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20장
35 선지자의 무리 중 한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그의 친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였더니 그 사람이 치기를 싫어하는지라
36 그가 그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떠나갈 때에 사자가 너를 죽이리라 그 사람이 그의 곁을 떠나가더니 사자가 그를 만나 죽였더라
37 그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이르되 너는 나를 치라 하매 그 사람이 그를 치되 상하도록 친지라
38 선지자가 가서 수건으로 자기의 눈을 가리어 변장하고 길 가에서 왕을 기다리다가
39 왕이 지나갈 때에 그가 소리 질러 왕을 불러 이르되 종이 전장 가운데에 나갔더니 한 사람이 돌이켜 어떤 사람을 끌고 내게로 와서 말하기를 이 사람을 지키라 만일 그를 잃어 버리면 네 생명으로 그의 생명을 대신하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은 한 달란트를 내어야 하리라 하였거늘
40 종이 이리 저리 일을 볼 동안에 그가 없어졌나이다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41 그가 급히 자기의 눈을 가린 수건을 벗으니 이스라엘 왕이 그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줄을 알아본지라
42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43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설교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과거에 다윗 왕의 죄를 지적했던 나단 선지자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다윗 왕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죽게 했을 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갔죠. 가서, 누군가의 죄를 고발하는 척하면서 다윗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죄가 아닌 듯이 듣고는 그런 죄를 지은 사람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나단 선지자는 그제야 그게 바로 당신이라며 다윗의 죄를 지적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때 다윗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죠.
오늘 말씀도 상황은 거의 비슷합니다. 선지자가 아합의 죄를 지적하려고 아합에게 가서 아합의 죄를 지적합니다. 35절을 보시죠. 선지자 무리 중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릅니다.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친구에게 전합니다. “너는 나를 치라” 사실, 이런 말을 들으면, 쉽게 치기 어렵죠.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치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36절 보시면,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았으니, 사자가 너를 죽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선지자를 치지 않은 친구는 진짜 사자에게 물려 죽어버리고 맙니다. 정말 황당한 일이 일어났죠.
37절 보시면, 선지자가 또 다른 친구를 만나서 똑같이 요구합니다. “너는 나를 치라” 이번에는 친구가 선지자를 칩니다. 그것도 상하도록 칩니다. 그랬더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정말로 선지자를 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이 상황이 보여주려는 것은, 다른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35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지만, 친구가 듣지 않았고, 죽었죠. 전체적인 상황은 조금 황당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선지서에서 사용하시는 방식으로, 여기서도 선지자의 모습을 통해 아합에게 또는 이 사건을 아는 사람들과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경고와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게 친구에게 상하도록 맞은 선지자가, 변장을 하고 아합을 찾아갑니다. 뒤에 대화를 볼 때, 선지자는 전쟁터에서 도망친 병사처럼 변장했습니다. 그렇게 왕을 만나서, 선지자가 말합니다. “제가 전쟁터에서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포로를 저에게 맡기면서, 포로를 잃어버리면 제 생명이나 큰돈으로 갚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른 일을 하다가, 포로를 잃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자기에게 맡겨진 포로를 놓쳐서, 목숨으로든 돈으로든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나단 선지자가 그랬듯이, 이 선지자 역시 아합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합이 무슨 일을 했습니까? 앞에서, 아람과 두 차례 전쟁했는데, 하나님께서 아합을 도와주셔서 아람을 이기게 하셨는데, 아합이 아람 왕을 풀어줘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한 아합은, 40절에서 뭐라고 대답합니까? “네가 스스로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여야 하리라” 잘못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제야 선지자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42절 보시죠. “그가 왕께 아뢰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멸하기로 작정한 사람을 네 손으로 놓았은즉 네 목숨은 그의 목숨을 대신하고 네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관심이 없는 아합 왕은 자신이 말한 그대로, 그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아합의 반응이 어떻습니까? 다윗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43절을 보시죠. “이스라엘 왕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그의 왕궁으로 돌아가려고 사마리아에 이르니라”(43절) 이스라엘 왕 아합이 뉘우치고, 회개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근심하고 답답해서, 이 상황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님들께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다윗처럼, 곧바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기도하십니까? 아니면, 아합처럼 인정하지 않고 답답해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십니까? 우리는 늘 부족하고 넘어지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는 것만큼이나 죄를 대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실 때, 우리의 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기꺼이 죄에서 돌이키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모습에서 보여주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특히, 아합이 스스로에게 말했듯이, 스스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 점이 중요합니다. 죄는,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인생을 짊어지겠다는 표현이기에, 인생의 어려움과 시련이 우리 삶에 닥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시금 다잡으시고, 아합의 길과 반응이 아니라, 다윗의 길과 반응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죄를 지적하실 때, 인정하시고 기꺼이 돌이키시고 다시금 은혜를 구하실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를 새롭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런 인정과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