分派의 誤謬와 改善方案
1. 16세 분파
장흥 위씨는 시조공이 신라에 입국한지 298년간 세계를 잃었다. 이는 우리만의 실상이 아니고 성씨 일반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러므로 그 기간 동안 어디서 누가 살았으며, 자손은 얼마나 불었는지 기록도 구전도 없다. 그런데 중시조의 등장연대를 고려 초로 기산하고 있으나 자손은 늘어나지 않았다. 무려 14대까지 독자이거나 형제가 있어도 자손이 없어 대를 못 이었다.
그러나 15세 통선랑공(通善郞公) 휘 덕룡(諱 悳龍) 할아버지께서 비로소 슬하에 자온(自溫) 자량(自良) 자공(自恭) 자검(自儉)의 네 아들을 두었기 때문에 분파가 시작된 다. 위씨가 동래한지 700여년 만에 일어난 경사이다. 이로써 장흥 위씨의 상계분파가 시작된다. 그때 전후가 14세 판사공의 부침과 맞물린 시기다. 계파 명은 기묘초보인데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자.
2. 분파와 계파명
장흥 위씨는 16세 때 분파를 시작하면서 계속해서 분파가 이루어져 21세 때 또 한 번 크게 분파한다. 약 150년~180년 사이에 후손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결과이다. 분파의 시기는 주로 임진왜란 이후가 된다. 자온의 능주(綾州)파는 장흥 위씨의 종파(宗派)이다. 즉 16세 맏이인 자온(自溫), 17세 종형(宗亨), 18세 석중(碩重), 19세 공필(公弼), 20세 인걸(仁傑)을 거쳐 21세에 천우(天佑)의 청양현감(靑陽縣監)과 천보(天保)의 유사공파(儒士公派)로 갈라진다.
차남 「자량파(自良派)」는 17세 종복(宗復), 종로(宗魯)로 갈린다. 종복 계열은 18세 유형(由亨), 19세 진보(晉寶), 진수(晉秀), 진현(晉賢) 등 3파로 갈린다. 이중 진보(晉寶)는 20세 인손(仁遜), 21세 대성(大成)계열은 곡성현감파라 한다. 진수(晉秀)는 20세 전(鱣), 곤(鯤), 방(魴) 등 3파로 갈린다. 전(鱣)계열은 21세 덕원(德元)의 경우 공조참의파(工曹叅議派), 덕린(德隣)은 종사랑파(從仕郞派), 방(魴)의 외아들 21세 덕남(德男)은 주부공파(主簿公派)로 나누어진다.
또한 관산파인 진현(晉賢, 1483~1564)은 아들이 없어 형(晉秀)의 차남 곤(鯤)을 입양한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자량파(自良派)를 관산파라 부르고, 유형(由亨)의 막내아들인 진현이 증조의 계파를 대표한 것도 합리적인 파명(派名)은 아니다. 자량은 관산과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만큼 「자량파」로 불렀어야 맞다. 어쨌든 진현에게 입양한 곤(鯤)은 5형제(21세)를 낳았는데 이들은 판사(判司), 청계(聽溪), 운암(雲巖), 판서(判書), 안항(顔巷) 등 오덕파로 갈린다.
종복(宗復)의 둘째 아들 18세 유정(由貞)은 행원(杏園)의 8파로 갈리게 된다. 다시 그의 아들 형제 중 19세 원충(元忠) 계열은 21세에 괴봉(魁峯)와 직장(直長)으로 갈린다. 억무(億武)는 첨정(僉正), 참판(參判)파로 나누어진다. 셋째인 억장(億章)의 아들 21세 대경(大徑)은 영장(營將)파로 갈린다. 19세 원신(元信)의 경우 20세 문필(文弼)은 21세 인행(仁行), 20세 문보(文甫)는 아들 대에 대기(大器)파는 충청수사(忠淸水使), 대홍(大洪)파는 부장(部將)파로 분파한다.
종로(宗魯)의 파명은 종사랑(從士郞) 또는 여천파(麗川派)라 칭한다. 종로의 품계를 따라서 종사랑이라 하거나 아들 용(庸)의 거주지의 지명을 따라 파명을 칭하나 덕린(德隣)파와 중복돼 혼선을 빚어내고 있다. 종사랑계열은 여천에 정주하면서 자손이 불어나면서 분파한다. 휘 용의 3아들 가운데 19세 희징(希徵)은 20세 숙주(淑珠)를 거쳐 21세에 덕수(德秀), 희강(希絳)은 20세 덕광(德光)을 거쳐 정행(廷行), 희무(希武)는 철명(哲明)을 거쳐 흥인(興仁)파로 갈린다.
자공(自恭)은 원래 용산면 사월방(沙月坊)에 자리를 잡고 거주했기에 사월파(沙月派)라 했다. 그러나 아들 17세 종립(宗立), 손자 19세 서(瑞), 증손 20세를 충(忠)계열은 경천파(擎天派), 20세 량(良), 21세 중준(重俊)계열은 사월파로 칭한다. 파조인 자공과 함께 함흥(咸興)에 정주한 18세 돈(頓)은 관북파(關北派)라 한다. 그러나 파조 자공을 칭하는 계파의 이름이 관산파(冠山派)처럼 모호하다. 자공의 파명이 사월이라면 파명은 종파(宗派)에 붙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3. 해결방안
우선 계파(系派)에 대한 족보의 기록부터 보자. 1759년에 발행된 「기묘(己卯)초보」 5쪽(黃)에 16세 장남인 자온(自溫)은 6단 머리에 「自溫派」란 파명(派名)과 옆에 능주(綾州)라고 부기했다. 차남 자량(自良)은 6쪽(宇)에 거주지를 장흥(長興)이라 하고, 7쪽에는 자량파(自良派)라고 했다. 삼남인 자공(自恭)은 12쪽(盈)에 거주지를 장흥이라 적고, 13쪽에 자공파(自公派)라고 적고, 상단에 ‘移居咸興’라 적었다. 이는 계파를 휘자(諱字)로 표시해 분류한 것이 분명하다.
휘자를 파명으로 사용한 이유는 관직이 없기 때문이다. 족보상의 파명은 일반적으로 관직, 아호, 거주지, 휘자 등을 이용한다. 우리의 경우 휘자와 거주지를 병기한 분류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종파인 「자온파」는 「능주파」로 불러도 불편함이 없다. 이에 반해 「자량파」는 「장흥파」로 부르면 「자공파」의 장흥과 중복되는 혼선이 생긴다. 기묘초보는 이 점을 간과한 셈이다. 그러니 자량계열이 「장흥파」를 쓰기 위해서는 자공계열을 「사월파」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자량파의 혼선은 자량파는 관산파라는 등식에서 비롯된다. 16세 자량의 파명이 「자량파」인데 「관산파」로 사용한 것이다. 자량계열은 宗復-由亨-晉寶,晉秀, 晉賢과 由貞-元忠, 元信, 그리고 여천파-庸으로 이어진 장흥 위씨 최대의 계파이다. 그러나 관산파라는 파명은 그의 손자 19세 진현에 의해 붙인 파명인데 이를 족보의 파명처럼 이용했기 때문에 혼란을 자초했다. 따라서 자량의 거주지가 장흥이니, 파명을 「장흥파」 또는 「平化派」로 붙여야 옳다.
종복(宗復)의 차남 18세 유정(由貞)을 「행원파(杏園派)」라 한다. 기묘초보 8쪽(洪)에는 계파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19세 원충(元忠) 계열은 21세에 괴봉(魁峯)와 직장(直長)으로 갈린다. 억무(億武)는 첨정(僉正), 참판(參判)파다. 셋째인 억장(億章)의 아들 21세 대경(大徑)은 영장(營將)파로 갈린다. 19세 원신(元信)의 경우 20세 문필(文弼)은 21세 인행(仁行), 21세 문보(文甫)는 아들 대에 대기(大器)파는 충청수사(忠淸水使), 대홍(大洪)파는 부장(部將)파로 분파한다.
우선 행원의 파명부터 보자. 휘 유정은 행원과는 전혀 연고가 없다. 그는 행원파의 파조이기 전에 아들(19세)과 손자(20세)대까지 「자량파」다. 행원파로 칭한 이유는 증손 괴봉공(魁峯公)으로부터 비롯된다. 괴봉공은 평화에서 성장, 행원의 광산 (光山) 김씨와 혼인하면서 연고가 이루어졌다. 이후부터 생활 무대가 평화에서 행원으로 옮긴 후 후학을 지도했다. 이제 행원의 8파를 아우르는 파명이 필요하다. 그 방안은 유정의 아호인 「竹南派」를 고려해보면 어떨까.
자공계열의 「사월파」도 문제가 있다. 「사월파」는 곧 「자공파」이다. 그럼에도 자공-宗立-碩重-忠으로 이어진 종파는 「경천파(擎天派)」를 쓰고, 차현손인 良계열에서 「사월파」를 파명으로 쓰고 있다. 어쩌다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자공을 「사월파」의 파조로 가닥을 짓고, 이후의 갈래를 정리해야 한다. 즉, 20세 손자 중 장손은 그대로 사월파로, 관북으로 데려간 차손 頓은 「관북파」로 정리됐다. 다만 차현손에 붙인 종파명이 숙제로 보인다.
다음은 「훈도공파(訓導公派)」의 파명이다. 16세 이후 분파가 이어진다. 그러다 21세를 기준으로 전체 갈래를 나눈 파명을 붙였다. 그런데 유일하게 19세 晉秀- 20세 魴-21세 德男계열만 20세 魴의 직임에 따라 「훈도파」라 한다. 훈도란 직임은 조정에서 제수한 직책이 아니고 관찰사가 임명한다. 그의 아들은 주부(主簿)인데도 쓰지 않았다. 주부는 조선시대 왕명을 출납하는 정6품 품계이다. 그러면 당연히 벼슬이나 파명의 기준으로 보아 주부공파라 해야 옳다.
결론적으로 최초의 파명인 자온파 = 능주파, 자량파 = 장흥파 또는 평화파, 자공파 = 사월파는 장흥 위문 3대 문중의 종파(宗派)이다. 이 계파는 후손이 있는 한 계속 유지돼야 한다. 가령 자온파 또는 능주파의 경우 21세에 와서 「청양공 천우파」란 새로운 파명을 붙이지 말고 그대로 「자온파」 또는 「능주파」를 불러야 한다. 자량파의 종파는 「곡성현감파」라 하나 그냥 「자량파」 또는 「장흥파」나 「평화파」라 해야 한다. 자공파의 종파는 「사월파」이다. 따라서 3대 종파는 「문중」라 하고, 나머지 파문은 「종중(宗中)」으로 구별, 혼동을 없애야 한다.
<2016. 6.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