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라벨은 드뷔시, 포레와 함께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러나 라벨의 음악어법은 고전주의의 형식을 중히 여기면서 새로운 사조인 인상주의에 참여한 점이다. 따라서 그의 음악 어법은, 인상주의 음악의 특징인 ‘음화’는 드뷔시와 닮아있지만 형식에 있어서는 엄격하리만큼 고전적인 형식미를 답습하고 있는데, 규칙적인 악절과 형식의 활용, 그로 인해 얻어지는 명료한 선율 등 치밀한 구성이 그렇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많은 작품을 고전의 형식미로 편곡해 냈는데, 자신이 작곡한 다수의 피아노곡은 물론이려니와 ‘드뷔시’의 <사라방드>와 <야상곡>, <목신의 오후의 전주곡>을 오케스트라로 편곡하였고, ‘슈만’의 <사육제>와 ‘샤브리에’의 <화려한 미뉴엣>,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등을 편곡 출판하였다. 라벨의 이러한 편곡 작업은 원곡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는 예술작품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그는 ‘관현악의 마술사’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갖게 되었다.
라벨은 1928년 전위 무용가인‘이다 루빈스타인’의 위촉으로 관현악을 위한 발레곡 <볼레로>를 작곡하였다. 스페인풍 무용에 관심이 많은 루빈스타인은 ‘알베니스’의 <이베리아>의 편곡을 의뢰했는데, 이미 이 작품을 ‘아르보스’가 편곡을 하고 있는 바람에, 라벨에게 새로 작곡을 부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라벨은 ‘스페인=아라비아풍의 주제’로 작품을 만들기로 하고, 1928년 6월 작곡에 착수하여 10월에 완성하였다.
라벨은 관현악의 마술사답게 <볼레로>의 주제를 마치 관현악이 끈질긴 호소를 하는 것처럼 풀어냈다. 그것은 관현악을 조금씩 확대하면서 반복시키는 것으로 그 효과가 나타나도록 한 것이다. 그는 볼레로를 작곡할 당시 자전적 소묘를 통해, “이것은 한결같이 보통 빠르기의 춤곡으로, 작은 북이 새기는 리듬이 선율, 화성을 만들고 이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모양이 달라지는 단 하나의 요소는 관현악의 크레센도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볼레로는 마치 거대한 구조물을 두 개의 기둥으로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왜냐하면 2개의 특징적인 주제를 18번이나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기 때문이다. 이는 리듬과 템포는 그대로 유지한 채 한결같이 보통빠르기로 진행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가 자전적 소묘에서 밝힌 것처럼 선율과 화성이 만들어지고, 끊임없이 새기는 작은북의 리듬은 변함이 없는 상태에서 단지 달라지는 단 하나의 요소는 관현악의 크레센도에 의해서 변화를 주는 것뿐이다.
Wiener Philharmoniker Gustavo Dudamel
Orchestre de Paris / Jean Martinon
Jorge Donn, ballet / Maurice Bejart, choreography
곡은 먼저 작은북의 솔로가 저음현의 피치카토를 새기는 3박을 타고, 피아니시모의 리듬주제로 시작된다. 이 리듬 주제는 모두 340마디로 이루어진 전곡에서 무려 169회나 연주된다. 이 집요한 반복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것도 후반부의 319마디부터 시작하여 323마디에서 선율에 변화가 나타나는데, 화성은 하행 변질을 버리고 거꾸로 상행변질로 나타난다. 이렇게 함으로써 볼레로는 악기를 점점 두텁게 겹쳐서 크레센도를 실현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라벨은 볼레로를 완성하고 나서, 이러한 실험은 이 작품이 발레를 위한 작품이기 때문에 시각적인 면을 고려하여 이렇게 작곡하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볼레로는 당시에 많은 센세이션을 몰고 왔는데, 정작 라벨은 이 곡은 ‘실험’이었으며 ‘음악작품이 아니라 단순히 관현악적 조직’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당황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선율의 강박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하나의 멋진 곡으로 완성해 낸 라벨의 천재적 아이디어는 그것을 듣는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감흥과 영감을 선사하였고, 비평가들로부터는 음색의 ‘파사칼리아’라는 극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