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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주학연 지음|문성재 역주)
중국어문 자료방
2010/01/05 09:42 |
중국에서는 전통적으로 한족(漢族)이 황하(黃河) 유역에서 최초의 중국문명을 건설하고 이를 주변 민족에게 전파했다는 화이문화론(華夷文化論)이 지배해 왔다. 그러나, 역자가 매번 중국의 내몽골(內蒙古) · 만주(滿洲) · 서역(西域) 등지를 찾을 때마다 동아시아의 중심은 중국이 아니라 유목제국이며, 비단길(실크로드)보다 더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동서 문명의 통로가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초원길(스텝로드)이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물론 수천년동안 중국이 이룩한 문화적 업적과 그것이 주변 민족에게 끼친 영향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라시아에 펼쳐진 광활한 북방민족의 판도를 떠올리다 보면 중국은 또하나의 변방이요 그 역사 역시 또다른 변방의 역사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홍산(紅山) · 하가점(夏家店) · 삼성퇴(三星堆)의 고대 문화 유적들, 그리고 진나라의 발상지인 감숙성(甘肅省) 장가천(張家川)의 고대 유물 등, 최근에 이루어진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들 역시 ‘동이(東夷)’를 위시한 북방민족들의 발자취가 그동안 한족의 본거지로 여겨온 중국 내륙 ― 중원(中原) 깊숙이까지 남겨져 있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중국의 전설상의 인물들로만 여겨져 왔던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북방민족 즉 ‘오랑캐’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주학연(朱學淵)의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秦始皇是說蒙古語的女眞人)》는 저자가 10여년동안 논문 형식으로 발표한 글들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으로, 체제가 비교적 자유분방하며 부분적으로 중복되는 대목도 보이지만, ‘북방민족’이라는 거울을 통해 상고시대 중원사회에 접속하여 상고시대 중원언어가 북방민족 언어인 알타이계 언어였다는 전제하에 인명 · 족명 · 지명 · 어 휘 등 북방민족의 언어정보들과 동서양 민족의 혈연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독특한 연구방법론에 따라 북방민족의 기원과 역사를 더듬으므로써 페르시아 일대에 존재했던 고대국가의 정확한 위치 등, 그 동안 학계에서 꾸준히 논란이 되어 왔던 쟁점들에 대해 보다 독특하고 진전된 단서들을 제시한다.
• 대진국은 로마나 이집트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진국(大秦國)의 경우일 것이다. 20세기 초의 일본 학자 백조고길(白鳥古吉)은《사기(史記)》〈대완열전(大宛列傳)〉의 ‘여헌(黎軒)’,《후한서(後漢書)》의 ‘이건(犁鞬)’ 등의 지명이 a · s 등 일부 발음이 생략된 ‘레칸(Lekan)’과 부합된다는 점을 들어 이 도시를 이집트의 고대 도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비정했으며, 프랑스의 중국학자 펠리오 등이 여기에 동조하면서 백여년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얼마전 선덕여왕(善德女王)을 다룬 국내 TV 드라마에서 ‘여헌’이 이집트로 소개된 것도 이같은 주장을 반영한 결과이다. 그런데, 주학연은 17 · 18 · 19장에서 원전에 대한 깊은 분석과 함께 지명 · 인명 등 언어적 비교분석 및 현지에 대한 인문지리적 고찰을 통하여 중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오익산리(烏弋山離)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가 아니라 이란의 후라산(Horasan) 일대이며, 여헌국 또는 불름(拂菻)으로 불려진 대진국은 이란 서북부 지역이라는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다.
• 헝가리민족의 원류인 마자르족은 말갈족이었다!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현재의 헝가리 민족인 마자르(Magyar)족의 민족적 기원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마자르족의 족명 · 인명 · 지 명 및 기본어휘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헝가리인의 조상이 퉁구스계에 속한 말갈족(靺鞨族)이며, 7세기 중반의 요동(遼東)전쟁 및 고구려(高句麗) 멸망으로 촉발된 수백년에 걸친 연쇄작용 즉 유럽으로의 민족대이동의 결과, 최종적으로 헝가리에 정착하게 된 것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내놓았다.
• 숙신-말갈-여진-만주족은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같은 혈통
그러나, 저자가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아무래도 여진족(女眞族)에 대한 재해석이 아닐까 싶다. 그는 중국 고대의 인명 · 지명 · 족명 등에 감춰진 언어 코드들을 일일이 대조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기존 학자들이 별개의 족속으로 인식해왔던 숙신-말갈-여진-만주족 등이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기원한 동일 혈통인 퉁구스계 북방민족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또, 5장 · 6장 · 7장 등에서는 신화학 · 고고학 · 문자학적 고찰을 통해 기존의 상식을 넘어 삼성퇴 문화 · 주(周)나라의 희씨(姬氏) · 춘추(春秋)시대 월(越)나라의 구천(勾踐)은 물론, 나아가 아메리카 인디언에서도 퉁구스계 난생설화(卵生說話) · 새 토템 · 새깃 장식 등의 신화적 모티브들을 발견하고, 진(秦)나라의 시조설화 및 부족신앙도 그같은 신화 · 혈통적 친연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 카스피 해는 주르잔 해 곧 ‘여진의 바다’
상식을 깨는 역사해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7장 · 18장 · 19장에서는 음성학 · 언어학적 접근을 통해 페르시아의 고대국가인 안식국 · 조지국이 사실은 퉁구스계 여진족의 영역이었고 카스피 해가 주르잔 해 즉 ‘여진의 바다’로 불리는 것도 바로 그같은 역사적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는 새로운 해석도 내놓았다. 중앙아시아 이서지역은 차치하더라도, 한족 문화권 한복판이라는 중원지역은 그야말로 상고시대부터 상(商)나라에서 청(淸)나라로 이어지는 퉁구스계를 위시하여 몽골(蒙古) · 돌궐(突厥) 등 북방민족의 각축장이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고고학 · 문헌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까닭에 그의 주장이 논리적 비약으로 비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의 이같은 독특한 접근과 해석은 중국 역사의 주체는 한족이라는 전통적인 중화주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 현대 중국사학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주학연의 언어학적 실증주의
물론, 기존의 상식을 깨는 이같은 기술내용은 다분히 의도적인 장치들이다. 저자가 정작 이같은 장치들을 통해 천명하고자 하는 것은 아무래도 학문적 금기 깨기가 아닐까 한다. 고고학 · 문헌학적 유물보다 고대 언어들을 제1의 근거로 삼는 언어학적 실증주의를 역설하는 그는 언어가 엄연히 또하나의 문화전승 시스템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류사적 화석’으로서의 가치를 외면하는 기존 중국 학계의 연구 풍토에 대해 다양한 인식의 배경과 방법론을 통한 새로운 각성은 도외시한 채 지식에만 집착하기 때문에 결국 쓰레기 같은 글과 썩은 학자들만 양산하고 있다고 맹렬히 질타한다. 그러면서 칼그렌(Kalgren)이 전통적인 중국 음운학의 벽을 허물었듯이 중국 학계도 칼그렌이라는 벽을 뛰어넘어 만인에게 자유로운 학문 창달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이 책이 중국과 대만(臺灣)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저자가 기술하는 역사적 사실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이처럼 전통적인 역사담론의 고정관념을 깨는 그의 이단적이고 파격적인 도전과 통섭의 정신 때문이 아닐까 싶다.
• 한자의 또다른 가능성--갑골문을 음성적 표지로 해석
저자가 둘째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자의 또다른 가능성 재인식 하기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학자들이 의미적 표지[의부(義符)]로 인식해 온 갑골문(甲骨文)을 음성적 표지[음부(音符)]로 해석하고 있는 데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한자의 의미와 표의성(表義性)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것의 또다른 가능성인 한자의 소리와 표음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자가 동이계 왕조인 상나라에서 창제되었으며 고대와 현재의 동이계 민족들이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는 점에 주목한다면 이같은 주장이 나름대로 일리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자도 현재 어원에 관한 연구를 진행중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서처럼 언어 특히 어원에 관한 연구는 고대사 연구에서 참으로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 책의 몇 가지 문제점들
많은 학자의 저술들이 그렇듯이, 이 책도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즉, 저자가 독자에게 제시하는 비교언어학적인 가설들이 늘 완벽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① 상고시대부터 오랫동안 중원지역에 오랑캐의 시대가 존재했다
② 중원문화의 실질적인 주역들이 오랑캐 ― 북방민족이다
③ 당시 중원의 언어가 근세 북방민족의 언어이다
라는 등의 새로운 주장을 피력하는 그가 이제는 중국 학계에서조차 그 생명력이 다한 상반된 입장 ― 중국문명과 북방민족이 중원에서 기원했다는 ‘중원기원설(中原起源說)’과 한족과 북방민족은 뿌리가 같다는 ‘한로동원설(漢虜同源說)’ ― 들을 틈틈이 거론하면서 논리적 비약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모순된 모습들은 “순수한 인류학적 탐구의 발로”라는 저자 자신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동북 프로젝트나 하상주 프로젝트에 빌미가 될 우려를 안고 있어서 저으기 눈에 거슬리는 대목이다.
저자가 중국인이어서 그랬겠지만, 우리 고대사에서 대단히 흥미롭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고찰이나 언급이 부족한 것도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저자가 빗살무늬 토기(櫛文土器) · 비파형 동검(琵琶形銅劍) · 적석총(積石冢) 등 고조선(古朝鮮)과 홍산문화 · 하가점문화의 역사 · 고고학적 상관성이나 고구려 · 백제 · 신라와 북방민족의 혈연적 · 역사적 친연성 및 그 언어의 알타이어적 특성들에 주목했더라면 보다 좋은 책이 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우리가 더러 이성적인 사유를 방해하는 이 같은 문제점이나 아쉬움들을 관대하게 이해할 수만 있다면 저자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그동안 당연시되거나 간과되어온 수많은 역사적 쟁점들을 또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관조하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될 것이다.
• 중국북방민족과 한민족의 ‘인연’을 탐색하는 책
실제로 인류학 · 유전학 · 고고학 · 언어학 등 각 방면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저자 주장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줄 증거들이 속속 확인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오늘날 한민족의 정체성과 시원을 찾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새로운 시각과 신선한 자극들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본다. 어쩌면 저자가 역사언어학적인 방법론으로 중국사는 물론 우리 역사까지도 재해석 · 재조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한국사의 영역에서 북방민족과 우리 한민족의 ‘인연’을 탐색하는 작업은 이제부터 우리 스스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지은이 | 주학연(朱學淵)
1942년에 광서성(廣西省) 계림(桂林)에서 태어나 1965년에 상해의 화동사범대학(華東師範大學)을 졸업한 후 사천(四川), 남경(南京) 등지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10여 년 동안 재직하였다. 1978년에는 중국과학원 대학원에 입학하여 저명한 역학자(力學子)이던 담호생(談鎬生) 원사(院士) 문하에서 수학했으며 1983년에는 미국 몬타나(Montana) 주립대학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에는 미국 에너지 자원부 산하의 실험실에서 박사후 연구에 참여하면서 고체물리 관련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1987년부터는 저술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 인문과학 연구에 매진함으로써 그동안 중국 역사서에서 풀지 못했던 역사∙언어∙인류학적 난제들의 해결에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해주었다.
주요 저술로는〈마자르인의 극동 시원론〉(1998),〈 유라시아 초원의 퉁구스족〉(1999), 〈훈족의 선비-퉁구스 혈연〉
(2000), 〈선비민족과 그 언어〉(2000), 〈염달∙고차∙토화라스탄 제 민족〉(2000), 〈서역 족국명과 동북아 족명의 상관성)〉(2002),〈 중국 북방 제 민족과 유럽 민족의 혈연관계 신탐〉(2003), 〈고대 중원한어의 퉁구스어∙몽골어∙돌궐어적 요소들〉(2003) 등의 논문과 함께《중국 북방 제 민족의 원류》(초판: 2002, 재판: 2004),《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대만: 2006, 중국: 2008) 등의 저서가 있다.
역자 | 문성재(文盛哉)
1965년 가야, 신라, 백제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합천(陜川)에서 태어나 1988년 고려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부터 서울대 대학원에서 중국희곡을 전공하였다. 1994년 박사과정 이수 후 국비로 중국 남경대에 유학하여 1997년『심경 극작 연구』로 박사학위(문학)를 받았으며, 귀국 후에는 근대 중국어 즉 당, 송, 원, 명, 청대 조기백화(早期白話) 및 몽골어로 연구범위를 확대하여 2002년서울대에서『원간잡극 삼십종 동결구조 연구』로 박사학위(어학)를 받았다. 현재는 동 대학에 출강하면서 번역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와 역서로는『중국고전희곡 10선』,『 동아시아 기층문화에 나타난 죽음과 삶』(공저),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한국의 책 100『고우영 일지매』(중역), 한국학술진흥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도화선』,『 경본 통속소설』,『 한국의 전통연희』(중역) 등이있으며, 논문으로는 희곡사를 다룬「현대중국의 연극무대: 사실주의에서 표현주의로」,「 중국의 종교극 목련희」,「 명대 희곡의 출판과 유통」,「 안중근 열사를 제재로 한 중국연극〈망국한전기〉」
등과, 중국어와 알타이어의 관계를 다룬「원대 잡극 곡백에서의‘來’」,「 근대한어의 家/價연구」,「 원대 잡극 속의 몽골어」,「 원대잡극에서의 정도부사‘殺’용법」,「 근대중국어의 S'O'(也)似비교구문 연구」등이 있다.
• 목차
일러두기
역자서문
서문
초판서문
중국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1 중국 북방민족 연구 시말
2 중국의 북방민족들
3 오제는 애신, 화하는 회흘
4 ≪백가성≫연구
5 퉁구스계 씨족 ‘희씨’와 ‘구성’
6 여진과 구천
7 진시황은 몽골어를 하는 여진족이었다
8 ‘도올’로 찾는 중원민족의 뿌리
9 흉노 민족의 혈연과 언어
10 흉노의 흥망과 이동경로
11 아틸라와 훈족
12 돌궐족의 유래와 번영
13 헝가리와 여진은 동족
14 선비족과 그 언어
15 몽골족의 퉁구스 혈연
16 티베트족의 북방민족적 요소
17 안식국은 애신국
18 조지국은 여직의 나라
19 대진은 로마제국이 아니다
20 동방에서 온 유럽 민족
21 ≪후한서≫<원이가>의 인문학적 정보들
22 헝가리계 성씨로 푸는 여국과 귀국
23 고대 중원 인명의 북방민족적 특징들
24 실증적인 중국 역사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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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내용 읽어보기:
1. ...몽골은 동호계(東胡系) 선비(鮮卑)족의 후예이며, 여진(女眞)은 퉁구스계 민족의 대표 주자였다. <진시황제는 몽골어를 말하는 여진족이었다>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현대 인류의 표상을 이용하여 고대인의 혈연과 언어의 귀속관계를 살펴보자는 취지로서, 이런 표현이 없이는 문제의 본질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초판서문, 26쪽
2. ...이 책은 단연 이전 학자들의 업적을 능가한다. 주학연은 중국 북방민족들의 시원을 탐색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원을 더듬어가며 유라시아 인종과 언어 융합의 상관성을 지적함으로써 전인미답의 업적을 일구어 놓았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가 원래는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전통적인 인문학적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는 것은 여간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주책종,<중국민족의 시원을 찾아서>, 32쪽
3. ...언어는 인류 역사의 화석이다. 족명(族名)은 인류의 혈연을 추정할 수 있는 언어적 표지로서, 언어 발전단계 초기에 발생하기 때문에,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후대에 성씨나 인명·지명으로 전환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중국북방사회는 선사시대 중원사회의 거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이 북방민족의 족명으로 단서를 여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2장 중국의 북방민족들 -처음과 결론, 66쪽, 84쪽
4. ...중원에는 무척(武陟)·울지(尉氏)*(이상 하남성 소재), 무극(無極)·원지(元氏)(이상 하북성 소재), 무체(無棣)(산동성 소재), 오기(吳旗)(섬서성 소재) 등의 지명, 무기(無忌)·무지(無知) 등의 인명, 울지(尉遲) 등의 성씨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 모두가 올자(兀者)의 변형된 발음들이다. 이를 통해 이들이 중원을 터전으로 삼았던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임을 알 수 있다.
<역자주>*울지(尉氏): 울지(尉遲)로 표기되기도 한다. 알타이계 북방민족들이 중원에서 각축을 벌이던 우리나라 삼국시대, 중국사의 남북조(南北朝)-수당(隋唐)시대에 동북아에서 상당한 명성을 누렸던 선비계의 명문 씨족으로, 선비계의 탁발(拓跋)씨가 세운 북위(北魏)가 중원으로 진출하면서 족명을 성씨로 삼게 되었다. 고구려 명장 을지문덕(乙支文德)은 바로 이 씨족집단의 일원으로 생각된다. ‘울지(尉遲)’와 ‘을지(乙支)’는 한자는 다르지만 발음상으로는 서로 분명하게 대응을 이루고 있다.--- 2장, 72쪽
5. ...≪사기(史記)≫<대완열전(大宛列傳)>에 등장하는 서역(西域)민족 오손은 하서주랑(河西走廊)을 통해 진출한 유목부락으로, 사실은 퉁구스계 애신(愛新)씨족이다. ≪금사(金史)≫<백관지(百官志)>에서는 애신을 아선(阿鮮)으로 적고 있고, ≪만주원류고(滿洲原流考)≫에서는 거꾸로 아선을 오신(烏新)으로 적고 있으니, 오신은 확실히 오손으로 사용되기도 한 셈이다. 따라서 오손이 애신이며, 황제(黃帝)는 “황금 성씨”-김(金)씨 성의 애신헌원(愛新軒轅)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3장 오제는 애신, 화하는 회흘, 94쪽
6. ...여진인(女眞人)들은 자기 성씨를 중국식으로 바꿀 때, 돼지(올안)가 성씨로는 비속한데다 하늘(가불합)을 쓰는 것도 불경스럽다고 생각해서 주(朱)와 전(田)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산동지방인 제(齊)·로(魯)지역은 고대에는 동이(東夷)의 땅이었다. 그리고 동이는 여진족의 선조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수천 년 전에 동이의 언어에 변화가 발생했을 때, 그 일원이었던 돼지겨레와 하늘겨레가 각각 주(朱)와 전(田) 두 성씨로 탈바꿈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4장 ≪백가성(百家姓)≫ 연구, 102쪽
7.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남양(南陽) 출신이어서 ‘낭야제갈’씨로 불리웠던 제갈량도 그 조상들은 동이족이었나 보다. 제(諸)와 주(主)·주(朱)·녀(女) 등의 한자의 고대음은 똑같이 ju(주)이기 때문이다.--- 4장, 111쪽
8. ...퉁구스계 민족이 구성(九姓) 또는 조이(鳥夷)라는 사실이 중원민족에게는 남의 일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공손(公孫)이 애신(愛新)이고, 상족(商族)이 조이이며 중원이 구방(九邦)이라는 점만 알면 한족의 기저 혈통을 이루고 있는 것이 퉁구스 민족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5장 퉁구스계 씨족 ‘희씨’와 ‘구성’ -결론, 137쪽
9. ...퉁구스계 민족은 동이(東夷)·서강(西羌)이자 북적(北狄)의 구성원이기도 하였다. 퉁구스-여진의 피는 한족·몽골족·돌궐족, 심지어 티베트족에도 골고루 다 섞여 있다. 베링 해협 서쪽의 축치를 비롯하여, 티베트 자치구의 족지, 에스토니아의 옛이름 추즈(Chudj), 아랍인들이 카스피 해를 일컫는 이름인 쥬르잔 해 등등 이 모든 지명들이 여진족의 이주과정에서 남겨진 발자취들이다.--- 6장 여진과 구천, 138-139쪽
10. ...중국 학계에서는 지금까지 현재의 하북(河北) 서수(徐水)만 서이(徐夷)의 옛 땅이라고 추정해왔다. 따라서 3,000년 전 동북방의 여진 부락이 퉁구스-구이계(九夷系) 부족을 이끌고 중원으로 진출한 역사는 철저하게 은폐되고 말았던 것이다.--- 6장, 143쪽
11. ...고대 중원의 인명은 융적(戎狄) 부락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다. 즉 우순(虞舜)은 오손(烏孫), 묵적(墨翟)은 물길(勿吉), 맹가(孟軻)는 몽고(蒙古), 형가(荊軻)는 준갈이(准葛爾)에서 유래한 것들로, 이 인명들은 북방민족이 중원민족과 기원이 같다는 증거이다. 여진족과 중원민족이 이처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증명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족명 여진을 이름으로 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주인공 구천(句踐)이다.--- 6장, 146쪽
12. ...어째서 도올(檮杌)이 역사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인가. ≪영-몽사전≫을 펼쳐보면 수수께끼는 저절로 풀린다. 몽골어에서 역사를 뜻하는 말이 tuuh(투:흐)이다. 초(楚)나라의 역사가 ‘도올’이었다는 것은 명백히 이 몽골 어휘를 차용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옳다.--- 8장 도올로 찾는 중원민족의 뿌리, 169-170쪽
13. ...우리는 지금까지 월지(月氏)·오손이 퉁구스계이며, 우즈베크도 올자-베크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본장에서는 당시의 흉노 지배집단이 여직(女直) 부락이었으며, 흉노가 월지·오손을 하서주랑 너머로 축출한 일도 사실은 여직·애신·올자를 수장으로 하는 부락연맹체 간의 투쟁과 이주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임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퉁구스 민족이 동북아시아의 토착민이라는 기존의 주장은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9장 흉노족의 혈연과 언어, 182쪽
14. ...유사 이래로 북방민족들은 유라시아 대륙 곳곳으로 이주해갔을 것이다. 따라서 4세기부터 유럽에 타격을 주기 시작한 훈족을 북흉노의 후예라고 단정 짓는 것은 아무래도 다소 성급한 결론일 듯싶다. 남러시아 초원은 알고 보면 이미 3세기 이전의 1,0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키메리족·스키타이족·사르마타이족 등의 아시아계 유목민족들의 활동무대였다. 흉노부락은 중화제국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실패했지만, 이 유목민족들을 결집시키는 핵심세력으로 새로 부상했고, 이때부터 훈족이라는 이름으로 대담하게도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게 되었을 것이다.--- 10장 흉노의 흥망과 이동경로 -결론, 203쪽
15. ...활과 화살은 인류가 발명한 대단히 중요한 문명의 이기이다. 화살은 헝가리어에서는 ny-l(닐), 핀란드어로는 nuoli(누오리), 에스토니아어로는 nool(누울)인데, 신기하게도 만주어의 niru(니루)와 일치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자작나무가 헝가리어에서는 ‘화살나무’라는 뜻의 ny-r-fa(니르파)라는 사실이다. 이 또한 헝가리인들의 아시아 쪽 조상들이 싸리나무 화살을 잘 만든 퉁구스계 민족이었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말갈-여진인의 궁술은 적을 제압하는 데에 아주 훌륭한 보배였다. 중국의 정사(正史)에서는 진실을 은폐하고 있지만, 고구려 측 역사 기록에 따르면, 요동(遼東)전쟁 과정에서 당나라 태종(唐太宗)은 바로 말갈족의 독화살에 맞았고, 몇 년 뒤에 그 상처가 재발해서 죽었다고 한다.--- 13장 헝가리와 여진은 동족, 235쪽
16. ...후위(后魏)에서 수(隋)·당(唐)대까지 실존했던 실위(室韋)는 바로 한대의 선비족이다. 역사지명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시베리아(Siberia)의 어근 시베르(Siber)는 선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단언해온 것을 감안한다면 시베리아는 곧 ‘선비리아’인 셈이다. --- 14장 선비족과 그 언어, 246쪽
17. ...서방세계의 중국 북방민족 언어 연구는 18세기 상반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몽골·투르크·퉁구스의 3대 언어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인지에 대한 연구는 언어학 측면뿐만 아니라. 인류학적으로 세 민족이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는지와 직결된 중요한 과제이기도 하다.--- 14장 -결론, 258-259쪽
18. ...중국과 서양에서는 진상도 제대로 모르면서 북아시아 민족들을 달단(韃靼)으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또 몽달(蒙韃, 몽고 오랑캐)·만달(滿韃, 만주 오랑캐)같이 정치적 편견으로 가득찬 말들까지 만들어냈으며, 손문(孫文)조차 “달단 오랑캐들을 몰아내자.”라는 구호를 외치기만 했을 뿐 정작 달단의 실체가 어느 족속에 속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중국 역사서에는 사실 오래전부터 달단이 말갈에서 유래했다는 기록이 존재하고 있었다. ...달단은 말갈의 후예로 본래 해(奚)와 거란의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가, 나중에 거란에게 공격당하여, 부족이 흩어지면서, 일부는 거란에 복속하고, 일부는 발해에 복속하게 되었는데, 그 나머지 부락 중 음산에 흩어져 살던 자들이, 스스로를 ‘달단’으로 불렀다.--- 15장 몽골족의 퉁구스 혈연, 267-268쪽
19. 인류의 혈연적 융합은 이주과정에서 이루어진다. 16세기에 러시아의 코사크인들이 동진하기 훨씬 이전부터 유라시아 대륙 인류의 이동은 기본적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루어져, 인도-유럽 인종의 거주공간은 축소되는 반면, 아시아 인종의 언어와 혈연은 날로 확장 일로에 있었다. 따라서 척박한 몽골 고원에서는 증가하는 인구를 수용할 수가 없었으므로, 물과 풀이 풍부한 남러시아 초원은 말을 타고 이동하는 유목민족들에게는 이상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몽골 고원의 유목민족은 이 인류의 대이동에서 무한한 인적 원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동·서양 학자들은 한결같이 퉁구스계 민족 역시 이 대이동에 동참한 인류집단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거란에 퉁구스계의 반족(半族)이 있었고, 달단은 ‘말갈의 후예’였으며, 멸리걸 자체도 다름 아닌 퉁구스계 민족이었다. 이들이 서로 융합되면서 형성된 몽골족의 혈연과 언어 속에 퉁구스적 요소들이 진하게 남아 있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15장 결론, 273-274쪽
20. ...프랑스의 티베트 학자 쉬타인(Rolf Alfred Stein)은 사천(四川)성 덕격(德格)·감자(甘孜)의 티베트족이 사용하는 칼·등자·버클의 동물 문양이 오르도스나 알타이 지역에서 출토된 금속 조각 기법과 흡사한 점에 주목하였다. 소련 고고학자는 우수리강 동쪽에서 범·사슴 형상의 금속 장식물을 발견하고, 이 같은 현지의 여진 예술을 알타이지역 스키타이 예술이 동방으로 전래된 사례로 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스키타이가 식신(息愼)이며 스키타이 예술이 사실은 중국 북방민족 예술이 외부로 전파된 경우라는 점은 간과하였다.--- 16장 티베트족의 북방민족적 요소, 283쪽
21. ...여진·여직은 화하민족(華夏民族, 즉 중원민족 또는 한족)의 조상으로서, “곡 임금이 ···추자씨의 딸을 맞아들였다.”에 언급된 추자(娵訾)씨가 바로 여직씨인 것이다. 우리는 조지국 역시 여진계 부락이며, 카스피해가 조지·안식 등의 여진계 부락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아랍인들이 카스피해를 “여진의 바다”-쥬르잔해로 불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18장 조지국은 여직의 나라 -결론, 313쪽
22. ...현대 인류학 연구에 따르면, 1/3에 가까운 이란 남성이 몽골인종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는 2/3을 상회한다- 고 한다. 이 결과는 몽골 인종이 페르시아를 수천 년 동안 통치했다는 증거이자, 그 역사를 적어도 기원전의 메디아-페르시아 왕조까지 소급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대진국 사람들이 중국인과 비슷하다는 주장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19장 대진은 로마제국이 아니다, 319쪽
23. ...중화제국과 마찬가지로 페르시아 제국은 메디아인들을 필두로 한 북방민족의 침입과 통치를 오랫동안 받았다. 또한 ≪위략≫에 언급된 대진국은 이란령 아제르바이잔 성 및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지역으로, 바로 고대 메디아-페르시아 왕조의 발상지였다. 중국을 통일한 진(秦)이 퉁구스계 민족의 부락이었고,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남 코카서스 일대를 대진국으로 불렀던 점 등을 감안할 때, 메디아인은 아마 퉁구스계 민족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9장 결론, 331쪽
24. ...가장 흥미로운 것은 아무래도 게르만(German)이라는 국명일 것이다. 독일인들조차 그 유래를 알지 못하고 있는 이 국명은 중국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시베리아는 ‘선비족의 땅’이고, 루마니아는 ‘로마인의 땅’이며, 같은 맥락에서 불가리아도 ‘불가르인의 나라’를 의미한다. 불가르(Bulgar)는 원래 훈족에 속한 부락 - 아틸라 이후의 훈족은 동유럽으로 이주한 아시아계 유목민족의 통칭이다 - 이었다. ...불가리아의 역사에서는 그들의 선조가 추장을 ‘카안(Khan)’, 하늘의 신을 ‘텡그라(Tengra)’라고 불렀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두 단어 모두 몽골어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고대 불가르인이 초기에 몽골어를 사용했다는 점만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셈이다. 불가리아인과 추와시인의 기원이 같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사실로서, 현재의 추와시어에서는 몽골어와 퉁구스어적 요소들을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불가르는 막북 북방민족의 부락명 복골(僕骨, Vogul) 또는 실위(室韋)부락의 이름 파와(婆萵) - ≪위서(魏書)≫를 참조할 것 - 로서, ...족명 복골·파와 또는 불가르에서 ‘복(僕)’·‘파(婆)’ 또는 ‘불(Bul)’은 어근이다. 때문에 ≪북사(北史)≫에서는 골(骨)·와(萵)를 생략하고 아예 ‘발-실위(鉢-室韋)’로 기록하기도 하였다.--- 20장 동방에서 온 유럽민족, 340-343쪽
25. ...오늘날 바이칼 동쪽에 집거하고 있는 부리아트(Buryat) 몽골 부락의 경우도 ‘부리(Bury)’가 불리(不里), ‘-아트(at)’ 는 몽골계 부락명의 접미사여서 역시 복골족의 후예인 셈이다. 복골족은 일반적으로 투르크어족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부리아트어가 전형적인 몽골어라는 점을 통해 고대 복골족이 원시 몽골어를 사용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50년대 헝가리 고고학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나라에서 발굴된 4~5세기 훈족의 두개골은 상당수가 현대 부리아트인의 것과 유사하여, 그들이 아틸라의 훈족 대열에 동참했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말하자면 복골족이 서양으로 진출한 불가르 민족의 원류라면, 부리아트는 시베리아에 남겨진 그들의 종친인 셈이다.--- 20장, 344~345쪽
26. ...게르만(German)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기원 전후 로마의 역사지리서인 ≪게르마니아≫에서는 알프스 산 이북지역을 ‘게르마니아(Germania)’로 기록하면서 ‘야만족의 땅’으로 풀이하였다. 독일의 역사·언어·고고학자들은 이 단어를 여러번 연구했지만 번번이 이렇다 할 결론을 얻지 못하였다.--- 20장, 348쪽
27. ...중국인은 황하 유역을 ‘화하(華夏)’로 미화해왔다. 그런데 알고보면 화하는 바로 ‘회흘(回紇)’을 말한다. 많은 폴란드 지식인들이 조국으로 숭앙하는 사르마티아(Sarmatia), 즉 사르마타이(Sarmatae)는 바로 거란계 부락명 실만단(悉萬丹) 또는 실위계 부락명 심말단(深末怛)이다.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는 사르마타이와 관련된 사건들이 다수 기록되어 있는데, 그곳은 말 그대로 아시아 인종들로 가득한 부락이었다. ≪팔기만주씨족통보(八旗滿洲氏族通譜)≫(권44)에도 ‘살이마길(薩爾馬吉)씨’로 소개되고 있다.
게르만 또는 German은 어쩌면 족명 키메리언(Cimmerian, ‘키메리족’으로 번역)에서 변화해온 것일 가능성도 있다.--- 20장, 349쪽
28. ...게르마니아(Germania)는 바로 키메리아(Cimmeria)의 변형된 발음이나 표기 형태였을 것이다.--- 20장, 350쪽
29. ...길이만(吉耳曼, 저ㄹ만)으로 읽어야 되는 유럽의 국명 저먼(German)이야말로 이 동방 족명에 가장 가까운 발음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침머(Chimmer)와 게르만(German)이 중국 역사에서 길미(吉迷)·철목(哲木)·구리복(九離伏)·제이묵(濟爾黙)으로 전사되는 것도 나름대로는 합당한 처리인 셈이다.--- 20장, 352쪽
30. ...중원민족에게서 여직·여진이 지니는 의미는 돌궐이나 몽골의 경우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여진이 여러 차례 중원, 나아가 중국을 통치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동시에 이들이 중원민족 혈연의 저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성씨인 공손(公孫)·고신(高辛)·우순(虞舜)은 바로 오손(烏孫)이자, 여진족의 핵심 씨족인 애신(愛新)이며, 그래서 여진족이 스스로를 ‘황금 겨래(金族)’로 불렀던 것이다. 그러나 여진족의 현대적 학명인 퉁구스는 투르크어 속에 존재하는 구성(九姓), 즉 투구스(Tughuz)이다. 여직·여진의 실제 독음은 주르치·주르진이다.--- 22장 헝가리계 성씨로 푸는 여국과 귀국, 369쪽
31. ...우연한 기회에 TV 뉴스 자막에서 헝가리 총리 ‘쥬르차니’의 이름을 발견한 나는 곧 쥬르차니 페렌츠(Gyurcsany Ferenc)라는 그의 성명 전부를 찾아낼 수 있었다. 헝가리인의 성명은 동아시아에서 그런 것처럼 성씨를 먼저 쓰고 이름을 뒤에 붙이게 되어 있다. 이 경우도 쥬르차니는 성이고 페렌츠는 이름이다. 그리고 헝가리어에서 cs는 ch(ㅊ)로 읽고 gy는 j(ㅈ)로 읽으므로, Gyurcsany는 쥬르차니로 읽혀지며, 이를 한자로 옮기면 주아차니(主兒扯尼)·주리진을(朱里眞乙), 즉 여진니(女眞尼)로 전사된다. 헝가리 총리의 성씨가 여진과 일맥상통한다는 사실은 헝가리 민족의 선조가 극동에서 유래했다는 내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을 더해주었다.--- 22장, 370쪽
32. ...바이칼호 지역에 거주하던 고대 민족은 ‘츄디’로 기록되어 있다. ≪루시 연대기≫에도 관련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이 츄드족은 핀란드·에스토니아인의 조상이자, ≪게르마니아≫에 기록된 에스티이(Aestii)인의 후예들이다. 이들이 동방의 언어와 상관성이 있는 핀란드-오구르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츄드가 여직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기원전에 이미 동유럽까지 진출한 이들은 동부 슬라브 부락들과 함께 섞여 살면서 혈연적 융합을 이루었으며, 이어서 스칸디나비아에서 남하한 노르만족과 함께 루시(러시아) 민족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22장, 371쪽
33. ...한자로 전사된 족명들은 상당히 복잡하게 뒤얽혀 있어서, 만약 한자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표기상의 문제점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동양 민족의 역사는 가닥을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22장, 374쪽
34. ...구(九)·녀(女)·귀(鬼)가 독음상 서로 같다는 것을 알면 이와 관련된 역사·언어·문자상의 수수께끼들도 보다 쉽게 풀 수 있다.--- 22장, 376쪽
35. ...중국 역사서에 자주 등장하는 인도(印度)는 아프가니스탄 영내 힌두쿠시 산 이북의, 몽골인종이 우세한 중앙아시아지역을 가리키므로, 개념적으로 현재의 인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어서, 물론, 힌두쿠시산 이남의, 카시미르를 포함한 지역은 고대부터 인도의 영역으로 간주되었지만, 현재의 지정학적인 상황에 비추어볼 때, 남아시아 또는 남아시아 아대륙으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몽골인종은 선사시대부터 이미 이 남아시아에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22장, 380-381쪽
36. ...여국(女國)·귀국(鬼國)·구국(구國)·귀방(鬼方)구방(九邦)·소무(昭武)·구오(句吳) 등의 국명이나, 여왜(女媧)·귀외(鬼隗)·제갈(諸葛)·주보(主父) 등의 성씨, 구후(九侯)·귀후(鬼侯)·귀곡자(鬼谷子) 등의 인명은, 예외없이 모두 “하나의 발음으로 여러 글자(의미)를 표현한다-音多字” 라는 한자체계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될 수밖에 없는 혼선의 증거들이었다. 그러나 누구든 일단 녀(女)·귀(鬼)·제(諸)·소(昭)·구(句) 등의 발음이 모두 ‘九(ju)'와 유사하다는 점만 알면, 이것들이 사실은 구성(九姓)·구씨(九氏)·에서 유래했다는 중요한 단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여직(女直)은 구씨(九氏)이며, 그 파생음이 바로 여진(女眞)이 되는 것이다.--- 22장, 385쪽
37. ...공자는 절대로 “성이 공씨.姓孔氏”였을 리가 없다는 뜻이다. 나는 ‘공(孔)’이 이름인 공구(孔丘)에서 떼어낸 글자인 것을 그 내력을 모르는 후세 사람들이 그대로 성씨로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
중원에서 한어가 형성되면서부터 소수의 부락에서 고죽(孤竹)=>올자(兀者), 중산(中山)=>장손(長孫), 포고(蒲姑)=>복골(卜骨) 등으로 융적 식 족명을 계승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경우 국명이 단음절화되었다. 강남의 구오(句吳)가 오(吳)로 약칭되기 시작한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공구(孔丘)가 “나면서부터 머리 정수리가 움푹해서, ‘구’라고 이름 붙였다.”라고 한 대목은 한 마디로 중국 역사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헛소리여서 논의할 것도 없겠지만, 공자 조부의 이름 백하(伯夏)는 북방민족의 족명 복화(卜和)이며, 공자 부친의 이름 숙량흘(叔梁紇)은 몽골어로 조선을 가리키는 족명인 숙량합(肅良合)이다. 이를 통해 공자 가문에도 “족명을 인명으로 차용하는” 융적 식의 작명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23장 고대 중원 인명의 북방민족적 특징들, 390~391쪽
38. ...≪삼국지(三國志)≫<위서·여포전(魏書·呂布傳)>에서는 그가 “오원군 구원 사람으로, 용맹하여 병주에서 벼슬을 하였다.”라고 적고 있는데, 오원(五原)은 현재의 내몽골 자치구의 중심지대-하투(河套, 오르도스)·음산(陰山) 일대로서, 한대에는 남·북 흉노가 격전을 별였던 곳이다. 또 병주(幷州)는 훗날의 태원부(太原府)이다. 따라서 넓게 보자면 여포는 오랑캐,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흉노 출신으로서, 현대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산서(山西)성에서 복무하던 몽골족 출신의 용병이었던 셈이다.--- 23장, 399쪽
39. ...이 책은 중국에서의 역사언어 연구의 실증화를 위한 노력의 산물로, 상고시대 중원인과 중국 북방민족의 인명에 대해 초보적인 비교연구를 시도한 것이어서 완벽한 이론체계를 정립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언어 간의 상호비교를 통해 얻어진 데이터들을 나름대로 고찰·정리해놓았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23장 결론, 402쪽
40. ...중국 학술계는 오로지 아는 데에만 집착할 뿐 깨우치는 데에는 무관심하였다. 따라서 청산도 어렵지만 발전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껏 만들어낼 줄 아는 것이라고는 쓰레기뿐이었다. 그러니 그 쓰레기 속에서 아무리 파헤치고 쏟아내고 떠들어 대고 한다 해도 ‘썩은 학자朽儒’ 신세를 면할 길이 없었던 것이다.--- 24장 실증적인 중국 역사학을 위하여, 411쪽
41. ...언어학은 인류학의 중요한 분야 중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언어학자들은 상당수가 문자학의 노예 노릇만 하고 있다. 이 책은 중국 내 여러 민족의 시원을 실증적으로 다루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서 시도되었다.--- 24장, 412쪽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유익한 자료이네요.^^
논란이 되었던 아메리카 인디언에 대한 기록도 보이는군요. 쩝...최근 발굴된 상고사에 관한 유물 유적은 세계역사를 뒤집어 놓고도 남음이 있건만은 아직도 무지 몽매한 자들은 상고사를 그저 신화로만 믿으려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참 안타깝죠.^^ 심리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이세상은 자기가 믿고 싶어 하는것만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육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문제이죠. 이미 학계에서부터가 쩌눌려진 역사의식에서 그로 인해 전파된 지난 해방이후의 뿌리짤린 역사체계..여기는 정치 종교적로부터 해서 사회문화전반에 깊숙이 의식화된것을 바로잡는것은 쉽지 않겠죠. 하지만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문제입니다. 역사는 정의가 승리하게 되어있으니깐요.
궁금한게 있는데요...의천도룡기가 원나라 시절의 이야기잖아요....몽골족....근데 그때 한족의 위치는 뭐였나요???? 의천도룡기에서 보니깐 한족이야기 엄청 나오는거 같던데...몽족이 말할때 마다 한족의 풍습에 따라...이런말 많이 하던데 그당시 한족의 위치가 얼마정도 였는지 궁금해서요....
한족위치--;; 4등급중 4위였어요.. 그나마 북방한인은 여진, 고려, 거란 혈통도 있다고 좀 봐줬는데, 80%를 차지했던 남방한족은;;
의천도룡기를 쓴 김용이 한족인데, 책은 참 재밌게 잘 써요 ㅋㅋ 근데,, 민족별로 캐릭터는 좀 편향적이죠..한족 방방 뛰어주는게 보인달까?
뭐-자위용이죠.. 몽골족 공주가 한족풍습에 감화되어 이름도 한족식으로 바꿔서 다니고, 몽골칸한테 한족남자 주인공은 무예가르침을 받고 ㅋㅋ
얼마나 싸인게 많으면,, 소설 속에서나마 한족 프라이드를 풀어내겠습니까? ㅋㅋ 근데, 의천도룡기 참 재밌죠.. 그냥 고증말고 재미로 보세요/
ㄳ^^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다만 한가지....제목에 한국말이라기 보다는 몽골어가 정확해 보이네요.
몽골어는 한국어가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