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마스떼 지 ! 나마스떼(NAMASTE)라는 말은 당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에게 경배한다는 존경의 뜻이 담긴 인사말입니다. 굳이 우리말로 바꾸자면 '안녕하십니까'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이 인사말은 고대 산tm끄릿어 시대부터 내려오는 말로서 인도 사회에서는 비교적 무거운 인사말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나마스떼라는 인사말 이외에도 다른 표현의 인사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마스떼 이외에도 ‘압 께쎄 해?’,‘람 람~!’,‘꺄 할 짤 해?’와 같은 힌디어 인사 이외에도 이슬람식의 인사인 ‘살람 아일라쿰’등 각자 종교에 맞는 인사말들도 있고 가장 흔하게 많이 사용하는 인사말은 영어의 인사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 ‘나마스떼’라는 인사말은 가급적 예의를 갖추고 공손히 인사를 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지(JEE)는 ‘생명, 영혼’이라는 뜻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존경의 뜻을 나타내는 명사로서 영어에서 ‘SIR'와 동등한 의미로 '선생님'이란 뜻이 담겨 있지만 상대방의 이름 뒤에 붙어 '님'으로 해석해도 무방하겠지요. 일반적으로 인사를 할 때는 '나마스떼' 라고 말해도 존경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만 '나마스떼 지' 라고 할 때는 그냥 나마스떼 라고 할 때보다도 좀 더 존경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과 유사한 지위를 부여하자면.... '안녕하시온지요' 라는 말의 비중을 함유하고 있지요. 따라서 '지(JEE)'에는 존칭보조어간 ‘-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인도 사회에서 '지(JEE)'는 긍정의 대답으로 존경의 뜻이 담긴 대답으로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 식으로 하자면 '예'라는 대답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힌디어로 'YES'는 '항[HANG]'인데 그냥 '항'이라고 대답할 때는 '응!'의 뜻이 있고 '지 항' 이라고 대답할 때 공손의 뜻이 담긴 '예!'가 됩니다. 힌두사회의 실제 생활에서는 ‘지 항!’이라고 깍듯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그나마 줄여서 ‘지~!’라고만 표현하면서 공손히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어느 분야에서든 항상 이론과 실제는 다소 정도의 차이가 있는 법이지요.저는 한국에서 인도어과를 졸업하고 1988년도에 인도정부초청장학생으로 인도에 와서 힌디산스탄을 거친 뒤, 델리대학교에서 힌디어 석사과정을 마치고 언어학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제가 인도에 처음 왔을 당시에는 한국에서의 상황과는 달리 힌디어를 마음껏 배우고 연습해 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뿌듯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처음부터 에누리 없이 무너지기도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배웠다는 힌디는 일종의 회화 책을 달달 외운 것 이상은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저로서는 그게 최고의 무기였고 언제든지 속사 권총을 빼들 수 있는 서부의 동키호테였습니다.
“나마스떼 지! 메라 남 박효택 해, 매 꼬리야세 아야 훈. 압 세 밀까르 쿠시 헤!”
이렇게 저는 인도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 있고 거침없이 인사를 하곤 했습니다. 저의 인사말을 듣는 인도인이 외국인이 구사하는 힌디어를 감탄의 눈길로 쳐다보리라는 기대를 한껏 가슴에 안고서 말입니다. 그런데 기대는 커녕 착각이었습니다. 저의 말을 처음 듣던 학교의 친구들은 저의 유창한(?) 힌디어를 듣는 순간 대부분이 아주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만났다는 듯이 너털웃음을 웃더군요. 그리곤 열에 열 명이 그러더군요.
“와~!‘끼땁 힌디’로 말하느라 수고가 많네. 아주 재밌군!”
‘끼땁’은 책이라는 말이니 책에 나와 있는 힌디를 배우고 외우느라 수고 많았다는 뜻이었지요. 그들이 그렇게 웃음으로 대응해 준 것은 실제 힌디어를 사용하는 인도 사회에서도 힌디어를 모르는 사람들이 힌디어를 배우기 위해 책을 보고 독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학으로 힌디를 배운 사람들이 말하는 힌디어는 실제로 사용하는 실용힌디와는 달리 문어체적인 딱딱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나기 때문이지요. 그런 경험을 겪은 뒤로 끼땁힌디를 실용힌디로 바꾸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였습니다. 요즘은 델리대학교나 네루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생겨서 한국어를 배우는 인도청년들이 많아졌습니다. 가끔 그들과 만나는 자리가 생기면 한국인을 보고서 자신이 갈고닦은(?) 한국어 실력을 써 보려고 과감히 달려옵니다. 그리곤 발음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지만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더듬거리며 말합니다.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XXX입니다.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어요. 당신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하는 말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제가 인도에 처음 왔을 당시에 했던 말과 비슷하지만 게 중에 다른 부분은 ‘저는 한국말을 배우고 있어요’뿐입니다. 그들을 보면 제가 20년 전에 인도에 처음 와서 흡사 쌍권총을 찬 서부의 동키호테처럼 저돌적으로 인도 사람들을 만났던 모습이 연상돼 헛웃음이 나온답니다.
<사진 : 힌디어의 모음>
1933년 조선어학회는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제정하여 우리나라의 표준말은 서울을 포함한 경기 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으로서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글맞춤법통일안처럼 힌디어에 대한 통일안은 없지만, 힌디어의 기본 개념을 정의하면서 한글의 표준말처럼 특정 지역에서 사용되는 힌디어를 표준으로 사용한다는 정의는 내려져있습니다. 지리적으로 바로 델리의 오른쪽에 붙어서 동부 쪽으로 이어지는 우따르 쁘라데시 주입니다. 그래서 표준힌디어는 우따르 쁘라데시에서 사용되는 힌디어를 지칭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한 나라의 수도는 각 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구성돼 있겠지요. 서울도 그렇겠지만, 델리 역시 한반도의 17배나 되는 땅덩어리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모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델리 내에서 제대로 문법에 맞는 힌디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을 보기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인도인들 중에서도 힌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냥 힌디로 말을 하면 문법에 맞는 고급힌디를 구사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답니다. 힌디어가 자기의 고향 말과 또 다른 지방의 말들과 섞여서 그야 말로 짬뽕 힌디가 되는 것입니다. 델리에서 구사되고 있는 힌디어는 바로 짬뽕 힌디어인 것입니다. 힌디어를 공부하는 인도인들은 이를 일컬어 ‘키쯔리 힌디’라고 부릅니다. ‘키쯔리’는 인도 음식 중에서 '기(ghee)' 기름을 넣고 쌀과 콩을 섞어 만든 볶음밥입니다. 키쯔리는 그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로서 새롭게 만드는 음식이 아니라 식은 밥과 식은 콩 음식 등을 이용해서 다시 만드는 짬뽕 볶음밥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델리에서 사용되는 힌디어를 키쯔리 힌디라고 부릅니다. 그 짬뽕힌디어와 표준힌디어가 정확히 구분돼서 사용되는 것을 알고자 한다면, 우따르 쁘라데시 주를 가보시면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누구나 힌디어를 제대로 배운 사람들이라면 우따르 쁘라데시 주의 어디를 가더라도 학교에 가보지도 않은 것 같은 릭샤왈라(릭샤 운전사)들도 존칭어법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말하는 것을 대번에 느낄 수 있답니다.
인도의 헌법에는 언어 사용에 대한 정의를 규정에 놓은 조항들이 있습니다. 그 조항 중에는 어떤 특정 언어를 인도의 국어로 한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국어를 법으로 명문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자면, 인도에는 국어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겠지요! 다만, 하나의 언어를 국어로 규정한다는 조항 보다는 특정언어를 인도의 공식 언어로 사용한다고 명시해 놓았습니다(인도 헌법 343조). 그 공식 언어가 힌디어입니다. 힌디어 뿐만 아닙니다. 영어 역시 인도의 공용 언어로 사용하도록 돼 있습니다. 힌디어의 경우는 단순히 힌디어가 아니라 ‘데바나가리’로 표기된 힌디어야 한다고 규정해 놓았습니다(인도 헌법 343조 1항). ‘데바나가리(DEVANAGARI)’라는 것은 힌디어를 표기하는 글자의 이름입니다. 힌디어를 구성하는 알파벳의 이름이지요. 데바나가리는 당연히 고대 산스끄릿어에서 이어져 내려온 글자입니다. ‘데바나가리(DEVANAGARI)’는 ‘데브’와 ‘나가리’의 합성어입니다. 데브(DEV)는 神(신)이라는 뜻이고 나가리(NAGARI)는 市民(시민)의 여성형명사입니다.
그래서 데바나가리 문자는 신들의 백성으로서 신의 뜻을 표현하는 도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신들의 도구이니 그 의미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의미에서 풍기는 경직성을 탈피하고 좀 더 부드럽게 보이기 위해 여성형으로 이름 지어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글자가 신들이 사용하는 도구라니 범인(凡人)의 범접이 가히 쉽지가 않겠습니다. 그러니 누가 감히 신들의 도구를 배울 수가 있었겠습니까? 물론 반드시 그것 때문이라는 기록이나 증거는 없지만, 결국 고대의 생활 규범과 법규 및 철학을 기록해 놓은 서적들은 오롯이 브라만 같은 높은 계급들만 접할 수 있도록 규정지어 놓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글자를 서로 의사소통하기가 힘든 여린 백성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세종대왕의 한글과는 천지의 차이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헌법에 명시된 바처럼, 힌디어는 데바나가리로 표기된 글자여야 한다고 규정지어 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힌디어는 데바나가리 글자 이외에도 다른 글자로 표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데바나가리로 표기하는 ‘나마스떼’를 'NAMASTE'처럼 영어로 표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루두어로도 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우루두어는 현재 파키스탄의 국어이고 인도에서는 약 1억3천만 명이 넘는 회교도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로 남아 있습니다. 힌디어와 우루두어는 그야말로 글자만 다르지 말은 거의 똑 같습니다. 단지 우루두어에서는 회교도의 영향으로 페르시아 쪽의 단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도에는 힌디어 이외에 여러 가지 지방 언어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인도 전체에서 사람의 입으로 발성되고 있는 말에 대해서 혹자는 200여 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200여 종이 넘는 언어가 어떻게 다 같이 공존하고 있을까 하는 점도 사실 의문입니다. 데바나가리 문자를 이용한 몇몇 언어와 자체적으로 고유한 문자를 갖고 있는 언어를 제외한다면 그 외의 180여 종의 언어는 사실 주요 언어의 사투리나 방언에 지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입니다. 대개의 언어라 함은 문자로 존재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런 언어 이외에 문자조차 없이 불과 2,000 ~ 3,000 명 정도 되는 부족들만 사용하는 말들도 있다고 하니 인도의 다양성을 파악하기란 정말 쉬운 일은 아닙니다. 200여 종이 넘는 말을 전부 인정하는 것도 단순할 것 같지만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도의 헌법에는 지방 언어에 대해서도 규정을 지어 놓았습니다. 20년 전 제가 인도에 처음 유학을 왔을 때 인도의 헌법에서 인정하는 지방어로는 공용어로 사용하는 영어를 포함해서 17개였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헌법상에 인정하는 공용어가 18개로 바뀌더니 이제 인도의 헌법에서 인정하는 지역언어는 총 22개로 늘어났습니다.
힌디어가 통용되는 지역은 인도 전체 국토 중에서 약 40%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주로 북부 지역입니다. 실제 힌디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20%라고 합니다. 허나 힌디어를 듣고 이해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50% 이상은 되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그런데 특이한 현상이 있습니다. 주로 북부 지역의 대도시에서 볼 수 있기는 합니다만, 힌디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인도인들 중에서는 힌디어인 데바나가리를 잘 읽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주로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영어는 아주 유창하다는 점입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힌디어로 표현을 해야 할 때는 데바나가리를 사용하지 않고 영어를 사용합니다. 즉,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제가 인도에 처음 왔을 때 사용했던 말을 영어 알파벳을 사용해서 다음처럼 표기합니다.
“NAMASTE JI! MERA NAM PARK HYOTAEK HE. ME KOREA SE AYA HUN. AAP SE MILKAR KHUSHI HE!”
사실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고 누가 그따위 식으로 글을 사용하느냐고 탓하는 사람도 없고 또한 전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사실 요즘 나오는 휴대 전화기의 힌디어 폰트 서비스는 전혀 무용지물에 불과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고 했던 시절도 있었지요. 그와는 다른 문제이겠지만, 말이 많아서 생기는 폐단도 많지 않겠습니까? 법으로 정해 놓지 않은 그 말 많은 말들이 돌아다니면서 무슨 일이 또 벌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법으로 정해서 없앨 것은 없애고 살릴 것은 살려서 사람의 쪽수가 많이 사용하는 말들을 영어와 포함해서 두리뭉실하게 공용어라 약속해 놓고 그 중에 제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힌디어를 미래의 국어가 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언어는 사회와의 약속입니다. 약속이란 언제나 늘 상호간의 합의 하에 바뀌어 질 수 있는 것이지요. 만약 힌디어가 장차 인도의 국어라는 규정이 생기게 된다면, 국어로 인정해 주지 않는 말을 가진 지역과는 또 어떤 충돌이 일어날지 모를 일입니다. 이는 이미 힌디어에 대한 반발을 표명하는 지역이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말이 많으니 말을 통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말이 많다 보니 말 많은 정치인들을 위해 또 색다른 규정도 재미있습니다. 즉, 나랏일을 하는 의원님들이 중앙의회에서 발표를 할 때는 힌디어 또는 영어로만 발표를 하여야 하고, 지방의회에서는 영어 또는 그 지방의 언어로만 발표를 해야 하는 규정도 있습니다. 가끔 인도 중앙의회의 회기 때에 방송되는 의회 채널을 보면, 중앙의회에서 열을 받은 의원이 감정에 북받쳐 영어나 힌디어가 막히게 되면, 자기네 지방언어로 열변을 토하게 됩니다. 이 때 국회의장은 영어나 힌디어로만 발표를 하도록 주의를 주다가 그래도 계속 말을 듣지 않으면 집어 치우라는 식으로 나무망치를 막 두들깁니다. 그러면 또 아수라장이 되는 모습이 TV에 나오기도 합니다.
인도의 적지 않은 언어들 중에는 가문의 영광처럼 족보를 같이 하는 동일어족의 언어들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족보가 다른 언어들도 있습니다만 인도 어디를 가더라도 11억이 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해를 하는 말이 바로 '나마스떼'입니다. 그런데 사실 오리사 주에 위치한 데칸고원의 산골짝에 사는 소수부족들과 처음 만나서 '나마스떼'라고 인사를 하니 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영 어색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그런 소수의 지역들도 있기는 합니다. 그리고 나마스떼라는 말 대신에 ‘나마스까아르(NAMASKAR)'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뜻은 똑 같습니다. 그런데 간혹 외국인들의 경우‘나마스까아르’를 ‘나마스카아르’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힌디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영어로 표기된 대로만 읽다보니 생기는 오류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남인도의 따밀나두 지역의 대표적인 무용인 'BHARATA NATYAM'을 영어로만 보고서 읽게 되면 ‘바라타 나트얌’으로 읽게 됩니다. 이걸 단순히 틀렸다고 말하기에는 좀 논리성이 떨어집니다만 정확히 발음하자면, ‘바라뜨 나띠얌’이라고 말해 줘야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대자면 또한 재미없는 글이 되겠기에, 그러지 않아도 지겨우실 텐데, 다음에 혹 기회가 된다면 밝혀보고자 합니다.
사실, 바라뜨면 어떻고 바라타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뜨’나 ‘~타’나 오십보 백보 차이 날게 뭐 있냐고 한다면 차이가 엄연히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아빠'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아바' 라고 하면 그가 하는 말의 문맥을 봐서 알아듣기는 하겠지만 그 말이 맞다고 인정해 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외국인이 첫 마디에 '너의 아바 어디 있어?' 라고 한다면 누가 알아주겠냐는 말이지요. 그나마 한인월보인 나마스떼 인디아는 ‘나마스테’라고 표현하지 않아 다행이긴 합니다. 허긴 이론과 실제가 다른 외국어가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표기의 원칙이야 어찌 되었든 뜻만 통하면 되는 일이 실제 생활에서는 허다합니다. 외국인이 나마스떼라 하면 어떻고 또 나마스테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안녕하시냐는데요.... <끝>
<사진 : 힌디어 자음 체계>
<위의 사진들은 Google의 이미지에서 검색, 다운 받은 것들입니다>
[출처] 나마스떼! 힌디! (뉴델리 코린도하우스) |작성자 금연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