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공동체 20-능력주시는 자 안에서(빌4:8-13)
1. “축제의 공동체”빌립보교회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늘 스무 번째 시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누릴 축제의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지
찾아봅니다. 다음 주일은 아이티 김헬렌 선교사님 선교 이야기를 듣고요, 21일
주일에 21번째 시간으로 빌립보서를 마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생각하고 행하라”고 합니다.(8-9절)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생각하고
행해야 하죠. 생각하지 않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성경 말씀은 이렇게 상식
적이에요. 성경에는 신비적인 이야기도 나오지만,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상식
적이에요. 빌립보교회가 생각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8절,“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끝으로’는, 내가 마지막으로 말하니 ‘빌립보교회 교우 성도님들 잘 들
으세요’라는 말입니다. 편지에서 마지막에 하는 말이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
은 편지를 쓸 때마다(바울서신) 전반부에는 교리나 이론적인 이야기를(진리)
먼저 이야기하고, 후반부에 각 교회가 실천해야 할 것들을 말씀합니다. 빌립
보서도 똑같아요. 바울이 생각하라고 말씀한 것은 8가지에요. 이것은 두 가지
로 구분합니다.
2. 앞의 네 가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한 것은 내 마음의 상태를 의
미합니다. 뒤의 네 가지 사랑할만하며, 칭찬할만하며, 덕이 있고, 기림이 있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말이에요. 바울의 메시지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생각하고 행하라고 권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나의 내면
에 세워야 할 덕이 있고, 나아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세워야 할 덕이 있습니다.
나의 내면에 세워야 할 덕이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한 것들을 생각하
는 것이에요. 사람의 행동은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마5장, 산상수훈에서 예수
님도 이것을 가르치셨어요. 행동의 결과는(살인, 간음 등) 생각-마음에서 출발.
사도 바울이 말하는 네 가지 생각을 늘 기억합시다. 이 네 가지 생각이 아니
면 애시당초 시작하지 맙시다. 이 네 가지 생각을 하면, 우리의 행동이 온전
할 수 있어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랑할만하며, 칭찬할
만하며, 덕이 있으며, 기림이 있는 것들입니다. 내가 행동함으로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이에요. 내 행동을 보고 타인이 나를 사랑하고, 칭찬
하고, 덕스럽다고 하고, 나를 기리는(praise, 칭찬하고, 고마워하다) 것이에요.
이런 일들을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일은 생각하지 말라고 사도 바울이 권
합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하라고 말씀합니까?
3. 9절,“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
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전도를 받
고 양육을 받았습니다.(바울이 개척자) 빌립보교회는 바울로부터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말씀 훈련을 받았어요. 신앙은 신비가 있지만, 내용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에요. 오순절 성령님의 강림하시며,
예수님의 제자들이 여러 다양한 외국어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제자들이 배운 바 없는
사람들인데 각기 다른 외국어를 말하니. 이 말을 들은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자기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얼마나 합리적이지 못한가를 깨닫게 하는 설교였
어요. 베드로는, 지금이 아침 9시인데 술을 먹을 사람이 있습니까? 이 역사는
술에 취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구약의 요엘서 2:28-32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설교를 듣고 누고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어요. 신앙의 신비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신비를 좇다가 상식을
잊는다면 참 어리석은 사람이에요.(기적이 상식이 되는 교회...상식이라도 지키
는 교회) 오늘도 신비를 좇다가 상식을 잃어버린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이단들
도 그렇고, 전통 교회 안에도 있어요.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의 삶을 통해 직
접 배웠습니다.
4. 배우고 받았다는 것은 머리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감정으로
받아들였다는 말씀입니다. 진수를 배웠다는 말이에요. 듣고 보았다는 것은 귀
를 기울여 집중하여 배운 것이에요. 이렇게 빌립보교회가 사도 바울에게서 배
운 대로 생각하고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약속합
니다. 행한 것만큼 은혜가 따른다는 말씀이에요. 우리 교회도 제자훈련을 하지
만, 많이 배우는 것만큼 행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을 수 없어요. 배우는 것만큼
행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따릅니다.
D. L. 무디는,“성경을 읽다가 깨닫지 못하고 의심이 생기면 기도만 하지 말
고, 밖에 나가 전도하고 봉사하라, 그리고 다시 성경을 읽으면 깨닫게 될 것”
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는 수준 높은 신앙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고난
가운데 기뻐할 줄 아는 사도 바울과 빌립보교회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무
엇보다도 빌립보서에 나타나는 수준 높은 신앙은 바울의 간증이에요. 11-12
절,“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
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바울은,“내가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해요.
5. 사람이 자족하는 것-스스로 만족하는 것 만큼 어려운 일이 없어요. 세상에
누가 이만하면 만족하다고 합니까? 물질이든, 지식이든, 명예든. 사람들이 사
도 바울처럼 자족한다면 세상에 문제가 없습니다. 세상이 시끄럽지도 않아요.
하지만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은 더 얻고자 합니다. 비열한
싸움이 연속되고 있어요. 의사들이 권익을 지키려고 온갖 힘을 씁니다. 히포
크라테스 정신은 도무지 찾아보기 힘들어요. 판검사들도 자기들의 유익-밥
그릇을 지키려고 별의별 일을 다해요. 검찰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검찰개혁을
완강하게 버티고 있어요. 사법부와 의료 개혁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어요.
빌립보교회 당시에 금욕주의자들이 있었어요. 스토익 철학자들이에요. 그들은
스스로 절제하는 훈련을 통해서 금욕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산
것은 대부분 공명심 때문이었습니다. 세네카 같은 사람은, “내 팔을 꺾어보
라 내 팔이 아픈가? 내 살을 찢어보라 내가 살이 아픈가?”이렇게 해도 아프
지 않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에요. 신경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든지. 스토익 철
학자들의 금욕의 목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고 자랑하기 위함이었
습니다. 사도 바울의 자족하는 삶은 철학적이거나 자기 훈련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 아니에요.
6. 자신의 자족하는 삶은 철저히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졌다고 사도 바울은
말해요. 13절,“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이 자족하는 삶은 철저히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간증입니다. 바울이 자족한 내용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안 것입니다. 바울이 가난하게도 살아 보았고, 부유하게도
살아보았다는 말이 아니에요. 바울에게는 가난도 문제가 되지 않고, 부유한 것
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사도 바울이 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있어요.
10절,“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이제 다시 싹이 났다”는 것은 빌립보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선교비에요.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개척하고 양육한 교회에요. 교회가 어느 정도 자라고,
바울은 다른 지도자에게 빌립보교회를 맡기고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바울은 순회 선교사였기에. 최근 천안에서 일곱 번째 교회를 개척
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신정범 목사님, 천안 필그림 교회.(침례교회) 개척을 한
교회마다 잘 자라나면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하고 계세요. 지금 목사님 연세를
보면, 마지막 개척교회라 생각됩니다.
7. 빌립보교회는 사도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고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어떤 사정으로 한동안 바울에게 선교비를 보내지 못했어요. 한동안 선교비를
보내지 못하다가 다시 바울에게 선교비를 보내게 되었고, 바울이 빌립보교회
에 감사의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로부터 오랜만에 선교비를 받
고 10절,“크게 기뻐했습니다.”바울이 크게 기뻐한 것은 그동안 받지 못한
선교비를 공급받아서 기뻐한 것이 아니에요. 11-13절에 보면 이것을 알 수
있어요. 바울은 자족하는 삶을 살 줄 알았습니다. 빌립보교회가 선교비를 보내
지 않았어도, 바울은 큰 충격을 받지 않았어요.
사도 바울이 기뻐한 이유는 빌립보교회를 바라보고 생각할 때 기뻐했어요.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선교비를 보내지 않은 것은 교회에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만하면 바울 목사님을 지원하였으니 이
제 중단하자는 여론도 있었어요. 교회 예산이 갑자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습니
다. 빌립보교회가 핍박 가운데 있었기 때문에 재정 형편이 오늘날 한국교회
처럼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며 바울을 의심하거나
실망한 사람들도 있었어요.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전파하다가 박해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8. 이런 상황 속에서 감옥에 있는 선교사님에게 선교비를 계속 지원하는 건에
대한 시비도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을 빌립보교회가 극복하였어
요. 교회가 회복되며 다시 바울에게 선교비를 보냈습니다. 빌립보교회의 형편
이 나아진 것으로 인해 바울이 기뻐하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선교비
를 기쁨으로 받지만, 나는 자족하는 삶을 살고 있으니 나로 인해 크게 염려하
지 말라는 늙은 사도의 애정 깊은 말이에요. 가난하게 사는 것이 불편할까요?
부자로 사는 것이 불편할까요? 쉽지 않은 질문이에요. 가난한 것이 불편한 것
은 공감하죠. 부유하면 부유한 대로 불편함이 있습니다. 행복한 고민이라고 말
할 수 있지만,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에게는 가난하든 부하든 둘 다 불편하지 않다고 선언했어요.
어떻게 이 말이 가능하였을까요? 바울의 삶의 목표가 보통 사람과 다름을 말
씀합니다. 내게 관심은 가난하고 부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바울의 관심
은 물질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있지 않았어요. 영적이고 고상한 일에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에요. 바울이 이렇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을 오늘 본문에 선포합
니다. 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나의 능력이 아니에요. 사도 바울은 오직 주님의 능력이라 말씀해
요. 능력 주시는 주님, 그 주님의 능력이 내게 임하여 자족하며 살고 있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9. 다윗도 시23: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노래했어요. 다윗은, “나는 본래 만족할 줄 모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목자가 되실 때 내가 부족함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다윗의 신앙고백이에요.”양은 야생할 줄 모르고 사람에게 절대 의존하는 동
물이에요. 하지만 양은 목자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받아요. 이 고백은 이후
다윗만이 아니라 세계 신앙인들의 공통어가 되었습니다. 신앙은 이처럼 시대
를 초월해서 하나입니다. 구약시대 따로 신약시대 따로가 아니에요. 구약시대
나 신약시대나 오늘 21세기에도 믿음은 하나입니다. 엡4:4-6,“몸이 하나요 성
령도 한 분...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하나요...하나님도 한 분
이시다.”고 선언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게 능력 주시는 자-예수님 안에
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까?”오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
배가 되면, 저와 여러분이 이 말씀을 누릴 수 있어요. 신구약성경 이야기는
이것을 전해줘요. 자기 힘과 지혜로 성공한 사람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오
직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로 이긴 전쟁 기사(성전)와 인생 이야기 뿐이에요. 우
리 다같이 일어나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이 말씀을 누리며 살 수 있도록 합시
다. 지금 우리가 함께 하는 교회 세우기,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이웃이 하
나님의 나라가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포항-민족-열방에 세우는
일들을 위해 주님의 도우심을 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