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일 평신도 주일 ^^
주인공이자 동시에 단역배우일 수 있는..
여러분은 뮤지컬을 좋아하시나요?
우리나라에는 뮤지컬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상식이 두 개 있습니다. 뮤지컬만을 따로 떼서 시상하는 일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지요. 뮤지컬이 아직은 주류문화로 안착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시상식이 두 개나 있다고 하니 그것을 위해 애쓴 뮤지컬인들의 수고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이 갑니다. 지난 월요일 그 중 하나의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시상식의 무대 위에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뮤지컬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박강현, 여우주연상을 받은 가수 출신의 아이비, 신인상을 수상한 개그우먼 출신의 신보라 등을 비롯한 많은 유명인사들과 배우들이 밝은 조명 아래 차례차례 올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가 한 사람에게 자주 저의 시선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은 무대의 위의 어두운 조명 아래서 시상자들과 수상자들의 동선을 안내하고 꽃다발과 트로피를 전달하던 검은색 정장차림의 진행요원이었습니다. 이 분을 보면서 저는 어린시절 저에게 수도 없이 던졌던 질문이 오랜만에 다시 떠올랐습니다. “너는 네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인가?” 어린 시절에 저는 한 번도 제가 제 삶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못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 했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항상 저보다 더 인기가 많고 더 똑똑하고 더 멋지게 생긴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딱히 쓸데도 없고 존재감도 없는, 다른 주인공과 조연들 무대의 한구석에 멀뚱멀뚱 놓여 있는 단역배우나 무대 소품 같은 존재처럼 여겨졌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들러리가 되는 것이 싫었지만 제가 제 인생의 주인공이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제 삶의 무대에서 다른 누군가의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으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요? 그것은 고등학교부터 시작한 신앙생활에서, 또 지난 수도생활에서 할 수 있었던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그 체험은 “하느님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필리핀 선교 실습에서 돌아와 갔던 피정에서 올랐던 산 중턱에서 마주하게 된 건너편 마을의 풍경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내려오던 길가의 작은 돌멩이들도 기억납니다. 그 모든 것을 아주 오래 전부터 하느님께서 저를 위해 만들어 놓으셨다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하느님 사랑의 체험들을 하며 저는 제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 변함없이 다른 사람의 삶의 무대에 단역배우이고 또 소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전과 달라진 점은 하느님께서 다른 사람을 위해 그런 역할을 하는 주인공 배역을 저에게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시상식의 밝은 조명 아래 멋진 배우들 뒤로 어둠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던 저 진행요원은 저에게 그런 저의 처지를 더욱 명확히 알게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해 부르신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각기 자신의 삶의 무대의 주인공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또한 부르신 평신도들의 삶의 무대에서는 그들을 위해 헌신하는 시상식의 진행요원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맡기신 것은 아닐까 라고 묵상하게 됩니다. 내가 내 삶의 무대에 주인공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삶의 무대에는 조연이나 보잘것없는 소품이 기꺼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고 체험하는 것에 달려있습니다. 1독서에서 우리는 이스라엘민족에게 내리시지 않은 기적을 이방지역 사렙타의 과부에게 내리신 것을 보았습니다. 2독서에서는 보잘 것 없는 제물의 역할을 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작은 과부의 동전 렙톤 두 닢의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알고 체험하게 된다면, 내가 비록 못난 사람이라 큰일을 해내지 못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들러리가 된다고 해도, 오늘 화답송처럼 나의 영혼은 주님을 찬양한다고 노래할 수 있고, 오늘의 예물기도에서처럼 예수님의 수난을 기꺼이 따를 수 있고, 또 그 수난 중에서도 영성체송처럼 아쉬울 것 없이 잔잔한 물가의 풀밭에서 쉴 수 있습니다.
이번 한주 동안 하느님께서 내가 내 삶의 무대의 주인공으로써 동시에 다른 사람이 주인공인 무대에서 어떤 단역이나 소품으로써 서길 원하시는지 더 깊이 헤아려 보려 합니다. 저 그림 속의 진행요원처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꺼이 다른 이들 삶의 단역이나 소품이 되어 주는 주인공의 삶을 살아 보고자 합니다.
첫댓글 아멘 ..
비교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은총을 청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