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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일본에서 쓰나미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그때에 찍은 동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두 모녀가 쓰나미가 휩쓸고 가는 가운데 라 옥상의 난간을 붙들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정말 아슬아슬한 모습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힘이 들어 난간을 놓치는 순간, 검은 물결은 두 모녀를 휩쓸고 갈 판이었습니다.
두 모녀가 그 위기 가운데 빠지게 된 이유가 어디 있을까요? 죽음의 쓰나미가 몰려 올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습니다. 방송에서 위험하니 높은 곳으로 피하라고 해도 이런 저런 이유로 떠나지 못하고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상치 못한 쓰나미가 동네를 덮친 것입니다. 다행히 옥상에 올라가고, 난간을 붙잡았지만 언제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위험 속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인생 쓰나미를 당할 수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하고, 준비하지도 못해서 위험 속에 빠진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주의 날을 예비할 것을 말합니다. 이 날은 세상을 심판하는 날이요, 주의 자녀들은 구원 받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자연히 주의 날이 언제인지, 그 일시가 궁금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성도의 물음에 답하기를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임신한 여인이 아기를 출산할 때에 고통처럼 피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 “갑자기와 결단코”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갑자기’ 오십니다. 이때에 준비하지 못한 자의 멸망은 피할 수 없이 결단코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와 시기에 관하여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 때보다, 그 때를 준비하는 삶과 그 태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오기까지 주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4)
주의 날이 성도들에게는 도둑 같이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임신한 부인이 아기를 결단코 받게 될 고통처럼 멸망을 결단코 받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사람을 지음을 후회하여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하나님께서는 의인 노아에게 이 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준비하여 대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심판하실 때도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조카 롯으로 하여금 피난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창 19장).
주의 날을 도둑 같이 임하지 않을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일까요?
1. 그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새번역 5)
주의 날을 도둑 같이 임하지 않을 사람들이 누구이니까? ‘모두 빛의 자녀. 낮의 자녀’들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말합니다. 나아가 오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모든 성도들을 말합니다.
에고 에이미,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을 자기를 소개할 때에 ‘나는 –이다’(에고 에이미)로 표현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하셨습니다. (벧전 2:9) 빛의 자녀들의 소속은 밤과 어둠이 아니라 빛이요 낮입니다.
이에 반하여 주의 날을 도둑을 맞이할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입니다(5).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7절에 “자들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라”고 했습니다. 어둠에 빠진 자들은 깊은 잠 속에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합니다. 술에 취하여 방종한 생활을 하게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어두운 한 밤중에 이루어 집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어둠 속에 빠지게 되면 선악과 옳고 그름을 분별치 못합니다. 잠 자는 자 같이또 술에 취한 것처럼 흥청망청 즐기고 마시고, 방종하여 주의 날에 무관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주의 날은 도적같이 홀연히 그들에게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빛의 자녀들입니까? 어둠의 자녀들입니까? 여러분의 소속을 분명히 하십시오.
심방을 가보면 집집마다 거실에 한 두 종류의 화분을 두고 있습니다. 집 안에서 식물을 키우다 보면 살아있는 식물은 반드시 그 줄기를 빛을 향하고 있음을 봅니다. 빛을 바라고 빛을 향하고 빛을 사랑합니다.
몇 해 전에 미국에서 돌아가신 강영우 박사님을 아십니까? 어렸을 때 불발폭탄을 가지고 놀다가 터지므로 망막을 상실하고, 회복할 수 없는 맹인이 되었습니다. 그런 불구자가 연세대 문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에서 맹인으로 최초의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에서 대학교수에다 미국 대통령 정책자문위원까지 지냈습니다.
그 분이 쓴 자서전 이름이 “빛은 내 가슴에”입니다. 빛은 내 가슴에! 빛은 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도 있고, 영혼에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빛이 무엇입니까? 강 박사님이 의도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고 하셨습니다. .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빛의 자녀, 낮의 자녀이십니까? 그렇다면 “나는 빛이라” 선언하신 예수님을 향하십시오. 바라보십시오. 사랑하십시오. 날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의 정체성과 여러분의 소속을 분명히 하십시오. ‘나는 빛의 자녀다’라고 ….. 그러면 주의 날이 결단코 도둑 같이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2. 빛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6절에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6)
빛의 자녀들은 낮의 자녀이기에 밤에 잠을 자는 것처럼 자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잔다’는 말이 나옵니다. 여러분, 잘 주무십니까?
요한 웨슬레라는 감리교회의 창시자가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저녁 9시반만 되면 무조건 ‘나는 자러 간다’하고 자러 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붙잡아도 안되답니다. ‘너는 아무리 그래도 나는 자러 가야 된다’고 침실로 갑니다. 왜냐하면 일찌기 자야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고, 말씀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이 되는 곳이면 밤새도록 동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게임을 하면서 밤을 지새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살면 생활에 리듬이 떨어지고, 몸이 피곤하고, 정신은 몽롱합니다. 그러면 낮 시간에는 나른하여 무기력해 지고, 영적으로도 아주 나태한 자리에 떨어집니다. 규칙적으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말씀 보고, 하루를 빨리 시작하는 사람이 하루를 활기차게 보내고, 많은 성과를 거둡니다.
예배에 빠지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보면 구체적으로 교회에 빠진 이유를 말하지 않지만 주말이라고 늦게까지 뭔가를 하고, 늦잠을 자다가 예배에 빠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영적으로 신령한 삶을 살기 위해서 세상의 좋은 것을 좀 절제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잠을 정상적으로 자는 사람이 영적으로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빛의 자녀는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육신의 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적인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지난 주일에 제가 말했던 나침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북쪽을 향하여 끊임없이 파르륵 떠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 기도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지, 주를 향하여 나아가는지를 끊임없이 돌아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서 애를 쓰고 있습니까? 무엇에 그렇게 연연하며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의 마음 속에 있는 고민들, 추구하는 일들, 바라는 것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일인지 기도해 보셨습니까?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주님, 이것이 만일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기에 합당한 일이라면 당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지이다. 주님, 이것이 만일 제게 유용하고 마땅한 것이오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을 사용하도록 제게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그러나 만일 그것이 제게 해를 끼치고 저의 영혼에 상처를 주는 것이오면 어떠한 욕망이든지 모두 제게서 거두어 가소서. “
“주님,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하고 당신께서 선하다고 여기시는 일만을 제게서 이루시옵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지게 하소서. 저는 당신의 손 안에 있사오니 당신의 뜻대로 풍차처럼 저를 돌리고 또 돌려 주소서.”
“오, 가장 자비로운 예수님이시여, 당신의 은총을 제게 베풀어 주소서. 그 은혜가 저와 함께 머물고, 저와 함께 노력하며, 끝날까지 저와 함께 견디도록 하옵소서. 무슨 일이든지 당신이 받으실 만하고 기뻐하시는 대로 제가 원하고 행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성도 여러분!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날 때에, 내가 그토록 애쓰고 힘썼던 것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들, 계획하며 이루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착하고 충성했다”라는 칭찬과 상급이 있기를 원합니다.
빛의 자녀들은 기도와 말씀 가운데 깨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3. 그래서 빛의 자녀들은 적절한 자기 무장을 해야 합니다.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8)
빛의 자녀가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갖추어야 할 적절한 무장을 말합니다. 군인에게 소속감과 훈련도 중요하지만 전장에서 적절한 무장을 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옛날에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의 옷차림이 어떠합니까? 군인들은 몸에서 중요한 부위를 보호하는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을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의 심장과 머리입니다. 적들의 칼이나 화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은 우리 성도를 군인에 비교해서 ‘믿음과 사랑의 흉배’와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도록 했습니다. 성도로 하여금 빛의 자녀로 살도록 하는 것은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으로 영적 무장이 꼭 필요합니다.
성도의 믿음과 사랑은 사람의 심장과 같습니다. 일년 365, 하루 24시간 동안 1초도 멈추지 않고 박동합니다. 멈추면 죽음입니다. 뜨겁게 박동질을 해야 합니다. 뜨거운 피를 온 몸에 골고루 퍼져나가게 해줍니다. 빛의 자녀의 생명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이것이 식으면, 박동이 멈추면 싸늘한 시신과 같이 비호의 대상입니다.
사람의 머리는 생명의 핵심이며 생각과 행동의 지휘소입니다. 여기에 손상을 입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것입니다.
제가 대학생 때에 병원의 물리치료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제가 도왔던 환자 중에는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친 자들이 많았습니다. 머리를 크게 다친 사람은 일단 사지가 마비되고, 지적인 능력이 상실되어서 입을 헤 벌리고 침을 흘리는 바보같이 되어 버립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게 구원의 소망을 상실하면 머리의 손상과 같이 절망이며 죽음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역경 속에 있어도 구원의 소망을 붙들고 있으면 일어섭니다. 소망 가운데 힘을 내고 역경을 극복해 나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아갈 때에 무엇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까? 바로 믿음으로, 사랑으로, 소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빛의 자녀로써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당황하지 않고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설교를 마무리 하면서 가상의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휴가를 맞이해서 온 가족이 푹 쉬고 있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그런 가운데 제가 여러분의 집에 전화를 해서 내일 아침에 심방을 가겠다고 전화를 합니다. 별로 심방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김 목사가 너무 좋고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한 가정입니다. 그래서 김 목사와 아침에 만나 커피를 한 잔 나누면서 대화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식구들입니다.
온 식구들이 낮 시간 동안 오래간만에 재미있게 신나게 놀았습니다. 온 식구가 밤에도 느긋한 마음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해는 여느 때와 같이 떠올랐습니다. 그렇지만 온식구들은 피곤하여 세상 모르고 잠을 잤습니다.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을 닫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가족 중에 단 한 사람이 일찍 일어났는데, 큰 딸(주은이)이었습니다. 그녀는 일어나서 커튼을 걷어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게 했습니다. 그때에 제가 현관문에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딸은 저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기에 즐겁게 맞이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시에 기습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깨어 있었으며 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식구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거립니다. 그들은 여전히 잠들어 있고,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밤에 속해 있습니까? 낮에 속해 있습니까?
지금 잠 자고 있습니까?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 커튼을 드리우고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환하게 비취이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를 확인해 보십시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빛의 자녀다.’ 주의 날이 결코 도둑 같이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빛 가운데, 깨어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으로 무장하여 날마다 순간마다 빛된 삶이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