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관의 자세
송미선
뿔테 안경을 검지로 밀어 올리는 구피가 처방전을 넘보며 수납창구를 보고 있다
번호표를 뽑은 L은 대기의자 끄트머리에 앉아 갈라진 아랫입술에 침을 바른다 민물에도 바닷물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구피처럼 L은 밤낮없이 부대꼈지만 물의 온도가 문제였다 맹물과 짠물의 해석법이 달라 혓바늘이 돋았고 스타카토 기법으로 튀는 심장을 억눌렀다 머릿속에서 불꽃이 일면 거울 앞에 서서 빨간약을 바른다는 버들치의 쉰 목소리가 뒤에서 들린다 녹슨 쇳가루가 떨어진다 덧난 상처는 검붉게 성이 났다 더는 견딜 수 없다며 수면 위로 고개만 내밀고
숨을 몰아쉬는 물고기들
대기번호 알림벨은 초침처럼 째깍째깍 번호표를 쥔 사람들이 수초처럼 일렁거린다
의자는 빈틈이 없고 물거품이 하나 둘 인다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날숨이 가쁘다 로비수족관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 구피가 물간 눈동자를 쓸어 모아 휴지통에 던진다 알코올 냄새를 비집고 물 위로 떠오른 수초 몇 줄기가 알림벨 소리에 걸어 나오고
누군가 어깨를 부딪치며 지나가다 휴지통을 걷어찬다 축 처진 물풀이 피 묻은 약솜 사이로 고개를 든다
첫댓글 수족관은 아픈 천국이네요. 가뿐 숨을 쉬는 천국은 뻐끔뻐끔 물고기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