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선구자 영국의 찰스 다원의 저서 "종(種)의 기원"에 동기가 되었던 갈라파고스(Galapagos)제도
답사의 경유지로 푸에르토리코, 도미니카, 아이티, 베네주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를 거치기로 하였다.
-여행 경로-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
공식명칭은 푸에르토리코연방(Commonwealth of Puerto Rico)이다. 미국인들은 "포로리코"라고 발음한다.
푸에르토(Puerto)가 스페인어로 포트(Port)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카리브해의 북부 서인도제도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수도는 산 후안(San Juan)이다. 대체로 직사각형 모양으로 동서로 179km 남북으로 64km
뻗어있으며 미국 플로리다에서 남동쪽으로 약 1,600km 떨어져있다. 면적 9,104평방km, 인구 3,927,000명
(2006 추계)이다.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과 자유연합관계에 있는 연방이다. 따라서 주민은 미국시민으로
간주한다. 행정권은 4년마다 직선제로 선출되는 총독에게 있다. 국방의 책임은 미국이 지고 있다.
-푸에르토리코 지리적 위치-
** 지도에서 푸에르토리코의 위치와 수도 산 후안(San Juan) 그리고 다음에 소개하려는
엘 모로(El Morro) 및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요새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대서양에 흐르는 주기적인 조류와 무역풍은 유럽으로부터 드나드는 범선의 항해를 촉진하였다.
또 갈색으로 표시된 대륙의 해안선은 메인 스페인(The Main Spain)으로 불렸으며
1500년대부터 1700년대까지 신대륙의 엄청난 부(富)는 스페인을 월드 파워로 만들었다.
-수도 산 후안(San Juan)에서 2박을 한 호텔과 성당-
-미라마르(Miramar : Ocean View)라는 이름의 현대식 호텔 옆에 고색창연한 조그만 성당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서 있다. 일견하여 폐건물 같은 이성당 앞에는 미사시간을 알리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이라는 이름의 호텔이지만 저층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 후안 외곽의 아침-
**대서양에서 떠 오르는 태양의 햇살이 조용한 거리로 들어오고 있다.
-구시가지 입구의 보도-
** 구시가지에 깔려있는 보도블럭은 청색의 "아도퀴네"라고 하는 돌인데 용광로를 만들때 쓰이는
일종의 화산암으로 이 돌이 오랫동안 습기를 머금어 지금과 같은 독특한 흑녹색을 띠게 되었다. .
-구시가지 와 성벽, 요새의 요도-
** 구시가지 전체를 완전히 감싸고 있던 성벽의 동쪽 부분은 시가지가 되어 없어지고
서쪽 해안 성벽만 보존되고 있다.
-성벽의 시작-
**남쪽 성벽은 항만 해안도로에서 서쪽으로 이어진다.
-기념 조형물-
**자연석과 어울어지게 조형한 기념분수대는 카리브해를 바라보는 해안도로 서쪽 끝에 서있다.
"푸에르토리코 섬은 배와 같이 파도를 타고 항해해 왔다"라고 시작되는 푸에르토리코 문화의 뿌리를
상징한다는 장황한 설명문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실제로 조형물의 기단이 선체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엘 모로 요새와 구 시가지(기념엽서)-
-푸에르토리코의 지정학적 위치-
**위의 요도는 푸에르토리코가 전략적 요충이었음을 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 높이 40여m에 이르는 육중한 성벽과 성벽 위의 감시초소-
** 성벽 밑으로는 올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카리브 해를 면하고 있는 요새의 성벽-
- 성벽위의 감시초소-
**떨어질것 같이 붙어있는 감시초소가 견고하기도 하지만 예술적인 형태를 하고있다. 이전의 성벽들이 수직으로
쌓은 석벽이었는데 이같은 재질과 구조는 대포의 출현으로 쉽게 무너졌음으로 돌과 씨멘트의 혼합으로
포격에도 쉽사리 붕괴되지않는 한층 견고한 축성술이 출현하게 되었다.
-성 문(Main Gate)-
**성문 위에는"이 문에 들어오는 사람은 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음).
-식민지 시절 붐비던 성문앞 풍경 삽화-
**현재 성문앞에는 접안시설이 전혀없다.
-성문 앞(사진 왼쪽은 해안초소)-
- 성벽 모퉁이에 날아 갈듯이 붙어있는 감시초소-
-성밖에서 보이는 요새의 최 상층(6층)-
-카리브해의 관문-
**대서양을 횡단하여 고단한 항해를 한 배들이 카리브해로 들어오려면 거쳐야할 관문은 폭이
반 마일(Half Mile)이다. 엘 모로 요새 맞은 편에는 엘 까뉴엘로(El Canu'elo) 포대가
버티고 있다. 요새와 포대는 교차 사격으로 관문을 봉쇄할 수 있다.
-구 시가지의 대성당-
**성문을 지나면 바로 구시가지이고 언덕길을 조금 지나면 대성당이 서있다.
-제대 앞에 기도하는 성직자(?)-
**남미의 다른곳 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조촐한 성당 내부에 붉은 현수막을 건 제대, 제대앞의 붉은 꽃의 화분,
그리고 붉은 수녀복 차림의 기도하는 수행자가 가톨릭에서 어떤 시기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끗하고 아름다운 구시가지 거리(골목)-
-구 시가지에서 엘 모로 요새로 들어가는 길-
**구 시가지가 끝나면 넓은 잔디밭이 시가지와 요새 사이에 펼쳐져 있다.
오른편으로는 성벽 밖에 공동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아담하고 아름다운 공동묘지-
** 주로 가족묘지로 조성된 이곳은 묘지라기 보다 조각 공원이라고
보는것이 옳다. 뛰어난 예술품들을 볼 수 있다.
-엘 모로 요새 정문-
-엘 모로 요새의 평면 요도-
**엘 모로(El Morro)요새의 정식 명칭은 산 펠리페 델 모로(San Felipe del Morro)요새이다. 6층으로 구축된
이 요새는 1539~1787년 어간에 수도 산 후안을 침략자들과 해상공격으로 부터 방어하기 위해 스페인에 의해
건설 되었으며 1983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이 요새는 카리브 해의 요새 중에서
가장 견고한 요새로 평가된다.
-요새 내부의 통로-
** 요새 내부에는 각 층을 연결하는 좁거나 넓은 미로와 같은 턴넬과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 4층 포대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카리브 해-
-6층에 건설된 등대-
-정문 앞의 해자와 다리-
-포 환-
-성벽에 설치된 감시 초소 입구-
** 감시 초소에는 3 면에 관측 창구가 있고 2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입구의 깊이로 보아 성벽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다.
-구시가 동쪽 지역에서 항구 쪽으로 내려간 골목길-
-산 크리스토발 요새( San Cristobal )/엽서-
-요새의 평면 요도-
**1634~1678년 어간에 스페인에 의해 세워진, 신 세계에서 가장 큰 요새이다.
1983년 세계 문화 유산에 등재 되었다.
-요새 내로 집입하는 경사로-
-세 개의 깃발-
**국립공원 관리소는 산 후안 역사 지구 요새에 3종의 깃발을 계양하는데, 부르고뉴(Burgundy)十字기,
푸에르토리코 연방기, 그리고 미 합중국기가 그것이다. 부르고뉴 십자기는 스페인 식민시절 동안
줄곳 이곳에 계양되었던 군용 깃발이다. 이 깃발은 카스티유(Castile)의 왕 필립이 그의 어머니인
부르고뉴의 메어리 공작을 기리기 위해 채용되었다. 당시 부르고뉴는 스페인의 영토였다.
- 전시실의 역사 자료-
-중후한 모양의 성벽-
**엘 모로 요새처럼 견고한 성채는 높이 50m, 넓이 27 에이커에 이른다.
-관측소의 창구와 관광객-
-관측 장비-
** 이 관측소는 2차 대전 중 미군이 잠수함이나 전투함 탐지를 위해 설치한 것으로
관측장비를 운용하는 병사의 모습이다.
-포환이 보이는 성채-
-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산 후안 시가지-
-스페인 식민 시절 병사들의 내무실-
- 산 후안 시내의 밤거리-
-상냥한 식당 종업원-
- 공원 야경-
- 성벽 올레길 입구의 루미나리에-
- 올레길의 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