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자만과 자랑의 비극
사무엘하 18:6~18
압살롬은 다윗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큰 아들 암논이 죽고난 후에 다윗의 왕위계승권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 다윗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스스로 왕위에 오르려고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여 세력을 모아서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결과 다윗은 예루살렘에서 피난을 떠나 요단강 동편 땅 마하나임 성에까지 물러났습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서 자기를 따르는 수많은 백성들을 끌어모아 대군을 이끌고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진압하려고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다윗 역시 요단 동편 땅에서 자기를 지원하는 백성들 중 군대를 조직하여 대항하였습니다. 전투는 요단강 동편 땅의 에브라임 수풀에서 벌어졌습니다. 그 전쟁에서 압살롬의 군대는 패배했습니다.
압살롬의 군인들 중 사망 원인을 보면, 수풀에서 죽은 자가 칼로 죽은 자보다 많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군대를 도와 압살롬의 군대를 패배하게 하셨다는 증거입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전쟁 의 승패를 자연 세계를 통하여 결정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한 예만 들자면, 여선지 드보라 때에 가나안 족속들의 수많은 병거 부대가 바락이 이끄는 소수의 이스라엘 병사들을 압박할 때, 하나님은 큰 홍수를 내려서 기손 시냇가에서 가나안 군대의 병거 부대가 진창에 쳐박히게 하여 대패하게 만들었습니다. 에브라임 수풀에서 하나님은 압살롬과 그를 따르는 자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 때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있다 도망치다가 상수리나무에 그 머리카락이 걸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가 결국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깊은 구덩이에 던져넣고 사람들이 그 위에 높이 돌무더기를 쌓아 놓음으로써 압살롬의 파란만장한 삶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압살롬이 망하게 된 이유 중에 중요한 것이 그의 인간적 자랑과 그의 자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결정적으로 죽게 된 원인이 9절 말씀에 보면,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상수리나무의 번성한 가지 아래 지나가는데, 압살롬의 머리가 그 나무에 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뭇가지가 압살롬의 머리칼을 잡아 채서 놓아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공중에 매달린 채로 노새는 빠져나가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나무 위에 매달린 채 창에 찔리고 칼에 맞아서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걸려 매달려 죽은 것은 신명기 21:22,23 말씀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 구절들은 압살롬이 나무에 달려 죽음으로써 그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죽은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가 사람들을 포섭하고 꼬드기고 사람들이 압살롬의 매력에 빠져서 그에게 합세했을지라도 그가 행한 모든 것들이 죽어 마땅한 자였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상수리나무 가지로 그 머리칼을 붙잡아 그를 매달려 거기에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무에 매달리게 된 머리카락은 압살롬의 외적인 아름다움의 극치였다는 점이 매우 역설적입니다. 사무엘하 14:25~26 말씀에 보면,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으로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압살롬은 그 외모가 완벽한 아름다움 자체였는데, 특별히 그의 머리카락이 아름다움의 극치였던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외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하여 자만하였고 사람들을 현혹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머리카락을 인하여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죽게 하심으로, 그의 자랑과 교만을 벌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압살롬의 자랑과 자만을 벌하신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 17절에 나옵니다. 압살롬이 죽임당했을 때에 다윗의 부하들이 압살롬의 시체를 나무에서 끌어내린 후에 에브라임 수풀 가운데 큰 구덩이에 던져 넣고 그 위에 매우 큰 돌무더기를 쌓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구덩이에 시체를 던져넣고 큰 돌무더기를 쌓아놓는 매장 방식은 큰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옛날 여호수아 때에 유다 지파 아간이 무너진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이 금한 은과 금과 외투를 훔쳐서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 성에서 패배를 당했습니다. 제비를 뽑았더니 아간이 범한 죄가 드러나자 아간에게 속한 모든 자녀와 물품들을 끌고 아골 골짜기에 가서 돌로 치고 불사르고 큰 돌 무더기를 쌓았습니다. 아이 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아이 성의 왕을 나무에 매달았다가 해질 때에 시체를 내려 성문 어귀에 던지고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습니다. 압살롬이 그들처럼 동일하게 구덩이에 던져지고 크게 돌로 쌓았던 것은 압살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뒤 18절에 이러한 구절이 나옵니다.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압살롬이 생전에 자기를 위한 기념비를 만들어놓았다는 점을 여기서 언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압살롬 자신이 언제나 자기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묘한 점은 사울 왕도 언제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는가 하면,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갈멜이라는 지역에 가서 자기의 기념비, 곧 아말렉과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자기 이름으로 이겼다고 기념비를 세운 직후였습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기념비와 압살롬의 기념비는 둘 다 자기들에게 저주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랑과 헛된 자만심은 언제나 파멸과 진노를 거둡니다.
욥기 20:4~11 말씀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알지 못하느냐 예로부터 사람이 이 세상에 생긴 때로부터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라 그 존귀함이 하늘에 닿고 그 머리가 구름에 미칠지라도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라 그를 본 자가 이르기를 그가 어디 있느냐 하리라 그는 꿈같이 지나가니 다시 찾을 수 없을 것이요 밤에 보이는 환상처럼 사라지리라 그를 본 눈이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요 그의 처소도 다시 그를 보지 못할 것이며 그의 아들들은 가난한 자에게 은혜를 구하겠고 그도 얻은 재물을 자기 손으로 도로 줄 것이며 그의 기골이 청년같이 강장하나 그 기세가 그와 함께 흙에 누우리라”
이 말씀이 구구절절이 압살롬을 두고 한 말씀같이 느껴집니다.
한 때 중동 지역을 뒤흔들었던 세계 제국 앗수르 왕국 역시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과 자랑을 이렇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이사야 10:12 이하에 예언하였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일을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 다 행하신 후에 앗수르 왕의 완악한 마음의 열매와 높은 눈의 자랑을 벌하시리라 그의 말에 나는 내 손의 힘과 내 지혜로 이 일을 행하였나니 나는 총명한 자라 열국의 경계선을 걷어치웠고 그들의 재물을 약탈하였으며 또 용감한 자처럼 위에 거주한 자들을 낮추었으며 내 손의 열국의 재물을 얻은 것은 새의 보금자리를 얻음같고 온 세계를 얻은 것은 내버린 알을 주움 같았으나 날개를 치거나 입을 벌리거나 지저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하는도다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톱이 어찌 켜는 자에게 스스로 큰 체하겠느냐 이는 막대기가 자기를 드는 자를 움직이려 하며 몽둥이가 나무 아닌 사람을 들려 함과 같음이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진 자를 파리하게 하시며 그의 영화 아래에 불이 붙는 것같이 맹렬히 타게 하실 것이라”(사 10:12~16)
앗수르 나라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범죄와 주변 열국들의 우상 숭배에 대하여 드신 하나님의 채찍과 몽둥이였습니다. 그러나 앗수르 스스로 내가 잘나서, 내가 강해서, 내가 똑똑해서 이와 같이 모든 나라들을 마음껏 정복하였다고 스스로 자랑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과 자랑을 낮추어 그들로 파리해가게 하시고 내분의 불씨가 맹렬히 일어나 망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 그대로 앗수르 나라는 급속히 약해지고 바벨론의 침략으로 순식간에 무너지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개인이나 나라나 모두 동일하게 자만하거나 자기를 자랑하면 반드시 그 자랑으로 인하여 망하게 됩니다. 그 교만 때문에 낮아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무엇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예레미야 9:23,24 말씀에,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된 은혜를 자랑하고,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행하시는 일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3:3 말씀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육체를 자랑하고, 인간을 자랑하는 대신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3:6 말씀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자랑, 곧 우리가 얻은 기업, 천국 소망을 자랑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거나 영화롭게 하거나 우리 소유를 풍성하게 할 때, 우리는 자신의 기념비를 세우는 행위 곧 자기를 높이는 헛된 자랑을 일체 버립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한 칠흑같은 머리카락을 사람들 앞에서 치렁거리지 말고 단정하고 단아하게 묶읍시다. 그 대신 그러한 은혜와 축복과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시다. 우리의 입술에서 늘 거룩한 자랑, 곧 하나님을 알게 된 은혜, 주 예수 안에서 받은 사랑과 축복을 늘 자랑하는 거룩한 자랑꾼들이 됩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더 풍성한 은혜를 더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주여, 압살롬의 비극이 주는 교훈을 마음에 새깁니다. 한평생 늘 겸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