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野 대선주자들, 만고의 역적이 안 되려면
보수층 정권교체 열망 간절한데
尹은 스스로 점수 깎아먹고
洪은 본인 경쟁력 提高 대신 尹공격 몰두
이기홍 대기자
이번 대선만큼 국민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맞는 선거가 있었을까.
어느 대선이든 정권유지를 바라는 국민과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있지만, 이번엔 그 갈구의 심도가 과거 어느 선거와도 비교가 안될 만큼 절실한 것 같다.
특히 문재인 정권에 비판적인 국민들에게 이번 대선의 의미는 각별하다. 식민 치하의 연장이냐 독립이냐를 선거로 결정하는 나라가 있다고 상상해 볼 때, 혹독한 식민 통치에 치를 떨어온 피지배국 백성들이 선거에 임하는 절실함이 이 정도 되지 않을까(마찬가지로 문 정권 지지자들은 독립유지냐 식민치하 회귀냐를 선택하는 심정일 것이다).
그렇게 절실하기에 야권에 이렇다할 대선 후보감이 보이지 않던 지난해까지는 절망감이 그토록 컸고, 올 상반기엔 희망도 그만큼 부풀어 올랐다.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데는 윤석열의 공이 컸다. 올 초 모든 여론조사에서 여당 주자들을 압도하는 윤석열의 등장은 보수층이 무기력을 떨치는 동력이 되었고, 정권교체행 열차(黨)를 업그레이드하라는 국민명령, 즉 ‘이준석 현상’을 창출할만큼 열정적인 참여로 이어졌다.
그러나 어느새 기대는 불안으로 바뀌고 있고, 윤석열을 지팡이 삼아 기운 냈던 이들이 윤석열을 걱정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6월 29일 이후 윤석열의 지지율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정권의 네거티브가 큰 원인이지만, 그건 윤도 진작 예상했던 상수(常數)다.
지지자들의 더 큰 걱정은 윤석열이 밖에 내놓으면 내놓을수록 스스로 점수를 깎아먹고, 본인만의 ‘장점’들에서 멀어져간다는 점이다.
그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 중 상당수는 좌파 특유의 꼬투리 잡아 비틀기의 탓도 있지만, 그렇게 쉽게 먹잇감을 제공하는 건 대중정치인에겐 부끄러운 일이다.
윤석열은 고시 준비 시절, 책 한 권을 읽으면 후배들을 앉혀놓고 몇 시간씩 ‘썰’을 풀 만큼 ‘지식 소화력’이 좋은 다변가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선후보의 청중은 소줏집에서 다소 과한 비유나 부적확한 표현이 튀어나와도 다 감안하고 들으며 핵심을 소화해주고 감탄해주는 호의적인 후배들이 아니다.
다변가들은 세상사를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한다. 설령 사안의 핵심을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주제를 놓고 대중에게 재미있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인데 이를 간과한다.
후보 본인이 해야 할 말과 캠프 관계자의 몫을 구분 못 하다 보니, 검수완박에 맞선 ‘부패완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같은 특유의 간결했던 메시지는 사라졌다.
이런 마이너스 행보들은 캠프 내에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소통 분위기가 사라진 탓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겸손 이미지를 강화하지 못하면 검사라는 직업적 배경이 겹쳐지면서 ‘평생 죄인만 다뤄온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라는 부정적 스테레오타입에 갇혀버릴 것이다.
이런 실점들에 추가해 ‘손준성 보냄 고발장’ 사건이 터졌다.
핵심은 윤석열의 개입 여부다. 집권세력은 “검찰 조직이 개입한 건 맞는데 윤석열의 지시 여부는 아직 물증을 찾고 있다”는 식으로 질질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손준성이 자발적으로 혼자서 그런 일을 벌였겠느냐’는 논리를 확산시킬 것이다. 공수처, 검찰은 계속 요란한 수사로 최대한 법석을 떨며 피의자, 범죄자 이미지를 확산시킬 것이다. 충성 지지층은 별 영향이 없을지라도, 온건 중도층에겐 두고두고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과 몇 퍼센트로 승부가 갈리는 선거다.
조작이든 윤의 지시든 신속하게 명명백백한 결론이 나와야 한다. 윤석열은 이 사건을 피해가려 해선 안 된다. 결백하다면 스스로 입증할 수 있는 적극적 대응을 해야 한다.
홍준표는 중도 확장력을 넓히고 집권세력과 맞섬으로써 안정감과 경쟁력을 높이기보다는 윤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강경 친문세력 표에 매달려야 하는 여당 예선과 달리 야당 예선은 정권교체 경쟁력이 주요 판단 잣대임을 간과한 행태다.
누가 본선에 올라가든 야당 후보 앞에는 악재들이 예고돼 있다.
첫째, 집권세력의 시리즈식 네거티브 공세다. 예선 단계에선 다 쏟아내지 않고 본선에 올라오면 온갖 편법을 동원해 총공세를 펼 것이다.
둘째는 정권의 막대한 돈 풀기다. 셋째는 정책과 비전을 내놓을 준비도 여건도 부족하다는 점이다.
넷째는 예선만 끝나면 여당 후보가 문재인 정권과의 교묘한 차별화로 ‘여당 내 야당’ 이미지를 강화해 정권교체 민심을 잠식할 것이다.
다섯째는 야당 후보가 약세를 보일수록 권력기관 공무원들이 180석을 가진 집권세력의 요구에 순응해 사냥개처럼 달려들 것이다.
물론 정권의 계산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야당 후보들의 전투력도 남다르다. 윤석열은 반기문 고건 등과 다르다. 윤석열이 2년간 혈혈단신으로 정권에 맞선 것은, 앞서의 식민 치하 선거 비유를 들자면, 혁혁한 독립투쟁 경력이나 마찬가지다. 홍준표도 사막에서 혼자 생존하며 물을 만들어 먹는 방법을 익힌 정치인이다.
백신만 제때 확보했으면 이미 상반기에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접종완료율을 기록했을 국민들에게 사죄는커녕, 세계에서 가장 공동체 참여의식이 높은 국민 덕분에 가능했던 1차 접종 속도를 마치 자신의 치적인 양 세계 1위라고 자랑하는 몰염치, 김만복의 선글라스 파동보다 더 고개를 젓게 만드는 국정원장… 불과 한 주 동안에만도 국민을 분노케 하는 일들이 이처럼 쏟아진다. 이런 한 주가 4년간 계속됐다.
지치고 절망한 국민들을 생각한다면 야당 후보들은 모든 걸 던질 각오가 있어야 한다. 정권교체를 위해 피 흘리다 쓰러져 자양분이 될 각오까지 해야 한다. 이전투구, 객관적 상황을 외면한 주관적 자기평가에 함몰돼 대사를 그르친다면, 개인의 실패에 그치지 않고, 그토록 절실한 정권교체 열망을 짓밟은 만고의 역적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