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복숭아
먼저 간 아내의 얼굴은 복숭아 닮았다
노을이 질 때마다 그리움 가득 물든 사내의 눈망울도
복숭아를 닮아갔다
눈물은 과즙보다 달콤해 한 움큼씩 몰래 흘릴 때마다
노을 복숭아 한번 따서 눈물 바람에 맑게 씻어
한입 베어 물고 싶었으나
숨죽이며 저녁의 창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아야만 했다
밤마다 복숭아 심장니 듯 복숭아 뱃속인 듯 복숭아 속살인 듯
어둠이 뭉텅뭉텅 베어 먹고 남은 새벽이 오면 내장처럼
후줄근하게 널브러져 있는 삶의 껍질들
외로움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그리움은 갈수록 짓무르고
씨앗인지 씨방인지 알 수 없는 울음의 근원은 목울대까지
치밀어올라 사내를 괴롭히다 가고
설익은 잠꼬대를 마지못해 삼키는 목구멍으로
물컹, 미끄러져 들어가는 애절한 신음의 복숭아 반토막
벌레 먹은 복숭아 맛있다는 아내의 말이 배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부드러우면서도 촉촉한 복수앗빛 입술이 떠올라
연한 살빛으로 타오르는 노을이 입을 벌려 더듬더듬
말을 하기 시작할 때쯤 문밖을 나선다
저녁 복숭아 맛은 쓸쓸한데 왜 아침 복숭아 맛은
화안하게 숨통이 트이는지
그 방으로 한 사내가 들어가 고운 잠에 든다
<<상상인>> 2025년 여름호
이종섶
경남 하동 출생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집<<수선공 k씨의 구두학 구술>> <<우리는 우리>>
수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