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이 죽어서 천국의 진주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문 앞에 서 있던 베드로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정확히 말하기 전에는 천국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L. O. V. E’라고 철자를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여인에게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그리고는 여인에게 급한 일로 자리를 비워야 하니 잠간 자리를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도착하면 뭐라고 하죠?” “누구든지 오면 내가 했던 것처럼 물어보면 됩니다.”
그녀가 서 있는데 잠시 후에 그녀의 남편이 걸어왔습니다. 놀란 여인이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 애들은 어쩌고 벌써 여길 와요?” 남편이 대답 했습니다. “장례 마치고 아이들은 장모님께 맞기고 해변으로 놀러 갔다가 심장발작으로 죽어서 여기로 오게 되었어! 여기가 천국 가는 문이지?” 남편의 말을 듣고 괘씸한 생각이 든 여인이 대답했습니다. “아직 아니에요. 내가 말하는 단어의 철자를 정확히 말해야 들어갈 수 있어요!” 남편이 무슨 단어냐고 물었습니다. 여인이 잠시고민 후에 대답 했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
남편이 천국으로 갈 사람인지는 아내가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천국 갈 사람인지는 남편이 알고 있습니다. 남편이 좋은 사람인지는 아내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남편이 알고 있습니다. 잘 산다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어떤 평가를 듣는가? 에 달려있습니다. 남들에게, 거래 상대에게 잘하는 것은 정말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건 누구나 체면상, 거래 성사를 위해 할 수 있습니다. 고객에게 인사하고 친절한 것은 사실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한 평생 옆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잘 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을 위해 다 주고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짜 남편이고 아내입니다. 계산하는 부부는 하나님이 원하는 부부의 모습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는데 성도가 평생 함께 사는 가족을 위해 100% 헌신 할 수 없다면그 믿음은 과연 진짜 믿음일까요?
단 한 명도 내 것을 다 줄 대상이 없는 인생이 과연 믿음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세상은 자기 자신을 위해, 너 자신을 위해 살라 고 하지만 주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진짜 성도는 자신을 넘어 남을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그 남의 범위에서 가장 가까운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한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같은 신앙의 가족들이 빠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