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1주일 강론(다해)
사탄의 유혹
친애하는 교형 자매 여러분, 사순절이 지난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받음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십시오.”라는 말을 들으며 재를 받았을 때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묵상할 수 있었습니다.
사순 첫 주일 오늘의 복음(루카 4,1-13)에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이겨낸 예수님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우리 모든 인간이 유혹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지에 대해 큰 지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빵에 대한 유혹입니다. 극도의 허기진 상태에서 무언가 먹을 것을 던져준다면 누군들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이 빵은 곧 돈과 권력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돈 앞에 권력도 그 어떤 것도 굴복하고 진실을 위장하여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운 법입니다.
두 번째 유혹은 권력과 명예에 대한 유혹입니다. 나에게 절하면 모든 권세와 영광을 주겠다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권력지향적인 이 사회에서 이 유혹만큼 큰 것도 없습니다. 권력 앞에는 모든 것이 머리를 조아리고 달려드는 불나비처럼 내일의 비참한 끝을 모른 채 올인 하는 법입니다. 권불십년이라고 권력도 결코 믿을 게 못 됩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오늘날에 와서도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불법적인 내란을 비상계엄이란 이름으로 자행, 국회를 해산하고 총칼을 앞세워 장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세 번째 유혹은 자만 내지 만용에 대한 유혹입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보호해주시리라는 것입니다. 헛된 자만심이 우리를 얼마나 병들게 하고 파괴시키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자만심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호기와 객기를 부르게 하고 거짓된 기적을 기대하게 하는 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흐르도록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힘이 있다고 자연과 사람들의 상식을 거슬러 무언가 힘을 휘두른다면 파멸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법입니다.
이처럼 유혹이란 한마디로 “하고 싶다.”라는 것을 “할 수 있다.”라고 부추기는 것이고 카멜레온처럼 교묘히 위장을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것입니다. 이 유혹 앞에 넘어가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유혹하는 악마는 끈질기게 예수님을 괴롭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혹을 신명기의 말씀(신명 6,13.16 8,3)으로 물리치시는데 이 장소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혹에 떨어져 하느님을 배반했던 것에 반해 예수님은 광야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 받은 일이 이스라엘 홍해를 건넌 것에 비견된다면 40일간의 광야 생활은 40년간 이스라엘이 했던 광야 생활을 상기시키는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시험에 걸려 넘어졌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결정적으로 이 시험을 이기시고 약속의 땅, 하느님의 나라로 진입하시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루카 복음이 다른 복음과 달리 악마가 모든 유혹을 끝내고 다음 기회를 노리며 그분 곁을 떠났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루카 4,13). 악마의 유혹은 여기서 결코 끝이 아닌 것입니다.
사탄의 미인계
사탄이 어느 날 한 청년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열 개의 병을 보이면서 “여기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고, 한 개에만 극약이 들어 있는데 열 개 중에 아무거나 하나를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지만 생명과 바꿀 수는 없지.” 그러나 사탄은 계속 유혹했습니다. “열 개 중에 하나야. 겨우 하나일 뿐이야.” “그래 딱 한 번만 하는 거다. 이번 한 번이면 평생 안 해도 될 테니까.”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진땀을 흘리며 한 병을 골라 마셨습니다. 그러나 곧 청년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 내가 살았구나, 자칫하면 죽을 뻔 했어. 자 어서 돈을 내라. 그리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라.”
사탄은 청년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는 “다음번에 언제라도 아홉 개 중의 하나를 마시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청년은 오랜 방탕 생활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질 때마다 사탄을 불렀습니다. 어느덧 청년은 백발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딱 두 잔이 남았습니다. 술과 마약으로 폐인이 된 노인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노인은 마침내 마지막 잔을 마셨습니다.
“아! 이겼어, 나는 끝까지 살아남고야 말았다! 내놔라, 돈! 이것으로 끝이다.”
이때에 사탄이 남은 마지막 한 잔을 ‘훅’하고 들이마시며 말했습니다. “자! 이래도 네가 이겼느냐? 전부터 극약이란 없었다. 그러나 긁는 돈이라는 나의 극약에 이미 죽어가고 있어. 그는 천하보다 귀한 일생을 돈이라는 종이에 팔고 말았어. 나는 그의 청춘을 망가뜨렸지.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보고 오로지 돈만 알고 가도록 최고의 바보로 만들었지.”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이익에 마음이 홀려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악이 우리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침범하여 우리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또한 한가하고 게으를 때 악이 슬며시 우리 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그래도 이 세상은 참으로 악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일이지만 대전의 한 초등학교 선생이 초등학교 2학년 학생 하늘이를 죽이는 사건이 나서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젊은 청년들이 폭도로 변해 법원을 습격하여 때려부수고 난동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인용 여부를 기다리면서 과격론자들은 헌재를 산산조각이 되도록 때려부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런 유혹을 이기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큰 과제 중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일고 깊이 묵상함으로써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기시킨 내용을 우리는 되새겨야 합니다. 그들이 광야에서의 놀라운 체험을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맏물을 수확한 추수 광주리를 바치며 신앙고백을 하였듯이 우리도 우리를 늘 사랑으로 지켜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제사, 성찬례를 봉헌하면서 신앙생활에 먼저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제 2독서 로마서의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이 늘 우리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음을 깨닫고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실천해나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사랑으로 가진 바를 나누자.”라는 금년도 사순절 담화에서 희년의 은총을 함께 나누는 사순시기에 희망 안에서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고 두 번 째는 함께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세번 째로는 희망 안에서 함께 길을 걸어가자고 하십니다. 희망은 교회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1 티모 2,4) 기도하면서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천상 영광 안에서 하나가 될 날을 고대하도록 이끌어 준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교황님의 이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희망을 잃지 말고 이 사순 여정에 함께 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