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의 건국 과정을 그린 드라마 '주몽'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80회 가량의 방대한 분량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려다 보니, 스토리 구성 자체가 서사적이고 등장 인물들의 관계 역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래서 드라마 '주몽' 속에는 우리가 관심 가져볼 만한 여러 가지 극 중 암호(코드)가 등장한다. 시청자가 깊이 고민해 보아야 할 좋은 코드가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구태의연하고 편견이 담긴 코드도 있는 것 같다. 물론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지만, 드라마 '주몽' 속에 숨은 좋은 코드와 나쁜 코드를 살펴 보려고 한다. 우선 좋은 코드를 살펴보기로 하자.
1) 기술자 우대 코드
드라마 주몽에는 두 명의 '대장'이 등장하는데, 첫 번째 인물이 '주몽'이고 두 번째 인물이 '야철 대장'이다. 야철 대장은 독자적으로 자신의 철기방을 운영할 권한을 가졌으며, 주몽이 간섭 할 수 없는 기술적인 독보성을 가진 존재이다. 주몽의 고구려 건국 과정에서 항상 결정적인 역할과 성과를 이루어 낸다. 기술자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작금의 상황에 대한 반성을 가능하게 하는 대목이다.
2) 예법 코드
드라마 주몽에는 좀 지겹다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예법은 단순히 주종(主從) 관계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지만은 않는다. 주몽에서의 예법은 상대를 인식하고 존중하는 표현이며, 자신이 해야 할 말을 정리하기 위해 숨고르기를 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인사가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다시금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코드이다.
3) 신념 코드
고구려의 시조 주몽과 그의 아버지 해모수는 옛 조선의 영토를 회복하고 그 유민들을 통합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신념을 단 한 번도 버리지 않는다. 전략이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하지만, 종국적인 신념과는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삶의 종국적인 목표와 수단적인 측면을 혼동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변절하는 모습을 관용으로 치장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4) 여장부 코드
주몽의 연인이자 둘째 부인인 소서노는 주몽의 건국 과정에서 주몽에 버금 가는 활약을 보인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한 싸움과 모험도 마다하지 않고 척척 수행해 낸다. 소서노는 '온조'라는 한 아이의 편모이면서도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로서 너무 매몰차게 그려졌다 싶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기의 어머니에게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라는 현대 사회의 그릇된 신화를 비웃어 주는 임무는 훌륭히 달성한 듯 싶다.
5) 동성애 코드
주몽의 오른팔 협보와 소서노의 오른팔 사용 간의 미묘한 애정 전선이 시청자에게 보는 재미를 더해 주고 있다. 놀라운 점은 두 사람(남자) 간의 이런 연정을 정작 주변 인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사실 동성애는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생물학적, 사회적 현상이다. 동성애를 범죄나 윤리의 문제로 이해하는 것은 편견이며 마녀 재판이다. 드라마 주몽은 우리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6) 리더십 코드
주몽은 포용과 대화를 통해 지도자로서의 덕성을 축적해 간다. 무력이나 권력으로 상대에게 겁을 주어 복종을 이끌어 내지 않는 건설적 리더십을 보인다. 추종자들이나 백성들 역시 이러한 포용적 리더십에 감복하며 진심으로 따르고 충성을 보인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되 신념을 지키려는 지도자를 오히려 얕잡아 보며 따르지 않고 독선적이라고 몰아붙이는 우리 사회의 정치인과 국민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코드이다.
7) 정보 코드
주몽에서 각 세력들은 세작이라 불리는 스파이를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래의 국가 경쟁에서 정보의 중요성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비중이 크다고 할 것이다. 또한 각 세력이 상대 세력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반드시 갈등과 위험을 증폭시키는 것은 아님을 '주몽'은 잘 보여주고 있다. 정보의 공개는 오히려 세력 간의 마찰과 전쟁의 위험을 감소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역사는 증명해 주고 있다.
8) 지리 코드
주몽은 항상 탁자 위에 주변 지도를 펼쳐 놓고 고심하는 모습을 보인다. 많은 사람들은 역사와 정치, 경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 시간과 사건, 인물이라는 서사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사실 역사와 사회를 인식하는 데 있어 지리라는 공간적 도구는 매우 큰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다. 지리적 요인이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가장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사례를 우리는 수 없이 찾을 수 있다. 드라마 '주몽'은 지리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켜 주고 있다.
9) 자주 코드
부여의 황제 금와는 한(漢) 나라 현토성 태수나 한 나라 황제의 외척에게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절대로 상석을 내주지 않는다. 상대 국가의 힘의 우위를 인정하면서도, 굴복하거나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도움을 청할 때 조차도 반대 급부를 제공하며 외세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는 행태를 싫어한다. 강대국에게 간과 쓸개를 내어 주면서까지 기생하는 것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우리 사회의 맹목적 사대주의자들이 반성해야 할 대목이다.
10) 애국 코드
부여국의 최고위 관리 태사자 부득불은 온갖 계략을 꾸미는 것은 물론 살생까지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일생을 빈한하게 산 부득불의 모습은, 그의 행동이 나라를 위해 말 그대로 부득불(不得不) 행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부득불의 행동은 다른 그 어떤 목적이 아니라 부여라는 조국을 지키기 위한 목적 하나로 귀착되며, 그래서 부득불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라 할 수 있다. 애국과 위민을 외치면서 자신의 배를 불리는 현재의 거짓 애국자들과 선명히 비교된다.
11) 상도 코드
계루의 군장이자 대 상인인 연타발은 주몽의 목숨을 구해줄 뿐만 아니라, 주몽의 건국을 위해 묵묵히 후원하는 인물이다. 장사꾼은 이문이 있는 곳이라면 지옥이라도 달려간다고 말하는 장사치이지만, 미래의 변화상을 직감하고 미래의 지도자를 위해 아낌없이 원조하는 대승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연타발의 모습은 상업의 환경이 천박하고 상도가 사라진 우리 사회에 귀중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12) 통일 코드
주몽은 부여는 같은 고조선의 후예이기에 전쟁이나 반목이 아니라 포용과 화해를 통해 통합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부여와의 전면전을 피하는 선택을 한다. 피와 증오로 얻은 승리는 진정한 승리가 아니라는 것을 '주몽'은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에 대한 원조와 그들과의 대화를 마뜩치 않게 여기고, 심지어 전쟁 불사론까지 외치는 세력들에게 따가운 일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