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차 십자군 전쟁 시기인 1149년 6월 시리아의 이납(Inab)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
십자군과 이슬람 군대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위키디피아 제공
A : 비평가들은 중세의 십자군 운동(1095~1291)에 대해 신의 이름으로 무죄한 사람들을 죽인 전쟁으로 간주하면서 종교가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노벨상 수상자 스티븐 와인버그는 “종교가 있든 없든 어차피 선한 사람들은 선을 행하고 악한 사람들은 악을 행하게 돼 있다. 하지만 선한 사람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는 반드시 종교가 개입된다”고 말했다. 과연 중세 시대 십자군 운동의 진실은 무엇인가.
‘팽창’ 이슬람에 대한 뒤늦은 대응
십자군 운동은 팽창하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 침탈당한 기독교의 방어 전쟁이다.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와 후계자(칼리프)들은 전쟁을 통해 이슬람을 확장했다. 무슬림들은 600년대 중반부터 1095년까지 비잔틴 제국의 도시들을 계속 공격해 기독교 문명에 속했던 동방 지역들을 차지했다. 비잔틴의 황제 알렉시오스가 교황 우르반 2세에게 원군을 요청했을 때 이미 무슬림이 제국의 3분의2 정도를 파괴한 뒤였다.
중세 십자군 운동 전문가인 토마스 매든(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 교수는 “십자군 운동은 모든 면에서 방어적 전쟁”이었다면서 기독교 세계의 70% 가까이 점령한 무슬림에 대한 서구의 뒤늦은 반응으로 평가했다.
리차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들은 종교가 전쟁의 원인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같은 견해는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다. 십자군 운동만 해도 팽창주의 이슬람에 대한 방어적 성격, 성지 회복에 대한 종교적 동기, 경제력과 영토확장에 대한 욕구, 군중심리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종교가 폭력의 근원인가’라는 질문은 ‘폭력과 전쟁은 종교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야 한다.
예수의 가르침을 들여다보라
우선 전쟁과 폭력에 있어서 예수와 무함마드의 가르침은 극명하게 대조된다.
예수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가르쳤다.
그러나 꾸란은 “이교도를 발견하는 즉시 죽여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언행을 기록한 하디스에도 전쟁의 폭력을 조장하는 내용들이 많다.
무슬림이었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에 복음전도자로 활동했던 나빌 쿠레쉬(1983~2017)는 두 종교의 핵심적 차이를 정확히 짚었다. “기독교가 ‘폭력의 종교’가 되려면 예수로부터 눈을 돌려야 하고,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주장하려면 무함마드로부터 눈을 돌려야 한다.”
둘째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십자군 운동 전후에 벌어진 과오에 대한 인정 여부에서도 대비된다.
기독교는 십자가 원정 전쟁 중 벌어진 과오를 인정했다. 2000년 3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2000년동안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저지르거나 묵인한 죄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했다.
종교개혁가들과 개신교 지도자들도 십자군 전쟁에 대한 반성적 의견을 표명했다. 십자군 원정에 따른 면죄부와 민간인 살육은 비성경적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군 운동을 촉발한 계기는 무슬림들이 비잔틴 기독교 문명을 파괴하고 학살한 침략 전쟁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반성하지 않는 이유는 꾸란과 하디스에 지하드(전쟁)와 잔인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절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전쟁 중에 획득한 포로 학대를 용인하고, 전쟁에 불참한 무슬림을 위선자라고 비판한 적도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IS)는 여성들을 전쟁 전리품으로 간주한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이슬람 중심의 역사편향 바뀌어야
셋째 십자군 전쟁에 대한 이슬람 역사가들의 왜곡된 견해는 수정되어야 한다.
기독교가 학살자이고 이슬람은 피해자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미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의 저서 ‘신의 전쟁’에 따르면 대체적으로 기독교가 점령했을 때 무슬림은 관대한 대우를 받고 강제 개종은 없었다. 그러나 무슬림이 지배했을 때에는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강제개종, 핍박, 참수형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무자헤딘(이슬람 전사)과 십자군은 전쟁 범죄와 잔인함에 있어서 모두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동일한 잣대로 무슬림을 분석한다면 약 200년간 8차례 진행된 십자군 운동의 과오보다 1000년이 넘도록 진행된 무자헤딘의 과오는 더 크다.
무슬림이 19세기말까지 그 지역의 승자로 통치한 역사기록에서 이슬람의 과오는 축소되고 십자군의 잔혹함은 과장됐다. 나빌 쿠레쉬의 말처럼 이것은 현대에 들어와 생긴 이슬람 중심의 역사편향이며 탈식민지 논리에 따른 것이다.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이슬람을 피해자로 설정하고 중세의 로마 가톨릭이 아닌 현대의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
김기호 한동대 교수·기독교변증가
믿음을 키우는 팁 - 누가 진짜 하나님인가? (나빌 쿠레쉬 지음·새물결플러스)
나빌 쿠레쉬는 정통 무슬림으로 성장했지만 기독교로 개종하고 복음전도자로 활동했다. 그는 이슬람과 기독교를 비교하면서 ‘알라와 하나님, 누가 진짜 하나님인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이 책 5부에서 지하드와 십자군 운동을 심도있게 비교·평가한다.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3367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