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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관심함
천 영 대
성경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13~22)」
성전을 정결케 하심
우리 나라 사람들은 서울을 우리 나라의 중심으로 생각하는데 유대교인들은 예루살렘을 하나님께서 택하신 온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 디모데 전서 3장 15절에서는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하나님의 집을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다. 에베소서 1장 22, 23절에서는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서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의 교회이며,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집으로 일컬어지는 하나님의 성전을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준비한 여러 가지 종류의 다양한 물질들을 가지고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식양을 세웠다. 물론, 그 동안에 퇴락도 하고, 소실도 되고 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중수도 하고, 수리도 하여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서 활동할 때에도 보존이 되었다. 하나님의 집(성전)인 교회는 이름 그대로 거룩한 전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원수요 대적자인 마귀는 시도 때도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성전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파괴까지 하려고 한다. 구약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고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서 활동하신 동안에도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성전,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고 훼손했다. 마태복음 21장 12, 13절에서는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서 그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어 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셨다. 마귀가 사람을 사용하여 그렇게 한 것을 주님은 그대로 있지 않고 성전을 정결케 하셨다. 그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주님께서는 그의 집을 사모하는 열심히 있기 때문에 마귀가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 집을 더럽히고 있는 것,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요한복음 2장 13∼16절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서 양이나 소를 다 내어 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고, 상을 엎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서 가져가라’고 하면서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예수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의 집이 장사하는 집으로 전락하는 것을 참아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주 예수님은 거룩한 전을 상기한 바와 같이 정결케 했다.
주님의 집에 대한 열정
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그 때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전을 더럽히는 것을 목격하고 그 성전을 정결케 하는 일을 행했다. 요한복음 2장 13∼16절에서는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라고 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상기의 행동이나, 언사는 일반적인 생활에 있어서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11장 28, 29절에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해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라고 했다. 이렇게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가 상기와 같이 폭력배들이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행하셨다. 이것은 시편 69편 9절에서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주 예수님 안에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집이 더럽혀지고 훼손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아마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이 깡패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의아해 했을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13∼36절까지의 여덟 번에 걸친 ‘화있을 진저∼’의 내용 또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평상시의 언행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무리들에게 아주 강한 표현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비록 예수님이 그렇게 행했다 할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이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지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사 55:8, 9). 우리의 생각을 따라 주님을 판단하지 말고 그에게 순종하며 따라가야 한다. 또, 다른 어떤 무리들은 예수님께서도 성전에서 깡패들이 하는 행동을 했고, 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험악한 말들도 했기 때문에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성령 안에서가 아니라 육신 안에서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자들이 있는 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외적 모습은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근원은 하나는 주님으로부터 나왔고, 다른 하나는 타락한 육신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적 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그 근원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곧, 타락한 육신으로부터 왔는지, 그렇지 않으면 주님으로부터 왔는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 우리 주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는가에 따라 행하지 않고, 성경 말씀에 따라 그 안에 있는 주님의 집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행했다.
성전을 세움
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이 가까워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을 때에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정결케 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보고,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라고 했다. 이때에 주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했다. 주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했을 때 그들은 육신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성전은 사십육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라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한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요 2:22). 마태복음 16장 15∼18절에서는 “가라사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다.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서는 하나님의 집이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다. 물론,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주님께서는 반석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고는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마 16:21)”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그의 몸된 교회가 산출되고 세워지는 것을 뜻한다. 고린도전서 3장 16, 17절에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고린도전서 12장 27절에서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다. 에베소서 1장 22, 23절에서는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그리스도)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다. 상기의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집이 성전이며, 교회이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을 뜻한다. 이러한 일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뤄졌다.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한 일을 두고 예수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요 2:18)’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고 했다. 마태복음 12장 38∼40절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면서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예수님 자신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이것이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표적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 13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 곧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했다. 히브리서 2장 11, 12절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거룩하게 되고 있는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거룩하게 하시는 분, 예수 그리스도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거룩하게 되고 있는 자)들이 다 같이 한 하나님 아버지께로 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주님께서 거룩하게되고 있는 자들을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했다. 이러한 것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자들이 주님과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진다. 그러므로 주님의 몸은 한 지체로 이뤄지지 않고 여러 지체들로 이뤄지는 단체적인 몸이다.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다. 주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고 거듭난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뤄지는 새로운 창조물로서의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창)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한 것처럼, 죽으시고 부활하사 생명 주는 영이 되신(고전 15:45)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이다. 이것은 옛 것이 아니고 새로운 것이며 부활 생명으로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2장 19절의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한 것은 주님의 생명이 없는 물질적인 것들로 이뤄진 생명이 없는 성전은 끝이나고 부활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성전을 세운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믿고 거듭나 주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로 하나님의 집(성전),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워진다. 에베소서 2장 20∼22절에서는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함께 연결되어 자람으로 성전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가고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우시는 하나님의 집(성전)이나,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생명이 없는 물질로 만들어지는 하나님의 집이 아니고 살아있는 것들로 세워지는 살아있는 집이다. 베드로전서 2장 4, 5절에서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로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산 돌이라고 했고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말씀의 젖을 사모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난 믿는 이들 또한 산 돌로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산돌로서 세워지는 집은 신령한 집이며, 또한 살아있는 집이다. 살아있는 돌인 산돌로서 지어지는 집,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과 그리스도로 지어지는 집은 분명히 신령한 집이며,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집이다. 요한계시록 21장 22절에서는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새 예루살렘 안에는 별도의 성전이 없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성전이 된다고 했다. 이 또한 살아있는 성전이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도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고 어린양 또한 그러하다. 물론, 여기에는 온전케 된 믿는 자들도 함께 한다. 고린도전서 12장 12, 13절에서는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했다. 몸은 하나인데 그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고, 또 몸의 지체가 많지만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 또한 많은 지체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단체적인 그리스도라고 한다. 곧, 많은 지체들로 이뤄진 한 몸으로서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새 예루살렘에는 다른 성전이 있는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단체적인 그리스도가 성전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린도전서 6장 17절에서 “주와 합하는 자는 (주와) 한 영이니라”고 한 것처럼, 주님을 믿고 거듭난 자들이 주와 한 영, 곧 주님과 하나가 됨으로 단체적인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생명 없는 물질로 세워진 성전을 세우지 않고 생명이 있는, 살아있는 성전을 세우셨다. 주님께서는 솔로몬 왕 때에 세운 성전보다 더 나은, 살아있는 성전을 세우기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할렐루야!
주님의 말씀을 기억함
우리 생활에서 주위 사람들이 한 말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주님과 그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은 더욱 더 중요하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는 말씀을 하셨을 때에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 곧 부활하신 후에는 전에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성경과 및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다고 했다. 전에 주님께서 말씀하지 않았거나, 말씀하셨을 지라도 기억하지 못하면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했을지라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누가복음 24장 5∼9절에서는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 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라고 했다.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여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살아났다고 하면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고 했다고 했을 때 저희들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서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열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했다고 했다(눅 24:4∼9). 이것은 여자들이 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상황이 벌어졌을 때 그것을 생각하고 확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후서 3장 1, 2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은 구약성경의 내용들이고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은 신약의 내용들이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를 읽는 자들로 구약의 내용과 신약의 내용을 기억하게 하여 이후에 사탄의 역사로 말미암아 주님을 믿는 자들을 기롱하거나 기만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다른 말을 하거나, 가르치거나 할 때에 쉽게 마음이 동하거나, 미혹을 당하지 않게 했다. 또한, 말세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도 깨우쳐 주셨다. 유다서 1장 17∼19절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하면서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말함과 아울러 그들이 얼마나 잘못된 자들인가를 언급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위하사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그것에 대한 합당한 대처와 함께 합당한 삶을 살므로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게 하는데 동참해야 함과 아울러 이를 위해 우리는 항상 주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