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24년) 말경 울산 MBC에서 다큐멘터리 3부작으로 <바신라>라는 제목의 방송을 했습니다.
참고로 "#바신라"는 중동 페르시아(고대 이란)에서 우리나라 또는 신라(통일신라)를 가리키는 이름 중 하나.
참고그림) 울산MBC 바신라 다큐멘터리 1부 쿠쉬나메 시작 화면
1부는 이란에서 7세기를 배경으로 11세기에 쓰인 영웅 서사시 『#쿠쉬나메』를 소개하는 내용이었고, 2부와 3부는 #해상실크로드(Maritime Silkroad)를 통해 과거에 신라와 중동지역(좁게 보자면 페르시아, 지금의 이란) 사이에 문물과 인적교류가 다양하게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다.
이 3부작 다큐멘터리를 본 뒤의 개인적인 느낌은
• 준정부 기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오랜 기간 동안 다큐멘터리를 만드느라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고생했겠지만
• 내용의 수준은 청소년 대상의 눈높이로 만든 정도로 깊이에서 봤을 때 좀 빈약한 편. (앞으로 언급할 2013년 KBS방송보다 내용이 못한 편.)
• 자막 등을 이용해 내용에 대한 보충 설명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 듯.
또 이런 유형의 다큐멘터리형 방송에서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누구의 자문을 받았는가가 전체 내용 구성에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문한 분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연 『쿠쉬나메』에 대한 내용은 이희수교수 등.
본론으로 들어가서 『쿠쉬나메』에서 시작해 보자.
이란의 중세 서사시인 『쿠쉬나메』중 신라와 관련된 부분이 있다.
신라와 관련된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나라가 망한 페르시아의 왕자 아비틴이 통일신라로 망명한 후, 통일신라왕 태후르의 딸 공주 프라랑과 결혼하고, 이란의 전설적 영웅인 페리둔을 낳는다는 내용이다.
참고로 『쿠쉬나메』에 대해 보다 상세한 내용은 2013년도 방송된 KBS 파노라마 2부작 <쿠쉬나메>나 이희수교수의 번역본을 참고.
『쿠쉬나메』 한글 및 영어 번역본 표지.
국립정동극장 주관으로 2015년~2017년 동안 Performing Art <바실라>공연을 경주 세계문화엑스포 공연장에서 공연된 바도 있다.
이 『쿠쉬나메』의 주인공 왕자 #아비틴(Abtin)은 사산조 페르시아(#사산제국, Sasanian Empire, Eranshahr)(224-651년)의 마지막 왕인 #야즈데게르드3세(중국사서 한자이름 #이사후 伊嗣侯)(재위 632-651)의 왕자 #페로즈(Pirooz,"승리자", 후에 #페로즈3세, Peroz III로 불림, 한자이름 #비로사 卑路斯)를 모델로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산왕조 마지막 왕자였던 #와흐람(Wahrām, 후에 #바흐람7세, Bahram VII로 불림, 한자이름 #아라한 阿羅憾), 페로즈 형제는 651년 아랍 왕조(한자이름 大食)에 의해 사산왕조가 멸망한 후 많은 인원과 더불어 인접국인 당나라로 귀순하여 지금 말로 하자면 망명정부를 꾸린 후, 당나라의 지원하에 아랍제국에 대한 부흥 전쟁을 벌이며 망한 사산제국의 재건을 꾀하였으나 결국은 성공하지 못하고, 당나라 낙양에서 죽어 묻히게 된다.
이 페레즈 왕자의 활동에 대한 내용은 중국 역사서인 『구당서』(945년 성서),『신당서』(1060년 성서), 『자치통감』(1084년 완성) 등에 기록되어 있다.
신당서 열전 서역 하, 新唐书 《列传第一百四十六下 西域下》
• 以疾陵城为波斯都督府,即拜卑路斯为都督。
(661년, 페로즈를 페르시아도독부 도독으로 임명함.
페르시아도독부는 현재 아프가니스탄까지 포함됨.)
자치통감, 《資治通鑑‧卷二百‧唐紀十六》
• 二年春正月辛亥,立波斯都督卑路斯爲波斯王。
(662년 페르시아도독 페로즈를 페르시아왕에 임명)
이들 사산제국 왕자들이 꾸린 망명정부에서의 대 아랍제국 부흥 전쟁은 20여 년간 대를 이어 계속되었으며,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망한 다른 나라의 마지막 태자 또는 왕자 슬픈 감상적 스토리와는 다른 차원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는 듯하다.
당 고종과 측천무후의 능인 건릉(乾陵) 입구에 좌우로 세워진 61명의 외국사절 석상(乾陵蕃臣像)에서 페로즈 또는 그의 아들로 추정되는 페르시아왕자상 석상. (인용; 위키피디아)
사산왕조 왕자로 페로즈의 형으로 알려진 와흐람은 정사 역사서에는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뜻밖에도 청나라 말기 낙양에서 묘지명이 발견되어 그의 행적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림) 바흐람 7세 묘지명 (한자 《唐波斯国大酋长阿罗憾墓志》, 줄여 《#아라한묘지(阿罗憾墓志)》) 탁본, 710년 만듦, 묘지는 현재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중으로 알려짐.
바흐람7세(아라한)묘지 석문 (인용; Baidu)
좀 길지만 바흐람 7세의 묘지명을 보면
大唐故波斯国大酋长,右屯卫将军上柱国、金城郡开国公波斯君丘之铭。君讳阿罗憾,族望波斯国人也。显庆年中,高宗天皇大帝以功绩有称,名闻(西域),出使,召至来此,即授将军北门(右)领使,侍卫驱驰,又充拂林国诸蕃招慰大使,并于拂林西界立碑,峨峨尚在。宣传圣教,实称蕃心。诸国肃清,于今无事,岂不由将军善导者,为功之大矣。又为则天大圣皇后召诸蕃王,建造天枢,及诸军立功,非其一也茑。此则永题麟阁,其于识终,方画云台,没而须录。以景云元年四月一日,暴憎过隙,春秋九十有五,终于东都之私第也。风悲垄首,日惨云端,声哀乌集,泪(落)松干。恨泉扁之寂寂,嗟去路之长叹.呜呼哀哉!以其年□月□日,有子俱罗等,号天罔极,叩地无从。警雷绕坟,衔泪(刊)石,四序增慕,无辍于春秋。二礼克修,不忘于生死。卜君宅屯,葬于建春门外,造丘安之,礼也。
• 이름이 아라한으로 페르시아국대추장
• 비잔틴제국에 사절로 다녀옴
• 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 측천무후가 그 당시 도성 앞에 세운 동제 기둥인 천추(天樞)
• 710년 95세로 죽어 낙양 건춘문 밖에 묻힘.
등을 알 수 있다.
먼저 바흐람 7세의 종교가 경교로 추정할 수 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설이 있음).
781년 장안(현 시안)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教流行中國碑)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635년 아라본(阿羅本)에 의해 경교가 전파된 후 그 당시 장안에는 상당한 수의 경교 사원, 즉 교회가 있었음.
둘째로 흥미를 끄는 것은 측천무후 때 세웠다는 #천추(<大周万国颂德天枢>, 줄여서 <天枢>, "천하의 중심"이란 뜻)에 관련된 것으로, 이 묘지명에 의하면 바흐람 7세가 이 천추 건설을 총괄 담당한 관리였다는 것이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이 천추는 694년 8월부터 695년 4월까지 공사를 하여 당시 궁성이던 자미성(紫微城) 남쪽문(端門) 밖에 세운 높이 45.87m(혹은 31.5m, 또는 27m 등 여러 설이 있음), 직경 3.6m, 밑면 기단 길이 50m 정도의 8각형 구리 기둥.
《新唐书》 卷七十六 《后妃上》:
“武三思率番夷诸酋及耆老请作天枢,纪太后功德,以黜唐兴周,制可。使纳言姚护作。乃大哀铜铁合冶之,署曰:‘大周万国颂德天枢’,置端门外。
참고그림) 당시 수도였던 낙양 자미성 궁성과 천추탑 위치 복원 상상도 (인용; Baidu "天枢"조)
참고그림) 천추 복원 상상도 (인용; Baidu 및 중국 블로그) ~ 페르시아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것 같은 높은 석주(돌기둥)을 참고했다는 설도 있음.
참고그림) 왼쪽: 이란 페르세폴리스 만국의 문 부근 석주, 오른쪽: 수나라 우홍묘 출토 팔각형 돌기둥 (인용; 林梅村, 波斯建筑艺术巡礼—2012年伊朗考察记之三)
그러나 이 천추 기둥 건축물은 현종 시기인 714년에 황제의 명령에 의해 파괴된다.
여담으로 2010년 만들어진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중국명: 狄仁傑之通天帝國)에서는 천추와 유사한 형태로 「통천불(通天佛)」이라는 고층 불탑을 건설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이 천추 건설공사와 관련하여 몇 명의 고구려 유민들이 등장한다.
• 연개소문의 손자, 천남생 아들인 #천헌성(泉献诚)(651~692) : 692년 2월에 검교천추자래사(檢校天樞子來使)에 임명되어 천추(天樞) 탑을 만드는 인력과 물자를 조달하는 업무 담당.
《泉献诚墓志》(1926년 출토):“二年二月,奉敕充检校天枢子来使,兼于玄武门押运大仪铜等事。”
• #고족유(高足酉) (d. 695) : 천헌성에 이어서 고구려유민수장(高丽蕃长)으로 천추 공사를 마무리함.
《高足酉墓志》(1990년 출토): “证圣元年(即天册元年)造天枢成,悦豫子来,雕镌乃就。……即封高丽蕃长、渔阳郡开国公,食邑二千户”。
천헌성 및 고족유묘지 원문과 해석문은
한국고대금석문 > 고구려 > 유민 묘지명 홈페이지에 볼 수 있다.
• #모파라, 毛婆罗(毛むくじゃら, 털복숭이 모씨란 뜻): 동이(東夷), 즉 신라 또는 일본 출신으로 천추탑 설계.
《资治通鉴》(卷二百五)《唐纪二十一》“
"工人毛婆罗造模,武三思为文,刻百官及四夷酋长名,太后自书其榜曰‘大周万国颂德天枢’。
《新唐书·五行志一》
“中宗时,……中郎将东夷人毛婆罗”
위 다큐멘터리를 보고 느낀 점으로는
아주 오래전이라도 먼거리까지 육지나 바다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역을 하였고, 인적 물적 교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았던 것 같고,
망국의 왕족이나 고위층 유민들 중 망명정부 같은 것을 세워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수십 년간 싸운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 알려질 수 있었으면 좋겠고,
신라에 의해 한반도 통일 후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에서 높은 지위로 많은 공적을 남긴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아무 연결관계가 없을 것 같은 고대 이란의 영웅 서사시에서 출발하여 고구려유민들까지 약한 형태로 연결이 되는 것은 모랫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