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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김민호 목사
주일설교.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박국 2장 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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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기다리라는 주제로 4번의 설교를 들었고 오늘은 마지막으로 하박국 2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나훔’서가 앗수르의 멸망을 다루었다면, ‘하박국’은 바벨론의 멸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내용은 질문과 응답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이름은 “껴 안는 자,” “매어 달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름 뜻대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응답을 껴안고, 그 말씀을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앗수르가 멸당당하고 바벨론 제국에 느부갓네살왕이 등장하여 남유다의 요시야 왕이 전사하고 나라가 급격하게 붕괴되어가는 비참한 시대였습니다. 하나님께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시대였습니다.
잠깐 남유다 왕국의 말년의 역사와 정세를 설명 드립니다. 요시야 왕은 히스기야 왕과 더불어 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훌륭하였다고 평가를 받는 왕입니다. 그런 그가 바벨론과 애굽이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정세 판단을 잘못하고 두 나라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었다가 므깃도라는 곳에서 애굽의 바로 느고 군대와 씨우다가 그만 전사하고 맙니다.
요시야 왕의 전사 후 4명이 번갈아가면서 왕위에 올랐지만 이 때는 왕국이라고 볼 수도 없는 비참한 지경이었습니다. 애굽의 통치력이 강했을 때는 바로왕이 유다왕을 마음대로 폐위 시키고(17대 여호아하스 폐위-> 18대 여호야김 즉위), 바벨론이 강해지면 바벨론왕이 유다왕을 마음 대로 폐위(19대 여호야긴 폐위->시드기야 즉위)시켰습니다. 왕의 이름도 애굽과 바벨론 왕의 취향대로 바꿔버렸습니다.(17대 살룸-여호아하스, 18대 엘리야김->여호야김, 19대 여고냐->여호야긴, 20대 맛다디야->시드기야)
마치 조선시대 말년에 일본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무력으로 강제 합병 하고, 궁궐에 난입하여 왕비를 죽이고, 일개 사신들이 조선의 왕을 마음껏 협박하고, 남성은 징용으로, 여성은 성노예 착취로 끌고가던 그 시기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어떤 나라든 그 나라가 멸망당하는 과정에서의 치욕과 모멸감은 왕과 백성과 나라 전체가 겪어야 하는 운명입니다.
하박국은 18대 여호야김 왕때까지 활동했으니 나라가 급격하게 망해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이 상황을 따져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장을 한번 보십시오. 단락별로 위에 제목이 있습니다.
하박국의 호소, 여호와의 응답, 하박국이 다시 호소하다 라고 되어 있죠. 이어지는 오늘 본문은 하박국이 다시 호소한 두 번째 질문에 대한 여호와의 응답의 내용입니다.
1장에서 하박국이 첫 번째로 질문한 것은 사실 질문이라기 보다 따지는 듯한 한탄과 호소가 뒤섞여 있습니다. 1장 2~4절을 공동 번역으로 읽어 드립니다.
“2. 야훼여,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이 소리, 언제 들어주시렵니까? 호소하는 이 억울한 일, 언제 풀어주시렵니까? 3. 어인 일로 이렇듯이 애매한 일을 당하게 하시고 이 고생살이를 못 본 체하십니까? 보이느니 약탈과 억압뿐이요, 터지느니 시비와 말다툼뿐입니다. 4. 법은 땅에 떨어지고 정의는 끝내 무너졌습니다. 못된 자들이 착한 사람을 등쳐먹는 세상, 정의가 짓밟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멘.
부르짖어도 침묵만 돌아오고, 목이 터져라 외쳐도 전혀 공의를 행하여 주시지 않고, 악하고 거짓된 자들이 갈수록 득세하는 상황을 본 하박국은 무척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올려드리는 이 질문에는 처절하고 절박함을 뛰어넘어 비통함과 절망감이 가득합니다.
하박국은 이러한 심정임에도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번아웃(Burnout Syndrome. 燒盡)’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직무에서 오는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정신적 탈진이번아웃입니다. 몸과 마음이 다 무너져 내려서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말합니다.
목회자들도 이런 번 아웃이 찾아오면 설교 준비도, 기도도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집니다. 하기 싫다기 보다는 절망과 낙심이 너무 커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성도들도 다 마찬 가지일 겁니다.
하박국은 지금 이런 최악의 무너져 버린 심정이었음에도 포기하지 않는 기도로 부르짖고 있습니다. 진짜 하나님의 사람들은 낙심되고, 상처받고, 무너지고, 깜깜하고, 억울하고, 비통할 때 일수록 더 부르짖고 외쳐 댑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이 상황에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한 분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상황을 반전 시킬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참담한 심정을 위로 하시고 다시 희망을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 한 분만에게만 매달렸습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하박국의 부르짖는 질문에 응답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표범보다 날래고 굶주린 늑대 같고 독수리 같이 먹이를 채가는 포악한 갈대아(바벨론)을 일으켜 악인들과 죄인을 다 삼켜버리게 하겠다고 말씀 합니다.
갈대아 군대는 이스라엘과 뭇 나다들을 침공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행할 것이고 왕들을 멸시하고 백성들을 조롱하고 통치자들을 비웃으며 견고하다고 여기는 성들을 모조리 점령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것만이 정의라고 여기며 자신들의 군대의 힘이 곧 신의 힘과 같다고 여길 것이기에 그들도 몰락할 것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박국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타락과 부패를 바로잡고 정의와 공의를 행사해 달라고 부르짖었는데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가 지도에서 사라지고 성전과 성읍들은 불타 없어질 것이며 백성들은 멸절에 가깝도록 죽임 당할 것이며 짐승같이 쇠사슬에 묶여 포로로 끌려감을 당할 것이라는 대답을 주셨습니다.
하박국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하나님의 진노의 예언을 듣고서 두 번째 질문을 합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도 하박국은 호소와 항의를 동시에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 거룩하신이여, 어찌하여 악인들이 선민들을 짓밟고 더럽히도도록 방치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런 악한 자들이 우리 같이 선민(의인)들을 유린하고 조롱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 일입니까? 하나님을 조금도 의지하지 않고 군대를 신처럼 여기는 자들에게 어찌 그런 살육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하박국 1:12~17, 의역)
항의하고 따지는 듯한 하박국의 질문은 어찌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선을 넘는 것처럼 보일정도로 당돌하고 무모한듯한 질문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불타고 백성이 죽임당하는 끔찍한 재앙을 듣고서 긍휼과 자비를 여겨달라는 하박국 선지자의 의로운 마음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대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하박국이 어떠한 마음과 자세로 두 번째 응답을 기다렸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 2장 1절을 읽어 드립니다.
“내가 내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 하였더니” 아멘.
파수는 적군이 쳐들어오는지 감시하는 것을 말하고, 성루는 파수꾼이 올라가 있는 성의 가장 높은 곳을 말합니다. 하박국은 가장 높은 성 꼭대기에 서서 하나님이 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실지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나님이 높은 하늘 어딘가에 계시는 것으로 상상하기 때문에 하박국은 가장 잘 보이고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하나님에게 최대한 가까이 나아가서 은밀하게 말씀하시는 세밀한 음성을 들으려는 마음을 성루에 올라가서 듣겠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반드시 대답을 듣고자 하는 하박국의 간절함, 절실함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한 번 암송했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의 부르짖음과 호소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입니니다. 간절함으로, 절실함으로, 진실함으로 부르짖고 응답 듣기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빠르고 신속하게 응답하십니다.
하박국은 지금 개인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대국이 쳐들어와서 성을 불태우고 가족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아가고 온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는데 잠이 오겠습니까? 먹는 것이 입으로 들어가겠습니까?
하박국은 단 1mm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단 한 마디의 음성이라도 들으려고 몸부림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 심정이 성루 꼭대기에 올라간 파수꾼의 심정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박국이 간절하게 부르짖는 태도를 보시고 두 번째 질문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응답하시기 전에 먼저 말씀을 들은 후에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먼저 말씀해 주십니다. 이것은 실천의 문제여셔 듣는 것보다 사실 이것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절을 읽어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아멘.
묵시는 하나님이 신적인 계시를 보여주거나 알려준 내용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묵시를 기록하고 판에 새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기록하고 새기라고 하셨냐면,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게되는 자는 누구라도 그 말씀을 들고 다른사람에게 전할 수 있도록 달려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박국을 포함한 모든 자들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말씀을 눈으로 읽고, 가슴에 새기고, 모든 사람이 이 말씀을 듣게 되도록 이리저리로 전달해 주도록 달려가는(전파하는)사람들이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내려 주신 귀중한 묵시를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알고, 나라 전체가 알게 하고 가슴판에 새겨진 대로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사명이자 임무입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말씀을 들려주는 것보다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모두에게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을 너는 일생동안 어떻게 하며 살아왔는냐 라고 물어보시고 판단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를 기디라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여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부로 대하지 아니하고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그 무게감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 하신 것만을 들어야 하고, 말씀 하신 것만을 따라야 하고, 말씀하신 것만을 순종해야 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안좋은 일이 발생하고 고통과 곤고함이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듣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기에 침묵만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으려고 성루에 올라가는자가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참다 못한 하나님이 우리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데도 귀를 막아놓고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들려 주셨는데도 그 말씀을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해 버리고 도무지 실행하지 않으려는 불순종과 완악함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듣는 것과 순종하는 것에는 둔감 하면서도 옆에서 친한 사람이 말하는 사람의 말들에는 너무나 쉽게 넘어가는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내 귀에 좋게 들리는 소리에는 눈이 동그라 집니다. 당장 좋아 보이고 괜찮아 보이고 계산으로 따져보니 내게 이익이 생길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멸망 당시에 진짜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이갸기를 힘들게 듣고서 그 말씀을 가슴에게 새긴채로 피를 토하듯 호소하는 하박국 같은 선지자들의 말은 귓등으로는 안 들으면서 바벨론에 의지하면 좋지 않을까? 애굽에 의지하면 좋지 않을까? 주변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말하는 소리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 결국 망하는 길로 가게 된 겁니다.
하나님이 하박국에게 무언가 말씀하시기 전에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을 너는 잘 듣고 기록하고, 판에 새기고, 있는 그대로만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라, 그 백성들 또한 내가 말한 것에서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만 전달하고 공유하도록 하라고 가장 먼저 말씀 하신 이유를 충분히 아셨을 겁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보다 사람의 말을 너무 많이 듣고, 그래서 사람의 말을 가슴에 꽉 채우고, 사람의 말이 마치 진짜 묵시인것처럼, 그거 정답이고 처세술인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사람들은 모두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거짓된 자들입니다.
아마 하박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 했을 때도, 하박국 저 사람의 거짓이야, 내 말이 진짜야 라고 엉뚱한 말을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로 가는 비참한 역사를 맞이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만을 묵시(계시)로 여기고 그 말씀에만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요, 성령님과 동행하는 하나님 나라의 예비된 백성입니다.
우리가 정말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만을 듣고, 말씀에만 순종하고, 말씀과만 동행하는 삶을 살려고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과 성과들을 먼저 평가하지 아니하시고 묵시가 우리의 심령에 기록되어 있는지, 그 묵시대로 제대로 따랐는지를 판단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진짜로 두 번째 질문에 응답하신 내용을 보겠습니다. 3, 4절을 읽어 드립니다.
“3.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하나님이 하박국의 질문에 대답을 시작하신 3절에 “기다리라”는 6월의 주제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묵시는 정한 때가 있다, 종말은 속히 이루어 질 것이다”는 말씀은 그 날과 그 때가 언급 될 때마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말씀입니다.
언제 인지 모를 그 때이지만 속히 올 것이고, 반드시 응할 것이고, 결코 거짓 되지 아니하니 너희는 기다리라, 그 때가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고 분명하게 말씀 하셨습니다.
하박국은 아마도 이 말씀이 답답하게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당장 포악한 군인들이 쳐 들어와 다 불태우고 빼앗아 가고 죽임당하게 생겼는데 그 때를 기다리라, 다 정한 때가 있으니 더디더라도 기다라라는 말씀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묵시의 말씀을 들려 주시고, 기룩하라, 판에 새겨라, 읽는 자들이 전파하도록 들고 달려 다녀라 라고 엄하게 명령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 말씀을 듣고 불순종 할 것을 뻔히 다 아시면서도 이렇게 굳이 강조하신 이유가 4절 때문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악인과 믿음으로 사는 의인이 대조 되어 나옵니다. 이 비교되는 두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리지 않는 사람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말씀에 비추어서 좀 더 세부적으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① 묵시(계시를) 들으려고 성루에 올라가기까지 간절함으로 기다리는 사람 vs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약삭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
② 묵시의 때와 정한 시간이 있음을 알고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 vs
급한 마음에 나쁜 것을 붙잡고도 그것을 좋아라하는 어리석은 사람
③ 그 때가 속히 이른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 vs
준비는 하나도 아니하면서 없는 것, 안되는 것에 불평 불만을 말하는 사람
④ 속히 오실 약속이 거짓되지아니함을 믿고 헌신과 충성을 다하며 사는 사람 vs
맡겨진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고 열매(성과) 맺으려 하지 않는 사람
⑤ 비록 더디더라도 주님 맞이할 그 날을 기약하며 등불을 들고 서 있는 사람 vs
게으르고 나태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영적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사람
⑥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심판대 앞에 설 것을 생각하며 참회로 사는 사람 vs
간사함과 술수로 거짓을 말하며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
⑦ 겸손과 사랑으로 원수를 미워하며 악인을 위해 기도하며 용서로 살아가는 사람 vs
자기 자신의 구원도 이루지 못하면서 교만과 자랑만 내세우는 사람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한 악인은 기다리는 준비를 전혀 않은채,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이고,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고집부리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말에 분별없이 휘둘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지 새어나가는지 모른체 교만함의 높이만 키워가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이 말씀을 하면서도 들을 귀가 있는 자는 속히 엎드려 참회하고 돌이키며 기다리는 자리로 올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여전히 듣기를 싫어하고, 거부하려는 자들은 예상 했던 대로 말씀을 땅 바닥에 다 버려 버릴 것라는 것을 훤히 알고 계셨을 겁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은 의인들을 살리시고, 의인들에게 용기를 주시고, 의인들에게 참고 기다리며 준비하는 깨어 있음의 능력을 주시고자 하려고 이 말씀을 선포하여 주신 겁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이 오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고백했다면 우리는 성경이 증언하는 의인들입니다. 의인이라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그럼 의인이라면 듣는데 집중하며 사는 것이 맞습니다. 들리면 들리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아 합니다. 들리지 않으면 성루에 올라가는 하박국처럼 간절함으로 듣고자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말씀이 들릴 것이고 들은 말씀을 기록하고 새기고 그 말씀을 들교 달려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무런 말씀이 없었는데도 마치 말씀을 들은 것처럼 거짓을 말하면 하나님은 진실로 그런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서 일생동안 침묵하실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는데도 참회하고, 돌이키고, 기다리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은 그를 심판대 앞에서 대면할 때까지 기다리실 겁니다.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은 하박국에게, 그리고 의인으로 살게 되는 믿음있는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과 능력의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말씀 없는 자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게으른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구나 하늘의 존귀한 말씀을 들려주셨는데도 못 들은 척 하고 내 갈길만 가는 교만한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 말씀을 듣고 자신의 생각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불평과 불만의 감정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용서하심의 깊은 은혜를 깨달았을 겁니다.
이스라엘을 치시겠다고 하는 것은 아프고 고통 스럽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공의로 일하시며 자비하심으로 다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시고 고치시겠다는 큰 뜻이 있음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6월 한달 동안 기다리라는 주제로 말씀을 이어왔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을 정리해 보면, 참회하며, 준비하며, 깨어서 기다리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다리는 자와 항상 동행하여 주시고,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자리로 돌아오도록 하나님 역시도 기다리고 계시다는 겁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말씀 하신대로 오늘의 말씀을 기록했고 우리가 다시 읽어 볼수 있도록 판에 새겨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설교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한 달 내내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참회하라, 준비하라, 깨어 있으라, 기다리라는 말씀을 들어본적이 없다고 더 이상 핑계 댈수도 없습니다.
참회하고, 돌이키고, 깨어서 그 날과 그 때를 준비하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영원한 진리이신 말씀 앞에 믿음으로 서시고, 말씀에만 순종하고, 말씀하고만 동행하며 하루 하루가 기쁨이 충만하게 기다리는 날들로 채워줘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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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말씀해 주셨사오니, 그 말씀을 붙잡는 강건한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 무사히 들어가는 그날 그 때까지 길이 참고 기다리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