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6일 주일예배 설교문 / 요한복음 17:21-26 / 대제사장의 기도③ - 하나된 생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
할렐루야!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신 예수님. 예수님의 기도 제목은 세 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삼중기도. ①아버지와 아들이 영화롭게 하소서. ②교회를 통해 영화롭게 하소서. ③완전한 영화로움을 이루소서. 이 삼중기도는 응답받아 삼중성취를 이루었고, 또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화롭게 되셨으며, 이 영화롭게 됨으로 아버지 하나님 또한 영화롭게 되셨습니다. 오늘날까지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영화롭게 되었으며, 교회를 갱신해서라도 영화롭게 되실 것입니다. 마지막 기도 제목은 때가 차면 마지막 심판 때에, 새 예루살렘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영화를 이루시게 될 줄 믿습니다.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영화롭게 됨. 이 구절은 예수님의 기도의 주제인 것입니다.
이렇게 영화롭게 되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가 있으니 하나 됨입니다. 생명은 한 덩어리가 되지 않고 나누어져 있으면 그 자체가 이미 사망인 것입니다. 부부가, 자녀가 서로 으르렁거리고 갈라져 있으면 집구석이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망할 집구석’이란 상스런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모두 삼위일체로 하나를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가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하신 내용은 하나님과 자녀들이 상호연합하고, 자녀들끼리도 서로서로 하나로 연합되어서 한 생명, 한 덩어리를 이루게 해달라는 것을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21절
지난주에 말씀을 나누었듯이 우리는 반드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생명이 될 수 없다면 생명이 아니라 주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출발점인 아버지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한 아버지에게서 출생하였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말씀 공급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의 말씀을 공히 공급받음으로 말미암아 말씀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함께 교회를 지어나가면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가 안되면 건물이 무너지니까 교회를 지으면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본문을 원리적 측면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적인 측면에서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상황 속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방법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발견하기 원합니다.
1. 항상 처음 마음을 잊지 마십시오. 5절
예수님은 창세 전에까지 말씀하시면서 시초부터 하나님과 하나였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이 중요합니다. 처음부터 다르면 다른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가장 중심적인 교회였던 에베소교회는 핍박하는 자들, 배역한 자들, 이단자들 때문에 위기가 찾아왔지만, 마침내 이겨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싸우다 보니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순수함, 사랑의 용서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처음 행위,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ex1)개인적으로 교회 개척할 때 마음을 잊지 않고 산다. 사과박스 놓고 신문지 깔고 예배 시작했음.
처음 마음을 가지라는 것은 더 낮아지라는 뜻입니다. 누군가 높아지면 절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11이라는 숫자가 참 오묘합니다. 창세기 11장에서는 니므롯이라는 사람이 선동하여 바벨탑을 지었다가 무너지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는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여인의 남편이었던 우리아 장군을 죽이는 내용이 나옵니다. 열왕기상 11장에는 솔로몬왕이 예루살렘 성전을 다 짓고 나서 교만하여져, 천 명의 아내를 거느리며 예루살렘을 우상 박물관으로 만듭니다. 열왕기하 11장에서는 아달랴라는 여자가 왕자들을 다 죽이고 자기 스스로 유다의 왕이 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10이란 숫자는 인간의 책임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완전을 말합니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열 개, 십계명, 열 처녀 등등 성경에서 10이라는 숫자는 인간이 “자기 책임을 다했다.” 이런 뜻으로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가 올라옵니다. 사람이 자기 영광을 받으려고 고개를 들면 11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10으로 아니, 6(인간), 더 나아가 5(책임)로 내려가야 합니다. 6에서 5로 내려가든지 10에서 멈춰야 하는데, 안테나 올라가듯 하나님 앞에 고개를 쳐들면 하나님과도 하나가 될 수 없고, 사람과도(남 잘되는 꼴을 못 보니)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하나되길 소망한다면 “나 이런 사람이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처음 나왔을 때의 그 겸손함, 낮은 마음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2. 속에 빛이 있어야 합니다. 23절
겉은 낮은 자세이지만 속에는 빛, 불을 품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빛(요한일서 1:5)이십니다. 성령님은 불(사도행전 2:3)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시면 빛이 있는 것이요 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발광체가 됩니다.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누가복음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우리는 밖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달처럼 그 빛을 전하는 반사체가 되어야 하지만, 빛되신 예수님을 안에 모셔서 빛을 가슴에 품고 빛을 발하는 발광체도 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얼마나 얼굴이 빛났는지 사람들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었다고 합니다. 그 안에서 빛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서로서로 예수님이 자기 안에 있으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한 덩어리를 이루는 한 몸이 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우리가 빛되신 예수님을 마음에 한 분씩 한 분씩 모시면 우리 모두 다 빛의 무리, 성령님의 불의 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3.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시면 말하고 일하십시오. 25-26절
내 속에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영에 속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영에 속한 생명은 내 말과 생각, 행동이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힘으로 사는 자들을 말합니다.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은 브살렐과 오홀리압, 그리고 함께 일하는 자들에게 지헤와 총명을 부어주셨습니다.
출애굽기 36:1 여호와께서 지혜와 총명을 부으사 성소에 쓸 모든 일을 할 줄 알게 하신 자들은 모두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할 것이니라
지혜와 총명. 잠언에서는 이렇게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을 지혜와 명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또한 신약에 와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쪽으로 일을 완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계시, 명철, 총명은 ‘아는 것’을 말합니다. 원리를 알아야 하고, 속성을 알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판단력과 분별력이 있어야 온전한 ‘앎’이 됩니다.
ex2)1+1=2가 아니라는 과학적 원리를 아는 사람은 총명한 사람. 에디슨은 총명했기 때문에 지금 유행하는 전기차를 벌써부터 발명한 것.
혼의 생명인 자기 생각, 감정, 의지로 판단하면 절대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성령으로 사는 자들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아 총명해서 하나되게 하는 원리를 알 것이요, 단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쪽으로 열매를 맺게 하는 지혜를 가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높아지려고 할 때, 반드시 처음 마음을 생각하고 더욱 겸손해지십시오. 내 속에 빛이 있는가 진단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주님의 빛이 있음을 보고, 누가복음 6장 27-28절처럼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십시오. 말에나 일에나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지혜와 계시가 있을 때 행하십시오.
우리는 반드시 천국 생명으로 하나 될 것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하나된 교회가 될 것입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