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무반주첼로-104회
2016년 하늘 공원 호수에서
나이를 헤아리며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이 연속으로 불어 닥친 일들이
눈앞에 명멸했다. 교사라는 것은 학생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세상살이에서는
도리어 배워가야 할 학생이었다.
바로 세상이 교사였다. 세상이 교과서였다. 그 교과서에서 배운 것은 ‘인간만사 새옹지마’ 라는 말이 었다. 과연 정답이었다.
교장으로 승진하여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어렵게 마련한 상도동 집이
날아갈 위기에 있었다. 시동생의 건설회사가 부도에 처한 것이다.
IMF체제에 한번 침몰하기 시작한 배는 기어코 가라앉았다. 동생들의
사업을 일으켜보려고 보증을 섰던 김상태는 덩달아 늪으로 끌려들어 가야만 했다.
매달 시동생이 담보한 건물 이자로 천만원을 내야 했다
이자날이 되면 어김없이 김상태는 현지의 직장으로 찾아 오고
현지는 그 돈을 마련해서 주어야했다.
발버둥을 쳐도 되는 일이 아니었다. 상도동 집은 물론이고 현지의
명의로 된 재산도 동이 났지만 사업은 끝내 건질 수 없었다.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다.
경매에 들어간 집은 팔리지를 않아 이자에 이자를 물어갈 즈음
참으로 고마운 은인 최정숙선생이 다시 나타나주었다.
경매에 들어가면 제값을 못 받는 위기에서 최 선생이 상도동 집을 사준 것이다.
고맙기 그지없었다.
사람은 어디서 사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한 일이지만
마음 먹고 지은 집이 날아갔을 때는 무엇보다 가슴이 아팠다.
모두를 정리하니 서울을 떠나야 했고 지금의 수원 금곡동에 그저
거처를 마련할 정도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가정과 사회생활을
양다리로 뛰었건만 결과는 너무 허무했다.
난곡동에 위치한 난향초등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현지는 정년퇴임을 하였다.
현지는 이제 출근할 일이 아예 없어졌다. 지금과 같이 새로 이사한 집에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 흔한 일이 된 것이다.
집 베란다에서 바라보면 봄에는 목련꽃, 복사꽃, 살구꽃이 지천이었고, 6월부터 피기 시작하는 장미와 나리꽃이 9월까지는 침실을 기웃거리는데 지금은 늦가을이 었다.
11월 중순을 넘긴 하루해는 짧았다.
전축의 CD가 멎어 있었다.
‘내가 무슨 음악을 듣고 있었지. 가을엔 떠나지 마오, 그거였나?
왜 요즘 기억이 희미해 가는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하며 전축 쪽으로 다가서니 위에 놓여 있는 구리 인형은 그대로였다.
세월만큼 닮아서 거죽이 반들거렸다.
인형을 보고서야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듣고 있었다는 게 생각났다.
요즘 기억이 가물가물해짐을 느낄 때마다 현지는 몹쓸 치매에나 걸리는 게
아닌가 하여 공연히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온 그 삶이 허전했다.
결국 이것뿐이어야 하나. 혈압이니 혈전이니 콜레스테롤 조절이니 하는 약들을 먹어야 하는 일도 가끔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남편이 곁에 있어 챙겨주는 일은 고맙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녀가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외롭다는 생각은 좀 더 근원적인 데 뿌리를 대고 있었다.
사랑이란 게 무엇인가. 내가 아프면 대신 아파줄 것인가.
내가 죽으면 따라 죽어줄 것인가. 뭐 서로 이해상관이 적당한 선에서 맞으니
결혼해서 살아온 것이 아닌가 말이다.
결국 지금에 와서는 홀로 왔다가 홀로 떠나가는 인생임을 새삼스레 알게 되다보니,
누구라도 고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인간의 본원적 존재인식이 스스럼없이
다가와 그녀를 외롭게 만들고 있었다.
적어도 부부간에는 이를 인식하지 않아도 좋으리만치 지고의 사랑을
나누며 서로를 보듬을 수 있어야만 한다.
누구나 감정이 메마르면 그만큼 삶은 무미건조해진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호르르 날더니 현지의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 다가
가만히 내려앉았다. 장마태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그는 홀연히 나타나서는 청하지도 않았는데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과 고기를 날라주던 까마귀가 되었다가 이내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저렇게 힘없이 떨어지는 은행잎처럼.
그렇게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인연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직도 마태오와의 잠깐의 일은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다음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