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7]
존 헤론(John William Heron, 1856-1890)③
1888년 4월에 조선 정부가 기독교 선교금지령을 내렸고, 그로 인해 정동에 있는 예배당도 잠정 폐쇄가 되었습니다. 예배당에 모일 수 없었던 신자들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예배를 드려야 했고, 존 헤론은 공공연하게 전도할 수 없었기에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때를 기다렸습니다. 당시 선교사들이 여름이 되면 습하고 무더운 날씨와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들어가서 쉬곤 했었는데 헤론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생활하고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조선 사람들을 뒤로하고 자기만 편하게 쉬는 것이 매우 불편했던 것입니다. 당시 선교사들은 위생적으로 낙후되고 전염병이 만연한 조선의 환경에서 오랫동안 선교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잠시 피서도 하고 건강 유지를 위해 남한산성에 들어가 여름을 지내곤 했는데, 헤론은 자기 몸을 돌보기보다는 환자를 돌보는 것이 우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신앙적으로나 생활면에서 엄격하고 보수적이었습니다. 1888년 가을 새로 들어온 동료 의사가 술을 마시고 저녁에 여자들과 함께 노는 것을 보고 혐오했으며 사임을 요구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술과 담배는 물론 파티까지 싫어할 정도로 자신의 생활에 대해 엄격했습니다. 그는 낮에는 수많은 환자들을 돌보면서도 밤에는 성경 번역작업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결국 1890년 여름 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료 활동을 하다가 과로가 겹치면서 전염성 이질(痢疾, dysentery)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3주 동안 언더우드 선교사가 그의 곁을 지켜주었으나 7월 26일 사망했고, 28일 양화진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하여 자신을 주셨다.”<묘비에 새겨진 헤론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