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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알같은 지적과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저번 시즌에 앞서 전희철이 은퇴를 하더니 이번 오프시즌, 결국 농구대잔치 시절 고려대의 포워드 현주엽과 양희승이 은퇴를 발표해 필자는 물론, 농구팬들 조차 많이 아쉬워 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기량보다 부상이 이들의 은퇴를 재촉시킨 점이 더더욱 아쉬운 대목이 아닐까 싶다.
두 선수다 최근 몇 년간 부상으로 제 활약을 하지 못했음은 물론, 현 부상의 상태가 재활 경과를 비롯해서 적게는 1년을 비롯, 많게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결론이 나왔기에 현주엽의 소속팀 LG세이커스와 양희승의 소속팀 KT농구단이 전력외로 분류. waive됨에 따라 끝내는 은퇴를 하고 만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두 선수의 계약기간이 아직도 남아있었고 그래도 부상이 완쾌 후 예년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팀에서 나름의 역할 이상은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이 아쉬운 경우가 아닐까 싶다.
About Magic Hippo
현주엽. 휘문중·고 시절부터 그는 이미 유명한 스타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늘 다득점으로 팀 승리를 이끌었으며, 1년 선배인 서장훈과 함께 했을 당시 팀의 위력은 생각만 핻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 둘은 최강의 팀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장훈이 연세대로 진학하자 그 이듬 해 그는 서장훈의 연세대를 이기고자 고려대로 진학. 당시 신기성, 김병철, 양희승 그리고 전희철과 함께 최강 고려대의 위용을 과시했다.
당시 실업 팀을 격파함은 물론, 연세대와의 경기는 당시 농구에 대해서 모든 것들을 대변해주었다. 체육관은 수 많은 팬들로 비좁았고, 언론의 관심과 팬들의 열기까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그런 열기 말이다. 당연히 쳔고전처럼 당시 두 대학의 자존심 싸움도 한 몫 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어쩌고보면 승자는 늘? 서장훈의 연세대였다. 그렇지만 다른 어느 농구팬도 현주엽이 못해서? 졌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반대로 보면 고려대가 그렇게 많이 졌나 싶으기도 하면서 뭐랄까. 그닥 밀린 것도 없었던 것 같다. 파워포워드로서의 힘과 체격은 물론, 일단 그의 개인기에 다들 매료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의 개인기는 다른 포워드 선수는 물론, 아마 여타 포지션의 다른 선수들도 잘 하지 못한 것들을 그는 보였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현주엽이 서장훈의 청주 SK나이츠(현 서울 SK나이츠)에 지명. 서장훈과 또 다시 한 팀을 이루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SK나이츠가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았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 당시 안준호 감독의 운용에서 조직력은 상대적으로 찾아 볼 수 없었다랄까.. 반대로보면 선수단 전체가 너무 화려해서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특히나 외국인 선수도 당시는 2명 모두 전 쿼터를 뛰는 시기였기 때문이 더더욱이 밸런스가 맞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듬 해 최인선 감독이 부임하고, 무엇인가 달랐다. 당시 대전 현대다이넷(현 전주 KCC이지스)과 선두다툼, 그런데 무엇인가 아쉬웠고 부족했다. 결국 리그 역사상 손꼽히는 트레이드. 크리스마스 딜로 조상현과 팀을 맞바꾸었다. 당시 SK나이츠는 재키 존스, 로데릭 하니발이라는 좋은 외국인 선수와 더불어 플레이오프는 물론, 분명 우승의 기회였는데 그는 광주 골드뱅크(현 KT농구단)로 이적. 유니폼을 갈아입게 된다.
문제는 바로 여기다. 전 소속팀 SK나이츠는 시즌을 2위로 마무리. 플레이오프에서 현대다이넷을 격파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하지만 그 해 나산플라망스는 플레이오프는 커녕 많이 바뀐 팀명만큼이나 플레이오프와는 거리가 멀었다. 아니 올라가지 못했다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수도 있겠다. 광주 나산 플라망스, 광주 골드뱅크 클리커스, 여수 골드뱅크,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당시 코리아텐더는 이상윤 감독을 위시로 전형수, 정락영, 이버츠 등. 특유의 공격과 달리는 농구로 한 때 리그 2위까지 올라섰지만 결국 준결승 직행은 실패했지만 1라운드에서 승리 준결승에 진출, 동양 오리온스(현 대구 오리온스)에 패하며 시즌을 접었다.
허나 이 때 현주업은 군인 신분이었고 팀도 코리아텐더 맥스텐.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을 거쳐 부산 KTF매직윙스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당시 애이스 전형수 선수를 이적시키며 어렵게 팀을 유지하였고 그 끝에 KTF라는 이동통신사가 팀을 인수 팀이 또 다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이때, 2004-05 시즌 KTF매직윙스에 정상 전력으로 복귀. 애런 맥기, 게이브 미나케와 함께 프런트 라인을 구성. 포인트 포워드라는 길을 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 이 것이 현주엽 농구인생에서 프로 첫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그리고 이듬해도 플레이오프에 진출. 필자가 기억하기로는 이 시즌에서 어시스티 탑10에 든 포워드 선수가 딱 둘이었는데 그 둘 중 하나가 외국인 선수 앨버트 화이트와 현주엽이었다. 그 이후 FA. KTF는 FA현주엽의 잔류와 그리고 신기성과 더불어 신인 드래프트 지명자 방성윤과 함께 정말로 최상의 라인업을 구상했으나 현주엽이 LG세이커스로 이적하면서 무산되고 만다.
현주엽은 LG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다. 그를 수비하는 국내선수는 5반칙 퇴장당하기 일수였고, 그는 여전히 서장훈과 김주성을 막을, 아니 적어도 버틸 능력이 있었고 게다가 2,3쿼터는 외국인 선수가 1명 밖에 출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름의 이점도 많았다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시간이 갈수록 현주엽의 공헌도는 줄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아니, 돌이켜보면 공헌도가 줄었다기 보다 부상이 그롤 계속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신선우 감독 시절과 그리고 저번 시즌 강을준 감독까지. 2년 연속 삼성 썬더스와 1라운드에서 만났지만 팀은 두 번다 패하며 2년 연속 1라운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만약, 현주엽이 그나마 제 기량은 아니더라도, 제 컨디션으로 활약하여 상대 이규섭을 공수에서 괴롭혔다면, 상황이 어떻게 달라져도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운 생각이 앞선다. 더불어 더 아쉬운 것은 이 아쉬운 생각이 이제 마지막 생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90년대 농구 열기. 열기를 넘어선 그 무엇인가에 적어도 큰 역할, 아니 한 축을 담당했던 그였기에 그의 은퇴가 더 아쉬울지도 모르겠다. 본인은 이런 별명이 싫다지만 매직히포, 한국의 찰스바클리, 그리고 한국 농구에 큰 힘을 보탠 "Magic"현주엽의 코트와의 이별이 더 아쉬운 것 같다.
장신 슈터 양희승
사실. 양희승하면 뭐랄까 현주엽이나 전희철만큼 화려하고 또 인상적인 기억이 상대적으로 덜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양희승만큼 리그에서 꾸준히 두자리 수 이상 득점한 선수도 그렇고, 현재 이규섭을 위시로 흔히 말하는 장신 슈터 계보에서 적어도 그가 한 위치에, 아니 최초?라는 소리를 들어도 어색하지 않아보인다.
그렇다. 당시 화려한 고려대 주전 라인업의 스몰포워드. 당시로 말하면 빅맨의 신장에 슛거리가 그것도 꾀나 길었다. 필자가 양희승 선수의 경기를 많이 보지 못해 솔직히, 전희철, 현주엽 만큼 떠오로는 것도, 표현을 잘 해내지도 못하겠지만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가 KBL에서 만큼은 나름 꾸준했다고 본다. LG시절. 긴머리가 돋보였던 선수. 벌써 세월이 얼마나 지났는가. 그 때 남자가 머리가 길었던 것도 드문데 양희승은 농구선수 신분에 머리가 그렇게 길었다. 거의 10여년 전이니 필자도 엄청 어릴 때이다. 고로 활야고다 머리가 돋보였던 선수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서 당대 최고의 가드 조성원과 트레이드 되며 소속팀을 바꾸게 된다. 2001-02시즌. LG는 조성원과 조우현의 쌍포를 위시로 하여 리그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 파이널까지 진출하게 된다. 삼성 썬더스에 아쉽게 패했지만 말이다. 그에 반해 양희승이 속한 당시 현대는 나름의 과도기적 과정을 겪으며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만다. 상대 조성원은 리그 MVP까지 수상하며, 트레이드의 승자는 LG였다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다음 시즌. 전주 KCC는 재키 존스를 재영입. 이상민, 추승균, 양희승의 라인업과 벤치의 정재근, 삼성의 대체 외국인 선수였던 제런 콥이 후반부에 가세. 신선우 감독 특유의 토털 바스켓이 완성되며 5라운드와 6라운드에 연승을 거듭하며 리그를 3위로 마감하는 기염을 토해낸다. 무엇보다 싱글가드였지만 양 쪽 윙에서의 추승균과 양희승의 개인기. 특히 1:1에서의 우위와 파생되는 공격. 더불어 재키 존스도 센터였지만 3점슛이 능했고 무엇보다 이 선수의 아웃렛 패스에 전주KCC는 손쉬운 득점을 많이 했다.
거기에다 이상민. 이상민이 누구인가? 이상민의 속공 전개 능력은 물론 당시 이상민의 능력에 물음표를 다는 팬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싶을 정도. 이에 저승사자 정재근이 벤치에 있으니, 높이와 여러 기타 조건이 좋았다 할 수 있겠다. 이 2001-02시즌은 당시 동양 오리온스가 우승한 시즌임과 동시에 서울 SK나이츠와의 선두다툼이 워낙 치열해서 가려진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2위 경쟁자 인천 SK빅스(현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를 밀어내고 3위에 입상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 준결승에서 2:1로 앞서 갔으나 4차전에서 최인선 감독의 변칙 전술. 서장훈, 허남영, 김종학이 모두 투입. 같이 코트에 서머 높이의 위용을 과시, 시리즈를 뒤집으며 KCC의 시즌과 더불어 양희승의 시즌도 끝이나고 만다.
그리고 맞이하는 FA. KCC구단은 재계약에 초점을 두었으나, 내쉬를 떠난 존슨처럼, 그는 그 중심의 플레이를 원했고, 결국 SBS 스타즈(현 KT&G 카이츠)로 이적. 군에서 전역하는 김성철과 더불어 윙 포지션에서 높이도 있는 쌍포를 구축하였으나, 기대가 컸는지 많은 기대만큼 좋은 시너지 효과는 나오지 않았다. 우승은 커녕 플레이오프 컨텐더도 조금은 힘들었다.
이들을 조율하는 유능한 가드와 인사이드의 외국인 선수는 제 플레이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게 왠일인가 대체 선수로 온 단테 존스가 좋은 기량과 매너(당시엔 매너는 좋았다.)를 보이며 15연승에 성공 2000-01시즌 이후 처음으로 준결승에 진출하게된다. 그리고 2005-06시즌에 앞서 이정석과 주희정이 맞트레이드 되고 그 이전 시즌에 가세한 15연승의 주인공 특급 용병 단테 존스가 재계약하며 핑크빛? 미래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트레이드로 가세한 주희정과 우승을 노리지만 이것 또한 존스의 개인 플레이를 비롯, 케미스트리가 흐트러지면서 무너지고 만다. 후에 김성철이 FA로 전자랜드로 이적. 양희승 본인도 부상에 신음하여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황진원 옥범준과 팀을 맞 바꾸었다. 물론, 상황은 첫 FA때와 많이 달랐다. KTF의 능력있는 국내선수들과의 조화도 조화지만 부상으로 제 컨디션에서 시즌을 치루지 못하며 결국 두자리 수 득점에도 실패하고 만다.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에게는 세월보다 부상이 더 아쉬움을 남기는 것 같다. 현주엽의 은퇴도 마찬가지겠지만, 그의 은퇴 결정에도 농구계가 적지않게 놀란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오프시즌 웨이브 공시되며 말이다. 명예를 먼저 떠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은퇴를 결정하며 아쉬움을 남긴 그를 선수로 볼 수 없음이 여전히 아쉽다.
두 별을 보내며..
90년대 고려대를 이끌던 주전 포워드라인을 이제 모두 떠나보냈다. 특히나 이번의 둘은 서두 뿐만 아니라 계속 말하였다시피 부상이라는 점에서 더욱이, 정말이나, 아직도 아쉽다. 02년 아시안 게임, 중국과의 결승전. 4쿼터 몇초남기지 않고 극적인 동점슛을 본인 특유의 개인기로 만든 그 2득점은 아마 우리 농구를 응원하고 좋아한 분이라면 누구나 아는. 그리고 회자되는 멋진 샷임이 분명한 것 같다.
끝으로, 흔히 말하는 제 2의 농구인생에서는 더 잘 되기를. 대한민국 농구팬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바란다.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말 현주엽은 우승하는거 한번 꼭 보고 싶었는데.......ㅠㅠ
현주엽은 운도 참 없었죠.. 휘문고 시절 서장훈하고 현주엽이 뛰는 경기를 딱 한번 본적이 있는데. 상대팀 아주 처참하게 지더군여.
현주엽의 가장 아쉬운 시즌은.....현주엽-미나케-맥기...시즌이 아닐까 싶어요......그때 사실 조금만 더 운이 좋았다면 우승도 노려볼만한 삼총사였는데 말이죠...아쉽습니다..
LG시절의 파스코 사건도 아쉬운 대목이였죠....KTF 시절의 3총사 시절이 가장 좋았지만....
파스코가 그 경기중에 성질 못이기고 선수인가 심판 폭행하려고 했나 폭행했나 해서 퇴출당한 그 용병인가요?...맞는지 가물가물..
맞습니다, 플레이오프 4강전이였죠, 그 때문에 LG는 용병 한명으로 경기(그렇지 않아도 골밑이 빈약한데) 결론은 탈락....가장 우승에 근접했던(뭐 챔프전서 이긴다는 보장은 없으나) 시기였던것 같습니다.
당시 미나케 선수가 부상으로 하차하는 일만 없었어도...현주엽-미나케-맥기 라인이 유지되었더라면 충분히 리그를 호령할 만했습니다. 이 시기 KTF는 공격적인 투자로 좋은 선수도 많이 들여오던 시기였구요...안타깝네요.
아님 fa때 lg말고 오리온스왔어도 노려볼만 했겠는데요. 건강한 승현, 건재한 병철옹, 현주엽, 클라크, 브라운(리벤슨) 괜찮은데 ㅋㅋ
근데 현주엽 선수가 진짜 서장훈 이길라고 고대로 간거 맞나요? 아부지가 고대 출신이라 갔다는 소리도 들은거 같은데 걍 언론에서 떠들어 논거 아닌지.. 그리고 현주엽, 서장훈 신인시절 우승후보로 각광받던 소속팀은 결국 8위에 머물지만 당시 주전 5명중 3명이 평득 20이 넘엇죠 현주엽, 서장훈, 재미슨.. 추억의 이름이군요 재미슨 ㅋㅋㅋㅋㅋㅋ갈수록 퇴화했던 용병
ㅎㅎ그렇군요..ㅎ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ㅋㅋㅋ 추억의 이름 재미슨.ㅎㅎ
아뇨아뇨! 지적이 아닙니다. 그냥 제가 어디서 주서 들은거 같아서요 ㅋㅋㅋㅋ
그래도 깨알같은 말씀 감사하다는.ㅋㅋㅋ
기자회견때 서장훈의 연대를 이기고 싶다 그런식으로 얘기를 했다더군요...어느분의 글에서 봤는데 고대에서는 서장훈과는 친하기도 하지만 라이벌 의식이 있다는걸 알고 그런식으로 계속 입질을 했다고...그리고..전희철 선수와 양희승 선수는 서장훈 선수가 고대로 올거라고 속아서 고대로 결정했다더군요..