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서 글을 쓴다
밤이 되면, 나는 꽃밭에 빠진다. 밤에 피는 夜花던가. 꽃이다. 꽃 꽃 꽃.......
산에도 꽃, 바다에도 꽃, 거리에도 꽃, 나는 꽃 속에 파묻힌 남자가 된다.
그리고, 나는 벌 처럼 이 꽃 저 꽃을 날아다니는 한 마리 벌이 된다. 바람둥이 벌이다. 다만, 그 벌은 가만히 꽃을 바라 볼 뿐이다.
내 사무실이자 숙소인 원룸 창문 앞에 컴퓨터가 있고, 밤에 나는 거기에 앉아 일을 하다가 문득 창 밖을 본다.
아! 꽃이다!
맞은 편 산동네,묵호항의 유명한 논골담길이 있는 동네, 그곳의 가로등 불이 꽃 처럼 피어있다.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또, 꽃이다! 바다에 오징어배의 조명이 마치 목련꽃 처럼 탐스럽게 비친다.
그 사이 항구 앞 상점들의 불빛도 넋이 나간 꽃이 되어 이방인을 유혹한다.
나는, 조용하게 서있지만, 사실 몹시 흥분해 있다. 꽃밭에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라도 얼큰하게 취한 날이면, 더욱 그렇다.
시청에서 고맙게도 비탈지고 위험한 산동네 골목길을 밝히려고 가로등을 촘촘이도 박아 놓았다. 이곳 동해시 구 도심 묵호항 주변의 묵호동 발한동 부곡동 일대에는 이토록 가로등이 많다. 특히, 묵호항 산동네는 더욱 심하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살아왔다. 그나마, 그들은 그 꽃으로 보상을 받았나보다.
힘든 비탈길 골목을 오르내리며 바다에 나가 목숨을 담보로 그들의 힘든 삶을 여기까지 살아 온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이 꽃으로 증명이 된 셈이다.
30년 전 이곳에는,진짜 꽃들이 많았다. 오징어배 선원들을 목표로 술과 몸을 팔던 그녀들, 그녀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어판장에 갔다가 갈매기 소식을 들었다. 하혈을 너무해서 응급으로 강릉 아산병원으로 실려갔단다.
"미친년......내 그럴 줄 알았지. 그리 술 처먹더니....잇빨 빠진년이 빨대로 처먹더니......"
나는 이미 그녀의 결말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녀의 삶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녀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기에.
작년 말인가, 술이 취해 집에 가다가 공사장 쌓아놓은 목재에 걸려 넘어져 이빨이 빠져서 치과에 다니면서도 빨대로 술을 처먹던 그녀였다.
그녀가 처음 와서 술집에 다닐 때, 손님이 없으면 내가 대신 가서 매출도 올려주고 그녀에게 팁도 주었고, 가끔은 대낮에 그녀와 술도 마시던 처지였다.
남자를 잘 못 만나, 남자의 아내에게 머리채 잡혀서 시장 골묵길을 개 끌리듯 끌려다니고, 간통으로 고소 당하고, 그러다가 그 남자에게 돈 떼이고, 그것도 모자라 얻어터지고, 두 년놈들에게 어지간히도 고통을 받았을 때도, 나는 그녀와 함께였다. 참으로 많은 조언도 해주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5년 전인가, 그녀가 묵호항에 나타났다. 방파제 끝에서 어민들과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가 묵호항 술집에 데려다 주었고, 그 술집에 들락거리던 나와 인연이 되었다.
자기 말로는 부산 영도 출신이고, 오빠도 자갈치 시장에서 횟집도 하고, 형제 자매가 많다고 들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 오빠 일이나 도와주라고 했다. 그녀는 내 말을 무시했다. 내가 해주었던 삼십대 후반의 그녀의 처지에 꽤 쓸만한 조언들이 깡그리 무시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그녀에게 짐작 가는 일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부터 엄청난 학대를 받아왔을 거라는. 그래서 사람을 무척 그리워 한다는. 그래서 되먹지 않는 놈에게 정을 주고 어쩌지 못하는. 전문적으로 뭐라던가 외상후 무슨 증후군인가 하는. 학대 증후군인가 하는.
그녀의 말은 항상 갈팡질팡했고, 그는 그런 그녀에 대해 어렴풋이 내 나름의 짐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오빠로 나를 잘 따랐다. 가끔은 나를 실망시켜 야단도 치면서 그녀와 술 친구로 5년을 지냈다. 그러다가 최근에 목욕탕 때밀이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갈매기 몸이 말이 아니래요. 삼십대 얘가 몸이 칠십대 할머니 같다니요."
그때, 나는 이제 갈매기가 죽을거라고 판단했다. 죽을 줄 알면서 스스로 자기의 몸을 술로 학대하는 거라고. 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술을 마시고,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의 인생 마무리로 이곳 묵호항으로 결정했다는.
나는 술을 마시며 새벽녁에는 글을 쓰면서, 마치 갈매기 그녀처럼 이곳 묵호항에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그렇게 악착같이 세상에 대해 애착을 가지다가, 이제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내가 세상을 버렸다. 내가 세상을 버렸기에 나는 너무나 편안하다. 갈매기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의 돈을 떼먹고 멀리 떠난 되먹지 못한 그녀의 남자를 잊지 못하는 그녀다. 정이 그렇게 많은 그녀는 온갖 세상살이에 상처 받고 살아왔나보다. 그래서 훌훌 내려놓았나보다. 그래서 나는 빨대로 술을 먹는 그녀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갈매기 그녀에게서 40년 전 꽃을 보는 것이다.
꽃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지만, 내 마음 속에는 머믈러 있다. 그리고 꽃의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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