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와 칼빈의 직업개념 비교
루터는 독창적이고 대담하고 창조적인 사상가인데 반하여, 칼빈은 논리적이요 체계적인 인물입니다. 루터와 칼빈은 우리 개신교적 개혁의 주요한 주인공들입니다. 이 종교개혁자들이 한 일은 수도생활과 속된 생활의 성역의 구분을 철폐하는 일과 인간의 소명(직업관)은 특별히 성스러운 직업(사제직,수도원생활) 속에서만이 아니라 어떤 직업 속에서도 성취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반사회적이고 부정적인 일을 제외한 모든 일은 신이 맡기신 거룩한 일이라는 이른바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루터는 - 믿음으로 의로움을 입는다는 이신득의(Justification throghtfaith)의 교리를 토대로 한 구원관에 기초하여 자신의 직업관을 피력한다. 인간은 자신의 선한 행위로 인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구원 받기 때문에 그 구원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야 하며, 이러한 이웃 사랑의 마음에서 자신의 직업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루터의 소명관은 사회적 양심을 가진 것이다. 만인에게는 그 이웃에 봉사할 사랑의 신성한 의무가 있으므로 그 모든 직책은 결국 다 성직이니 실로 루터의 만인 성직론은 개인주의적인 이념이 아니고 사회학적인 이념의 표현이라 할 수있다.
즉 루터의 소명관은 하나님의 계시와 이웃 사랑의 봉사라는 사회학적 의의를 가진것이다.
칼빈은 - 그의 구원 예정설에 입각한 직업 소명설을 통해 직업의 신성성을 강조하였다. 칼빈에 따르면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 따라서 직업이란 단순히 육체의 필요를 채우는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표현이 되어야 하며 그러하기에 하나님이 주신 지위와 직분은 영혼의 수련 도장이라는 것이다.
칼빈 이전에 있어서 노동은 저주나 회피의 대상이요, 수도원 생활과 비교가 안되는 저급한 일로 여겼던 것과 달리 칼빈은 인간의 모든 세속적인 직업활동이 소명에 의한 것이고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요, 이웃에 대한 봉사를 줄 수 있다는 즉, 노동을 신과 인간 모두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자연의 윤리와 사회질서의 핵심으로 보았으며, 노동과 직업이 인간의 삶과 분리 될 수 없다는 당위성을 일깨워주었다.
*루터는 농업과 수공업을 위주로 하는 계급 제도를 토대로 한 보수적 사회의 직업관과 또 교회법에 따라 이자 취득의 금지를 긍정하는 경제윤리를 가진 것으로 논평을 받고 있으나 그는 역시 중세적인 수도원적 및 금욕적 제한을 직업과 경제 활동에서 철폐시킴으로써 모든 직업의 평등과 신성성을 가르쳤다면,
*칼빈은 그 직업 및 사회적 신분의 자유로운 선택과 변경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경제 활동을 가르침으로써 현대인의 민주주의적 자유사회에서 경제 활동의 길을 터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터와는 달리 농촌 사업을 이상화하지 않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의 산업 관심은 늘 도시 산업에 있었으므로 칼빈주의가 보급된 세계 각지에서는 상공업이 발달해 갔다.
<출처 : 군장대학 사회복지과 06주간B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