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절의 의미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절의 유래는 구약성경에서 유태인이 1년 1차씩 드린 감사예배에서 시작합니다. 근세사에서는 영국 청교도들이 1620년 5월에 May Flower호를 타고 67일을 파도와 고전하면서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그 해의 겨울, 가난 속에서 인디안과 싸우며 이듬해 씨를 뿌려 풍작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원주민인 인디안을 초청하고, 터키(칠면조)를 굽고 옥수수와 감자로 파티를 연 것이 오늘의 감사절 파티의 유래이기도 합니다.
미국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해마다 11월 네째 목요일을 감사절로 정했고, 1864년 이 날을 미국 공휴일로 의회에서 공포했습니다. 옛날 희랍인은 델포이 신전에 나와서 감사하기를 노예가 아니고 자유인이 된 것을, 여자가 아니고 남자가 된 것을, 철학을 모르는 미개인이 아니고 철학을 알게 됨을 감사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감사절은 한국의 개천절이나 8.15해방 같은 민족적 역사가 서려있습니다. 만일 희랍인의 감사가 남존여비와 민족우월성과 철학의 소산을 자긍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감사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민족적으로 배달의 긴 역사와 아름다운 금강산과 세계 십대 언어 중의 하나인 한글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old)의 장수함(거북선)과 신앙적으로는 아시아의 예루살렘과 제사장국이 됨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가장 짧은 교회 역사 속에서 최고의 선교 성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사람의 신자가 되고 교회의 임원이 되고, 동족 구원에 참여함과 어려움이 많은 365일 중에 그래도 이 한 날을 감사하는 날로 삼게 됨을 감사합니다. 욕구불만과 정신 허탈과 열등의식 속에는 감사의 좌소가 있을 수 없습니다. 반역자나 이단자나 상습 불평객에게는 감격이 없습니다. 물은 깊은 곳에 고이고, 이슬은 낮은 곳에 앉고, 은혜는 겸손한 자가 받고, 믿음은 소박한 자의 것입니다. 진실로 사랑은 진실한 자의 것이며, 감사는 느끼고 생각하고 사례할 줄 아는 자의 것입니다.
영어의 감사절(Thanks -giving)은 Thanks라는 감사의 느낌과 Giving이라는 주는 행동의 결합입니다. Thanks가 내적 ∙ 지적 ∙ 정서적 표현이라면 Giving은 자기 것을 주면서 그 느낌을 행동화, 표현화하는 구체적인 실천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플라토닉만 해도 안 되고, 정신없는 육체여서도 안됩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애정과 행동의 여인이었고, 바울은 감정과 헌신이 일치했습니다. 감사는 연속성이고, 순환윤리이며, 모든 언어와 감정은 감사하다는 한마디로 훈풍을 일으킵니다. 18세기에 영국 태버내클(Tabernacle)교회에서 목회한 스폴존 목사는‘밤하늘 별빛 주신 것을 감사하면 그보다 더 큰 달빛을 주시고, 달빛 주심을 감사하고 있노라면 그보다 더 큰 햇빛을 주시고, 햇빛 주심을 감사하고 있노라면 햇빛도 쓸데없는 광명한 천국을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은 무엇엔가 쫓기듯 살아가고 있는데, 그러한 생활 가운데서라도 2024년의 감사절은 우리 다 함께 감사, 감격의 명절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