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불암산/전 성훈
한 컷의 통과의례처럼 계절이 바뀌면 주변 산을 찾는 게 오래된 습관이다. 계절이 가을로 들어서면서 북한산과 도봉산 그리고 수락산을 찾았고 이제 마지막 순서가 불암산이다. ‘북도수불’ 가운데 불암산에 가장 많이 올라간 편이다. 불암산을 처음 만난 건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이라고 기억된다. 토요일 오전근무를 마치고 집에 일찍 돌아오면 간단히 배낭을 둘러메고 불암산에 올랐던 기억이 또렷하다. 불암산 약수터에 물을 뜨러 다니다가 불암산에 매력을 느꼈던 것이다. 산을 내려와 동네 사우나에 가서 냉탕과 온탕을 서너 차례 왔다 갔다 하는 게 직장에서 쌓였던 피로를 씻어내는 나만의 독특한 방법이었던 같다.
토요일 이른 아침 불암산에 가려고 창동역에서 4호선 전철을 타고 상계역에 내려 걷는다. 불암산 약수터에 이르러 잠시 마음의 갈등을 겪는다. 계곡 쪽으로 갈까 아니면 능선을 타고 헬기장 방향으로 갈까. 갈등은 순간적으로 끝난다. 오늘 불암산에 오르면 다음에는 해가 바뀌어 내년에나 올 테니까 가급적 산행 구간을 길게 잡아야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 그렇게 결정하고 헬기장 방향을 향하여 불암산 약수터를 지나니 깍깍하고 까치가 반갑다고 지저귄다. 까치 소리에 잠시 숨을 고르고 있으니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가 낙엽이 풍성하게 쌓여있는 길 옆 작은 계곡을 들여다보니 물이 그야말로 졸졸 졸졸 흐른다. 조용히 흘러내리는 물을 쳐다보며 날이 추워지고 엄동설한이 닥치면 물이 꽁꽁 얼어 배불데기 같이 얼음덩어리가 될 모습을 그려본다. 재현고등학교 뒷산 능선으로 오르는 길과 불암산 둘레길로 가는 갈림길에 우뚝 서 있는 남근석은 왜소한 내 모습과는 달리 언제 보아도 우람하고 멋있다. 그 옛날 숱한 할머니와 아낙네가 아이를 점지해 달라며 쓰다듬고 만져도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그 모습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헬기장에 도착하니 불암산성터 발굴 관련 출입금지를 알리는 노란색 금줄이 쳐져 있다. 잠시 쉬면서 물 한 모금 마시는데 바람이 상당히 차갑다. 자료에 의하면 불암산성은 신라가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규모는 작지만 삼국시대의 석축 산성의 전형적인 축성기법을 보여주는 유적으로서 인근의 수락산 보루· 봉화산 보루· 아차산 보루군 등과 함께 한강을 중심으로 한 삼국의 각축 양상과 고대 교통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고 있다고 한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불암산 정상으로 향한다. 호흡이 거칠어진 숨소리를 내며 힘겹게 나무계단을 붙잡고 정상부근에 이르자 예상 밖으로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 있다. 거의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정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함께한 일행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이든 사람보다는 젊은이들 특히 여성이 상당히 눈에 띄기에 조금 의아한 느낌마저 든다. 이른 아침에 왜 젊은 사람들이 불암산을 찾았는지 궁금하다. 그들도 나처럼 떠나갈 차비를 하는 늦가을을 만끽하려고 산을 찾았을까? 정상아래 다람쥐광장 의자에 앉아 햇볕을 쬐며 수첩을 꺼내든다. 파란 하늘엔 뭉게구름이 가는 듯 머문 듯하여 전혀 그 움직이는 기색을 느낄 수 없다. 다람쥐광장에서 간단한 먹거리와 음료를 팔았던 중년의 아주머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음식을 팔았던 자리가 철거되어 있다. 게다가 다람쥐광장 터줏대감인 고양이 가족도 안 보인다. 인간이고 동물이고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어떤 인연으로 어디선가 만나든지 만일 또 다른 생이 있다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만날지도 모르겠다. 이번 주에 세상을 떠난 몇 분의 소식을 접하니 더욱 삶과 죽음의 의미가 다가온다. 햇볕은 따사로운 빛을 모두에게 공평하게 비쳐준다. 그 빛나는 햇살 속에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가는 오로지 인간 개개인 각자의 몫이다. 내 삶의 모습은 어떤 색깔을 띤 모습일까?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고 자긍심을 주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아왔는지 묻고 싶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게 살아왔다고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자신도 없고 용기도 나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라고 말한 어느 선승의 그 깊은 뜻을 어리석은 중생인 내가 알 수는 없지만, 망해버린 황성옛터를 보며 ‘.... 인걸은 간데없고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고 읊은 옛 선비의 애잔한 마음은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늦가을의 불암산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젊은 날이라면 울긋불긋 아름답게 수놓은 단풍을 보면서 수없이 탄성을 질렀겠지만, 칠십 노인이 되어보니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는 경치도 그 뒤끝을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나의 세월은 이렇게 무심한 듯 흘러가고 다른 사람의 생기 넘치는 시절이 커다랗게 팔을 흔들며 다가오겠지. 떠날 때를 알아 스스로 물러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그 누군가 말했던가. (2021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