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인들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법칙을 발견하고자 하였다. 정언명령을 도덕법칙으로 삼은 칸트의 윤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제1원칙으로 삼은 공리주의는 모두 이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천재교육, p.176)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법칙’에 칸트의 정언명령이 들어간다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여기에 공리주의도 해당되는가는 문제입니다.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법칙’이 되면 ‘절대론적 윤리설 또는 객관주의 윤리설’이 되는데, 그렇다면 공리주의도 절대론적 윤리설 또는 객관주의 윤리설이라고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벤담은 공리성의 원리를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원리’라고 하지만, 그것을 ‘도덕법칙 또는 도덕원리’라고는 하지 않거든요. 그의 책 이름도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입니다. 도덕과 법을 만들 때 적용하는 ‘원리’이지, 그 자체가 ‘도덕법칙’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벤담 입장에서 공리성의 원리는 fact이지 그 자체가 도덕법칙은 아닙니다. 만일 도덕법칙이라고 생각했다면 벤담이 그것을 ‘과학적’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욱이 이때에는 ‘자연과 인간의 분리’가 일어나던 시기입니다. 과학(자연)과 규범(인간) 역시 분리되죠. 이 원칙은 칸트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현상계와 물자체의 분리, 자연과학과 윤리학의 분리).
실은 위 내용을 쓴 교수하고 입씨름도 한 사안인데,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참고로, 윤리교육과 교수들 내공이 그리 탄탄하지 않습니다. 폭이 좁고(자기가 논문을 쓴 분야만 아는 정도), 깊이가 얕은 편입니다. 공리성의 원리가 과연 그 자체로 도덕법칙인지 여부는, ‘자연과 인간의 분리’ 같은 것도 이해가 된 상태에서 논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요. 이진남 교수가 ‘이성의 용법이 40가지도 넘는다’ 어쩌고 하면서 흰소리를 할 때 내가 웃겼던 것도 그 때문인데(가소로웠다고나 할까. 물론 이진남 교수는 철학과 출신에 철학과 교수이지만), 아무튼 여러분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첫댓글 참고로, 평가원 기출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습니다.
그 집필자는 디펜스 논거를 뭐라고 대던가요? 저게 디펜스될 수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실은 다른 데서 입씨름했었고, 윤사를 4년 만에 가르치는데, 그 교수가 주장했던 내용이 교과서에 들어와 있는 것을 어제 알게 되었습니다.
디펜스 논거는 본글에 쓴 대로 공리성의 원리 자체가 도덕법칙이라는 거였죠.
@힉스 아 그게 논거였군요. 저는 그게 논거가 아닌 주장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물은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 입장에서 사고해보면 벤담의 사상이 공리성의 원리에 따라서 살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그 원리를 가치적인 원리로 간주하고 이 때문에 도덕법칙이라고 판단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이 추론과정이 맞으려면 벤담 원전에 부합해야 하고요.
그런데 저러면 윤리적 '쾌락'주의를 기저로 깔고 있는데 '객관'적인 도덕론이 될 수 있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쾌락의 양을 재는 기준을 제시하기는 하지만 양을 논하기 이전에 어떤 자극을 쾌락이라고 느끼는가 하는 문제는 주관적인 것이라서..
@한삶 ㅎㅎㅎ 벤담 원전에 나오면 제가 이런 글 자체를 올리지 않았겠죠.
@힉스 네 저도 원전에 근거한 거 맞나 의심되어서 저것을 '추론'과정이라고 한 거에요
@한삶 덧붙이면, 님 지적대로 그 교수는 '주장'만 했을 뿐, 논거는 없었죠. 당시에 폴 테일러의 "윤리학의 기본원리"라는 책에 나오는 표현 가지고도 싸웠는데, 그와 관련된 내용이 '두 군데' 나옵니다. 그 교수는 그중 한 군데만 보고 자신의 주장에 대한 증거로 삼으려고 하더군요. 간단히 말하면, 벤담이 '도덕의 원리'라고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벤담이 말하는 '도덕의 원리'는 '도덕규범을 정하는 원리'라는 뜻인데, 그 교수는 '도덕의 원리'가 곧 '도덕원리 또는 도덕법칙'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이걸 보더라도, '주장'만 있을 뿐 논거는 없죠.
이 사안에 있어서는 여전히 그 교수가 자신의 주장을 포기할 것 같지는 않아요. 자존심 문제도
@한삶 걸려 있을 거고요. 다만, 나중에는 저에게 학문적 내공과 관련하여 매우 우호적이긴 했습니다. 그 점에서 그 교수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저도 인간인지라).
다만, 이 사안은 여전히 '학문적인 것'이라, 명확하게 정오를 가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오르비의 모 강사분께서는 '도덕법칙'과 '도덕원리'를 구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들었습니다. 공리주의가 '상대적인 도덕법칙'을 주장하는 것은 맞지만 '객관적인 도덕원리'를 주장하는 것도 맞다라고 한다는군요. 그런데 제가 의심이 드는것은 '도덕법칙'과 '도덕원리'라는 단어가 정말로 구분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본글 하단에 2015학년도 윤사 9번 문항을 추가했습니다.
아마 정수환 강사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상하니까 자기 나름대로 고육지책을 동원한 것 같네요.
정 강사가 그렇게 설명한 것은 위 하단에 붙인 9번 문항의 ①번 선지 때문일 겁니다. 제시문은 벤담의 공리주의이고, ①번 선지에서 '보편적 도덕 원리'를 벤담이 인정해야만 정답에 이상이 없게 되죠(정답은 ③번).
그런데 천재교육 교과서에서는 명확하게 공리주의의 공리성의 원리가 '객관적인 도덕법칙'이라고 말하고 있거든요. 이것을 정 강사가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네요.
'도덕원리'와 '도덕법칙'은 구분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평가원 기출 선지를 오류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러러면 번거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을 테고, 그래서 나름대로 고육지책을 동원했는데, 이번에는 천재교육 교과서 표현과 충돌하네요. 이것을 정 강사가 몰랐을까요? 제가 연계교재도 확인해봤는데, 연계교재들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을 서술하고 있지 않더라고요(요약이든 자료든).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벤담의 공리성의 원리가 '보편적인 도덕법칙(도덕원리)'이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긍정하는 경우에도 정 강사는 오개념을 설명하게 되는 거고, 부정하는 경우에도 오개념을 설명하게 되는 거예요.
선지 하나가 잘못 나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는 생생한 사례네요.
저도 평소 이 부분이 좀 궁금했는데요...
관련 내용이 ''윤리학의 기본원리'' 몇 쪽에 나오는지요?
그리고 참고할 다른 자료는 어떤게 있을지요?
지금 돌이켜보니, 그리고 책을 확인해보니, 당시에 그 교수의 주장에 대해 제가 폴 테일러의 "윤리학의 기본원리"를 펼쳐 놓고, "봐라, 여기에서도 공리주의는 상대주의라고 나오지 않느냐"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책에서든 공리주의는 상대주의로 나옵니다. 이건 '상식'이에요. 그런데 당시에 그 교수하고 말싸움할 때, 그때 당시 기억으로는 포이즈만의 "윤리학"에서는 공리주의를 객관주의 윤리설이라는 식으로 서술해 놓았던 것으로 기억했습니다. 근데 포이즈만의 이 책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은데, 첫째, 이 책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철학계 전체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나 분류하고 다른 게 많다는 사실이에요. 이 책을
공부할 때 그런 걸 많이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둘째, 근데 이 책을 서울대 윤리교육과 출신 교수들이 번역했다는 거예요. 저하고 말싸움을 한 그 교수도 번역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포이즈만이 독특한 분류를 했을 가능성과 함께, '오역'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영어 원문을 확인할 길이 없었으니까요.
근데, 지금 포이즈만의 그 책을 확인해보니 이런 대목이 나오네요. 타이틀은 '상대주의 반론'이고, 바로 그 아래에 "사람들은 간혹 규칙 공리주의가 상대주의적이라는 비판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규칙 공리주의는 사회마다 서로 다른 규칙들을 승인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p.223)라고 나오고, 이러한 비판에
대한 대응으로 포이즈만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흄의 가르침을 따라서, 규칙 공리주의자는 행복의 핵심 구성 요소를 쉽게 변하는 개인적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공통된 심리적 구조 안에 정초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공리주의에 더욱 객관적인 토대를 제공할 것이고, 따라서 상대주의라는 비난에 대해 더 잘 대처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p.224)
저는 그 교수가 이 대목을 보고(번역이 정확하다면) 공리주의는 '객관주의 윤리설'이라고 단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그것이 객관주의 윤리설인 근거를 제시하려고 했다고 봅니다.
근데 포이즈만이 서술한 내용을 가만히 보면(번역이 정확하다는 전제하에), 공리주의
중에서도 '규칙' 공리주의에 대해서만 그런 언급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공리주의를 객관주의 윤리설이라고 단정하는 게 아니라, '상대주의라는 비난에 대해' "더욱 객관적인 토대를 제공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는 점을 유심히 봐야 합니다. 이것은 '규칙' 공리주의조차도 객관주의 윤리설이라고 단정하는 게 아니라, '조금 더 객관적인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정도의 언급이에요. 다른 공리주의에 비해 '규칙' 공리주의가 상대적으로 '객관성'이 더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포이즈만조차도 이런 정도의 의미로 규칙 공리주의에 대해 서술했다고 봅니다. 이 외에, 그 어떤 책에서도 공리주의를 객관주의 윤리설
이라고 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죠. 근데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안 통하는 공리주의의 '객관주의 윤리설' 주장이, 임용시험 보는 애들한테는 통용되고 있다는 거예요. 임용시험에서 그런 식으로 내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교수가 그런 식의 주장을 임용시험 준비하는 애들이 보는 책에서 언급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임용시험 보는 애들이 그렇게들 알고 있다는 사실도, 임용준비생이라는 사람이 이 게시판에 와서 그렇게 말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우리 윤리교육과의 학문적 폭이 얼마나 좁은지 알 수 있죠. 학계 전체에서 어떻게 얘기되고 있는지를 모르고, 그냥 학문적으로 병신들인
윤리교육과 교수들이 쓴 책만 죽어라 공부하면서 그게 옳은 내용인지 그렇지 않은지도 모르는 거예요. 학문적으로 윤리교육과는 앞으로도 희망이 없다고 내가 시시때때로 말하고 있는데, 이런 데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겁니다.
포이만과 제임스가 공저자인 그 윤리학 책 얘기 같은데, 임용 수험생들 사이에서 종종 읽히고 서로 권하는 책인 것으로 압니다. 말씀하신 그런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저는 그 책 유행하기 전에 우연히 일찍 알게 되어 사놓기는 했지만 왠지 손이 잘 안가서 정작 자세하게 읽어본 적은 없네요.
그나저나 언젠가 혹 필요성이 생기게 되면 저자 중 생존해 있는 사람에게 메일로 문의해서 답변을 얻을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공저자 중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중인 사람이 있는 것으로 나오네요.
그러고 보니, Pojman이니까 '포이만'이라고 해야 했네요. 네덜란드계인 듯
박찬구 교수님인가봐요?
마침 그분 <개념과 주제로 본 우리들의 윤리학> 공리주의 부분을 확인해보고 있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