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속사적 성경묵상 ● (둘째 해_2월 26일)
<욥기 26, 27장> “자기 의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욥”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힘없는 자를 참 잘 도왔구나. 기력 없는 팔을 참 잘 구원하였구나. 지혜 없는 자를 참 잘 가르쳤구나. 큰 지식을 참 잘 나타내었구나. 네가 누구를 향하여 말을 내었느냐. 뉘 신이 네게서 나왔느냐. 음령들이 큰 물과 수족 밑에서 떠나니 하나님 앞에는 음부도 드러나며 멸망의 웅덩이도 가리움이 없음이니라.....그는 권능으로 바다를 흉용케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쳐서 파하시며 그 신으로 하늘을 단장하시고 손으로 날랜 뱀을 찌르시나니 이런 것은 그 행사의 시작점이요 우리가 그에게 대하여 들은 것도 심히 세미한 소리뿐이니라. 그 큰 능력의 우뢰야 누가 능히 측량하랴” (욥26:1-14)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의 생명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기운이 오히려 내 코에 있느니라)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궤휼을 발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단정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죽기 전에는 나의 순전함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내가 내 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일평생 내 마음이 나를 책망치 아니하리라. 나의 대적은 악인같이 되고 일어나 나를 치는 자는 불의한 자같이 되기를 원하노라” (욥27:2-7)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매 람 족속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노를 발하니 그가 욥에게 노를 발함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욥32:1,2)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잠20:3)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잠29:22)
『세 친구들 중에서 마지막 변론자로 나선 빌닷의 짤막한 발언이 끝나자 이제 욥이 자신의 지혜와 의로움을 입증하기 위한 긴 연설을 합니다(26장-31장). 그리고 한결같이 욥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재앙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던 세 친구들이 욥의 논리정연한 자기변호 앞에서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게 된 상황에서 욥은 먼저 그들이 자기를 정죄한 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임을 밝히면서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앞서 빌닷은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 말했지만, 욥은 그처럼 빌닷이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피상적이고 비실용적인 것임을 밝히면서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그리고 인간들은 결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 세상만 주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도 주관하시며, 바다와 라합과 날랜 뱀과 같은 거대한 악의 세력들도 다 하나님의 권능 아래 파멸됨을 설명합니다.
욥이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욥은 평소에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묵상을 하며 연구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욥이 하나님에 대아여 말하는 것이 점점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는 것처럼 변하고 있으며, 또 자기의 무죄함을 주장하던 것이 이제는 자신을 완벽하게 의로운 자처럼 여기는 자만심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그는 친구들을 자기를 대적하는 악인과 불의한 자들로 규정하는데 이 역시 과도한 비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런 표현은 자칫하면 자기는 의로운데 그런 자기에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은 불의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릴 위험이 있는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욥은 그와 세 친구들의 논쟁에 끼어드는 엘리후로부터 욥이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의롭게 여긴다고 꾸짖음을 듣게 됩니다(32:1,2).
욥이 처음에는 자신이 고난을 당하는 까닭을 알 수 없는 것 때문에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던 겸비한 자세에서 이처럼 점점 자신의 의로움을 과도하게 주장하게 된 것은 친구들과의 대화가 그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친구들과의 논쟁 과정에서 중보자에 대한 깨달음과 부활과 구속자에 대한 믿음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자신이 친구들보다 더 옳다는 사실을 자꾸 강변하다 보니 이제는 자기 의와 자만심으로 치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궤테가 한 말 중에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때때로 정의를 외치며 사회의 죄악과 불의에 대항하여 투쟁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자신도 그 사회적 죄악에 연루되고 마는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신을 죄인으로 규정하는 세 친구들과의 논쟁이 계속되다 보니 자신의 무죄함을 입증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점차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자기 의와 교만이라는 괴물을 표출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누가 더 옳은가 하는 논쟁은 우리를 교만과 자기 자랑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논쟁거리가 있을 때 최종적인 결론은 하나님께 맡기고 입을 닫고 있거나 가능하면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지혜로움일 때가 많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나의 옳음을 주장하다가 자기 의와 교만에 치우치지 않도록 늘 조심하며 겸손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오늘의 기도 ● “나의 옳음을 주장하려다가 자기 의와 교만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https://cafe.daum.net/waterbloodholyspirit/MuKU/62
첫댓글 아멘
자기 의 자기 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