에 외톨이로 전락하여 같은 경우를 낳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싶기도 하다.(의식
3의 낡은 지성인의 경우)
이런 일련의 생각들은 로마제정의 원로처럼 목욕탕에 앉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대며 꾸민 모략에 가까운
앞뒤를 다 맞춘 글이다. 실은 어는 한사람에 대해 기억된 느낌을 글을 옮기려 하였더니 감히 엄두가 안나 접해 본 의식적인 나의 글이다.
구체적으로 말을 하자면 의식에 대한 이상적 징후에 대하는 전제를 하려 하였으나 신경 정신학적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없다보니 감히
대들지 못하고 나름 구분하여 나타낸 것인데 그렇다고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든 것은 아니다. 어쨌거나 나는 의사는 아니지만 유전적 결함에 기인한
정신병은 그러하고 돌연 발생한 정신 이상에 관심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연구소엔 과거 그런 사람이 몇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증세가 엿보이는 사람이 있다고 말을 해야 맞을 것이다. 아니 모든 현대인은 정신적으로 어느 정도 뒤틀려 있다고도 하니 정도의 차이 일뿐이란
생각도 든다. 그런데 내 근무처의 경우는 연구는 제대로 하는데 그 밖의 행위가 일반적인 의식하고는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 참으로 의식이 묘하다는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흡사 사람들이 많이 모인 좌석에서 공공연하게 보란 듯이 코딱지를 후비는 나름의 자연스러운 행위라고나 할까.
내 기억 속에 참으로 안타깝게 지켜보았던 사람이 한 사람 있다. 3년 전 겨울 유성호텔 사우나에서의 일이다. 처음 그를 스쳐
지나치며 볼 때는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더욱이 그는 사우나탕엔 절대 들어오지 않았으니 나와 마주할 일도 없었다. 사우나에서 나와 잠시
냉탕에 몸을 식히던 때이다. 조금 전에 스쳐 지나쳤던 그가 눈에 띄었다. 홀 안을 빙빙 도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는 뒷짐만을 지고 유유히 도는 것만은 아니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은 손을 치켜세우기도 하면서
무어라 말을 하는 듯도 보였다. 어지간해서는 그 표정이나 하는 행위가 사뭇 진지하고 자연스러워서 눈에 뜨일 정도도 아니었다. 나 역시도 처음엔
조금은 이상하다 하면서도 그냥 넘겨버리고 말았으니. 열탕을 다시 다녀와 호기심에 본격적으로 그를 관찰하였다.
그는 무척
정확하였다. 뒷짐을 질 때도 항상 오른 손이 위에 얹혀져있었고 다섯 걸음을 띠면 정확히 멈추었다가 이내 오른 손을 꺼내 무엇인가를 따지듯
지적하듯 하는 시늉을 내고는 오른 손을 다시 돌려놓고 또 걷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다섯
발자국을 띠면 또 멈추었다. 혹시나 가는 도중 방해물에 걸리면 어쩌나 싶어 보았더니 용케도 잘도 피하며 하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의 행동을 사우나 안에서 그대로 재현해 보았다. 그렇게 의식적으로 똑같이 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다가 보면 뜨거운 물이 흘러 얼굴도
훔쳐야 하고 손도 가렵고 발도 미끄러우니 움츠리기도 하여야 할 것이니 이를 다 살펴가면서 그리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인데 그는 전혀
흐트러짐 없이 그것만을 반복하니 참으로 모를 그의 의식인 것이었다.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분명 몰두를 하고는 있는 것이다 싶어지니
더욱 답답하였다. 혼자 중얼중얼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가르키는 손끝이 아래인 것이 나이어린 학생들을 가르쳤던 선생은 아니었을까.
자연스런 반복 행위이니 마지막 중얼대는 제스쳐만 빠진다면 그런대로 남들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를
또 다시 지켜보았다. 보면서 그의 눈빛을 보았다. 어딘가에 잡힌 듯 매달린 듯 한 눈빛이다. 주변이 들어오지 않을 빛 같은 것이 꽉 차여
있었다. 제발 마지막 중얼대는 것만 빠져 준다면 좋으련만 그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렇게 쉴 새 없이 탕 주위를 수십 번 돌더니만 태연하게
시계를 보는 것 같이 손목을 살피더니 온탕에 한번 들어갔다가 나와서는 홀을 빠져 나가버렸다.
그렇게 나는 그를 겨울 내내
지켜보았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듣자니 그 전부터 겨울만 되면 나타난다고 하였다. 그 전 해에는 아들도 데리고 왔다고
하였다. 그런 그가 작년부터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잘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솔직히 잘 될 공산이 있겠는가. 그를 저토록 가련하게 붙잡는 것은
그 무엇일까. 알 것 같으면서도 전혀 모를 의식의 세계다. 저 반복되는 의식의 사슬만 끊어진다면 그는 온전할 것 같은데 말이다.
나의 의식, 반복되는 것에 공포를 갖고 있다는 나의 의식이다. 삶의 반복을 자주 거부하니 이럴 때 천만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삶은 어차피 반복이다. 혹여 반복되는 삶에 진력이 난 나머지 탈출을 하다 반복의 원귀가 노하여 의식에 들어앉아 그는 죽을 때까지 저렇게
할 운명으로 바꿔 논 것은 아닌가. 아니면 반복의 노예로 충실히 살다보니 저리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결박이 깊숙이 채워진 것이던가.
그렇다면 이도 저도 아닌 척 삶의 반복도 적당히 해 두고 그리해선 못 견딜 요량이면 몰래 탈출도 감행하다가는 모르는 척 넉살좋게
살다 말 내 의식이던가. 아마도 적당하다는 그런 것이 바로 자연스럽다 하는 것이고, 의식도 의식 나름 강과 약이 구비되고 높고 낮음이 같이
노닐고 깊고 낮음이 한데 어울려 의식에 귀천이 없다 할 마음의 여정을 만든다면 그런대로 흐르는 구름처럼 두리둥실 한 세상 그런대로 볼 만큼 구경
다하고 갈 의식의 세계가 아니겠는가 싶다.
의식 또한 유리그릇과도 같아서 투명한 만큼 맑고 선명한 것을 사랑하고 깨질 듯한
의식의 충격에는 당해내기가 어려우며 누르는 정도가 지나친 강박에는 여지없이 깨지고 마는 것 아니겠는가 싶어진다. 유리그릇은 한번 깨어지면 다시는
그릇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우리의 인생 또한 바로 유리그릇과도 같이 매일 닦고 투명하게 하지 않으면 맑고 향기로운 의식의 빛을 간직하여 살기는
어렵다. 요즘 내 주위에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들 틈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나의 삶의 지평이다.의식은 늘 일깨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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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는 쉽게 스러지거나 죽지
않습니다. 생각이 깊은 사람 또한 때론 아플 수 있겠지만 쉽게 병들지 않는답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기다리는 숙명적 사건이
아닌 능동적인 인간 활동의 하나로서 배워 익혀야 하는 하나의 기술로 지적하였지만 실제로는 운명적 선고로서 귀납되는 습성을
지녔기에 처한 입장에 따라 전혀 다른 색채로 그려 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은 늘 맑지 않습니다. 맑지 않아도 밝은
마음으로 바라다 볼 혜안의 시선 그 소유가 되고 싶습니다. 이제 남은 사랑의 조각은 그러한 운명의 그림자로서 흘려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갖고 싶습니다. 사랑을.
오늘 물안개 짙은 공간은 무척이나 더딘 아침을 만들어냈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거역할지 못할 그 공간의 답답함이었습니다. 하루의 환한 공간을 갖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지나쳐 가는
것입니다. 문득 내게 남은 삶의 조각 그 파편들이 뭉게구름 되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버리지 않는 유일한 희망은
바로 남은 사랑을 찾는 것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지금이 더 늦기 전에 그의 말을 실천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가 주창하는 사랑의 기술은 사뭇 동양적으로 주시하고 명상하는 그 가운데 사랑은 생긴다고 했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갖게되는 수많은 좌절과 삶에 대한 회의는 사랑의 기쁨 그 운명과도 같이 결국 두터운 털옷을 입고 조용히 잠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 털옷은 비록 닳아 버렸어도 아마도 따뜻한 느낌으로 끝나기를 원할 것입니다. 깊이가 적어 덥게 느껴지거나 너무도
엄격하여 추워진 털옷이 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색의 그늘 아래 그 터를 차지한 포근한 느낌의 털옷이라면 따뜻하다는
마음의 향연을 기술로서도 터득하지 않을까요. 사색이란 뿌리깊은 나무와도 같은 것입니다. 쉽게 잃어버리거나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그윽한 사색의 뜰을 가꾸기 위해 이 나이 에리히 프롬의 사랑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찾아온
번민을 주저하거나 마다 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이젠 칠십 넘어 죽을 때까지 사랑을 한 괴테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을 갖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기술을 오늘부터라도 다시 배우렵니다. 다시 시작하는 저의 글
사랑입니다.
사랑은 영혼의 건강이기에...
제 짧은 글을 읽어주시는 님들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저는
정유생 닭띠로 대전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원자력연구소에 다닙니다. 책임연구원으로 기계공학 열유체를 전공하였습니다. 그러니
이곳의 제 쉼터는 전혀 제 먹고 사는 것과는 무관한 일탈을 꿈꾸는 세월의 피앙세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시설과장에 첨단
방사선연구센터에기술실장을 겸임하고 있습니다. 아들 둘을 두었고 근무처 가까운 어은동 한빛아파트에 삽니다. 한국수필로는수필로
등단을하였으며 격월간지 문학저널로는 시 신춘문예가 당선되었습니다. 제2회 천상병문학제에서 시사문단작가상을 받았고 지금은
수필집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 초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쯤 다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