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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篇小說
바람이 있는 풍경 < 4회 >
>4 <
대기는 잘못 인화되어 나온 사진처럼 황적색으로 물든 채 온통 뿌유스름했다. 비를 갖고 있지는 않은 듯 했지만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한 귀퉁이 엷은 구름 저편으로 마악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황적색의 대기는 아마도 그 탓인 듯했다.
버스에서 내려서자 우선 목도된 것은 황적색의 대기를 뚫고 날아가는 거대한 점보 여객기였다. 공항이 가까운 탓이었다. 그것은 그리 높지 않은 건물의 옥상들을 스칠 듯 했는데, 그 거대한 동체가 금방이라도 건물에 부딪치고, 그러노라면 건물은 그만 힘 없이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았다. 만화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도시 저편으로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고, 그 앞의 건물들이 폭삭폭삭 주저 앉아 버리는 것 말이다. 더욱이 황적색으로 뿌옇게 탈색된 대기는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먼 미래의 도시 한 구석에 서 있는 것처럼.
현경은 크고 작은 건물들 저편으로 사라지는 점보 여객기를 잠시 올려다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현승의 집에 가자면 한참을 올라가서 다시 골목으로 꺽어져 들어가야 했다.
어젯밤 늦게서야 귀가했을 때 테잎 속에는 올케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더랬다. 깜박이는 푸른 불빛과 함께 재생되어 나오는 올케의 나른하고도 힘이 없는 목소리를 그녀는 세안을 하기 위해 머리에 타월을 터반처럼 두르며 들었다.
―형님, 저 민혁이에요. ……아직 안 들어오셨군요. ……지금 저녁 아홉 시가 넘었어요. ……다른 게 아니고 ……한번 뵈었으면 해서요. 민혁 아빠 때문이예요. ……들어오시는 대로 전화 주셨으면 해요. ……끊을께요.
올케는 무엇인가 이야기를 할 듯 할 듯 하다가 말았다. 그러나 현경은 전화를 하지 않았다. 너무 늦어서이기도 했지만 현승이 때문이라는 데에는 전화를 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일은 뻔했다. 또 바람이 불어 직장을 옮긴다거나 하는 것일 터였다.
무엇이든 한 가지 일에 진드감치 매달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게 바로 현승이었다. 방랑벽이랄까, 아주 오래 전부터 소식도 없이 사라지곤 해서 현경의 가슴을 태우곤 했었다. 학생운동을 하다가 대학을 그만 두고 군에 간 것도 그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것은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현승도 현승이지만 조그만 일에도 전화를 걸거나 쪼르르 찾아오곤 하는 나이 어린 올케도 썩 마음에 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올케로써는 그럴 수 밖에 없는지도 몰랐다. 시어머니도 없는 마당에 자신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이라곤 현경 밖에 없을 터이니 말이다.
하지만, 웬만한 일은 자신들 선에서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 그럴 만한 나이도, 시기도 지나지 않았는가…….
사실 현승이는 현경에게 있어 늘 가슴애피 같은 존재였다. 그 애를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곤 했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늘 자리에 누워서 지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어머니가 다른 집 어머니들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다녔던 것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까지 뿐이었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던 해부터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여 늘상 자리에 누워서만 지내야 했다. 그녀가 다니던 초등학교 선생이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병치레에 허덕여야만 했다. 때문에 집안의 자잘한 일들은 어린 현경이 맡아서 해내야 되었다. 아버지가 함께 나서서 도와주긴 했지만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하는 것은 거의 모두가 현경의 차지였다. 어머니는 간신히 나와서 햇빛이 쪼이는 마루에 앉거나 부뚜막에 걸터 앉아 이것저것 일러주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그렇게 나와 앉아 있는 것조차도 힘들어 하였고, 어쩌다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며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걸음걸이로 집 근처에 나가 바람이라도 쏘이는 날이면 그 날 밤은 온 식구들이 뜬눈으로 새우다시피 해야 되었다.
그런 형편이다 보니 현승은 어머니에게 어리광 한번 제대로 피워 본 적이 없었다.
그 애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한나절 내내 밖에서 뛰어놀다가 땟국물이 꾀죄죄하게 흐르는 얼굴로 들어와 어머니 곁에 쓰러져 잠들거나 형편 없이 졸아붙어 밋밋할 따름인 어머니의 젖무덤을 만지작거리는 것 뿐이었다. 그애는 한 번도 친구들을 집안으로 끌어들인 적이 없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밥수저를 놓기가 무섭게 밖으로 나갔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져서야 들어오곤 했고,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 집을 드나들었지만, 그 애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혹간 집에 볼 일이 있더라도 친구들은 대문 밖에 세워둔 채 혼자서만 들어왔다가 나갈 뿐이었다. 또한 밖에서는 목청껏 소리를 지르기도 했지만 일단 집안에 들어오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애가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내뱉게 되는 것은 언제나 ‘엄마’ 라는 말 대신에 ‘누나’ 였다. ‘누나 배 고파’, ‘누나 밥 줘’ 였다. 그애에게 있어 ‘엄마’ 는 언제나 아랫목을 차지하고 누워 있는 하나의 정물로 존재할 뿐이었다.
현승이 중학에 들어가고 현경이 여고 2학년이 되던 해 어머니는 석달 간이나 읍내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되었다. 말하자면 그게 어머니에 대한 마지막 추억이 되고 만 셈이었는데, 산 송장이나 진배 없이 담요를 둘둘 말린 채 택시에 태워져 돌아온 어머니는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눈을 감아 버렸다. 사람들은 진작부터 어머니가 더 이상은 견디지 못하리라고 점쳤다. 당신을 위해서나 다른 가족들을 위해서나 그만 눈을 감는 편이 낫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그렇듯 읍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동안 아버지는 병원에서 학교로 출근하고 퇴근하다시피 했다. 현경의 학교는 읍내에 있었으므로 하학길에 병원에 들렀다가 아버지가 오시면 교대하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현경이 병원에 머물러 있다가 다음 날 아침 그 길로 등교를 하기도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직접 아내의 마지막을 지키고자 했다. 가망성이 없으니 집으로 모셔가라는 말에도 마지막까지 치료나 받아보게 하자며 삼개월 동안이나 입원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아무튼 아버지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집은 현경과 현승에게 맡겨두고 병원과 근무지인 초등학교를 오락가락하며 시간이 허락하는 한 어머니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는 것은 이 삼 일에 한번씩 옷을 갈아 입을 때 뿐이었다. 병원에서 교대를 하고 돌아온 그녀는 현승과 둘이서 썰렁한 집안을 지키며, 알전구를 밝혀 놓고서 빨래를 하고 다림질을 하며, 다음날 아침이거나 아니면 그 저녁에라도 아버지가 옷을 갈아 입기 위해 집에 들러 주기를 기다렸다. 하루에 한 번 꼴로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긴 했지만 병원에서 대하는 것과 집에서 대하는 것과는 달랐다.
그런데 더 이상은 어쩔 도리 없이 어머니를 퇴원시키기로 결정할 무렵의 일이었다. 어머니의 퇴원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때문에 집안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을 수 밖에 없었다.
늦은 밤, 언제까지일 듯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어올리면 거기 적막만이 목도되곤 했다. 아버지도 지쳐 있었고, 현경도 현승도 모두 지쳐 있었다. 아버지가 머리를 감아 빗고 나간 뒤이면 하수구의 철망에 한 웅큼이나 되는 머리칼이 걸려 있는 것을 현경은 볼 수가 있었다.
그 무렵 현승은 자주 귀가 시간이 늦어지곤 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돌아다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정이 다 되어서야 슬금슬금 들어와 제 방에 쓰러져 잠들곤 했다. 그 동안 자주 들여다보곤 했던 어머니의 병원에도 발길이 뜸해지고, 더러 친구의 집에서 자고 들어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도 힘겨우리라는 생각이었고, 웃음이라곤 어려서부터 몰랐던 그애 얼굴이 두어 달 사이에 더욱 핼쑥해진 것을 보면 그저 안타깝기만 했을 뿐이었다.
어떻든 어머니의 퇴원이 결정되고, 날짜가 이 삼 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현승은 거의 일 주일 동안이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 여름방학이 시작되어서 학교에 갈 일은 없었다. 그러니까 방학이 시작되던 다음 날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현경은 현승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현승이는 어머니를 퇴원시키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그게 곧 죽음에 대한 결정임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현승이도 어머니의 죽음은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지만 이제까지 끌어왔던 것에 비해 퇴원이 그처럼 빨리 진행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현승이는 어머니가 퇴원을 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현경은 아침부터 대문 앞 살구나무 그늘 밑에 쭈그려 앉아 현승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다음날도 그랬고, 그 다음날도 그랬다. 그애한테 무슨 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어쨌든 어머니의 퇴원에 앞서 돌아와야만 될 거였다.
그녀는 잎이 무성한 살구나무를 올려다 보며 현승이가 빨리 돌아오게 해 달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기도 했다.
뭐랄까……. 이를테면 그 살구나무는 어머니와 동일한 무엇이었다. 어머니는 살구를 무척 좋아했다. 그것도 완전히 익어서 갈라지기 직전에 약간의 덜 익었다 싶은, 그래서 베어 물면 시큼한 맛이 우러나는 것을 좋아했다.
한창 녹음이 짙을 무렵 바람이 없는 날에도 툭툭 떨어지는 살구알들. 그것들 중에도 조금 덜 익었다 싶은 것들을 고르거나 아니면 장대로 떨어내 몇 줌씩 가져다 어머니에게 드리면 당신은 그것을 한 입씩 베어 물고서 오물거리곤 했다. 빈 속에다 너무 많이 먹는 바람에 속이 아파 혼쭐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지만 어머니는 다른 것과는 달리 그 살구만큼은 마다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해에는 단 한 개의 살구도 드시지 못했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준규가 다가왔다. 무척이나 조심스러운 얼굴이었고 또한 주저하는 태도였다. 평상시에도 그녀 앞에서는 뭔지 모르게 조심스러워 했지만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터에 누구 보다도 이쪽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서 더욱 그러할 거였다.
준규는 어머니의 병세는 어떤가, 선생님은 어떤가고 물었다. 그는 그녀의 아버지를 꼭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두 해인가 준규의 담임을 맡기도 했었다. 한번은 학년이 바뀌고 준규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아버지가 담임을 맡는 바람에 억지로 반이 갈리게 된 적도 있었다. 그녀가 옆반의 같은 번호 아이와 반을 바꾼 것이다.
그 무렵 아버지는 가끔씩 준규 얘기를 했었다.
―옆집 준규는 다 좋은데 가끔씩 건망증이 있어서 탈이야. 오늘도 혼자서만 숙제를 안해 와서 종아리를 호되게 때려 주었는데 그 얘기 하지 않든?
물론 아버지는 준규가 종아리를 맞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점차 웃음을 잃어가는 두 남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였지만 그러나, 어쨌든 준규는 한 번도 종아리를 맞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띄엄띄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준규가 물었다.
“요 며칠 동안 현승이가 통 보이지 않아. 어딜 간 거야?”
현경은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가 한번 찾아 볼까?”
그러더니 그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그리고는 아랫동네를 향해 내달리며 걱정하지마, 했다.
아랫동네는 현승이 친구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현승이가 거기 있으면서 한 주일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그녀는 준규가 현승이를 찾아오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나마 나서 주는 준규가 고마웠을 뿐이었다.
저녁 때가 되도록 준규는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현승이도 마찬가지였다. 준규가 자전거를 끌고 나섰을 때만 하더라도 그저 아랫동네에 가 보려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는 준규만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도록 종무소식이었다. 준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준규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방 안이 어두워져 알전구를 켤 무렵이었다. 그래도 밖은 동편 산마루에 햇살 몇 가닥이 걸리어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땀과 먼지로 얼룩져 있었다.
혼자였으므로 현경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용케도 현승을 찾아냈다고 했다.
“조금 있으면 들어올 거야. 봉정리 친구집에 있더라구.”
“봉정리?”
봉정이라면 이십 리 길이 넘는 곳에 위치한 동네였다. 금강(錦江)으로 흘러드는 커다란 하천의 뚝방길을 따라 한없이 내려가다 보면 강과 하천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그 동네였다. 그래서인지 집집마다 땅콩을 재배한다고 했는데, 거기 사는 아이들의 책가방 속에는 으레 땅콩들이 몇 줌씩 들어있곤 했다.
준규가 말했다.
“현승이가 들어오면 야단치지 마. 그래서 아랫동네에다 떨궈놓고 먼저 올라온 거야. 녀석이 마음을 잡지 못하는 거 같았어. 얼굴도 형편없고 축쳐진 것이……. 그렇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친구네 집 과수원 원두막에서 쭉 있었던 모양이야.”
그 말을 남기고 준규는 돌아섰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대문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멍하나 바라보았다.
대문을 나서면서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만일 그가 뒤돌아 보았다면, 그래서 다시 한번 서로의 눈길이 마주쳤다면 왈칵 눈물을 쏟아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시금 비행기 소리가 요란했다. 그런데도 이제 막 한 돐이 지난 민혁은 색색거리며 잘도 잤다. 그 아이는 백속에 있을 때부터 비행기 소리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현승과 올케는 결혼을 하고부터 줄곧 이곳에서만 살아왔으니까.
비행기 소리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가 현경은 입을 열었다.
“그런 일이 있는 줄은 몰랐어.”
올케는 주방 쪽에서 잠시 아무말 없이 커피를 끓였다. 착 가라앉은 모습이었다. 임신 때 끼었던 눈 밑의 기미가 아직도 벗겨지지 않은 채였다. 그것은 어쩌면 요즘의 생활이 형편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할 터였다. 현승이 넉 달 가까이 놀고 있으니 말할 필요도 없을 거였다.
올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전연 뜻밖의 것이었다.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티격태격했겠거니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승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내고 도산하는 바람에 밀린 임금조차도 받지 못하고 직장을 잃었다는 게 올케의 이야기였다. 그게 벌써 넉 달째라는 것이었다. 더욱이 직장을 구해 보겠다고 나간 그가 벌써 며칠째 아무런 연락도 없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넉 달이 넘도록 한번도 찾아와 보지 않고 전화연락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책감으로 다가오는 것을 현경은 어쩌지 못했다.
“그런 일이 있으면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올케가 끓여 내미는 커피잔을 들어올리며 현경은 나무라듯 말했다. 웬지 철없이 보이는 올케에게 화가 났다. 아니, 올케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향해서일 터였고, 더불어 자책감을 애써 덮어두기 위함일 거였다.
“매일같이 바쁘고 피곤한 형님께 괜한 걱정을 끼치는 게 아닌가 해서요. 민혁이 아빠도 형님한텐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구요…….”
“그럴 땐 속도 깊네. 내 걱정을 다 해 주고, 하지만 그런 일이라면 진작 얘기를 했어야 하잖아. 안 그래? 이야기를 하고 안할 게 따로 있지…….”
“죄송해요. 실은 그런 이야기까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민혁 아빠로부터 연락이 없다 보니 그만……. 사실 저로써는 형님한테 밖에 의논할 사람이 없잖아요. 친정식구들한테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시골 아버님한테 말씀드릴 수도 없고……. 혹시 형님이라면 민혁 아빠가 갈 만한 곳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현경은 남아 있던 커피를 마저 비워내고 그 때까지 앉아 있던 식탁의자에서 내려와 잠들어 있는 아이 곁에 앉았다. 그리고는 아이의 이마를 몇 번 쓸어준 뒤 벽에 등을 기대었다.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와 함께 피곤도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데서건 쓰러져 잠들고 싶었다.
“사람을 만나러 나간다고 하고선 연락이 없다구?”
한참 지나서야 현경은 다시 입을 열었다.
올케는 여전히 식탁 의자에 앉아 있었다.
“출판사에 있는 친구를 만난다고 나갔더랬어요. 아직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아마 출판사 일을 하기로 한 모양이구요.”
“출판사?”
“영업부죠 뭐. 저를 만날 무렵에도 잠시 그 쪽 계통에 몸담고 있었으니까 왠만하면 할 수 있을 거예요.”
“…….”
“그쪽 출판사에 연락을 해보려 해도 미처 전화번호를 알아두지 않아서…….”
올케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현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현승이 군에서 나와 잠시 출판사에 있었긴 했지만 그쪽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출판사에 있다는 현승이 친구 역시 알고 있질 못했다. 그렇다고 그가 달리 갈 만한 곳도 떠오르지 않았다.
현경은 올케가 지어 주는 저녁을 먹고 머물러 있다가 아홉 시가 넘는 것을 보고서야 그곳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수퍼에 들렀다. 아이의 분유가 한 통 밖에 남아 있지 않는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올케는 친정쪽에 손을 벌리고 있는 눈치였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이랴. 그녀는 분유를 사고, 과일을 사고, 깡통 종류도 몇 개 샀다. 마침 지갑 속에는 십 만 원권 수표 한 장 외에도 얼마간의 돈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택시비 정도만 남기고서 그것을 분유통 위에 얹어 들이밀고는 도망치듯 나와 버렸다.
버스 승강장으로 향하면서 올려다 본 하늘은 어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이곳저곳에서 내쏘는 불빛으로 하여 온통 부유스름했다.
“고마워, 누나.”
현승이 말했다. 그의 집에 다녀 온 다음 날 얼마간의 돈을 통장에 입금시켜 준 것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몸피가 야위어 보이는 것이 그간의 생활을 충분히 짐작케 했다.
어떻게 된 거니? 그러나 현경은 묻지 않았다. 물음 대신 찻잔을 들어 입술을 축이고는 커피숍 창유리 저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푸른색 얇은 셀로판지가 입혀진 창유리로 볕 밝은 오후의 거리가 나른히 잠겨들고 있었다.
“집에 다녀왔어.”
잠시 뒤 현승이 말했다.
그제야 현경은 창유리에서 시선을 거둬들였다.
그가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길게 뿜어내는 담배연기가, 그리고 부석부석 흐트러진 머리칼이 그를 지쳐 보이게 하고 있었다.
“집이라면 아버지한테 말이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떠오르자 그녀는 다시 시선을 창유리로 던졌다. 볕 밝은 오후의 거리로 사람들과 차량들이 소리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니, 그들은 분명 웃고 떠들고, 더러 차량들의 경적소리가 토해지곤 할 테지만 이쪽에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푸른색 셀로판지 탓일까, 물 속에 잠겨 밖을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랬다. 아버지는 그녀의 가슴에서 덜어내지 못한 무엇인 채 항상 아릿하게 눌러오곤 하였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지금까지 대문 앞에 살구나무가 서 있는 옛집을 지키며 혼자 살아오고 있는 아버지.
당신은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그 만큼의 세월이 흐르도록 한번도 그 살구나무 집을 떠난 적이 없었다.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학교로 전근을 다녀야 했는데, 한번도 거처를 옮기지 않고 버스를 두세 번씩 갈아타면서 까지 출퇴근을 하곤 했다.
현경이 그 곳을 떠나올 때도 그랬지만 현승이마저 떠나오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현승과 함께 쓰라고 조그만 아파트를 전세 얻어 주고 돌아서던 뒷모습은 오래도록 그녀의 가슴만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그 아파트를 아주 사 버려 지금까지 눌러 있는 것은 아버지가 살구나무 집을 떠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아버지는 언제나 단정한 차림이었다. 빗어 넘긴 머리칼은 한 올 흘러내리는 법이 없었고, 와이셔츠의 소매 끝이나 칼라의 접힌 부분에선 언제나 푸른빛이 감돌았다.
현경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그녀는 아버지가 그 학교의 선생님이라는 사실에도 그랬지만 그 보다는 단정한 모습에 늘 자랑스러웠다. 웬만한 바람에도 결코 흐트러지지 않는 머리칼이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만큼의 세월이 흘러서 이제 정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은 그 모습도 조금씩 조금씩 흐트러지고, 어느 한편 지치고 힘겨워하시는 모습이 역력했다.
“처음엔 거기 내려갈 생각이 아니었어. 그런 계획이 있었다면 미리 얘기를 했지. 사실……, 누나한테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무척 힘들었어.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그렇지가 않았는데 이젠 그게 아니더라구. 갑자기 직장을 잃었다고 생각되자 그처럼 막막할 수가 없었어. 그 전엔 내가 다니기 싫어서,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만두기도 하고 이리저리 옮겨다니기도 했는데 말야. 그게 나이가 들어선지 아니면 철이 들어선지는 모르겠어. 자식이 딸리게 돼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지. 어쨌든 본의 아니게 직장을 잃고 나자 눈앞이 캄캄해졌어. 실제로 그 전과는 달리 일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구……. 사실 친구를 통해 출판사에 들어가기로 해 놓고도 얼마나 불안해 했는지 알아? 만약 잘 안 되면 어쩌나 하고 말야. 친구녀석 말이 거의 확실하니 믿어도 좋다고 했지만 확실한 결정이 나기까지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구. 그건 아마 직장을 잃어 본 사람 만이 알 수 있을 거야. 그런데…… 그 날 나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는 확답을 듣고 나자 그 동안의 긴장이 풀리면서 뭔가 허탈해지는 것이 아니겠어. 그리고 갑자기 아버지도 보고 싶어지고. 그래서 그 길로 고향으로 내려간 것이지……. 처음엔 하루나 이틀 정도만 묵었다가 올라올 생각이었어. 그래서 연락을 안했던 것이고 말야. 아니, 단 하루일지라도 연락을 해야 마땅했지만 웬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어. 왜 그럴 때가 있잖아. 훌쩍 떠나 버리고 싶은……. 그리고 민혁이 엄마가 입정 헤프다는 거 누나도 잘 알고 있잖아. 내가 거기 내려갔다면 쪼르르 쫒아와 아버지께 미주알 고주알 그 동안의 일들을 늘어놓을 건 뻔하고……. 아무튼 거기 가 아버지와 함께 지내다 보니 새록새록 옛날 생각이 나는 게 아니겠어.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살다가 누나를 먼저 서울로 떠나 보내고 나자 집안은 그야말로 빈 집 같았었지. 아버지는 밤 늦게까지 크엄크엄 기침을 하다가 나를 부르곤 하셨어. 그래서 아버지 방으로 건너가 보면 밤, 오징어, 홍시 따위를 꺼내 놓고 먹으라는 것이었고, 입이 짧아서 군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럴 때면 먹는 척이라도 해야 되었지. 또한 그러노라면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이어서 그것을 참느라 혼이 나야 했었고……. 어떻든 괜한 이야기를 꺼낸 거나 아닌지 모르겠네. 아무튼 아버지도 예전 같지 않으셔. 건강도 안 좋으신 것 같고…….”
현경은 다시금 창유리 저편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느 새 오후도 많이 기울어 거리는 조금씩 술렁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물 속에서 바라보는 저 밖의 풍경일 뿐이었다.♧
< 계속>
첫댓글
운무사를 다녀오셨어요
칠월의 싱그러움이 이 새벽의 컴 앞에 푸르게 배달됩니다
그러니요
하루를 열어주시면서
함께 하는 작문의 글 앞에 무순 평을 하리오
늘 대단하시다는 생각으로 함께하는 오늘입니다
한 줄의 글맥을 이어가기도 힘들어요
감동의 글 많이 역사에 남겨 주세요
솔직히 저는 요즘 타인의 글을 옮기다 보니
머리의 회전이 안 된다고 이질직고 하나이다...ㅎ
아름다운 세상을 더 넓게 그려주셔요
하루도 행복한 웃음 가득 채우시면서요
산골일기,,,,,저물어가는 세월,
모처럼 만에 내리는 소낙비가 온 산골을
적시 는데 쉼터의 쇼파에 앉아서 빗소리
를 들으며 문을 활짝 열어놓고 비를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는 나,는 한없는 아늑함
속에 평온 하기만 한 한낮 입니다''
오늘 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이 된다
는데 모처럼 내리는 이 비가 그동안 메말
랐던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고 깨끝하게,
청소가 되기를 바라 면서 무더운 여름날
에 시원한 계곡 물 에서 보내는 즐거움은
산골에 사는 자의 기쁨 이기도 하지요!
이 장마가 끝나고 나면 산골에 오고싶어
하는 지인들에 연락해서 내가 좋아 하는
토종닭 백숙을 요리 해서 한잔술을 마시
며 시냇물이 흐르는 물가에서 즐겁게 보
내는 모습을 상상하며 상념속에 젖어 보
는 나, 입니다~^^
한평생 사업을 한다고 어느 한곳에 정착
하지 못하고 역맞살에 떠돌이 처럼 살아
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떠 오르는데,
그래도 쪈복은 있었는지 한시절 원없이
쓰고 살았지만 마음 한구석엔 허전함이
향상 자리 잡고 있었지요 !?
술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향상
파티가 끝나면 혼자만의 공간으로 걸어
가는 늦은밤 도시의 가로등 불빛 밑에서
의 내,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행운
정원의 그림인가 봅니다
아름답게 잘 가꾸셨어요
꽃들이 환하게 반겨줍니다
가마솥도 걸린 걸 보니
집에서 애지중지 키운 닭 모을 비트는 건 아니겠지요
오늘 같은 날엔 아마도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것임에
빗소릴 자장가의 멜로디로
목이 터져라 노래 한 곡 불러 보세요
엊그제 웃음 강사의 강의에서
웃음은 치매도 예방해 준답니다
아셨지요
지금 그리 해 보셔요
여긴 지금도 비가 아주 소리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