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내기까지 찾으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15:1~7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주제 : 하나님은 잃어버린 양 하나를 찾아내기까지 찾으시는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 제 15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리와 죄인들을 사랑하심을 보여줍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런 일에 대해 비난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거룩하신 사랑의 원리를 비유로 말씀합니다.
◈ 비유의 핵심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것이 잃은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었던 아들을 찾는 비유입니다.
◈ 1~2절 15장 전체의 서론입니다.
◈ 1절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 [모든 세리와 죄인들] = 잃은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었던 탕자에 해당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영혼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지 못했거나 아직 영접하지 않고 있는 모든 죄인을 통칭하는 것입니다.
◈ [말씀] =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 1)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입니다.
◈ 2) 선포되는 말씀, 살아 움직이며 역사하는 말씀인 [레마]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말씀을 들으러 나왔습니다.
◈ 2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원망했습니다.
◈ 2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 [수군거려[원망하여]] = 디아공귀조, 디아불로스 = 와글와글 떠들다. 불평하다, 불만을 표하다, 투덜거리다 – 마귀의 사람으로 말하다를 의미입니다.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게 된 것에 대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불만스러운 모습을 나타냅니다.
◈ 이 동사는 미완료형으로, 그들의 불만이 단 한 번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쉴 새 없이 계속 토로 되었고 이러한 불평불만의 소리는 사건 때마다 늘 있었던 것임을 나타냅니다.
◈ [이 사람] =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지 않고 율법 선생 정도로 여겼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 예수 그리스도가 세리와 죄인들을 손님으로 접대했음을 의미합니다.
마 22:9 왕이 잔치를 배설하고 사거리에서 아무나 오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핵하는 말입니다.
[예수는 경건한 자가 아니니 그에게서 떠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3~7절 잃은 양 비유로 교훈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찾으시는 목적과 결과를 잘 보여줍니다.
이 말씀은 마 18:12~14에도 볼 수 있는 비유입니다.
그런데 마태보다는 누가가 더 조직적이고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 3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 [비유] = 파라볼레 = 곁에 둠, 비교 – 수사학에서 유사, 비유라는 전문용어로 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유는 하늘의 것을 땅의 것으로 비교하여 설명한 것입니다.
◈ 듣고 받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 곁에 서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신에게 맡기신 양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줍니다.
◈ 4절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필레스틴에서 양 백 마리를 치고 있는 사람은 그리 큰 부자는 아닙니다.
보통 양치는 목자들은 20~200마리 정도의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 300마리가 넘어야 대규모 목축에 속했습니다.
◈ [양 백 마리] = 하나님 곁에 마음 편하게 거하고 있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 잃은 양은 원래 하나님과 함께 있었던 자였음을 의미합니다.
◈ [잃다] = 플라나오 = 양 스스로가 양떼로부터 벗어나다 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는 (플라나오)를 사용해서 잃은 양, 한 마리는 복음을 스스로 거부한 자라고 말합니다.
◈ [잃다] = 아폴뤼미 = 파멸하다, 멸망시키다, 죽이다, 죽다를 뜻합니다.
누가는 (아폴뤼미)를 사용해서 다만 그 양이 연약하고, 무지하며, 미련하여 양 떼와 함께 올바로 목자를 따라가지 못했음을 암시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은 타락한 세상 가운데서 방황하거나 죽어가고 있는 죄인들을 나타냅니다.
◈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 휴리스코 = 찾다, 발견하다 - 발견할 때까지 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팔레스틴은 보통 해발 500m이기 때문에 양이 목자를 잃어버리면 사고당하기 쉽습니다.
그렇기에 3~4명이 한 조로 움직이는 목자 중 한 사람은 끝까지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을 찾아도 겨우 숨이 붙어 있거나 죽은 것을 찾기 일수입니다.
◈ 그러나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찾기만 하면 죽었어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잃은 백성을 다시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것은 누가복음에 나타난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바리새인들은 한 사람의 개종자를 얻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열심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자기 종파를 열렬히 신봉할 지지자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고 꾸짖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길을 잃고 위험에 처한 양을 구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에 자기의 목숨을 십자가에 버리신 것입니다.
◈ 5절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 [즐거워] = 카이로 = 기쁨이 넘쳐 흥에 겨워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의 흥분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목자는 찾은 양을 어깨에 메고 기쁨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스바냐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습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6절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여기에 [잃은 양 비유]에 대한 결론과 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 이 비유의 정점은 잃은 것을 도로 찾은 것보다, 찾은 이후에 이웃과 함께 기쁨의 잔치를 즐긴다는 것에 있습니다.
기쁨의 잔치를 베풂으로써 개인의 기쁨은 공동체의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함께 걱정했던 이웃들의 노고에 보답하게 됩니다.
◈ 이렇듯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것은 그리스도만의 기쁨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 나라 전체에 함께 기뻐하는 큰 기쁨이 됩니다.
◈ 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백 마리 양이 모두 귀하지만 잃어버렸다가 찾은 양은 더 각별한 관심의 대상임을 의미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잘 설명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수많은 고생을 겪은 탕자에게 동정과 긍휼이 더 쏠렸다는 것입니다.
사실 성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세상의 계산법 = 99 > 1 보다 가치가 큽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계산법 = 1 = 99 만큼 소중합니다.
그래서 99을 잠시 다른 목자에게 맡기면서까지 그 하나였던 나를 찾으셨던 것입니다.
◈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 - 고엘의 은혜입니다.
◈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제 99의 양의 자리에 있는 저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은 나를 살리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찾아내신 그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고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속량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용서하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구원의 길을 알려주며 살기를 축복합니다.
새 생명을 받은 자로서 생명을 낳을 수 있는 전도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또 다른 하나를 인도하기 위해 애타게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받은바 구원과 은혜와 생명을 그들에게 흘려보내는 생활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마음으로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을 즐겁게 채워드리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