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족해방기념비 大韓民族解放記念碑
위치 ; 대정읍 상모리 3864번지 대정초등학교내 운동장 동쪽
유형 ; 비석(기념비)
시대 ; 대한민국
식민지 교육을 받아왔던 대정공립국민학교 졸업생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졸업하게 된 기쁨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운 비석이다.
〈大韓民國 檀君創業以來 以弘益精神 生成發展疆土秀麗文物燦爛爲所諸族欽仰之的稱印方禮儀之國 然或有異族之侵略如高句麗之對隋唐高麗之對契丹能擧防禦之實顯揚民族精氣保全民族傳統 嗚呼韓末之際倭國乘對淸露戰勝之勢强壓我族締結庚戌之條約奪我自主之權三十六年之屈辱 是所未曾見於半萬年之史也 然我族光復之意鬱然不己抗倭運動勃發於海之內外 數萬義烈之士殉焉壯哉 其爲族爲國之忠節千秋燦然也 檀紀四二七八年八月十五日 際倭國降聯合國於太平洋戰爭 我族得離脫於彼之 覊絆遂成宿 吾等不勝歡喜建立片碣而欲記念民族之解放矣 檀紀四二八三年七月 日 大靜公立國民學校 第三十四回 第三十六回 第三十八回 卒業生一同〉
〈대한민국은 창업 이래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나라가 발전하였으며 강토는 아름답고 문물은 찬란하여 여러 민족으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어졌다. 그러나 異民族의 침략을 입어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를, 고려는 글안을 물리쳐 이 땅을 지켜왔고 민족정기를 보전하는 전통을 세웠다. 아! 한말에 이르러 왜국이 청국과 노서아를 이긴 뒤 우리 겨레를 강압으로 경술합방의 조약을 맺어 우리의 자주권을 빼앗았다. 그 후 36년간의 굴욕은 일찌기 반만년 역사에 없었던 일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조국 광복을 위하여 항일 운동을 그치지 않고 해내외에서 수많은 의사와 열사의 그 장한 순국과 위국충절은 천추에 빛났다. 그 결과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에서 연합국에게 일본은 항복하고 우리 민족은 왜놈의 굴레에서 드디어 해방이 되었으니 이 어찌 통쾌하지 아니한가! 우리들은 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 비를 세워 이 민족의 해방을 기념하는 바이다.〉
이 비는 일제강점기에 한 교사의 민족 교육에 감명 받은 대정공립국민학교(현 대정초등학교) 34, 36, 38회 졸업생들이 5년간 헌금을 모아 1950년 제막한 것으로, 비의 규모는 높이 171cm, 전면 폭 56cm, 측면 폭 34cm이다. 광복이후 순수한 의미에서 순수 민간단체가 민족해방기념비를 건립한 것은 전국에서 유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남제주의 문화유적)
위 졸업생들을 가르쳤던 교사는 제주시 삼도리 출신 김영택(金榮澤, 1916~1948) 선생이라고 한다. 김영택은 본관이 나주이며, 김종림의 아들이다. 1935년 제주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일제 말기에 대정공립국민학교에 재직중이었다. 키가 6척 장신이며 굵직한 체구에 미남형이었다고 한다.
1943년 대정국민학교에는 校長 다케이(武井 進), 敎頭 나미도메(波止克喜), 敎師 오니시(大西德夫), 마츠모도(松本銀一) 등 일본인 4명과 야나가와(梁川濟普=梁濟普), 아라이(新井用厚=朴用厚), 미야하라(官原文治=李文治), 가네하라(金原榮澤=金榮澤), 니시무라(西村勳=姜達勳) 등 한국인 5명의 교사가 근무하고 있었다. 하루는 이 가운데 일본인 교사 마츠모도가 교무실에서 민족차별의 언사를 쓰자 김영택은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면서 어찌 조선인을 멸시하느냐? 이놈아 내 손맛 좀 봐라”고 하면서 유도로 마츠모도를 내동댕이쳤다. 1944년 다케이 교장은 전남 무안으로 전출되고 애월교에 있던 야마나카 사다치(山中貞治) 교장이 전입하였는데 이듬해 패전하자 “천황이 나를 속였구나”라는 말을 남기고 몰래 일본 시고쿠(西國) 지방의 고지겡(高知縣)으로 떠났다.
일제가 패망하자 김 교사는 담임하던 6학년 제자들에게 권하여 졸업기념으로 대한민족해방기념비를 건립하도록 지도하였다. 졸업반 대표 이덕빈(李德彬, 일명 李林根. 하모리), 이순찬(李順贊. 인성리) 등이 건비 사업을 추진했다. 비문은 선배교사 박용후에게 의뢰하였다. 박 교사는 모슬포의 正齋 高炳五의 자문을 얻어 한문으로 지었다. 비석은 1948년 졸업생들이 모은 돈으로 건립하려다가 4·3으로 늦어져서 1950년 졸업생의 졸업비까지 합쳐서 동년 7월에야 세울 수 있었다. 비석을 세운 자리는 일제의 봉안전(奉安殿)이 있던 자리이다.
김영택은 성산읍 풍천교가 개교되면서 1946년 9월 1일 초대 교장으로 승진발령되었다. 1948년 3월에는 동남교장으로 전보되었다. 4·3이 일어났을 때 학교의 등사판이 도난당하고 그 등사판에서 나온 5·10 선거 반대 내용의 유인물이 빌미가 되어 학교 물품을 간수하지 못한 책임자로서 추궁받아 직결처분되는 화를 입었다.(제주인물대사전)
대정초등학교는 해방 이후 각종 대중집회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했던 곳이다.
1945.09.07. 대정면 '건준' 결성,
1945.09. 대정면 '건준청년동맹' 결성, 대정면 '건준'을 '인민위원회'로 개편 결성 집회,
1947.03.01. 삼일절 28주기 기념행사,
1947.03.16. '민주주의민족전선' 대정지부 결성식,
1948.05.10. 선거독려 및 감시 목적으로 5연대 본부 주둔
위 사진은 1994년, 아래 사진은 2004년, 2007년, 2019년에 찍은 것이다.
《작성 050220, 보완 19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