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봉 영지버섯
이제 초가을에 든 느낌이 확연한 구월 초순이다. 화요일 새벽에 일어나 도서관에서 빌려다 둔 이석주의 ‘나도 노인이 된다’를 펼쳐 읽었다. 동양철학을 연구한 저자는 조선시대 명현 여섯 분이 남긴 문장과 시에서 나타난 노년기 삶을 소개한 학술 연구서였다. 퇴계의 일기 격인 ‘갑인일록’과 임종을 앞둔 기록 ‘고종기’와 한시 몇 구절에서 노년의 중후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었다.
날이 밝아와 이른 아침을 해결하고 산행 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첫차로 운행하는 시내버스로 시청 근처로 나가 삼정자동으로 가는 차로 바꾸어 탔다. 불모산동 종점 못 미친 유니온빌리지 아파트단지에서 내렸다. 거기는 용제봉 기슭으로 가려는 산행 기점으로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곳이다. 지나간 여름에 영지버섯을 찾느라고 몇 차례 찾아갔다.
일 년 사계 가운데 봄과 여름의 산행에서는 내게 목표가 뚜렷해 배낭에 뭔가를 채워왔다. 봄에는 여항산 서북산 임도를 따라 걸으며 뜯은 산나물이다. 여름철은 불모산이나 용제봉 기슭을 누비면서 영지버섯을 찾아낸다. 활엽수림의 참나무 고사목에 붙는 영지버섯은 장마철 이후 생장 극점을 지나 한여름부터 벌레가 꾀거나 삭아져 가을이면 건재로 약효를 잃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보름께 전 나는 불모산으로 산행을 다녀오면서 영지버섯을 몇 무더기 찾아내 물이 넉넉하게 흐르던 계곡에 손을 담그고 더위를 잊은 적 있었다. 그날 산행을 다녀온 후기를 남기면서 제목을 ‘끝물 영지를 찾아서’라고 붙였더랬다. 그러고는 올해 영지버섯 채집은 그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는가 싶었는데 마음이 달라져 남은 찌꺼기 이삭이라도 주워볼 생각으로 다시 용제봉을 찾아갔다.
용제봉으로 드는 등산로를 찾아 데크를 따라 올라가니 불모산 산정으로 아침 해가 솟는 기운이 비쳤다. 일출의 서기와 함께 두둥실 피어오른 구름과 안개는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임도처럼 넓게 뚫린 용제봉 가는 등산로에는 새벽 산행을 마치고 나오는 이들이 드물게 보였다. 나와 같은 시간대에 불모산 숲길로 향하는 이들 가운데 아침 식사 이전인 사람도 있을 법했다.
날이 밝아온 숲길에는 밤새껏 울어댔을 귀뚜라미 소리가 그치지 않고 들려왔다. 여름내 귀가 따갑게 울던 매미 소리는 어느새 뚝 그쳐 들려오지 않았다. 지나간 처서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긴 했지만, 그 절기로부터 계절의 무게중심은 가을로 기울어졌다. 내가 찾으려는 영지버섯은 가을이 되면 벌레가 꾀거나 절로 삭아 쪼그라져 건재로 가치를 잃는데 이삭이나마 찾아볼 생각이다.
상점령과 불모산 숲길로 나뉜 이정표에서 용제봉으로 향해 개울을 건너기 전 개척 산행을 감행했다. 영지버섯은 활엽수림 가운데 참나무 고사목에 붙는데 거기는 소나무 숲에 드물게 활엽수가 섞여 자란 혼효림이었다. 활엽수 일색이 아닌데다 참나무가 드물었으니 고사목은 더 귀해 영지버섯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러함에도 기대치를 갖고 꾸준히 숲을 헤맨 인내심을 발휘했다.
숲속을 누빈 성과는 있어 고사목 참나무에 붙은 느타리버섯을 먼저 찾아냈다. 마트에서 재배 느타리는 흔해도 숲에서 만난 자연산 느타리버섯은 귀한지라 고스란히 접수했다. 이어 점차 해발고도를 높여가니 갓을 펼쳐 자색으로 물들었다가 굳어진 영지버섯을 한 무더기 찾아냈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면서 간식으로 가져간 빵과 커피를 먹다가 꿩의다리가 피운 꽃을 봤다.
용제봉이 대암산으로 뻗친 신정봉 어디쯤까지 올라갔다가 하산을 택해 골짜기로 내려오면서 삭은 영지버섯을 몇 조각 더 찾아냈다. 등산로로 빠져나온 계곡에서 배낭과 모자에 붙은 거미줄을 정리하고 이마의 땀을 씻고 흐르는 물에서 음이온을 받아들였다. 삼정자동으로 나와 집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반송시장에서 지기를 만나 칼국수를 같이 들고 배낭 속의 영지버섯을 나누었다. 23.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