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몽을 꾸는 여자
신광자
우리는 잠을 자면서 많은 꿈을 꾼다. 밤새도록 꾸었는데 도무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는 것도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나는 갈등이 꿈속에서 표출되기도 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창공을 홱홱 날아다니기도 하며 , 구름과 바람을 타고 무지개 동산에서 동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또 한 다음날 일어날 사건부터 몇 년후의 일까지 예시해주는 예시몽을 꾸기도 한다. 나는 예시몽을 잘 꾼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서 친구의 주선으로 미팅을 약속 한 전날 밤 꿈을 꾸었다. 왠 남자가 어색한 신사복 차림으로 큰 홍어 한마리를 사 들고 들어와 우리 집 툇마루에 걸터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다음 날은 식목일이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는 오후3시에 약속 장소인 다방으로 향했다. 온갖 상상과 호기심으로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조심스럽게 다방 문을 밀치고 들어섰다. 담배 연기로 자욱한 다방 구석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나에게 눈인사를 보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는 어젯 밤 내가 꿈속에서 보았던 모습과 너무나 닯아 있었다. 숙명적인 만남이었는지 그 날부터 8년 동안 연애를 하다 결혼을 했는데 신기하게도 남편을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모두 홍어를 좋아한다.
내가 25살 되던 해 . 가을걷이로 한창 분주한 어느 날 밤에 나는 또 한번의 예시몽을 경험하였다. 송아지 세 마리가 집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 송아지를 외양간으로 조심조심 끌고 가는데 갑자기 송아지가 한 남자와 여자아이 둘로, 외양간은 조그마한 3층 건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 나는 미혼이었기에 속으로 별 망측한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였으나 그 꿈은 한참 후까지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15년 후에 나는 일남 이녀의 어머니가 되었고, 아담한 3층 건물에서 남편은 병원을 운영한다. 이것 뿐이 아니다. 내 일생에 기억될만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나는 예시몽을 통하여 함시를 받는다.
사람들은 8시간 수면 중 2시간 꿈을 꾼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인생의 12문의1을 꿈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꿈에는 내가 잘 꾸는 예시몽과 금지된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꿈이 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꿈 중 예시몽은 직접 청사진으로 투시되어 보일 때도 있고, 상징적으로 나타날 때도 있는데, 어떠한 장면에서든지 기분이 좋고 시원하면 길몽이고 애가 타면 흉몽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꿈의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꿈을 정리해 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그래소 내가 즐겨 보는 해몽책은 너덜너덜 누더기가 되었다. 내 꿈에 비교적 신뢰감을 갖고 있는 가족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무슨 꿈을 꾸었느냐고 묻기고 하고, 심지어는 좋은 꿈을 꾸어 달라고 익살스러운 주문도 한다. 그러나 마음대로 꿈을 꾸었다고 하더라도 혹 나쁜 결과가 예상될 때는 남편에게만 털어놓고 의논하기도 한다.내 꿈에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남편은 이러한 일이 있을 때면 적극적인 상담자가 되어 준다. 며칠간 귀가 시간이 늦은 남편에게 아침에 눈을 뜨면서 왜 이리 꿈자리가 뒤숭숭하지, 능청을 떨면 남편은
"또 그놈의 꿈 타령이야"
하면서 퉁명스럽게 쏘아 붙이지만 영락없이 그 날만은 일찍 퇴근을 한다. 하루 이틀 후의 사건 예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몇 개월 후나 몇 년 후에 일어날 사건이 청사진으로 예시가 올 때는 심한 갈등을 일으킬 때가 많다. 다행히 길몽일 때는 두리뭉실 넘어 가지만 불길한 암시가 추측될 대는 믿자니 확신도 없고 안 믿자니 그 동안 경험으로 보아 불안하고 꺼림칙하다.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보가 결정된다는 윤회설이 있다. 그래서 자기의 전생을 알고 싶으면 현생의 자신의 모습을 보면 되고, 후생을 알려거든 현생에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예시몽을 통해 앞일을 예측해 본다.
정신이 맑고 매사에 의욕이 왕성한 이삼십대는 제법 먼 기간을 감지해 주는 예시몽도 자주 꾸었다. 그러나 욕망도 집착도 점점 사라져 간다는 이순(耳順) 이 가까워서인지 모든 꿈이 줄어들고 예시의 적중률도 떨어진 것 같다. 예시몽은 영혼(靈魂)이 맑고 성격이 담백한 사람이 많이 꾼다고 하는데 그 동안 살아오면서 내 영혼이 혼탁해진 것은 아닐까. 우리 집 담장 위에 호박 넝쿨이 싱싱하게 뻗어 가고 있는 꿈을 모처럼 꾸었다. 누가 심었을까? 궁굼해하는 나에게 작년 호박 씨앗이 땅속에 묻혔다가 자라났다고 누군가가 말해준다. 분명 길몽임에 틀림없다. 멀지않아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에 마은은 벌써부터 부풀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