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01.
서울 종로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 펭귄 캐릭터 ‘펭수’가 류현진 등 시민 대표들과 함께 등장했다. 남극 ‘펭’씨에, ‘빼어날 수(秀)’ 이름을 가진 펭귄 인형이 숱한 스타들을 제치고 타종 행사의 시민 대표로 온라인 추천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한다.
▶ 펭수는 EBS 어린이 프로그램에 나오는 동물 캐릭터다. 방탄소년단을 능가하는 우주 대스타가 되겠다며 지구 반대편 남극에서 한국까지 혼자 헤엄쳐온 펭귄 인형이다. 키 210㎝, 몸무게 103㎏ 거구에, 나이는 열 살, 방송사 소품실에서 기거하는 EBS 연습생으로 극중 설정됐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제작했는데 정작 어린이들보다 '어른이'(어린이 감성을 가진 어른)들한테 더 인기다. '한국인들이 사랑에 빠진 당돌한 펭귄'으로 외신에까지 소개됐다. 펭수의 '자이언트 펭TV' 채널은 유튜브에 개설된 지 1년도 안 돼 구독자가 157만명, 영상 누적 조회 수가 1억2000만회도 넘는다.
▶ 높은 자존감, 당돌한 어법이 20~30대 취업 준비생과 젊은 직장인들에게 어필했기 때문이다. 오디션 보면서 심사위원들한테 "여기서 빨리 결정해주세요. 그래야 저도 결과 보고 (EBS 떨어지면) KBS 가든, MBC 가든 할 것 아니냐"고 대놓고 말한다. 뒤뚱거리는 몸집으로 "펭수도 달리기는 조금 느립니다. 그래도 잘 못한다고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잘하는 게 분명히 있을 겁니다." "자신감은 자신에게 있어요. 그걸 아직 발견 못하신 거예요"라고 청춘을 위로한다. 눈치 안 보고 날리는 돌직구도 사이다처럼 시원하다.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저는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펭-러뷰!" "화해했어요. 그래도 보기 싫은 건 똑같습니다."
▶ 동영상마다 펭수를 응원하는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린다. 읽다 보면 청춘들의 자기 위로, 부모 세대들의 안타까운 격려를 보는 것 같아 짠하다. "EBS 사장님, 펭수 참치길만 걷게 해주세요." "펭수 라꾸라꾸라도 하나 사주세요." "20대 중반 취준생인데 펭수가 올리는 영상 보면서 힐링하고 있어요." "회사에서 웃을 맛 안 나는데 유일하게 펭수 보면서 힐링해."
▶ 펭수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에 자신감 잃고 주눅 든 젊은이가 많다는 의미다. 펭수처럼 당당하고 할 말을 다 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야만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새해엔 그런 나라를 만나고 싶다.
강경희 논설위원 khkang@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